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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이 왜 쳐 망하는가. 작가가 대충 써서?


아니다.


오히려 대충 쓴 글일 때 잘 되는 경우가 있는데, 세계관이며 주인공이며 주요 조연이며 악역의 목적이며 소설의 카타르시스며 씬의 분배며…… 이딴 걸 다 생각하고 적는 글을 쓰다가 얼마가지 않아 자신이 뭐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까먹고 다른 소설 새로 쓸 때다.

대충 쓰는 글— 가령 '나는 이세계 여자 아카데미에 상식개변을 걸어서 미래영겁 나에게 봉사할 노예양성소를 만든다' 따위의 욕구가 그런 글을 쓰게 만드는데, 이건 애초부터 글 자체가 현실의 무기력감을 덜어내기 위한, 전능감을 위한 소설이기에, 매 화마다 전능감을 표현하지 않으면 작가 스스로가 만족을 하지 못하게 된다.


좀 과격한 예시지만, 글을 대충 써서 망한다기보단 작가 스스로 무엇을 써야 할 지 모호해졌을 때 글이 망하는 경향이 있다.


2. 작품 소개글을 쓸 땐?


나는 상업 작가생활 시작이 로판이다. "얼마든지, 네 가치에 가격표를 매기고 싶진 않으니까." 따위의 대사를 치는 서브남주를 쓰는 걸 아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카카페를 켜면 하나같이 소개글이 가관이다. 무슨무슨 아무튼 대단하다. 폐하… 이런 건 원작에 없었는데요?! 따위의 소개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저런 소개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카카페는 소개글을 보려면 터치를 몇 번 더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니까. 프롤로그를 읽을 때 쓰는 것과 거의 같은 노동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독자는 소개글에서부터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바라는 거다.


문피아나 노벨피아 같은 1차 플랫폼의 경우를 보면, 굳이 소개글을 읽는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 그냥 제목 밑에 나오니까. 1화 클릭하기가 바로 밑에 있는 시점에 소개글까지 공들여 읽는 독자는 드물다.


그래서 소개글은 짧고, 간단한 정보전달만 해 주는 게 평타다. 프롤로그는 클릭으로 시간을 좀 빼앗았으니 살짝은 공을 들이고.


기껏 1화 클릭했는데 '트렌디한 지옥의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은퇴한 염라대왕이 단죄 힙합으로 무장하고 돌아왔다.' 한 문장만 써 있으면 김 샐 것 같거든. 벌스 하나쯤은 괜찮잖아.


3. 도입부에 무조건 사건이 터져야 하나? 뭐가 꼭 있어야 해?


지금에야 웹소 쓰는 게 하도 익숙해졌으니 사고회로가 좀 기형적으로 변했는데, 여전히 의문인 것들 중 하나다.


사건을 터뜨려라, 전조를 보여라, 와쿠와쿠를 떠올리게 해라… 라고 하는 작가들 중 태반은 즉석에서 그거 못 만든다.


자기들도 빡세거든. 그러니까 하는 말이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변명이다. 그럴거면 남한테는 왜 시킨대.


1화는 어차피 작가든 독자든 미지의 영역이다. 작가는 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하는 시기다.


나는 이도저도 안 된다면 주인공의 위치나 짚어주고 넘어가라고 하고 싶다. 회빙환이 줄기차게 쓰이는 이유에는 이런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인생 n회차고, 늬들이 실패했던 거 이미 다 알고 있고, 나도 그 실패자 중 한 명인데, 이번엔 늬들과 출발선이 다를 거다.'

그냥 느껴진다. ㅈ사기다.


4. 상태창.


분량 늘리기인 건 독자보다 작가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걸 뒤지게 재밌는 부분이 아니라, 그 재밌는 부분 직전이나 직후에 넣어 사고를 환기시키게 된다.


가끔 동료 작가들 중에 '이런 전개 쓰기 전엔 상태창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이미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요.' 하는 사람들 있다.


걍 써라. 네 감이 대부분 맞다. 상태창 하나하나 분석하고 읽는 독자 드물다.


오히려 머리싸움 하겠답시고 셜록 홈즈에 빙의해서 아서 코난 도일 하위호환 될 바에야 사진 찍고 구글 이미지 검색해서 사전 띄우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지자.


하다못해 나무위키에 뭐 검색한다고 쳐도 종 속 과 목 강 문 계 다 뜬다. 근데 그게 딱히 불편한 건 아니잖아.


5. 고난과 역경이 필요해요!!!


그래, 필요하지. 있으면 재밌으니까. 하지만 왜?


중요한 건 고난과 역경 따위가 왜 있어야 하는지 아는 거다.


대부분의 웹소설 작가들은 거의 감각으로만 스토리를 전개하는 탓에 '사이다'니 '고구마'니, 글 자체의 느낌에 집중하게 된다.


