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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기사였던 농부에게 (完)

 

 

 

 

 

쾌락의 고문은 계속 되었다. 

 

엘리자는 매주 찾아와 그와 몸을 섞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이젠 집착이 되어버린 사랑을 끝없이 외치며.

 

처음 남아있던 죄책감도 어느새 사라져, 그저 그와 사랑을 나눈다는 게 기뻐서.

 

그게 너무 기뻐서.

 

그녀는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슬픔마저 속였다.

 

이것은…….

 

이것은 올바른 자의 비극이었다.

 

 

 

 

 

 

 

 

 

*****

 

 

 

 

 

 

 

 

 

 

“아직 살아계셨군요, 기사여.”


루크마이어가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피부는 갈색이었고 머리카락은 새하얀 젊은 여인이었다.

 

얼굴엔 베일을 뒤집어쓰고, 마치 자기 자신을 구속하려는 듯 온 몸에 밧줄을 꽁꽁 묶어놓아

 

불편해보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왕국의 무녀. 이름은 없사옵니다.”


“……날 비웃으러 왔는가?”


“아뇨. 저는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고자 왔습니다.”

 

그녀가 다가와 루크마이어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 얼마나 멋진지……그 고통과, 행복과, 배신 끝에 망가졌음에도 눈동자 너머엔 아직

 

올바르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있다니. 당신이 진정 올바름의 화신이로군요.”

 

“나를 조롱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라.”


“다시 말하지만 그러려고 온 게 아닙니다.”

 

무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루크마이어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당신이 지금 묶여있는 기계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네가?”


“저는 아는 게 많고 할 수 있는 건 그보다도 많사옵니다.”


루크마이어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불쾌함이었다.

 

“……인간이 아니로군.”


“어머, 눈치가 빠르시군요?”


“먼 옛날에 스승이 말해준 적 있다. 너희들은 대화하고 있으면 불쾌하기 그지없다고.”


누군가는 악마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전령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관객이라 불렀다.

 

그들의 정체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실 당신께선 이미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합니다. 그 기계는 어디까지나 생명을 잠시

 

이 땅에 붙들어놓을 뿐, 죽어야 할 사람을 살리는 건 불가능하옵니다.”

 

“그런데도 난 살아있군.”


“제 예지가 빗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옵니다. 당신은 원래 3달 전에 죽었어야 했죠.”

 

무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도 그걸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나를 이 땅에 붙들어놓았는가.”


“당신의 의지겠죠. 올바르고자 싸우는 남자의 의지.”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은 그들조차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

 

그들은 그것에 이끌렸다. 마치 화롯불에 모여드는 나방처럼.


“그러니 당신께 상을 드리겠습니다.”


“듣고 있다.”


“당신을 거기서 풀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난 죽겠지.”


“30분 뒤엔 의식을 잃을 겁니다. 그 다음엔 심장이 멈추겠죠.”


무녀가 미소를 거두며 말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당신은 죽습니다. 모든 이가 그러하듯.

 

그러니, 그냥 즐기시죠? 자신의 딸이었던 여자한테 범해지는 기쁨을 만끽하며…….”

 

“네 말대로다. 네가 날 풀어줘도 내 운명은 달라지지 않아…….”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반역을 했던 그 날, 그 폭풍우 치던 밤부터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른다.

 

“구속을 풀어라, 무녀여.”


“저 너머엔 어둠과 공포뿐입니다.”


“그것이 날 죽일지언정, 설령 그것 또한 반역이라 할지라도 난 나아가겠다.”


웃음소리.

 

무녀가 웃었다. 조롱하거나 웃겨서 그런 게 아니었다. 순수하게 기뻤기 때문이었다.

 

“멋져요. 정말, 정말 멋지군요. 그래요, 제가 기대한 대답이에요.”


“네가 보고 싶었던 게 이런 거였나?”


