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monmusu/6564078





금태양과 눈이 마주치자 전학생은 놀란 고양이처럼 우뚝 멈추더니, 곧바로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죠.



"저기, 괜찮으면 여기서 먹어도 돼……. 내가 내려갈게."



금태양이 일어서며 한 말에, 계단을 막 내려가려던 전학생은 잠시 갈등하는듯 했어요.




비록 주변에 양아치로 알려져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아싸에 가까운 금태양은 한 눈에 알 수 있었어요.



전학생은 그 비상하고 사람을 매혹시키는 외모와는 다르게, 금태양처럼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하는 부류라는 걸요.



금태양은 얼굴에 정신이 팔려 전학생이 어째서 전학을 왔는지 하나도 못 들었지만, 아마 전학을 온 이유도 그런 것 때문 아닐까 생각했어요.




머뭇거리던 전학생은 금태양을 여전히 경계하면서도,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왔어요.




"그러면 점심 맛있게 먹어. 난 가볼게."




금태양은 계단을 내려가려 바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죠.




"기다리세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전학생은 계단을 내려가려던 금태양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금태양은 어리둥절했죠. 전학생의 태도는 다른 사람들처럼 금태양을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오히려 혼자 있게 내버려두겠다는 걸 막는 이유가 뭔지 짐작되지 않았죠.



전학생은 살짝 큰데다 계단 위에 있는 금태양을 올려다보며 말했어요.



"당신, 이걸로 제 약점을 잡아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이면 그만두세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파악했거든요."


"응?"


"모르는 척 하실 생각인가요? 당신, 저를 범할 생각이죠?"



전학생이 당연하다는듯 한 말에, 금태양은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아까 교실에서도 저를 그, 그렇게 음란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나요?"


"아니, 잠깐만. 뭔가 착각을……."


"착각이요? 웃기지 마세요. 다들, 다들 저를 경멸할 때. 당신 혼자서 눈을 빛냈잖아요?"



지금 금태양의 머릿속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물음표가 수십개 쯤 남발하는 만화 같은 모습이었겠죠.


그러거나 말거나, 전학생은 이를 악물고는 금태양을 향해 선언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게 될 거예요. 하지만, 비록 마물의 몸이 되었어도 성녀로써 당신 같은 사람의 뜻대로 놀아나진 않을 거예요!"


"……성녀?"



처음 듣는 말에 금태양이 의문을 표하자, 당당하던 전학생이 갑자기 멈칫했어요.



"아까 교실에서 말했잖아요?"


"아, 그 때 안 듣고 있었어…… 미안."



전학생이 교실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전학생의 얼굴에 눈이 팔린 금태양의 귀에는 전학생의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것 이상의 정보값이 입력되지 않았어요.



"그럼 아까는 왜 그렇게 쳐다본 거예요?"


전학생은 금태양을 여전히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어요.


갑자기, 금태양은 전학생이 아까보다 부쩍 가까워져있음을 깨달았어요. 아름다운 순백의 머리카락과, 투명하게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죠. 숨을 쉬는 것과 함께, 어딘가 익숙한 달콤한 향기도 확 풍기고…….


금태양은 무심코 시선을 돌렸어요.



"그게, 그……. 예뻐서……."



금태양은 솔직하게 답했지만, 전학생은 믿지 않는 눈치였죠.



"평소에 그런 식으로 여자들을 꼬시나봐요?"


"아, 아니야. 정말로 그냥 처음 본 순간부터 뭔가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거짓말을 할 거라면, 그 몸에서 풀풀 나는 다른 여자들 냄새나 지우고 하시지 그래요?"



여자냄새? 그 순간, 금태양은 전학생에게서 나는 향기를 어디서 맡아봤는지 기억났어요.


어머니나, 누나나, 여동생이나, 다들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주변에서는 무언가 달콤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과일의 단내 같은 향기가 풍겼어요. 아니, 가족 뿐만 아니라 서큐버스라는 종족은 모두 그러했죠.



"혹시, 서큐버스야?"



전학생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어딘가 옅으면서, 꽃과 같은 생그러움이 같이 느껴졌지만, 그 근간 자체는 서큐버스에게서 나는 향기였어요.


전학생은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죠.



