천은 대한민국의 38도선 이북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군이며 서울에서 정북쪽 방면에 위치함


연천은 1945년 광복 당시 대부분이 38도선 이북에 있어 소련군정 및 북한의 영토에 편입되었는데 연천군은 강원도로 배정되었음. 한국전쟁 이전 북한 치하에서의 연천군 행정구역은 아래와 같음

-> 38도선 이남의 전곡면, 백학면, 적성면, 남면은 미군정 소속으로 들어갔는데 이 중 남면은 경기도 양주시에 1946년 편입하였음

-> 나머지 적성면, 백학면, 전곡면은 모두 파주군으로 편입

-> 포천군의 38도선 이북 지역은 모두 영평군으로 개편하였는데 이 영평군 중 청산면과 창수면은 1946년 12월 소련군정이 연천군으로 편입시킴


위 지도에서 많은 읍과 면들이 강을 따라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음


1. 임진강 이북,이서에 해당하는 곳은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과 서남면임 (실제 이 경계로 임진강이 그대로 지남)


2. 군남면과 전곡읍의 경계는 한탄강과 차탄천임


3. 청산면과 창수면은 영평천의 이남이며 원래 포천군이었으나 북한 치하에서 연천군으로 편입. 그러나 전쟁 후 수복한 후 다시 포천군 및 포천시로 환원되었고 이 중 청산면은 1983년 연천군으로 영구 편입됨


4. 관인면은 한탄강 이북에 위치하며 한탄강을 경계로 창수면, 강원도 철원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음

-> 한탄강 이북이라는 이유로 원래 포천이 아닌 연천군 소속이었으나 보장산, 종자산 등에 의해 다른 연천군 읍면들과 떨어진 월경지이기 때문에 1963년 포천군으로 편입됨


이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우리가 수복하였는데 아쉽게도 왕징면 북서부 일부와 서남면, 삭녕면의 대부분은 북한 영토로 남게 되어 연천군의 일부는 미수복 지역임

-> 북한에 남아 있는 왕징면 북서부 일부, 서남면 (오탄리 제외)는 모두 황해북도 장풍군으로 편입

-> 서남면 오탄리와 삭녕면은 강원도(북) 철원군으로 편입


대한민국은 전쟁이 끝난 후 원래 강원도 철원군에 속했던 신서면, 원래 경기도 장단군에 속했던 장남면 전체와 대강면과 장도면의 일부를 연천군에 편입시키고 대신 관인면을 포천시로 이관함. 한편 38도선 이남 지역이었던 곳들 중 백학면과 전곡읍 지역을 다시 연천군으로 환원시킴

-> 적성면은 파주군에 그대로 남게 하였고 남면도 양주시에 편입된 후 그대로 유지시킴


아래는 현재 대한민국의 연천군 행정지도임

-> 장남면, 백학면, 미산면과 왕징면이 임진강 이북, 이서에 위치한 영토임



이 연천군은 대한민국에게도 당연히 중요성이 매우 큰 지역인데 가장 큰 핵심은 연천군의 대부분을 우리가 가지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며 만약 이 곳을 북측이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 이상 위험했을 것이라는 점임


이 이유에 대해서는 연천의 지정학적 특성과 군사지리에 의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 아래를 통해서 살펴 보도록 하자


아래는 연천을 지나는 강과 하천들을 나타낸 지도

-> 북위 38도선은 연천군에서 임진강 중류와 한탄강, 영평천의 아래로 지나게 됨


1. 임진강 (노란색): 강원도 법동군 두류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강원도 북서부의 판교, 이천, 안협, 삭녕을 통과한 후 군사분계선을 넘어 연천군으로 진입. 연천군 서부를 휘감고 지나가다 합수머리에서 한탄강과 만나 남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향함


2. 사미천 (빨간색): 임진북예성남정맥 중앙에서 발원해 장단군 북부 (현 장풍군)을 관통하는데 동쪽으로 가다 남쪽으로 향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연천군 남서부의 장남면에서 임진강과 합류