주인공 쳐 답답하게 지고 있는 거 보면 속이 터지는 거지. 그러니까 기피하는 거고.

어느 정도는 합리적이다.


그런데, 느낌적인 느낌 말고, 왜 '배신당해서 200억 달러 날리고 한강 다이빙 하러 간 대기업 CEO'라는 캐릭터의 회귀 스토리가

'평범함의 극치라서 이도저도 못 하고 사회에 눌리고만 살다 과로사로 죽은 회사원'이라는 캐릭터의 회귀보다 재밌을까?


나도 나름의 답을 찾는 게 오래 걸렸다. 실마리가 좀 엉뚱한 곳에 있다.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어디든 간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그 망할 놈의 선망의 시선이야말로 보물이란 걸 가르쳐준다.


모든 게 다 잘 되어가고 있는 놈이어도, 잘 크기만 하면 앞날이 탄탄대로여도 어린놈이 돈 좀 생기면 마약 찾는 건 이유가 뭘까?

'인생 호락호락하지 않다.'라는 마인드가 기본 장착이 되니까.


괜히 허구한 날 로또든 코인이든 당첨되었다가 안 좋은 결말 맞았다는 스토리가 이 구천을 떠도는 게 아니다.


'운 좋게 돈벼락 맞아서 하하호호 잘 살았대요'라는 스토리는 시발 조사할 가치가 없다.


내 인생이 존나게 힘들고, 남의 인생 난이도도 개빡세다는 거 아는데, 괜히 자괴감 들 엿같은 해피 해피 스토리는 개를 줘도 안 먹을 거다.


개같이 노력해서 간신히 남들만큼 사는데, 그 평균 올리는 새끼는 꼴보기 싫거든. 그래서 부자들 새드스토리는 항상 인기가 많다.


고구마가 필요한 이유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인생의 퀄리티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행운도 있을 거고, 특별한 요소도 가졌을 거고. 이딴 새끼 현실에 있으면 그냥 개새끼니까, '이 정도 고난을 겪어야 간신히 잘 살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가 필요하다.


물론 자기합리화가 지나치면 정신병이듯, 자기만족을 위한 고난이 지나치면 그건 그냥 고문이다.


고문과 합리화 사이에서 자신만의 합의점을 찾아내보자.


6. 희생, 숭고함, 간지, 아무튼 그런 것들.


소설 쓰다 보면 한번쯤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아, 이쯤에서 얘가 희생해 주면 개쩌는 장면 나오면서 얘(조연) 캐릭터성도 폭발하고… 와, 이거 쓰면 엄청날 것 같은데.'


새벽이라 횡설수설하는데, 머릿속에 주인공의 숭고하면서 선한 개쩌는 인생 매드무비가 펼쳐질 때가 있다.


주인공의 의지가 변하면서, 캐릭터성도 변화하고, 조연이 얘한테 엄청난 감사함을 느끼고, 세상이 주인공을 축복하고 막.


쓰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다. 나도 종종 쓰니까. 내로남불은 언제나 병신같은 소리다.


문제는 이 장면이 간지와는 별개로, 필요한 장면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쓸 때다.


어떤 특정한 간지에 파뭍힌 탓에 그 간지를 찾아 상상여행 삼만리를 떠나게 되는데, 이 삼만리가 기존 작품성이랑 충돌할 확률이 100%니까.


왜 충돌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희생 같은 걸 할 줄 아는 주인공이었으면 애초에 작가가 개쩌는 희생씬 생각도 안 하니까. 그냥 일반적인 스토리 중 하나 정도겠지.


먼 타지에서 사명감 하나로 싸우는 용병 간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터무니없거든. 츤데레가 괜히 인기 많은 거 아니다. 비현실적이거든.


실제로 희생을 쓰기로 하면서 뭔가 준비들을 착착 하려고 하면, 갑작스러운 빌드업과 설정 끼워넣기가 들어가면서 글이 갑작스럽게 빨라지고, 작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자주, 그리고 많이 희생하는 주인공이 나와버릴 거다.


조연들이 이미 주인공의 희생이라는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맛본 탓에, 주인공이 그만큼 희생하는 게 아니면 작가가 만족을 못 한다.


언제가 됐든 희생을 하게 만들고 싶으면, 처음부터 '이 주인공은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싸가지입니다.'라고 경고 문구 붙여놓자. 이것도 의외로 인기 많더라.


7. 설명문.


써야만 한다. 설명 안 하면서 이해 가능한 소설은 그림책밖에 없다.


삽화 하나에 알맞은 구도랑 적절한 캐릭터, 배경 집어넣으려면 시간이든 돈이든 왕창 깨지니까, 소설 본문에 성우 보이스나 웹툰 집어넣을 거 아니면 설명문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설명문에 관해선 여러 의견들이 있다.


