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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사람 증후군 얀순이


"얀순씨,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해요~먼저 퇴근할께?"


"아,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머, 이 주임님, 지금 일 맡겨두고 그냥 퇴근하시는 거에요?)

(응? 아, 괜찮아. 얀순씨 호구라서 그냥 맡겨두고 가도 되. 호구 주제에 일은 또 잘하더라고.)

(어머, 호구라니. 얀순씨한테 다 들리겠다~호호호)


"...다 들리거든요…"


오늘은 직장인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금요일, 소위 불금이야.

사회에 막 들어선 얀순이의 또래들은 일찍 퇴근해서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기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얀순이는 그럴 수가 없었지.


자기 앞으로 쌓인, 심지어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시켜진 일이 아닌 것들까지 해결해야 했거든.


왜 그런 일들까지 해결해야 하냐고? 얀순이가 진짜 호구인 것 아니냐고?


음, 얀순이가 호구라면 호구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얀순이가 원래부터 호구였다기보다는,

그녀가 어릴때부터 앓아왔던 증후군의 영향이 컸어.


착한사람 증후군이라고 아니?

음.. 쉽게 말하면,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보도록 하자


어쨌든 이런 증후군을 어려서부터 앓아왔던 얀순이는 결국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면의 욕구를 감추고 지나치게 억압한 나머지


외부에게 보여주기 용의 자아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내면의 자아가 뒤섞여버리게 된 거야.

결국 자기주장 없고, 소심한 성격의 얀순이가 호구로 전락하게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지.


"진짜 싫다...씨발…"


극도의 자기혐오가 생긴 건 덤이야.


그래도 쥐구멍에 볕들일이 있다고 했던가?

곧 얀순이에게 상상도 못할 행복이 찾아오게 돼.

물론 '얀순이만의' 행복이었지만.



*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김 얀붕 인사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부리나케 출근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남의'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던 얀순이는 깜짝 놀라.


"ㅇ..에…?"


"김얀순 선배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김얀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에 집중하느라 못 본 건지, 아니면 금방 온 건지 모를 신입사원이 말을 건넸거든.


신입사원이 오는 날이 오늘이었나? 못 들었는데? 아, 부장님이 어제 퇴근하시면서 말한 것 같기도...어떻게 해야하지? 뭐부터?


무엇보다도.


아직 화장 안 했는데.


"...선배님?"


"자, 잠깐!"


"?"


"잠깐만 기다려..요."


얀순이는 화장품이 담겨있는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뛰어갔어.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면서, 얀순이는 새로 온 신입사원을 어떻게, 무엇부터 가르쳐야 할지 고민했어.

아직 자기 부서 사람들이 출근하기멘 한두 시간정도 남아서, 사람들이 오기 전에 끝내고 어제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려 했거든,


"그런데...웬 추석연휴 바로 전에 신입사원이람?

추석 선물이야?"


공교롭게도 그날은 추석연휴 바로 전날이었고, 게다가


"...잘생기긴 했네."


화장을 마치고 나온 얀순이의 눈앞에 보이는 얀붕이의 외모는 추석선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멋있어 보였어. 

어디까지나 취향차이일 뿐이지만.


얀순이는 얀붕이를 데리고 건물 내를 돌아다니며 평소 자기 부서와 교류가 잦은 부서, 탕비실의 위치 등을 알려주었고,

책상 자리를 잡아준 후에는 기본적인 업무 방법과 회의 시간, 점심시간등을 알려주었어.


이제 일 좀 끝낼 수 있겠지, 하고 다시 일에 열중하는데…

아무리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어도 입사 첫날이라 할 일이 없던 얀붕이가 잠깐 나갔다 오더니, 자신에게 걸어오는 게 보여.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뭘 잘못 알려준건가?

왜 오는거지? 등의 생각으로 패닉에 빠진 얀순이에게


"저, 선배님?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얀붕이는 박O스와 박카O맛 젤리를 건넸어.


"아?...아, 고마워요."


"피곤해 보이셔서. 그리고…

혹시 일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 호구취급 받으며 쌓여왔던 얀순이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졌어.


"......"


"선배님?"


"히끅, 히끅, 으흐흑…"


"선배님?!"


평소였다면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의' 일을 하러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4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서러움과 얀붕이의 따듯한 말투에 폭발해 버린거지.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얀순이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서럽다는 듯이 펑펑 울었어.

원래 넘치기 직전의 댐을 방류시켰을때 물살이 더 세다고 하잖아.


그걸 본 얀붕이는 당황해서 달래보려고 

"괜찮아요, 괜찮아."라는 말을 하고, 얀순이는 거기에 감정이 또 복받쳐서 또 울고.


얀순이의 울음이 그친 건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서였어.

울만큼 울어서도 아니라, 눈물을 다 짜내서도 아니라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거든.


눈물이 그치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쪽팔려 뒤질것같다'


였어. 자신의 이상형인 얀붕이 앞에서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울어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누구나 다 그럴 때가 있잖아요."


이해한다는 듯한 얀붕이의 말투에 호감도가 더 높아진 건 말할것도 없지.


진정도 되었겠다, 얀붕씨도 일을 도와준댔겠다 일을 마저 마치려고 하는데…


"얀순씨, 좋은 아침! 어라, 이쪽은 신입사원인가?"


"아, 안녕하세요…"


아뿔싸, 일의 절반도 끝마치지 못했는데 주임님이 들어오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김얀붕 인사드립니다!"


"흐음...반가워요.

그건 그렇고, 얀순씨 일은 다 끝냈어?"


 "아뇨, 아직.."


"뭐, 아직? 아니 얀순씨, 이게 얼마나 중요한 프로젝트인지 알잖아! 오늘내로 제출해야 하는데...어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될 게 아니잖아!

...하, 몰라. 책임지고 저녁때까지 끝내놔요."


방류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얀순이 마음 속 댐에 벌써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그때,


"저기, 주임님?"


"응? 왜, 얀붕씨?"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얀순선배님 일을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얀붕이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전언처럼 들려왔어.

그와 동시에 얀붕씨에 대한 고마운 감정도 함께 고개를 들었지.


"아이고, 신입이 어디서...할일없으면 회사 내 호칭이랑 얼굴좀 익혀요.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한데?"


곧바로 이 주임의 날선 목소리에 사정없이 잘려나갔고.


그래, 이 일은 내가 다 해야되는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라는 착잡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일을 다시 시작하는데,


띠링


알람이 울려. 얀붕씨가 보낸 일대일 사내 메신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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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덕분에. 고마워요.


다행이네요.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나 해서.


아뇨. 이주임님 말처럼 얀붕씨에겐 어려울거에요.


걱정말고 조금만 보내주세요.

돕고 싶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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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계속 거절할까 싶었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 라는 말도 있잖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자료를 보내줘.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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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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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완벽한데요?

어디서 배운거에요?


ㅎㅎ 다행이네요

대학생 때부터 아버지 일을 조금씩 도왔거든요.


혹시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어요?

ㄴ첨부파일 4개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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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얀붕이의 활약으로, 혼자였으면 3~4시쯤에나 끝났을 일이 점심전에 끝났어.


"저기, 이주임님…"


"잘 했네. 진작에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이건 내가 보고할테니 가봐요."


자리로 터덜터덜 돌아와 오늘 점심도 혼자 컵라면으로 때워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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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먹으러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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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좀 풀려서 글쓴것같다

사실 이거말고 연중했었던거 쓸랬는데 도저히 진행이 안되네

항상 부족한글 좋아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