3. 한탄강 (하늘색): 강원도 평강군-세포군 경계에서 발원해 평강고원 동부를 따라 남으로 내려옴. 군사분계선을 관통한 후 철원평야 일대를 휘감으며 남서쪽으로 전진해 포천 북부와 연천 남부를 가로지른 후 합수머리에서 임진강에 합류


4. 영평천 (자주색): 화천군과 포천군의 경계인 광덕산에서 발원해 포천 이동면, 영중면, 창수면을 따라 동서 방면으로 흐르는데 연천군 남동쪽에서 한탄강에 합류


5. 차탄천 (연두색): 철원군 철원읍 소이산, 금학산 기슭에서 발원해 연천군 북부로 접어들고 신탄리역, 대광리역, 신망리역 등을 가로지르며 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후 전곡읍 서쪽에서 한탄강에 합류



이처럼 연천군은 여러 강과 하천들이 (임진강 중류, 한탄강, 영평천 등) 동서 방향으로 그리고 남북 방향으로도 펼쳐져 있는데다 모두 이 일대에서 만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필요한 방어선 및 지형들이 많음

따라서 연천은 삼국시대부터 남북이 서로 대치하는 주요 전장으로 기능해 왔으며 이 일대를 장악하는 쪽이 공격과 방어에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음

-> 지금도 연천 일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대표적으로 당포성, 호로고루, 숭의전, 은대리성이 유명함


아래는 연천을 관통하는 주요 통로들을 나타낸 지도

: 하늘색은 평양에서 연천까지 이어지는 방원령로, 자주색은 원산에서 연천까지 이어지는 경원선로

: 노란색은 연천에서 두 통로가 만나 서울로 이어지는 축선, 연두색은 황해도와 강원도 간 연결 통로인 토산-안협-철원 축선



연천은 원산에서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평강, 철원을 거쳐 서울 방향으로 내려오는 경원선로와 평양에서 방원령 넘어 황해도 북동부의 수안, 신계, 토산과 삭녕을 거쳐 서울로 내려오는 방원령로가 딱 만나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매우 높은 요충지임

-> 연천에서 두 경로가 만나 3번 국도를 따라 전곡-동두천-양주-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직으로 향함


흔히 연천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남북 방향의 경원선로만 (추가령 구조곡) 지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못지 않게 연천에서 북서쪽으로 경원선로와 갈라져 황해도 동부를 지나 평양을 동쪽 방향에서 들어가는 방원령로도 삼국 시대부터 고구려가 남진할 때, 백제가 북진할 때 매우 중요한 군사 통로로 기능하였음

-> 실제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할 때 경의선, 개성평양고속도로가 지나는 자비령로 (평양-황주-서흥-평산-개성-서울) 축선 못지 않게 주공으로 이용한 경로가 이 방원령로임

-> 한국전쟁 시기 북한이 남침할 때, 중공군 개입 후 공세를 할 때에도 경의선 축선 못지 않게 방원령로를 이용하였음


즉, 평양과 원산 양측에서 서울로 남하하는 공격로가 딱 만나서 합쳐지는 곳이 연천이고 반대로 서울에서 정북쪽으로 올라가다 평양으로 향하는 북서 방면 통로 (방원령로)와 북동 방면 통로 (경원선로, 추가령 구조곡)이 양갈래로 갈라지는 곳도 연천임.

-> 한편 연천의 북동부에 위치한 철의 삼각지대는 경기-관북 통로와 영서-관서 통로가 교차하는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임


그리고 연천 지역은 개성, 파주 축선과 달리 넓은 임진강 하류와 한강 하구의 장벽이 없어 대규모의 병력과 기갑부대가 진격하기 가장 좋은 통로로 예로부터 활용되었으며 실제 북한군이 서울을 공격하는 주공은 한국전쟁 때나 지금이나 항상 이 축선임. 

