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디시에서 드래곤 유희 같은걸로 이야기 하는거 보고 떠올라서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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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하다.

 

 비록 부모는 어릴 적에 산적에게 잃고 뛰놀던 마을은 전부 불태워졌더라도 지금 나는 행복하다.

 

 복수를 꿈꾸며 몇 년 동안 산속에서 수련만 하던 나.

 

 우연히 산을 헤매던 마법사아리아를 만났고 그녀와 친해져 여행을 함께 떠났다그 도중에 여러 동료들을 만나고 고난을 함께하면서 아리아와 더욱 가까워졌고 그것은 우리가 연인이그리고 부부가 되게 만들었다.

 

 항상 나를 존중해주며 웃어주는 마음 따뜻한 그녀.

 

 복수의 끝이 허망하지 않았던 것도 그녀가 있었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내 부인이기에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유희는 유희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불행해지려 한다.

 

 

 * * *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유희는 끝났고 나는 이제 떠나야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드래곤이라 밝히며 나와의 삶이 유희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아리아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내가 아는 마음씨 따뜻한 여성은 없었다있는 것이라곤 하등한 생물을 바라보는 오만한 드래곤의 얼굴뿐.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 나는 차마 농담이냐고 물을 수 없었다.

 

 “...아리아당신이 정말 드래곤이라면..”

 

 의심하지마라 아론나는 붉은 산의 주인이자 레드 드래곤들의 왕아리아테스 디 드레이아 다.”

 

 의심하지 말라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이마에 손을 얹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입을 다시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걸 말하는 거야..? 드래곤의 수명은 길잖아...어째서...내가 살아있을 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수명이 다해 죽었을 때 떠나면 안 되는 거야?”

 

 나를 사랑한다면평소의 그녀의 행동이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나를 위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지 않는다는 건...

 

 별다른 이유는 없다그저 유희에 할당된 시간이 끝났을 뿐이다.”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내게 줬던 그 따스한 마음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걸까

 

 냉랭한 태도를 고수하는 아리아에게 간절한 말투로 물었다.

 

 제발 그녀가 말해줬으면 좋겠다결국 떠나게 되더라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라고유희였지만 너를 향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그 말 한마디면 되는데...

 

 유희는 유희일 뿐이다.”

 

 ... 왜 그렇게 차갑게 말하는 거야그런 입에 발린 말도 못해주는 거야당신에게 나는 그저 장난감일 뿐이었던 거야..?

 

 그럼 난...?

 

 나는 뭐가 되는 거야?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모두 묻어두고 오직 너만 바라보기로 한 나는...

 

 나는 뭐가 되는 거야?

 

 “...이만 가보도록하지.”

 

 아리아는 몸을 일으켜서 현관으로 향했다현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기 전 그녀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첫 유희였지만 네 덕분에 생각보다 즐거웠다감사를 표하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내 곁을 떠났다.

 

 나는 혹시나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 현관을 바라보며 그녀를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버려진 것이다.

 

 

 * * * 

 

 

 성녀 에리카는 요즘 고민이 있다.

 

 바로 예전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에 관한 고민이다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고민이라고는 하지만 풋풋한 사랑 고민은 아니다그런 건 그 남자가 아리아와 맺어진 순간 포기해버렸으니까.

 

 그럼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

 

 그만 일어나세요벌써 해가 중천이라고요?”

 

 그녀가 사랑했던..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남자아론이 폐인이 된 것이다그것도 그가 죽고 못 살던 부인에게 차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드래곤이라니...’

 

 처음에 아론이 울면서 말할 때는 그저 술주정인줄 알았다단순한 부부싸움이었고 얼마 뒤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리아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론은 폐인이 되어버렸다.

 

 “...놔둬그냥 더 자고 싶어.”

 

 아론...”

 

 아론은 며칠 씻지도 않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에리카는 속상했다.

 자기관리 하나는 정말 질릴 정도로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아론이 이렇게까지 망가져버리다니그가 아리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껴졌기에 에리카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나였다면...’

 

 아리아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그가 이렇게 힘들어할 일은 없었을 텐데... 

 

 에리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게 안 되니까 그녀가 그를 포기했던 것이다.

 

 벌써 일주일째에요언제까지 침대에 누워만 있을 거예요?”

 

 내버려둬.....난 그냥 이대로 죽고 싶어.”

 

 아론!!”

 

 “...”

 

 죽고 싶다는 아론의 말에 에리카가 진심으로 분노했다죽고 싶다니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한단 말인가?

 

 유희니 뭐니 하는 걸로 가볍게 떠나는 그런 여자 하나 없어졌다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차라리 복수하겠다던가 새 출발을 하겠다던가...

 

 ...’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찾으러 가봐요.”

 

 ?”

 

 아직 아리아를 사랑하잖아요그렇다면 붙잡아야죠아론이 원한다면 옛 동료들도 모두 모을게요.”

 

 에리카가 성녀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아론은 잠시 고민하더니 진지한 얼굴을 지었다.

 

 “...네 말이 맞아아리아라 나를 떠났더라도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에리카 부탁해도와줘.”

 

 그럼요저는 언제나 당신의 편인걸요?”

 

 에리카...”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론을 보며 에리카는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아리아를 찾는 여행을 하는 동안 아리아로부터 그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빼앗는 것이라기엔 아리아가 버린 것이었지만 에리카에겐 세상에서 둘도 없는 보물이었으니까.

 

 * * *

 

 답답하다.’

 

 붉은 산의 주인이자 레드 드래곤들의 제왕아리아테스 디 드레이아는 자꾸만 옥죄이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언제부터 이랬던가.

 

 떠올려보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유희생활 속에서 그녀의 부군이었던 아론을 떠날 때아론이 지은 표정을 봤을 때부터 이랬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옥죄여와 답답하고 시큰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따가움이 그녀를 괴롭혔다.

 

 아론...”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