"네, 서큐버스입니다. 그렇다고 쉬운 여자일 거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안 해. 그게…… 사정이 좀 있는데……."



금태양은 잠시 망설였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가족들이 서큐버스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지만, 어쩐지 전학생에게 말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숨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금태양은 각오를 다지고 말했어요.



"우리 가족도 서큐버스야. 엄마나, 누나랑, 여동생이나."



한 번 터져나온 말은 술술 이어졌어요.


부모에게 버려져, 서큐버스에게 입양된 일. 마물들 사이에서 유일한 인간으로 자라며,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격차에 점점 뒤쳐져가던 일.


가족들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가족에게 인정받겠다는 다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일.


그게 비록 섹스배틀의 형태라는 건 말하지 않았지만, 금태양은 자신의 사정을 전학생에게 털어놓았어요.



"힘들게 사셨네요."



어느새 금태양과 같이 계단에 걸터앉은 전학생은, 자신의 도시락통을 옆에 치워두고 금태양을 위로했어요.


금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최근 늘 드는 생각을 입에 담았어요.



"그 동안은 이 힘든 게 언젠가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끝나지 않을 거 같아."



옛날에는 누나나 여동생을 이기면 가족이 화목하던 때로 돌아갈 것만 같았죠.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금태양은 너무 자신이 할 말만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 미안. 너도 힘들 텐데 이런 불평은 듣기 싫겠지."


"별로 상관없어요. 성녀로 하던 일 중에서도 그런 불평불만을 듣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전학생은 마치 금태양이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했던 것처럼, 살짝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어요.



"저도 고아여서, 그런 심정은 이해해요. 이용만 당한다고 해야하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야하나. 성녀로 살면서 한 일은 대부분이 멋대로 뭘 정하는 사람들 사이에게 이용당한 것 뿐이고, 고민을 터놓고 말할 만한 친구 한 명 없었죠. 그렇게 보면 차라리 이 꼴이 된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전학생은 자신의 등 뒤에 돋은 날개를, 꼬리를 향해 애증이 복잡하다는 투로 말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 존엄성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한 때 성직자였던 몸으로써 마물의 본성 따위에 지고 짐승처럼 살아갈 수는 없어요."



그 말은 마물소녀가 들었다면 기분이 퍽 상했을 법한 말이긴 했지만, 금태양은 그런 것보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전학생의 모습에 더 큰 감명을 받았어요.



"너는……대단하네."


"자존심이 셀 뿐이에요."



금태양의 말에 전학생은 새침하게 답하고는, 고개를 휙 돌렸어요.




그 후로, 전학생과 금태양은 점심시간이 되면 이 계단에 앉아 얘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남들이 본다면 친구라고 볼 수 있을 법한, 아니, 어쩌면 친구보다 가까운 사이로 오해할법한 사이가 되었지만, 이 둘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어요.


둘 다 이성인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을 곁에 둔 경험이 없었거든요. 거리감을 몰랐지만,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게 그다지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너, 이젠 전학생한테 손을 댄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않았죠.


당황한 금태양의 눈앞에는 반에서 유명한 라타토스크가 서있었어요.


원래 풍성한 다람쥐를 닮은 꼬리를 있는 힘껏 부풀리고는, 심각하게 찌푸린 얼굴로 금태양을 올려다봤지만,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게 눈에 보였죠.



바로 이 라타토스크가 금태양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 중 하나였어요.


라타토스크도 헛소문을 만들어낸 건 아니었지만, 금방 사라졌을지도 모를 헛소문이 정석처럼 굳어지게 된 건, 이 라타토스크가 정의감에 모두에게 알려야한다며 이리저리 말하고 다닌 탓이 컸어요.



비록 금태양에겐 나쁘게 작용했지만, 의도는 나쁘지 않음을 이해하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서 지냈는데, 그 라타토스크가 오늘은 웬일로 금태양을 막아서고 있었던 거죠.



"저기, 무슨 말인지 잘……."


"누가 모를 거 같아? 그 애가 혼자인 걸 이용해서 손댄 거잖아!"



이번 이야기도 금태양은 금시초문이었어요. 전학생한테 손을 댄다……? 그것이 다분히 성적이고 범죄적인 뉘앙스라는 것만 알 수 있었죠.



