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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학자셨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은 으레 연구를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 다니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돌아올 땐 항상 그 나라에서 발견한 진기한 물건을 선물 삼아 나에게 가져다주곤 했었다.

샤론도 부모님이 연구 중 발견하여 가지고 돌아온 그런 '진기한 물건' 중 하나였다. 부모님이 남극탐사 중 발견하여 이름까지 지어줬다는 샤론은 부모님에 의하면 '어떠한 인간도 탐험해본 적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심연 속 어딘가'에서 온 물건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부모님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저 이번의 '선물'은 애완동물 비슷한 무언가라는 생각에 신이 났을 뿐이었다.

샤론을 처음 만났을 때 샤론의 모습은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보라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커다란 젤리와도 같은 부정형 슬라임 형태의 몸, 그 곳에 이곳저곳 불규칙하게 나있는 노란색의 눈들과 뾰족한 이빨로 가득차 있던 입들, 그리고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소리를 낼 때면 항상 괴이한 울음소리로 나지막히 울던 그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혐오감을 느끼고도 남을 외형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샤론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샤론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였었다. 어쩌면 자주 집을 비우는 부모님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이 샤론의 외모에서 비롯되는 거부감을 넘어섰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어린 나에게 샤론은 마치 충실한 애완동물 혹은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 나는 밥을 먹을 때나 책을 읽을 때에도 항상 샤론을 품에 안고 다닐 정도로 샤론과 꼭 붙어 다녔으며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같은 침대에서 잠에 들곤 했었다.

그렇게 샤론과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샤론에게도 점점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작은 개 정도의 크기였던 샤론은 마치 내가 성장하는 것에 맞추기라도 하는 듯 점점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항상 말을 걸어줬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나의 말에 그 특유의 울음소리 대신 나의 말을 어설프게 따라하면서 대답하기 시작했었다. 내 '친구'의 새로운 성장에 흥분한 내가 샤론을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말과 글을 가르친 결과, 샤론은 나와 만난지 3년만에 완벽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샤론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그녀 -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샤론을 만났을 때부터 샤론이 여성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었다 - 의 새 '취미'를 발견한 일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우리 집인만큼 우리 집에는 부모님이 고용한 사람들이 집안일을 하러 오는 일이 잦았었다. 샤론은 말을 할 수 있기 훨씬 전부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면서 점점 나에게서 말을 배우고 나와의 교류가 깊어질 즈음엔 그들이 하는 일을 어설프게 흉내내기 시작했었다. 당연히 샤론의 외모 때문에 샤론을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던 고용인들은 자신들을 따라하는 샤론의 행동을 매우 꺼려했으나 나는 샤론에게 말을 처음 가르칠 때처럼 샤론의 새로운 성장을 기뻐하며 이번에도 샤론에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집안일에 대해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었고, 그렇게 된 결과 샤론은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척척해낼 정도의 집안일 머신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의 만능 메이드씨' - 샤론이 자신의 '취미'에 대해서 처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이 역시 나처럼 샤론의 성장을 기뻐하며 붙여준 별명이었다. 당시에는 그 작은 신체로 짧은 촉수를 꼬물꼬물 움직여가며 청소하는 흉내를 내는 샤론이 귀여워서 붙인 의미가 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별명은 진실에 가까워져만 갔다. 그 별명의 화룡점정은 샤론과 내가 만난지 5년이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연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샤론에게 반농담조로 메이드복을 선물해줬을 때였다. '우리 집의 만능 메이드씨인데 메이드복도 없다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장난치듯 어디선가 구해온 아동용 메이드복을 샤론에게 선물해준 아버지였지만, 샤론은 메이드복을 그 촉수에 받아들자마자 마치 운명의 상대라도 만난듯 온몸을 경직한 채 한참을 그 메이드복을 쳐다보더니 그 자리에서 인간의 형태로 변하여 메이드복을 입었었다.

