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그게 정말이야?”

 

 아론의 전 동료인 여도적렉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렇다니까요도대체 몇 번을 의심하는 거예요?”

 

 믿기 힘든 이야기니까 그렇지.”

 

 심드렁하게 말하는 렉시를 보며 에리카가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기는 하다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않나?

 

 그보다...주인님께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게 진실인가요?”

 

 고양이귀를 가진 수인티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과거에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자 그날부터 주인으로 모신 아론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길드일도 내팽개치고 달려온 그녀였다

 

 그녀는 아리아가 드래곤이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건 오직 아론에 대한 이야기뿐.

 

 그래중요한건 아리아 그년이 아니지에리카 네 말이 확실한 거지정말로 아론이랑 이어질 수 있는 거지?”

 

 계획대로만 된다면 가능해요.”

 

 렉시의 물음에 에리카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진실이라면...정말 기대되는군요.”

 

 엘프 궁수레니가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에리카를 제외한 여성들은 에리카에게 얼른 계획을 말하라고 재촉했고 에리카는 재촉에 못 이겨 그녀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여행을 떠나는 날부터 계획은 시작될 것이다.

 

 * * *

 

 렉시티나레니다들... 이렇게 모여 줘서 고마워!”

 

 내 앞에 서있는 그녀들을 보고 말했다다들 자신의 삶이 있을 텐데 도와달라는 나의 한마디에 모여 준 게 너무 고마웠다.

 

 후훗...달링의 일인걸하던 일도 멈추고 오는 게 당연하지.”

 

 하하...달링이라는 것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네...”

 

 요염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찌르는 렉시에게 나는 그저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항상 가깝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착각할 뻔한 게 몇 번이지 모르니까.

 

 렉시 씨너무 가까워요!”

 

 그러는 넌 왜 은근슬쩍 달링에게 달라붙는 건데?”

 

 아론 님은 제 주인님이시니까요!”

 

 그게 무슨 논리...레니너마저..!”

 

 렉시가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은 레니를 보며 이를 갈았다레니는 렉시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 등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비벼대었다.

 

 레니..?”

 

 가만히 있으세요아론오랜만에 냄새를 조금 맡으려는 것뿐입니다.”

 

 냄새를 왜...”

 

 이익..! 나도 나도!!”

 

 렉시가 내 품에 몸을 던져왔다갑자기 몸을 던져온 탓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줘야만 했다.

 

 달링의 품... 너무 오랜만이야!”

 

 렉시!”

 

 “...”

 

 에리카?”

 

 조용히 바라만 보던 에리카가 은근슬쩍 내게 몸을 기대왔다.

 

 얘네..갑자기 왜이래?

 

 여행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기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에리카는 신을 모시는 성녀로써 항상 품행을 단정히 해야 한다며 남자의 곁에는 다가가지도 않았었다.

 

 렉시는 내게 달링이라고 부르며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도 어쩌다가 손이 닿으면 기겁하면서 손을 뺐었다살짝 화가 난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말이다.

 

 티나는 나를 주인님이라며 깍듯이 대했지만 그뿐이었고 레니는 내가 도와줄 때마다 네가 아니었어도 괜찮았거든?’이라며 짜증을 내곤 했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동료애가 깊어진 건가?’

 

 그런 것 같다.

 

 나도 가끔씩 옛날에 다 같이 모험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었으니까나와 티나가 전위에서 적을 막으면 레니가 호위해주고 아리아가 마무리했던....

 

 아리아...

 

 그녀가 떠오르자 마음이 또 울적해졌다.

 

 “...아론?”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에리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더 이상 걱정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한지 얼마나 됐다고 어겨버리는 걸까

 

 나도 참 한심하다.

 

괜찮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주었다정말로 괜찮았다.

 

 집에서 홀로 기다릴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희망이 있으니까.

 

 * * *

 

 미안하지만 붉은 산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네.”

 

 ...”

 

 희망이 사라졌다.

 

 내 곁을 떠난 아리아를 붙잡기 위해 여행을 떠난지 어느덧 2년째.

 

 그녀가 말했던 붉은 산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대륙 전체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구했지만 그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보길드에 물어봐도 대략적인 정보만을 줬을 뿐이었으니까.

 

 그 대략적인 정보를 요리조리 뜯어보며재해석까지 해서 겨우 도착한 붉은 산 인근의 마을.

 

 그 마을의 촌장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붉은 산은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라고

 

 인간이 발을 들이기만 하면 붉은 산의 뜨거운 마력에 전신이 녹아내릴 것이라고.

 

 그 말에 어떻게든 연료를 넣어가며 태우던 내 희망회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남은 것이라곤 가슴을 어둡게 만드는 절망뿐이다.

 

 아론...”

 

 ...조금만 혼자 있고 싶어.”

 

 걱정해주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여관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였다그대로 잠들려고 했지만 몸이 편해지자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결국...아리아와는 인연이 아니었던 걸까...”

 

 말로 내뱉고 나자 가슴이 시큰거리면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옆으로 누워 몸을 쭈그리고 소리죽여 울었다.