"너 정말 쓰레기다. 아무리, 아무리 그 애가 첫 날부터 남들이랑 사이좋게 안 지내겠다고 선언부터 했다고 해도, 그걸 이렇게 이용해?"



금태양은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전학생이 첫 날에, 자기소개시간 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금태양은 알지 못했어요. 남들과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았지만, 전학생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금태양은 지금 알았죠.


금태양은 해명하고 싶었어요. 그런 일은 없다고, 전학생과는 그냥 친구라고, 서로 고민을 터놓고 말하는 사이일 뿐이라고.


전부 다 오해라고.



"그……."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어요.


사방에서 적대감 가득한 시선이 금태양을 꿰뚫어보고 있었죠.


그것을 의식한 순간, 금태양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어요.



그냥 오해받아서 이렇게 됐을 뿐인데.


억지로 해명하려고 다가갔다가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만들까봐.


내가 해명하면 너희가 나쁜 사람이 될까봐, 차라리 내가 오해받고 말겠다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그들은 금태양을 증오가 느껴지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죠.


그들은 몰랐을 거예요. 시선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요.



"나는……."



금태양은 마치 머리가 멈춰버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그 자리에, 전학생이 끼어들었어요.


그 청아한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휘어잡고, 금태양과 라타토스크의 사이를 갈라놓았죠.



전학생의 심각한 표정은, 늘 평정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 자존심이나, 다양한 감정이 새어나오던 때와는 다르게 차갑게 굳어있었어요.



"안젤리아, 괜찮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라타토스크가 다가오려고 하는 것조차 가로막고, 전학생, 안젤리아는 날이 선 말투로 물었죠.


그 모습에 라타토스크는 물론이고,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놀란 눈치였어요.



그건 소문 속에서만 오르내리던 몰락하고, 불량배에게 이용당한 불쌍한 성녀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거든요.


이건 오로지 금태양만이 알고 있는, 꺾이지 않는 빛이며,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안젤리아의 강인한 면모였어요.



"무슨 일이기는, 이 녀석이 너한테 억지로 손을 댄 걸……."


"누가, 얘가요?"



안젤리아는 금태양을 엄지로 툭 가리키며 말했어요.



"너무 어이가 없는 헛소문이라 웃음도 안 나오네요."



언제는 웃어주기라도 했나 싶지만, 지금 안젤리아의 분노에 찬 눈매에서는 사람을 주춤하게 만드는 기백이 있었어요.


그것을 교단의 사람들은 신성함이라고 말하였지만, 지금 안젤리아가 표하고 있는 건 그런 거룩한 것이 아니었어요.


진노. 거대한 존재가 그녀의 뒤에서 함께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나, 나는 그냥 너를 도와주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한테 도움이 됐나요?"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너도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알잖아!"


"잘 알죠. 몇 년간 헛소문만 듣고 퍼트리면서, 직접 이야기는 나눠본 적 없는 당신보다 훨씬 더 잘 알아요."



안젤리아는 금태양의 앞에 섰어요. 그를 향한 모든 시선을 막아주는 방패처럼.



"양과 목자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분별력에 있지요. 알지 않으려 하는 것 또한 죄입니다."



'헛소문만 믿고 이게 뭔 개짓거리냐 이 못 배워먹은 년들아?'를 성스러운 풍으로 말한 안젤리아는 그대로 돌아서서, 아직도 멍하니 서있던 금태양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여기 말고 다른데로 가죠."



금태양은 안젤리아의 손에 이끌려, 늘 둘이 만나던 인적 드문 계단으로 끌려갔어요.



"고마워……."


"당신 좋으라고 한 게 아니니까 감사는 됐어요. 멋대로 절 피해자 취급당하는 게 싫었거든요."



멋쩍어하는 금태양을 내버려두고, 안젤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그래서, 대충 이런 느낌이었겠네요."


"뭐가?"


"당신이 이 지경까지 떨어지게 과정이요. 보나마나 남들이 오해한 걸 설명하면 상대가 미안해할테니 그냥 내가 참고 말자고 가만히 있었죠?"



안젤리아의 분석은 너무나 정확해서, 금태양은 할 말이 없었지요.