그 이후로 샤론은 덩치가 커지면서 그에 맞춰 새로운 메이드복을 입는 일은 있어도 메이드복을 신체에서 떼어놓는 일은 없었다. 그말인즉, 샤론은 더 이상 처음 만났을 때의 슬라임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습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샤론인만큼 그 외모는 샤론의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곤 했으나,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머리를 한쪽으로 길게 땋은, 나보다 조금 더 연상의 느낌을 주는 여성의 모습으로 고정되는 듯했다. 기이하게도, 그러한 샤론의 모습은 어머니의 외모와 매우 닮아 있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직후의 일이었기에, 나는 이것이 샤론 나름대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젊은 시절 꽤나 미인이셨다는 어머니답게 샤론 또한 매우 매력적인 모습을 하게 되었으나 그 자식인 나의 입장으로선 여러가지로 복잡할 뿐이었다. 샤론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침대에서 같이 자는게 아니면 자는 것을 거부한다는 사실 또한 일을 곤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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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간식을 가져왔습니다."

샤론이 부드럽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흠칫하고 정신을 차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서재였다. 책을 읽다가 깜빡 졸기라도 한 것일까...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샤론이 건네주는 쿠키가 담긴 접시를 받으며 답례로 미소를 지어보인다.

"영혼에 관련해서 공부 중이십니까?"

샤론이 내 앞에 놓여진 책을 보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아, 뭐, 그렇게 본격적인건 아니고..."

뺨을 긁으면서 맥빠지는 대답을 하는 나. 학자 부모님을 둔 나인만큼 학문에 관심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하고 꽂히는 분야를 찾지 못했기에 이곳저곳 건드려보기만 하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주인님께서는 영혼이 어디에 깃든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샤론의 질문에 쿠키를 한입 베어무려다 말고 샤론을 쳐다본다.

"그건 갑자기 왜??"

샤론은 그 특유의 빛나는 노란색 눈으로 나를 보며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그저 갑자기 든 의문일 뿐입니다. 예전, 아버님이 저에 관해 쓴 논문에서 저에겐 영혼이 없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기에..."

샤론의 말에 나는 인상을 한번 찌푸린다. 거 아버지 아무리 논문이래도 참 너무하시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생물의 영혼이 거주하는 부분이 어디라고 밝혀진 바는 없다고 알고 있는데... 사견이지만 나는 아직도 육체의 어느 부분에 물리적으로 영혼이 깃든다는 개념조차 회의적이야. 인간의 세포란건 결국 어디든 10년도 안되어 새로운 세포로 바뀔 운명인데, 그런 곳에 영혼이 존재한다니..."

샤론에게 답을 하며 샤론이 구워온 쿠키를 한입 베어문다. 고소한 버터향과 달콤한 초콜렛칩의 맛과 함께 샤론의 음식이면 나는 그 특유의 맛이 함께 난다. 샤론이 집안일을 처음 배울 무렵 가장 늦게 익힌 것이 바로 요리였다.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만큼 인간의 미각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었을까, 샤론이 한 음식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조리 원래의 맛이 나는게 아니라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샤론의 맛'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그 특유의 독특한 맛밖에 나지 않곤 했었다. 웬만한 쉐프급의 요리솜씨를 갖추게 된 지금에 와서도 샤론의 요리에선 그 특유의 맛이 빠지지 않고 났다. 그 맛에 너무 길들여져버린 나는 오히려 이젠 음식에서 그 맛이 나지 않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밋밋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요,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생물, 적어도 인간의 신체 어딘가에는 영혼이 깃드는 곳이 분명 존재합니다."

드물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샤론을 나는 쿠키를 와구와구 집어먹으며 바라본다.

"그 근거는?"

"...저는, 본 적이 있으니까요."

샤론이 대답하면서 한순간 망설인 것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거짓말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는 샤론과 아주 오래전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묻는 질문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바로바로 대답하는 샤론이 대답하기를 아주 잠시라도 망설였다는 것은 샤론이 나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무엇일까. 평소대로라면 샤론의 망설임을 캐치한 순간 궁금해서라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을 터인데, 방금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치 내 안의 내가 파악하고 있지 않은, 무의식의 저변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아하는 듯한... 오히려, 알아내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듯한... 하지만 까닭 모르는 불안감에 휘말리고만 내가 갑자기 바짝 타는듯이 느껴지는 입술을 적시려 입을 연 순간,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듯 샤론을 향한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만다.