“인간이 가장 솔직해지는 건 신이 아닌 고난 앞에 섰을 때죠. 가장 용감한 이도 자비를 구걸

 

하고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현자가 어리석음을 고백하지만, 당신. 당신은 아니군요.”

 

무녀가 손짓하자 구속이 절로 풀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땅 위에 섰다.

 

“남은 30분 동안 뭘 하실 겁니까?”


“나도 모른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이렇게 당신을 보러오길 잘 했군요. 진심으로.”


루크마이어가 무녀를 뒤로 하고 탑을 내려갔다.

 

깜깜한 밤이었다. 구름이 하늘을 덮었고, 비가 세차게 내렸다. 천둥 번개가 울부짖는다.

 

그는 비를 맞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도달할 곳조차 없음에도, 계속 걷는다.

 

“어디로 가는 거야, 룩?”


“저도 모르겠습니다, 형님.”


환각, 환상, 환청. 그게 무엇이든 그는 진실이 아니었다.

 

“차라리 형님한테 살해당하는 쪽이 행복했을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차라리 모른 척 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어.”


그가 계속 걸어갔다. 저 멀리 성이 보였다. 한 때 자신이 속해있던 곳을 보았다.

 

“형님이 하신 말은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후회하지도.

 

망설이지도.

 

뒤돌아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후회해, 룩?”


“아무것도.”


천둥 번개가 쳤다. 그의 대답이 파묻혔다.

 

“저는 올바르고자 했습니다. 제가 믿는 정의를, 제가 믿는 올바름을 따랐습니다.

 

설령 그 결과가 이렇다 하더라도- 그 무엇 하나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진 너답구나.”


“그게 저니까요. 형님, 저는 꿈을 꿨습니다. 행복하고 달콤한 꿈이었습니다.”


반역자에겐 너무나도 과분한 행복이었습니다.

 

그가 뒤를 돌아봤을 때, 조나스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다시 앞을 보았을 때, 그녀가 앞에 서 있었다. 엘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아빠……? 아빠가 어떻게 여기에……아니, 그보다도 생명 유지 장치가 없으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딸아.”


“…….”


그는 엘리자를 딸이라고 불렀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을 꿨다. 내겐 너무 과분한 꿈이었다. 너와 함께 한 지난 20년 세월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어. 그러니, 난 후회하지 않으련다.”

 

“아빠…….”


“맹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구나.”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엘리자에게 절했다.

 

“이제 너도 날 놓아줄 때가 온 거야. 우린 언젠가 꿈에서 깨어나야 하니까.”

“싫어.”


엘리자가 말했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싫어! 싫어!!”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엘리자가 말을 토해냈다.

 

“내가 잊으면 아빠는? 내가 놓아주면 아빠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싫어, 그런 건 싫어. 아빠는, 당신은!!”

 

“왜 내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거냐.”


그가 고개를 들며 그녀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네가 있잖아. 너는 내가 세상에 남기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야.”


“……!”


자신을 배신했음에도.

 

딸로서 저질러선 안 될 최악의 죄를 범했음에도.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용서를……그래. 용서를 구했다. 용서받고 싶었다. 나의 잘못을, 내 배신과 반역을.

 

형님을 배신하고 전우를 배반하고 끝내 왕비님과 한 맹세마저 저버린 난, 용서받고 싶었다.”

 

“죽지 마, 내 곁에 있어줘.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빠가…….”

 

아빠가 살아있으면 좋겠어.

 

부질없는 소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말했다.

 

사랑이 집착이 되었고 그 집착 때문에 고통 받게 했음에도.

 

분명,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용서받는 게 아니었다. 용서하는 것이었지.”


엘리자가 그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어린 시절, 그 때처럼.

 

“가지 마.”


“네가 어떤 모습이든,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너는 내 딸이다. 맹세할게,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아버지일 거라고. 설령 네가 스스로를 용서치 못하더라도.”

 

루크마이어 엔더스가, 분명 기사였던 남자가 말했다.