안젤리아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성녀라고 떠받들어지며, 종교의 이름을 쓴 정치판의 한 축으로 살다보면 이런 안목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지요.



안젤리아는 금태양의 가슴팍에 손가락을 툭 찔렀어요.  



"당신이 해명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 사람은 선의와 정의감으로 나쁜 짓을 해버리게 된 거에요. 거기에 당신의 책임이 없다고는 못해요. 아시죠?"



약간 퉁명스럽긴 했지만, 그 말투에 담긴 염려에는 금태양을 위하려는 마음이 담겨있었어요.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에 금태양은 힘겹게 입을 열었죠.



"하지만, 내가 해명한다고 해도 그 녀석들이 날 믿어줬을까?"


"당연히 아니죠. 거울은 보고 다녀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처음에 생긴 거 보고 소문이 진짠가 했거든요?"



안젤리아가 갑자기 험한 말을 하자 금태양은 충격을 받았지만, 안젤리아는 곧바로 덧붙여서 말했어요.



"그러니까 오해를 안 받으려는 노력을 해봐야죠. 일단은 그 보기 힘든 머리부터 어떻게 해볼까요? 나머지는 천천히 같이 노력해봐요."



안젤리아는 금태양을 믿고,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어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 손길을 거부하려고도 했겠지요. 동정하지 말라고 화도 냈을 거예요.



"고마워, 안젤리아."



하지만 금태양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보내주는 믿음이, 선의가, 너무나 따스했어요.





금태양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검은 염색약을 사갔어요.


몇 번이야 미용실에서 한다고 쳐도, 금발 염색을 매번 다시하기엔 재정적인 부담이 컸던 탓에 혼자서 염색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친구 집에서 염색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금태양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향했죠.




가족과 마주치기 꺼려져서 안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벌써 2주.



어머니는 아직 직장에 계실 시간이고, 누나는 선수팀 합숙 훈련소에, 동생은 친구들과 놀러가는 걸 확인한 뒤였지만, 그럼에도 금태양은 조심스레 집에 들어갔어요.


금태양은 오랜만에 왔음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은 집을 보면서도, 마치 남의 집에 숨어든 것처럼 불안해하며 화장실로 향했어요.




금태양이 거울 앞에 제대로 마주하고 서자, 어릴 적 본 만화를 동경하며 따라했던 금빛 머리는 우스꽝스러워 보였죠.



금태양은 한숨을 내쉬고, 염색약을 바른 빗으로 금색 머리가 검은색으로 물들 때까지, 염색약을 칠했어요.



염색약을 머리에 충분히 스며들게 한 다음에,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머리를 헹궈내자, 검은 물이 욕조 위로 떨어지며, 하수구 속으로 사라졌지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턴 금태양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욕실을 나서려 했어요


바로 그 때.



"야! 시발 너 집에 있냐!"



갑작스러운 호통이 집안을 뒤흔들었어요.


누나가 돌아왔음을 알아챈 금태양은 황급히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누나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문을 열어제끼는 소리가 들려왔죠. 금태양의 방을 한 번 확인한 그 분노에 찬 발소리는, 곧이어 부엌으로 다가갔다가, 마침내 욕실로 다가왔어요.



급하게 바지부터 입은 금태양이 와이셔츠를 입으려던 중에, 욕실문이 거칠게 안쪽으로 열렸어요.


잠금장치요? 그런 건 이미 고장난지 오래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너머로, 운동복 차림의 누나가 분노에 차서 금태양을 노려보며 다가왔어요.



"야 이 시발새끼야! 너 또 학교에서 애들한…테 맞았…다며……?"



그러나, 금태양의 멱살을 잡으려던 손은, 금태양에게 다가가던 위협적인 발걸음은, 의문형으로 사그라들기 시작한 말처럼 갑자기 수그러들었어요.


하지만 금태양은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의 큰 소리에 놀라서 바로 사과하고 말았어요.



"미, 미안, 누나. 그동안 안 들어와서……."



그런데, 금태양도 누나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너, 너……."


있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두 눈은 흔들렸고, 떨리는 손은 금태양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까지 더듬었죠.



"너, 머리가 왜……?"


"아, 이거? 머리는 그냥 안 어올린다길래 검은색으로 염색했어."