"그게 무슨 말이지?"

샤론은 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그 빛나는 노란색 눈으로 나를 응시하기만 한다. 이유 모를 불안감과 나의 안에서 격하게 울리는 심장소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아버님께서 저에게 어머님을 살려달라고 부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샤론은 한참을 나를 쳐다보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지만, 죽어가는 육체를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우선 어머님의 영혼이라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어가는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만 해놓으면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 사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을 터이지요. 그래서 저는, 저의 조직 중 일부를 어머님의 육체와 동화시켜 그 육신에 깃들어 있던 어머님의 영혼을 제 육체로 옮겨 보관하고자 하였습니다."

쿵, 쿵. 심장이 이 이상으로 더 세게 뛰면 갈비뼈 바깥으로 튀어나가고 말 것이 분명했다.

"저와 어머님의 육체가 동화한 순간, 어머님의 영혼은 분명히 제 몸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과 달리, 어머님의 영혼은 어머님의 육체와 동화시킨 제 일부의 조직만이 아니라 제 모든 조직에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저는 영혼이 더 이상 저와 융합하는 것을 막아보려 했었지만... 아버님이 한때 예상했던 것처럼 저에게는 영혼이 없는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의 영혼은 저와 이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샤론의 말에 나는 서재 책상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영혼은-"

샤론이 내 묻지 않은 질문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예. 제 안에는 어머님의 영혼이 갇혀 있습니다. 아니요, 어머님의 영혼이 제 영혼이 되어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겠네요. 제가 미워지셨습니까, 주인님?"

"그, 아, 그, 나는- 바람. 일단 바람 좀 쐬야겠어-"

충격으로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나는 서재를 달리듯이 뛰쳐나가 저택의 대문으로 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서는 이미 충분히 있었다. 샤론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갑자기 어머니의 외모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단 사실, 남들의 표정을 따라하는 것이 전부였던 샤론이 그 이후부터 마치 원래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처럼 표정이 풍부해졌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샤론을 볼 때면 맹렬하게 적의를 표했던 아버지의 태도 - 이 모든 증거가, 방금 들은 그 충격적인 사실이 진실임을 반증하는 동시에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추리해낼 수 있거나 적어도 의심해볼 수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받은 충격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저택 대문에 다다른 내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급하게 문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지만, 문은 무언가에 막혀 있는것 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해진 내가 손잡이가 부숴질 정도로 손잡이를 돌려대고 문을 온몸으로 밀어보아도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샤론!! 샤론!!! 여기 문에 뭐가 끼였나봐!!!"

"잠시만 기다리세요 주인님."

아직 서재에 남아있는 샤론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하자 샤론은 급한 나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나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내가 필사적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을 보곤 작게 한숨을 한번 쉬었다.

"주인님, 충고드리지만 지금 문 밖을 나가신다 하셔도 바람 같은건 쐬지 못할 - "

"됐으니까 빨리 문이나 열어줘!!"

샤론이 무언가 말을 해왔지만, 이미 패닉으로 침착하게 사고할 능력을 잃어버린 나에게는 뭐라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왜 밖에 나가려고 했는지 그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 나는 그저, 시시각각 나를 향해 죄여오는 듯한 이 저택 안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샤론은 다시 한번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마지못해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 그러시다면."

샤론의 손이 문에 닿자마자, 이때까지 바위마냥 미동도 하지 않던 문이 마법처럼 밖으로 열렸다. 그 문 밖에 펼쳐져 있었던 것은 - 심연. 달 없는 날의 가장 깊은 밤보다도 더 어두운 심연만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앞에 보이는 풍경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가, 고개를 홱 돌려 거실의 시계를 확인해보았다. 오후 2시 14분. 하지만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문 밖을 바라보아도 나의 시야에는 햇살은 커녕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기괴한 형상의 심해어가 어둠에서 나타나 나를 향해 입을 쫙 벌린채 달려들었다. 나는 너무 놀라 한심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게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금 밖으로 나가셔도 바람 같은건 쐬지 못하실 거라고요. 애초에 지금 밖으로 나가시면 짜부러져 죽을 뿐입니다, 주인님."

