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가 이 모항에 배치된 지 3일이 지났다

  첫째 날은 모항 전입 절차를 거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둘째 날은 모항 시설을 둘러보고 모항의 책임해역과 작전에 대한 정보를 교육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로열의 함선이라면 누구든 가져야 하는 시간, 티타임을 즐기지 못했다

 

  셋째 날인 오늘이 돼서야 하우는 로열 함선들의 오후 티타임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티타임 모임은 로열 함선들의 기숙사 앞 정원에서 열렸다. 만쥬들이 가꾸어낸 정원 한가운데에 고풍스러운 탁자가 놓였고, 탁자 바로 옆에 설치된 파라솔이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막아주었다

  탁자에는 하우와 일러스트리어스, 프린스 오브 웨일스, 후드가 앉아있었고, 그 곁에 메이드장이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로열 함선들의 기품을 뒷받침했다

 

  “하우 님우리 모항에 적응은 잘 되어 가시나요?”

 

  일러스트리어스가 물었다.

 

  “여러 함선 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덕에.”

 

  하우는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하우의 적응은 걱정할 것 없다일러스트리어스킹 조지 5세급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해낼 수 있어뭐든지 말이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찻잔을 내리며 말했다.

 

  “저도 기대가 크답니다하우같이 작전에 나갈 날이 기대되는군요.”

 

  후드가 하우를 보며 말했다. 하우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벨파스트가 만든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홍차 향이 입 안 가득 고였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신없는 이틀을 보내고 난 뒤 처음 가지는 티타임이기도 했으나, 이곳에 여성들만이 있어서 더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하우는 성정큐브를 통해 생성된 그 당시부터 남성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마치 누군가 머릿속에 그런 불편함을 도장처럼 찍어 넣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에 새겨진 함생을 떠올려봤다. 혹시 남성과 관련한 좋지 않은 일화들이 있었는지 여러 번 확인해 봤다

  딱히 그런 기억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HMS 하우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으나 이렇게까지 특정 성별이 불편해질 법한 이야기는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HMS 하우와 동시기에 활동한 군용 함선은 대부분이 남성 선원만 탑승한 상태로 작전을 수행했다. 그랬기에 어쩌면 남성에게 익숙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 일이었다.

 

  이유야 무엇이 됐든지 하우는 남성이라는 성별의 존재가 불편했다동시에 여성들이 겪는 부당함에 큰 관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HMS 하우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신문기사를 통해 현대 여성들이 마주하는 수많은 차별을 마주친 탓인 것 같았다.

  남녀임금 격차부당한 독박 가사로 집중되는 노동의 불평등극동아시아의 어느 반도에 위치한 국가의 여자 화장실에만 오조오억 개 정도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몰카의 위협기울어진 운동장 미소지니 여성혐오 아무튼 한남죽어!!!!!!!!!!

 

  가 아니라... 하우는 여성의 성차별 문제만 생각하면 늘 이렇게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한남이라는 단어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이 모항에도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모항에 온 첫날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지휘관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하우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고합니다! HMS 하우는 이 모항으로의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하우는 책상에 앉은 지휘관을 향해 당당하게 서서 전입신고를 올렸다. 그러나 지휘관은 불편해 보이는 안색으로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하우는 조금 당황했다. 전입신고 내용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경례를 왼손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대체 무엇이 지휘관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여성혐오.

 

  그렇다지휘관은 여성이 군문에 들어선 것 자체가 아니꼬운 게 틀림없었다지휘관의 책상에 있는 어떤 물건을 발견한 하우는 자신의 예상이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지휘관의 책상에는 뜬금없게도 망치가 놓여있었다하우가 생각하기에 시설관리 보직도 아닌 지휘관의 책상에 망치가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진급하려는 여성을 내리찍어 누르겠다는 다분히 성차별적인 의지의 표현임이 분명했다분노한 하우는 그런 지휘관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며 말을 꺼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가까이 오지 말라고!”