 

“널 사랑한다. 그리고 너를 용서하마. 나의 딸, 엘리자야.”


눈을 감으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땅거미가 지는 언덕을 함께 바라보았던 그 시절로.

 

그들이 한 때 서로를 아버지와 딸이라고 불렀던 그 때로.

 

“아…….”


그의 숨이 끊어졌을 때, 마음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조각이 부서졌다.

 

“아아, 아아아아, 으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날 용서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어째서, 이런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아아아아, 아핫, 하아아앗, 아아아아아아…….”


말을 잊고, 아기처럼 울부짖는다.

 

후회한다.

 

망설인다.

 

뒤돌아본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자신의 집착이 저지른 결과를 바라보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날 용서해 줘. 용서해 줘, 아빠. 아니야, 날 용서하지 마.

 

날 용서하지 말아줘. 나는, 아빠한테, 단지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저 그뿐이었어……!”

 

머리를 땅에 처박고, 몸을 비틀며 전해지지 않는 말을 토해냈다.

 

“왜!!”


왜 이렇게 됐을까.

 

어째서 우리들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 때문에?

 

내가 아빠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의 사랑이 아빠를 죽인 거야?


“돌려줘, 돌아와 줘. 내 곁에 있어줘, 날……나를 외톨이로 만들지 마…….”


그것은 잘못된 사랑을 한 여인의 비극.

 

아니.

 

아버지를 배신한 딸의 비극이었다.

 

 

 

 

 

 

 

 

 

 

*****

 

 

 

 

 

 

 

 

 

 

엘리자베스 12년 4월 2일.

 

일찍이 그녀는 얼음 여왕이라고 불렸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여자였기에 그렇게 불렸다. 그러나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들어도

 

엘리자베스는 화내지 않았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저 거기 있을 뿐.

 

“여왕님, 문안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엔디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알더라도 말할 수 없다. 

 

존재 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었기에.

 

“그래, 왔구나.”


그 누구 앞에서도 웃지 않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오직 그 아이의 앞에서만. 한 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 앞에서만.

 

“요즘은 아무 일도 없었니?”


“네. 그렇지만 그……제 동생들은 절 멀리해서, 좀 그러네요.”


크릭의 제 2왕자 아할렘과 결혼한 엘리자는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았다.

 

그러나 그들 누구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랑 따윈 없었다.

 

“너는 날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구나.”


“저는 사생아니까요. 아버지도 모르는 걸요.”


사생아에겐 계승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살아서 궁전에 있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늘 묻고 싶지만, 여왕님은 그 이야기 꺼내는 걸 싫어하시잖아요.”


“…….”


너의 아버지.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한 때 아버지라고 불렀던 사람.

 

“너의 아버지는…….”

 

그녀가 창문 바깥의 탑을 보며 말했다.


그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그 날 이후로 엔디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일은 없었다.

 

“너의 아버지는 한 때 기사였던 농부였단다.”

 

엘리자베스.


아니, 엘리자가 말했다.


 

 

 

 

 

 

 

 

 

 

한 때 기사였던 농부에게 - 完

 

 

 

 

 

 

 

 

 

 

 

후기

 

완결 내니까 거짓말처럼 몸이 나았다. 피자를 먹고도 멀쩡한 걸 보아하니 진짜 다 나은 듯.

사실 대회에 내려고 했는데 1화 쓰고도 ‘아 쓰읍 그냥 그런데?’ 싶어서 일단 올리긴 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난 역시 남들이랑 포인트가 어긋난 것 같다.

원래 더 비극적이고 잔혹한 결말을 생각했는데 너무 선 넘는 거 같아서 포기했다.

얀데레가 나오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쓴지 아직 2달도 안 된 터라 좀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그러려니 해라. 8년 가까이 글 쓰고도 프로도 못하는 놈한테 뭘 기대하니.

아무튼 다 났으니까 우동 먹으러 감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