땅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 아직도 멍하니 밖을 바라보기만 하는 나를 샤론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꾸짖었다.

"......샤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지...?"

"지금 저희는 베링 해에 위치한 알류샨 해구 바닥에 있습니다. 현재 깊이, 대략 해저 7800m."

간신히 쥐어짜듯 목소리를 내 질문을 하는 나에게 샤론이 한치도 주저함 없이 답한다.

"...왜!!! 수압때문에 - 아니, 수압이 문제가 아니라 질식해서 죽는다고!!! 대체 왜 여기 있는거야 우리?!?!?!"

전보다도 더 큰 패닉에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 황망하게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나의 허리를 샤론의 촉수 중 하나가 휘감아 붙잡는다.

"진정하세요, 주인님. 제가 심연 출신이라는 것 잊으셨습니까? 제가 태어난 곳에 비하면 이런 곳은 아이들 장난 수준입니다. 저택 하나, 인간 하나 정도 이곳에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물론 저는 눈을 감아봤자 제 몸에 다른 눈을 만들면 될 뿐이지만요- 하면서 무언가 재밌는 걸 말했다는듯이 손으로 입을 다소곳이 가리고 쿡쿡 웃는 그녀를 나는 얼이 빠진 채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그렇다면 다행-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우리가 여기 있냐고!!! 애초에 나는 바다 밑바닥으로 이사한 기억도 없는데 왜 정신을 차려보니 네모바지 스펀지밥을 찍고 있는거야!!!"

인내심이 빠른 속도로 없어지고 있는 내가 다그치자 샤론은 다시 한번 나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건...아버님때문입니다."

대답을 들어도 의문이 풀리는 일 없이 오히려 의문이 더 쌓여가는 상황이 이제 슬슬 질린 나는 수수께끼같은 샤론의 답에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아버지가 왜?! 그리고 이제부턴 처음부터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자세하게 설명해, 샤론!"

"죄송합니다 주인님. 정확히는 저희는 아버님을 피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피신해 온 것입니다. 아버님이 저를 살해할 방법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 사이, 주인님과 저택을 제가 이곳으로 옮겨 왔지요."

아버지가??? 샤론을????? 도대체 아버지가 샤론을 죽이려 할 이유가 어디-

"...어머니의 영혼, 때문이지?"

샤론의 앞선 얘기에서 그 이유를 깨달은 내가 나지막히 말하자, 샤론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예, 어머님의 영혼이 저와 융합한 그날부터 아버님은 저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시는듯 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님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려면 제가 죽어야한다고 생각하신 거겠지요. 어찌 되었든,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떠나셨던 '연구 여행'은 실제로는 저를 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저를 최초로 발견했던 남극으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를 속일 생각이었지만, 마마 - 아, 실례했습니다, 어머님의 영혼이 저에게 진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마마? 샤론은 어머님의 영혼을 평소에 속으로 '마마'라고 부르나? 헤, 그게 사실이라면 좀 귀여운데- 가 아니라!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고개를 한번 흔들고는 방금 들은 또 다른 하나의 충격적인 정보 덩어리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본다. 우선 아버지가 샤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 - 이건 생각해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은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배우자의 영혼이 정체모를 생물과 융합해버린 셈이니까. 나 자신도 방금 샤론에게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큰 패닉에 빠졌지 않았던가. 그리고 두번째로, 샤론과 융합한 어머니의 영혼이 아직도 어떤 형태로든 샤론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점.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로 어머니의 영혼일까? 아무리 원래 어머니의 몸에 깃들던 영혼이라 하더라도 죽기 직전 자신의 원 육체를 빠져나와 타인, 그것도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육체에 거주하게 되버린 영혼이었다. 이미 그건 어머니의 영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영혼이라고 보아야할 것은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 있는거지??"