'짧게 짧게, 그때그때 나온 요소들만 설명하면서 넘어가면 된다.',


'할 거면 처음부터 설명문 깔아라. 주인공이 교수든 박사든 대학원생이든 미래인이든 지식인이라는 설정 붙이면 거부감 줄더라.',


'설명문인 거 눈치 못 채게, 주인공의 생각 속에 연막치고 숨겨라. 의외로 독백씬 사람들 별로 안 질려한다.',


'그냥 장면으로 풀어라. 설명문 티 나면 그대로 갑분싸 뒤로가기 직행이다.'


본문이 너무 길어질까 싶어 이만 줄이는데, 하나같이 말은 되는 소리다.


물론 예시 작성자가 전부 나인 만큼 내 개인적인 경험이 강하게 담겨있음을 염두에 둬 주길 바란다.


내가 설명문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거부감 줄이기'라는 게 예시에서 벌써 보여버렸으니, 객관성은 어디다 내던진 건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지만 객관성을 위해 타인의 의견을 가져오겠다.


수학을 접는 이유가 뭘까? 예전에 내가 아는 수학교육과 교수님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수학이 문자가 되면 포기한다.'


물건들을 늘어놓고 더하기빼기, 그 물건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일차방정식, 도형 그려보고 넓이 개념 이해하고 침대 치수 비교해보기, 보통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교육과정 초반까지는 애들이 거의 다 따라온다더라.


문제는 무슨무슨 법칙, 무슨무슨 공식 같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수학'이 '책 위의 수학 문자'가 되어버렸을 때 애들의 반 이상이 학습의욕을 잃는다고.


그래서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왜 외워야 하는데?같은 '기본 원리'에 대한 질문은 교육과정상 물어보는 게 힘들기도 하고. 남들만큼은 한다는 인식 심어주고 싶잖아.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외운 거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며 대학교 올라왔을 때는 수학의 ㅅ만 꺼내도 애들이 기겁을 한다.


한번쯤은 문제집 하나 사서 뒷부분은 거의 신상으로 남겨두고 버린 경험이 있나?


환경에 따른 의무감에 문제는 푸는데, 원동력이 재미가 아니라 의무에 있으니까 공부의 역치가 점점 올라간 끝에 내던진 거다.


웹소설로 돌아가 보면, 결국 작가가 설명문을 쓰며 가져야 할 생각은, 이런 비문학 지문같은 문장의 거부감을 최대한 줄여 보자는 것.


자세한 예시는  짓시미트 주딱 강의기록.(feat. 웹소설 요령) - 웹소설 연재 채널 (arca.live)에 들어가보면 나올 테니, 지금은 원리만 짧게 말하고 넘어갈 거다.


기본 골자로는 독자가 물음표를 던질 타이밍을 조절하는 거다. 대화할 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한 번 짚고 넘어가면 된다.


'주인공 상황이 이상한데? 왜?' 라고 할 타이밍에 묘사 던지고, '이러면 갑작스럽지 않을까?' 할 때 대사 페이스 끊어주고.


결과적으로 원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퇴고할 때 과거의 자신과 티키타카를 좀 해보자.


8. 마침표, 쉼표. 그리고 벽돌!


모바일로 봐라. 그걸로도 감이 안 오면 수능 국어/영어 문제집 지문 크기로 봐라. 비슷한 느낌 들면 ㅈ된 거다.


아무튼 글이 벽돌화가 진행되어 갑갑해졌다면 해체작업을 하든 퇴고를 해야 한다.


보통의 팁이라면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이고, 어차피 여기까지 읽는 사람 없을 테니 재미없는 개념 얘기나 하려고 한다.


러브코미디 장면을 하나 상상해보자. 여주가 남주를 발견한다.


남주는 여주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무언가를 기다리며 서 있고, 여주는 그런 남주에게 손을 흔들지만 남주는 인파 때문에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계를 한번 슬쩍 보고, 와야 할 것이 안 온다며 남주가 안절부절못한다.


여주가 남주 뒤로 슬쩍 다가가도 남주는 눈치를 못 챈다. 살짝 뾰루통해진 여주가 남주의 어깨를 주먹 쥔 손등으로 툭 친다고 하자.


남주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여주는 그런 남주의 어깨를 따라 돌면서, 결과적으로는 남주의 양 어깨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쥐었다.


벽돌 되기 딱 좋은 장면이다.


남주 따로, 여주 따로, 상황 따로, 각각의 행동 따로, 심정 따로, 게다가 대사까지 집어넣어야 장면이 완성되니까.


그럼 이걸 벽돌이 되지 않도록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장면을 두 가지로 따로 떼어 생각해보자. 주인공 시점, 그 외 시점.


여기서 소설의 화자, 1인칭 주인공은 남주라고 하자.