->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북한이 서울로 공격하는 데 가장 주공으로 이용하는 경로는 연천, 포천과 철의 삼각지대 축선이며 개성-파주 축선은 임진강과 한강 하구의 장벽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주공이 아닌 조공으로 기능함


백제는 광개토 대왕 이전까지는 항상 연천 일대를 확보하였기 때문에 북쪽에서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한성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음. 그러나 광개토 대왕 때 고구려의 국력이 급격히 신장하게 되는데 고구려가 연천을 확보하게 되자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하기 몇 배 이상 쉬워지게 되었고 백제는 한성을 안정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음 


지금과 달리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예성강 유역, 임진강 중상류와 한탄강 유역 (연천, 영평 및 철의 삼각지대), 북한강 중상류, 남한강 중상류 유역을 차례차례 빼앗기면서 한성 방어가 불가능하게 되어 결국 개로왕이 죽고 장수왕 공격으로 한성을 함락당하게 되었음


추후 신라는 진흥왕 시절 국력이 급격히 강해져 영토가 매우 넓어졌으며 최전성기에는 임진북예성남정맥-아호비령 산맥-낭림 산맥-함경 산맥을 경계로 하여 원산과 함흥평야를 장악하고 국토의 최북단이 북위 41도선까지 올라감. 


그러나 돌궐 등 북방의 상황을 정리한 고구려는 임시로 맺은 신라와의 밀약을 파기하고 다시 남진하게 되었는데 신라는 진평왕 초기 안변 이북의 영토를 상실하고 다시 임진강 및 한탄강 유역으로 북방 전선이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 일대를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는 영토 싸움을 삼국 통일 직전까지 이어감


대체로 임진강을 경계로 고구려와 신라가 서로 대치하였는데 연천 지역은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전쟁으로 남쪽에 신경 쓰지 못한 와중에 신라가 북진하여 영토를 다시 넓힌 와중에도 끝까지 고구려가 멸망 직전까지 사수한 곳임. 이 연천 지역을 고구려가 유지하였기 때문에 신라는 강원도에서 서쪽으로 예성강 유역과 황해도로 진출할 수 없었음


38도선 분단 시절에는 연천군 대부분을 전부 북한이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북한군이 임진강 중류와 한탄강, 영평천 수계를 모두 먹고 그 이남으로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위 하천 지도 참고) 우리 입장에서 방어선이 여러 개 까인 상태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음

-> 군사, 전쟁에서 방어선이 하나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타격이 큼


더구나 북한은 평양, 원산 양쪽에서 병력과 물자를 방원령로와 경원선로를 이용하여 남진하여 연천에 집결하였고 이 곳에서 3번 국도를 따라 그대로 남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서울 방어가 몇 배 이상 힘들었고 북한과 서울이 훨씬 가까웠음


북한이 원하는 대로 휴전회담 때 38도선 그대로 휴전선이 되었다면 저 지역들을 빼앗겨 연천, 포천 축선에서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강력한 방어선이 없어 서울 수도로 하기 훨씬 어려워졌을 것임


지금은 우리가 삭녕을 뺀 연천 전 지역을 확보했기 때문에 더 이상 북한이 방원령로와 경원선로를 활용할 수 없게 되었고 임진강 중류 유역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원령로를 따라 토산, 삭녕 방향으로 내려와도 다 막혀 버림


또한 우리가 이 연천 지역과 철의 삼각지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후 유사시 이 곳을 발판으로 황해도 동부 (토산, 신계, 수안)을 통해 평양으로 진출, 공격하기 한층 유리하다는 것이 포인트임

-> 중부전선이 북상함으로써 원산, 함경도 방향은 물론 황해도 및 평양 방향으로도 북진하기 더 유리해짐

-> 의외로 한강 하구를 넘어도 임진북예성남정맥을 남쪽에서부터 하나하나 넘어야 하는 개성 축선에 비해 연천, 철원에서 서쪽으로 안협-토산, 삭녕-토산을 통해 황해도 동부로 진입하는 축선이 대규모 병력과 물자가 진격하기 유리한 점이 있음

-> 게다가 임진강 이북, 이서에 있는 장단군 남부와 연천군 서부가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임진강 위에 교두보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 유리함 (교두보가 있다는 것은 실제 적에게 패배를 안길 수 있는 크리티컬한 요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