그래, 지금 내가 여기 샤론과 같이 있다는 점. 샤론이 아버지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면 혼자서 도망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나와 저택 그 자체를 지구 반대편의 해구 바닥으로까지 옮기는 수고를 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의 질문에 샤론이 다시 한번 읽을 수 없는 표정을 나에게 지어 보였다.

"그건, 아버님이 제가 주인님에게 한 일을 깨닫게 된다면 아버님이 주인님 또한 해치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샤론의 말에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마는 나.

"무...무슨 말이야 그게. 샤론...? 대답해, 어서."

"주인님, 미리 경고해두지만 너무 거칠게 반응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님께서 상처입으십니다."

나는 크게 한번 숨을 고르곤 다시 한번 물었다.

"샤론, 나한테 무슨 일을 한거야?"

"제 능력을 이용해, 주인님의 체세포 대부분을 저와 비슷한 조직으로 바꾸어 두었습니다. 제 안의 어머님의 존재 덕분에 주인님의 유전자를 고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었지요."

내 안이 마치 얼음으로 가득찬 듯한 느낌이었다. 내 세포를...?

"....대체.....왜 그런 짓을....?"

"주인님, 어머님과 제가 주인님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인간의 육체는 너무나도 약하고 수명이 짧은 존재입니다. 그걸 직접 눈앞에서 겪은 저와 어머니가, 주인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 놔둘 것 같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 더 내 안에서 패닉이 점점 더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어머니의 영혼이..? 아냐, 말도 안되는, 내가 아는 어머니는 절대 그런 일을 하실 분이-

그런 패닉과 필사적인 부정의 감정에 휘둘리던 와중, 나는 문득 샤론의 말에서 한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수명이 짧아...?

나는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샤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샤론..? 지금 내가....몇 살이지?"

"주인님의 육체 나이는 현재 만 22세이십니다. 주인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지는 37년이 지났지만요. 저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총명해지기만 하는 주인님의 머리를 보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어제의 날씨를 얘기하는 것 마냥 빙긋 웃으면서 초대형 폭탄을 떨어뜨리는 샤론.

"...왜?! 왜 나는 하나도 기억을 못하는거지!!! 어머니의 영혼이나 아버지와 관련된 일, 그리고 변해버린 내 신체에 관한 일도!!! 15년동안의 내 기억은 어디간거야!!!"

나는 허리에 감겨 있는 샤론의 촉수를 재빨리 풀어버리고 샤론에게 고함쳤다.

"주인님, 감히 말씀드리건데 그 질문은 안하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묻는 말에 답을 해 샤론!!!!!"

"제가 미워지셨습니까, 주인님?"

"왜 대답을 안하는거야 샤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샤론에게서 도망치듯 뒷걸음질치는 나. 하지만 샤론은 내가 뒷걸음질 칠때마다 쫓아오듯 나에게 다가온다.

"주인님, 어머님께서 울고 계십니다. 어머님을 울리고 싶으십니까 주인님."

"저..저리 꺼져."

살면서 처음으로 샤론에게 공포감을 느끼며 더욱 빨리 뒷걸음질을 쳤지만 샤론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나와의 거리를 좁힌다.

"주인님, 아직이라면 늦지 않았습니다. 자, 제게로 오시죠. 제게로 와서 다른 재밌는 일을 합시다. 같이 쿠키를 먹거나, 책을 읽거나-"

"저리 꺼지라고!!!!"

"-같이 목욕하거나, 아! 이번에는 새로운 옷도 같이 만들어 입어 봅시다. 원하시는 무슨 디자인이라도 만들어 드릴-"

"꺼져버려, 이 괴물!!!!!"

나의 고함에 얼어붙듯 멈춰버리는 샤론. 나는 드디어 나를 향해 다가오지 않고 멈춰선 샤론을 노려보면서 거친 숨을 몰아쉰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샤론이 마치 포기한듯한 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투는 마치 나에게는 사과하는 것으로 들렸다.

"무엇을-"

"주인님, 지금 저에게로 오십시오."