 

  지휘관이 별안간 망치를 들어 휘두르는 바람에 하우는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이렇게나 여성을 혐오하는 작자라니하우는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없겠다고 판단해 조용히 집무실을 나왔다

 

  그 첫 만남 이후로 하우는 이 모항의 함선들이 걱정됐다저렇게 극단적인 여성혐오로 물든 인간 아래서 얼마나 많은 함선이 고통받을지화장실에 몰카가 설치돼있는 건 아닌지독박육아에 사회진출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월 이백충 냄져가 껄떡거리는 않을지무고죄가 강화되어 여성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는 않을지역시 한남죽어!!!!!!!!!

 

  하우는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냈다또다시 알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지휘관이 정말로 여성인권에 적대적인 방식으로 모항을 운영한다면그 상황을 타개할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부동액으로 정성스럽게 우려낸 홍차를 대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니 지금 꺼낼 카드는 아니었다여성은 남성과 달리 그런 폭력적인 방식을 선호하지 않으니까

 

  그전에 시도할 가장 좋은 방법은 모항의 함선들에게 여성인권과 관련한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지금 모항의 함선들이 성차별적 권력에 얼마나 큰 피해를 받고 있는지 알린다면 현재 지휘관에 대한 여론은 순식간에 악화될 것이며, 지휘관도 더 이상은 그런 여성혐오적 운영을 계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최선의 결과로 지휘관의 교체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 티타임에는 항상 이정도 인원만 참가하나요?”

 

  하우가 질문을 꺼내자 벨파스트가 답했다.

 

  “오늘은 조금 적은 편이랍니다보통은 10명 정도가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왜 그러지따로 만나고 싶은 함선이라도 있나?”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되물었다.

 

  “아닙니다…… 다음번 티타임에는 책을 읽고 나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해서요.”

 

  “독서토론인가요재밌겠네요!”

 

  후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떤 책을 읽을지 생각해둔 게 있나요?”

 

  일러스트리어스가 물었으나 하우는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이미 그녀는 도서관에서 눈여겨 봐둔 서적이 여럿 있었다

  ‘82년생 김지영’, ‘그럼에도 페미니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등등, 여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다.

 

  어쩌면 여성혐오로 점철된 이 모항에서 이런 책들은 어렵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조금 더 가벼운, 취미활동의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다룬 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와 반려견의 안전한 성같은 책이라거나.

  하우는 어떤 책으로 할지 내일까지는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우가 책 이야기를 꺼낸 탓인지 함선들의 이야기 주제는 책으로 넘어갔다각자 최근 읽은 각종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갔다하우는 역시 여성들만이 이렇게 기품있는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일러스트리어스가 꺼낸 이야기와 함께 혼란이 시작됐다.

 

  “그 책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지휘관님께 추천하러 찾아갔다가 그만 지휘관님의 머핀을 먹고 말았답니다후훗

 

  “저도 무슨 일이든 지휘관님께 찾아가게 되면 항상 지휘관님의 머핀을 먹게 되더군요.”

 

  후드가 미소 지으며 맞장구쳤다.

 

  “그러다 지휘관의 머핀이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지휘관의 머핀은 언제나 기운이 넘친단 말이야약골처럼 생겨놓고서는 말이지.”

 

  지휘관의 머핀지휘관이 요리라도 한단 말인가그 한남 지휘관이가 아니라하우는 다른 함선들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기운 넘치는 머핀은 또 뭐란 말인가?

 

  “여러분이쪽의 레이디께서 대화에 끼지 못해 곤란해하시는군요.”

 

  하우의 상태를 눈치챈 벨파스트가 말했다하우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 대신에 눈웃음을 보냈다.

 

  “그렇군하우는 아직 모르고 있나미안하다우리끼리만 알 이야기를 해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사과했다.

 

  “지휘관님의 머핀이 뭐죠……?”

 

  하우가 물었다그러자 일러스트리어스가 웃으며 답을 알려줬다.

 

  “지휘관님의 자지랍니다.”

 

  하우는 5초 정도 두뇌활동이 정지했다. 다시 제정신을 찾고 나서도 자신의 귀에 들어온 정보에 왜곡이 발생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일러스트리어스처럼 기품있는 우아한 여성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느 귀족 아가씨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바퀴벌레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큼이나 위화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른 함선들은 충격에 빠진 하우에겐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지휘관의 머핀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즘 사쿠라 엠파이어의 잔챙이들이 지휘관의 머핀을 또 독차지하려고 해서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특히 아카기하고 다이호가 제일 성가셔.”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말했다.