 

 아리아에게 버려졌다는 슬픔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도 아팠지만 그 이상으로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지난 2년간 내 소중한 동료들은 힘든 여행에도 쓴 소리 하나 없이 따라와 주었다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슬퍼할 때도 곁에서 위로해주었다내가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녀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결국 이 모양 이 꼬락서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여행을 떠나지 말았어야했다그랬다면 동료들의 시간을 빼앗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도 괜한 기대에 배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왜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던 것일까아리아가 내가 붙잡는다고 해서 나를 돌아봐 주겠는가그렇게 차갑게 떠난 그녀가?

 

 지독한 오만이었다.

 

 나는 나만의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이제 빠져나왔다이제 내게 환상 같은 건 없다.

 

 남은 건 지옥뿐이다.

 

 그렇게 자조하며 눈물을 닦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론주무시고 있나요?”

 

 에리카의 목소리였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일까

 

 나는 급하게 눈물을 닦아내고 문을 열어주었다문 앞에는 에리카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함께 서있었다.

 

 ..이 시간에는 무슨 일이야?”

 

 아론...울었습니까?”

 

 아니야그냥 하품하다가 눈물이 나온 것뿐이야난 정말 괜찮아.”

 

 괜찮기는아무리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렉시가 나를 혼내면서 내 방안으로 들어왔다내가 얼 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동료들도 렉시를 따라 들어왔다.

 

 얘들아?”

 

 이리와요.”

 

 에리카가 내 손을 끌어 나를 제 품에 안았다갑작스럽게 그녀의 품에 안기게 된 나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에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내게 안겨들며 그걸 방해했다.

 

 상상도 못한 사태에 당황하고 있을 때 귓가에 에리카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왜 우리에게 기대려 하지 않아요?”

 

 “...에리카 그게 무슨...”

 

 아론은 항상 그랬어요그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굉장히 아프더라도 항상 저희에게는 말하지 않고 혼자 참았잖아요.”

 

 도저히 못 견딜 때는 아리아에게만 털어놓고...’ 그렇게 말하는 에리카의 목소리는 우울에 젖어있었다.

 

 내가 말 안하고 혼자 앓고 있었던 게 많이 서운했던건가...?

 

 어쩌면 내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하자 에리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할 것 없어요저로는 부족했다는 이야기니까요.”

 

 아니야그런 뜻이...”

 

 저 혼자로 부족하다면...모두 함께면 괜찮겠죠?”

 

 “...?”

 

 우울에 젖었던 에리카의 목소리가 갑자기 기이한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서늘한 오한이 전신을 휘감았다.

 

 뭔가...뭔가 잘못됐다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

 

 힘을 줘서라도 빠져나가려 했는데 내 그곳을 움켜잡는 손에 몸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도망은 불가능합니다아론.”

 

 레니?!”

 

 내 그곳을 움켜잡은 레니의 눈꼬리가 휘어졌다그 레니가 저런 요염한 표정을 짓다니... 

 

 안 된다이대로 갔다간 큰일이...

 

 ..! 달링 변태~”

 

 주인님의...주인님의 손...하아...”

 

 .

 

 이미 늦은 것 같다.

 

 티나가 내 팔뚝을 제 허벅지 사이에 비비고 있고 렉시는 내 손을 그녀의 가슴에 가져다대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말캉한 느낌에 음심이 올라오려고 할 때-

 

 제 첫 키스...받아주세요?”

 

 에리카가 내게 입맞춤을 해왔다.

 

 그대로 내 이성의 스위치는 꺼져버렸다.

 

 그날나는 그녀들에게 잡아먹혔다.

 

 * * * 

 

 흐흐흣!”

 

 렉시너무 신난 거 아닌가요?”

 

 ~? 에리카 네가 할 말이야입 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게 보인다고?”

 

 !”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놀리는 렉시와 급하게 입가를 가리는 에리카나는 둘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주인님신혼집은 어디가 좋을까요저는 조금 큰 저택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저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저택에는 정원이 있으니까요.”

 

 그럼..저택으로 알아볼까?”

 

 !”

 

 배시시 웃는 티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그걸 보고 레니가 머리를 슬쩍 들이밀기에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레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레니 씨는 이마에 키스를 해주는데 저는 쓰다듬는 게 다인가요?! 불공평해요!”

 

 알았어알았어.” 

 

 불평하는 티나의 이마에도 입을 맞추어주자 볼을 불게 물들이며 조용해졌다.

 

 그런데 특별히 챙겨야 할 게 있습니까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곳에 갈 필요가...”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싶어서 그래.”

 

 아리아에 대한 내 마음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했던 집에 들러 모든 걸 떨쳐 내버릴 생각이다

 

 비록 아리아는 나를 버렸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은 나를 괴롭혔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다부인에게 버려지는 나 같은 한심한 남자라도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는 그녀들이 있으니까.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는 여자들이 내 곁에 있어주니까 말이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 그녀들과 행복한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래...

 

 그래야하는데... ...

 

 아론.”

 

 왜 네가 여기있는거야?

 

 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