금태양은 갑자기 머리색을 바꿨다고 누나가 놀란 줄로만 알았어요.


그도 그렇겠죠. 거의 10년 가까이 금발만 염색해오다가, 갑자기 검은색으로 되돌아갔으면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얼굴이 붉어진 누나가 외친 말은 머리와 관련된 게 아니었어요.




"왜, 왜 갑자기 꾸미고 지랄이야!"




외모봉인구라는 말이 있어요.


촌스러운 안경, 굽은 자세, 비굴한 말투나 표정 등, 사람의 인상을 결정지을 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로, 원판이 괜찮은 사람조차 못생기거나 매력적이지 않게 만드는 요소들이죠.


그리고, 대충 뭐시기 대학의 연구결과, 사람은 물에 젖어있을 때 약 60% 정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요.



즉, 지금 누나의 눈 앞에는 그동안 알던 금태양이 아닌,



안 어올리고 촌스럽던 금발 염색이라는 외모봉인구가 해제되고,


물에 젖은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겁먹은 눈치로 어딘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다 채우지 못한 셔츠 사이로 나름 단련하며 다부진 몸이 엿보이고,


검게 탄 피부가 이국적이면서 어딘가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누나?"



여심과 소유욕을 불태우는 마성의 남자가 있었던 거예요.


아닌데, 분명히 얘는 내가 아는 걔인데. 도저히 그것과는 다른 눈앞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가슴은 미친듯이 뛰었어요.


금태양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어쩔 줄 모르는 누나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고는, 누나에게 다가갔어요.



"윽……!"


"누나, 괜찮아? 얼굴이 왜 그리……"


"으아아아아!!"



결국 견디지 못한 누나는 괴성과 함께 도망쳤어요.



"누나! 어디 가!"



당황한 금태양이 붙잡기도 전에, 누나는 이미 신발까지 신고 현관문 밖으로 뛰쳐나간 뒤였지요.


금태양은 누나를 따라가기 위해서 막 거세게 닫힌 현관문 앞에서 황급히 신발을 신고, 아파트의 복도로 나왔어요.




"뭐, 뭐야? 언니? 어디 가?"



그 때, 문 밖에서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갑자기 집에서 뛰쳐나와 미친듯이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자신의 언니를 보고 당황한 여동생은, 그대로 현관문이 열리며 금태양이 나오자 자연스레 복도 앞에서 금태양과 마주했어요.


금태양의 누나는 그 사이에 이미 계단을 통해서 멀리 도망친 뒤였고, 여동생은 금태양을 보더니 그 자리에 멈춰섰죠.


누나를 쫓아가기엔 이미 늦은 것 같으니 포기하고, 금태양은 반쯤 먹다 남은 버블티를 들고 있는 여동생을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걸었어요.



"왔구나? 친구들이랑 저녁은 먹었어?"


금태양은 오랜만에 말을 하는 것 같아서 멋쩍으면서도, 용기를 내어서 다정하게 말해보려고 노력했죠.


서로 다정하고, 친절한 가족, 그게 금태양이 바라는 것이었으니까요.







"…………."



여동생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어요


만약 여동생의 머리가 컴퓨터였다면, 지금 모니터는 무한히 늘어나는 에러창에 잠식되었을 거예요.



여동생의 머리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눈앞의 광경은 지금 여동생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왜 그래? 괜찮아?"


정신이 어딘가 멀리 날아가버린 것 같은 여동생의 모습에 금태양이 걱정스레 접근하려 하자, 여동생은 갑자기 돌연히 몸을 돌렸어요.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집에서 멀어졌죠.


한계에 봉착한 여동생의 무의식이 정신을 잃은 본체를 대신해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서 도망치기를 선택한 거였어요.



금태양은 천천히 걸어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여동생을 붙잡을까 했지만, 뭔가 손대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에 그럴 수 없었어요.


누나나 여동생이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나보다 생각한 금태양은, 나중에 둘이 마음을 풀기를 바라면서 혼자 집으로 돌아갔죠.





다음날,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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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쓰고 나서 좀 너무 오래되긴 했는데, 2편임.


2편은 진작에 써두긴 했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서인지 올리기 좀 자주 망설여지더라.


완결은 지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