내 말을 끊듯이 나에게 명령하는 샤론의 소리에 내 몸은 마치 전류가 흐르듯 움찔하더니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샤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 뭐야...이게 무슨..."

내가 샤론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샤론은 마치 연인의 손을 잡듯 내 손을 잡더니 침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갑시다 주인님. 어머님께서도 새로운 가족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내 몸은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샤론과 함께 침실로 향했다. 샤론은 침실에 도착하자 침대에 걸터앉고는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내 몸이 샤론의 무릎 위에 앉자 샤론은 양팔로 내 머리를 감싸고는 자신의 부드러운 가슴에 파묻었다.

"주인님의 몸은 제 조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히, 제가 그 조직에 명령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지요. 이런 일을 겪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제가 주인님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알아주세요."

자신의 가슴에 파묻혀 있는 내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내 귀에 속삭이는 샤론. 그러고는 자신의 메이드복 셔츠 버튼을 풀고는 앞섬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샤, 샤론-"

샤론의 부드러운 젤리와도 같은 보라빛 유방이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샤론의 손이 내 바지 안으로 들어와 피가 몰리기 시작하는 그곳을 살짝 감싸는 것이 느껴지자 내가 놀란듯이 말했지만 샤론은 내 입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눌러 젖꼭지를 내 입에 물리게 했다.

"쉿, 긴장하지 마세요 주인님. 이번이 제가 착상 가능한 인공자궁을 만드는 6204번째 시도입니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성공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샤론의 젖꼭지를 입에 문 채 샤론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샤론이 나를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머니와 똑 닮은 그 얼굴이 모성애 넘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내 몸을 부드럽게 애무하는 그 모습을 보자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만 내가 굶주린 야수와도 같이 샤론의 유방을 맹렬하게 빨기 시작하자, 마치 모유와 같이 내 입 안에 달콤한 액체가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샤론의 음식을 먹을때면 항상 나는, 그 '샤론의 맛'이 났다. 나는 그 모유를 게걸스럽게 마시면서, 이제서야 내가 평소에 음식을 먹을 땐 항상 샤론도 같이 먹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주인님 장하기도 하셔라." 샤론이 아기와도 같이 열중해서 자신의 젖을 빨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칭찬해주었다. 그리곤 내 바지 안에 들어가 있던 손을 꺼내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어머님께서도 기뻐하시고 계십니다. 자 주인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보죠."

이제는 나체가 된 나의 몸을 샤론이 점점 더 감싸는 것을 느끼면서, 내 의식은 점점 녹아만 간다.

의식뿐만이 아니라 몸 마저도, 어디까지가 내 몸이고 어디까지가 샤론의 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샤론에게 녹아버린 것만 같았다.

인간이 느껴선 안될 정도의 쾌락에 휩싸이며, 내 의식은 그렇게 서서히 심연으로 잠기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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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간식을 가져왔습니다."

샤론이 부드럽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흠칫하고 정신을 차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서재였다. 책을 읽다가 깜빡 졸기라도 한 것일까...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샤론이 건네주는 쿠키가 담긴 접시를 받으며 답례로 미소를 지어보인다.

"영혼에 관련해서 공부 중이십니까?"

샤론이 내 앞에 놓여진 책을 보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아, 뭐, 그렇게 본격적인건 아니고..."

뺨을 긁으면서 맥빠지는 대답을 하는 나. 학자 부모님을 둔 나인만큼 학문에 관심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하고 꽂히는 분야를 찾지 못했기에 이곳저곳 건드려보기만 하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주인님께서는 영혼이 어디에 깃든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샤론의 질문에 쿠키를 한입 베어무려다 말고 샤론을 쳐다본다.

"그건 갑자기 왜??"

샤론은 그 특유의 빛나는 노란색 눈으로 나를 보며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그저 갑자기 든 의문일 뿐입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하복부를 사랑스럽다는듯이 쓰다듬는 샤론.

"...왠지 모르게, 곧 저에게 새로운 영혼이 깃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에..."

영문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웃해보았지만, 샤론은 그런 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