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5년경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국기와 국장.


러시아 북부의 중소규모 도시인 벨리키 노브고로드는 한때 중세 루스인들이 세운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수도로 번영했었다.

1136년 키예프 공국에서 완전히 독립한 이후 1478년 모스크바 대공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존속한 이 국가는

중세시대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민주주의에 가까웠던 정치 체제뿐 아니라 이례적으로 높은 문해율로도 유명하다.

왕족과 귀족 등의 상류층 외에도 소작농, 장인, 상공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으며,

이들이 남긴 자작나무 껍데기로 된 문서들은 현재까지 950개 가량 발굴되어 당시 사회상을 여실히 전해주고 있다.


종교, 상업, 여행 등의 주제로 구성된 수많은 문서들 중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한 소년이 끄적인 낙서였다.

해당 문서는 1951년에 발견되었는데, 갓 글을 배우기 시작한 온핌(онѳиме)이라는 6~7세 아동의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래도 13세기 당시 노브고로드에서 널리 쓰이던 글라골 문자를 공부하던 중 심심해서 그린 낙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온핌의 낙서들 중 200번 목피에서는 글라골 문자 중 첫 열두 글자를 적다가 갑자기 흥미를 잃었는지,

적을 무찌르는 용맹한 기병 전사를 그려놓고는 본인의 이름을 작게 기재하였다.



199번 목피에서는 앞면에 글라골 문자를 깜지마냥 빼곡하게 적은 후 뒷면에 "나는 괴물이다(Ѧ звѣрє)"라고 울부짖는 짐승을 그렸으며,

네모칸을 쳐서 "다닐로야 안녕! — 온핌이(Поклон оѿ Онѳима ко Данилѣ)"라며 그림을 보여줄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206번 목피에서는 6시에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였는데, 아직 유아라 그런지 사람마다 손가락 개수를 다르게 그려놓았다.



왼쪽 그림은 온핌 자신의 부모님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며, 오른쪽 그림은 나무 근처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묘사한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낙서들이 발굴되었는데, 일상적인 장면들 말고도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온핌은 본인의 아버지처럼 훌륭한 전사가 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자 하는 꿈이 있었던 듯하다.

상단 우측의 그림에서도 온핌이 아버지와 함께 무기를 들며 전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들은 아빠를 닮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듯 보는 이들로부터 훈훈한 감정을 자아내는 온핌의 낙서들은 러시아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벨리키 노브고로드 시 측에서도 온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낙서가 발굴된 지역 근처에 그의 동상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800년 전 대륙 반대편에 살던 한 아이의 동심이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13세기라면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한창 몽골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느라 바빴던 시기일 텐데,

과연 저 소년은 자라서 어떤 활약을 했을지 궁금해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