 

  “후후그래도 그쪽에서 배울 것도 많이 있답니다밧줄로 지휘관님을 묶을 때 아주 예쁜 매듭으로 묶는 방법이 있더라구요영일동맹으로 우호관계를 맺었어서 다행이랄까요.”

 

  후드가 홍차를 홀짝이면서 말했다그러자 일러스트리어스가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후드 님이 지휘관님의 머핀을 먹으러 갔을 때 저도 관전하러 가야겠네요.”

 

  “…… 관전플레이를 하고 싶으시다면 저보다는 메이드장이 지휘관님의 머핀을 먹을 때 찾아가는 편이 좋을 거예요메이드장의 먹는 방법은 굉장히…… 우아하답니다?”

 

  “과찬이십니다.”

 

  벨파스트가 고개를 숙이며 칭찬에 답했다하우는 찻잔을 들 수가 없었다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버거웠다이렇게 우아하고 교육받은 여성들이방금까지만 해도 도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여성들이 갑자기 짐승으로 변해버려 당황스러웠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든 하우를 향해 벨파스트가 말했다.

 

  “마침 오늘이 제가 지휘관님의 머핀을 먹으러 가는 날입니다일러스트리어스 님과 함께 참관해 보시겠습니까?”

 

  다른 함선들의 시선이 모두 하우에게 집중됐다하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도저히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날 밤하우는 벨파스트와 일러스트리어스의 뒤를 따라서 지휘관의 숙소에 찾아갔다지휘관 숙소 출입문의 문고리는 부서진 상태였다벨파스트가 문을 슬쩍 밀었으나문고리가 부서져 있는데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또 뭔가로 가로막으셨군요소용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는데도……귀여우셔라.”

 

  벨파스트가 씩 웃더니 문을 발로 걷어찼다우당탕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문이 열리자마자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특수부대원처럼 벨파스트와 일러스트리어스가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가까이 오지마!”

 

  지휘관은 배게 밑에서 망치를 꺼내 휘둘렀다그러나 벨파스트는 능숙한 동작으로 지휘관의 손목을 잡아 망치를 낚아챘다.

 

  “지휘관님의 머핀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녀는 지휘관의 잠옷을 찢어버렸고그대로 지휘관을 침대에 던졌다

 

  “일러스트리어스 님하우 님제가 지난주에 철혈에서 배워온 플레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러스트리어스는 어느새 촬영기기를 꺼내 모든 것을 녹화하기 시작했다하우는 벌벌 떨면서 메이드장이 머핀을 먹는 모습을 관전해야 했다지휘관은 온갖 자세로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머핀을 내주어야 했다.

 

  그녀는 전입신고를 받던 때 지휘관이 보인 행동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지휘관이 망치를 휘둘렀던 것은 그저 몸을 지키기 위한 가냘픈 몸짓일 뿐이었다원인을 알 수 없는 남성에 대한 혐오가 하우를 잘못된 인식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벨파스트의 머핀 섭취는 4시간 동안 계속됐다동이 틀 무렵지휘관의 머핀이 더는 부풀지 않게 되자 섭취가 끝났다벨파스트도 지휘관도 온몸이 땀으로 절어있었다

 

  “이 영상으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일러스트리어스가 웃는 얼굴로 촬영기기를 끄며 말했다.

 

  “하우 님도 공부가 되셨나요?”

 

  벨파스트의 물음에 하우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숙소로 간신히 돌아왔다지휘관이 이런 처참한 일을 얼마나 당해왔을지 생각해보니 측은하다 못해 두려워질 지경이었다그녀는 뜬눈으로 남은 새벽을 지새웠다.

 

  “하우 님독서토론에서 주제로 쓸 책은 정하셨나요?”

 

  다음날의 오후 티타임 시간에 일러스트리어스가 물어왔다이번 티타임 자리에는 지난번의 인원에 더해 8명 정도 되는 다른 로열 함선들이 더 있었다티타임 자리에 있는 모든 함선의 시선이 하우에게 집중됐다.

 

  “…… 아뇨아직은……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떤 이야기지?”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물음에 하우는 답했다.

 

  “남성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