남주의 입장에서 처음 손을 흔드는 여주는 안중에도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가볍게 '흘러가듯 여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라거나, 아예 3인칭으로 시야를 돌려서 여주의 대사를 넣어 준다.


그렇게 여주가 뒤로 다가오는 것까지 두세 문장 내로 빠르게 진행시켜 주는 게 좋다. 남주는 여주가 이곳에 있는 걸 모르니까.


그리고, 남주가 여주를 알아챈다. 이걸 묘사할 때 전후로 엔터를 두 번 눌러 주자. 주인공이 움직였다.


독자의 시야를 제한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주인공의 매 움직임에 맞춰서 문단을 끊어 준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남주가 어버버하든, 당황하다 한 번 배시시 웃든, 깜짝 놀라 뭐, 뭐, 뭐야! 소리를 지르든 아무튼 움직이고, 곧이어 남주가 여주를 인식할 거다.


행동이 바뀌었으니 마찬가지로 엔터를 두 번 눌러 주자. 이제 남주가 움직일지 여주가 움직일지는 자유지만, 나는 여주의 움직임을 묘사한다고 가정하겠다.


주인공의 시선이 차차 돌아감과 동시에, 주인공의 돌아가는 초점에 맞춰 여주가 걸음걸이를 옮긴다. 대사를 넣는 건 자유다. 주인공과 여주의 위치가 바뀌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엔터 두 번.


내 경우엔 행동에 한 번, 대사를 비롯한 감정에 한 번씩 문단을 사용한다.

"사람이 불렀는데."


자박, 하고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가 입은 긴 패딩 소매 끝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렇게 무시하면 저, 삐질지도 몰라요?"


윽.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가끔 얘는 생각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그때마다 두통이 온다. 두통이.


'오늘은 또 무슨 억지를 부리려고…….'


그때.

톡, 어깨에 따스한 게 닿았다. 핫팩?


조금 감이 잡히나? 똑같은 장면이 이어지는 내용은 붙여주고, 주인공의 시선에서 심정으로 옮겨갈 때는 떼어낸다. 반대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벽돌을 해체할 땐 각 문장이 뭘 묘사하는지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편하다.


9. 글 쓸 때 아랫배 힘 꽉 주지 마라. 똥 싼다.


정말정말 시리어스하게, 문장 하나하나가 무겁게 다가오는 글을 쓰는 건 괜찮다.


하지만, 문장을 읽을 때 빡센 건 좀 문제가 있다.


오글거리든, 내용이 이해가 안 가든,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든, 반복적인 단어나 문장이 계속되든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제목이 '400원 들고 강남에 떨어진 구한말 패션디자이너 곽정배'나 '브라이트 크라이프트: 별처럼 빛나는 로망을 향해' 처럼, 누가 봐도 빡세 보이는 걸수도 있다.


제목은 나도 치료가 불가능하니 넘어가보고, 지금은 소설 속 문장에 문제가 심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13번대 대장 제이슨 와코우! 명령을 수행하라. 섬멸진을 개시해!"


이딴 대사를 소설 1화에 첫 문장으로 내걸었다고 치자. 와, 내가 썼는데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제이슨 와코우가 주인공이야? 아니면 이 대사를 치고 있는 놈이 주인공이야? 섬멸진은 뭐야? 라노벨식 전쟁이라도 해?
명령? 무슨 명령? 13번대 명령? 애초에 13번대가 뭔데?


이런 문장을 옳다구나 쓴 작가는 이제 자기 머릿속의 장면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할거다.


상황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진격 앞으로!" 같은 거 튀어나올 거고, 13번대 대원이라는 놈들이 농담 따먹기하면서 무수한 적들을 상대로 용감히 싸우겠지.


전투 상대는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무전 날리고 애들 당황하고 난리 부르스를 추면서 주인공들이랑 소설 속 캐릭터들만 아는 기밀정보 떠들다가 마지막에 선심 쓰듯 "제이슨 와코우, 너에게 피아사랜드로의 잠입 명령을 내리겠다."라면서 작가 스스로 '아, 기대감 개쩔어 ㅋㅋㅋ' 하며 자화자찬할 거다.


소설은 이미 첫 문장에서부터 작살이 나 있는데, 우주의 신비가 생산한 뗀석기 모양이 좀 예쁘다고 운석 크레이터를 무시하는 거랑 뭐가 달라.


차근차근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걸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느리더라도 낫다.


첫문장이 "13번대 대장 제이슨 와코우! 명령을 수행하라. 섬멸진을 개시해!" 인 것보단 "우리 집안은 시조이신 전쟁영웅의 폐해에 시달려 매년 무과 급제를 못 하면 가문 전체가 국가 레벨로 조리돌림당하는 콩가루 집안이었다." 같은 설명문이 차라리 몰입하긴 편하거든.


10. 자기 글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방법.

쓰려고 보니 7시 반이다. 궁금하면 첨삭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