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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가 아주 어렸을때의 이야기.

자전거를 타다 바퀴의 보조바퀴가 박살나서 얀순이는 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지. 


7살의 얀순이는 아직 두발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해서, 보조 바퀴 단 자전거를 타야만 했는데, 아주- 빠르게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오토바이를 피하느라 그만 전봇대에 자전거를 꼬라박은거지.


그래서 자전거의 보조바퀴가 박살났고, 엎어질 때 무릎도 다쳐서 얀순이는 갓난 애기처럼 잉잉 울고 말았어.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도, 여기는 얀순이가 살던 동네랑은 달리 조금... 분위기가 좋지 않은 동네였어.

더러운 길거리, 이상한 냄새가 나는 담벼락. 그리고 페인트로 괴상한 낙서가 덕지덕지 그려진 그 동네는 지금까지 얀순이가 보지 못한... 그런 나쁜 동네였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어떻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7살의 얀순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

혼자, 바보같이 히끅 거리기만 할 뿐, 얀순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때 얀붕이를 만난거야. 할 일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던 얀붕이는 골목길에서 누가 울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아주- 빠르게 그곳을 향해 간거야. 그리고 그 곳에는 얀순이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왜 울고 있는거야?"


"자전거 보조 바퀴가 박살났어, 이게 없으면 자전거를 못 타... 집에 가고 싶어"


"도와 줄게, 내가 자전거 타는 걸 도와줄게"


다행히 7살의 얀붕이는 혼자서 두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그런 아이였어. 그리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정의감 넘치는 꼬마 남자아이기도 했고.

얀붕이는 아빠에게 배웠을 때 처럼, 얀순이에게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지금 얀순이가 울고 있는 이 일이 전부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 쓰러져 있던 자전거를 세우고, 더러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얀순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어.


"걱정마, 내가 도와줄게"


얀순이는 위를 올려다보았어. 처음 듣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아주 다정한 목소리에 얀순이는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았지. 자기를 도와주겠다는 얀붕이의 말은 얀순이에게 있어서 굉장한 믿음과 신뢰를 주었어.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지. 

7살의 어린 아이가 말로 설명하기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낯간지럽고 부끄럽고, 가슴 어딘가가 두근두근거리는것 같은 그런 기분.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얀순이의 마음 깊은 한 곳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어.

  

"너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페달만 밟기만 해, 내가 뒤에서 잡아줄게"


"...응"


얀순이는 울음을 멈추고 얀붕이가 하라는데로 안장위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지. 균형 중심을 잃고 비틀비틀 거리는 자전거, 그러나 자전거는 계속해서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있었어


"잘 잡아야해?"


"걱정하지마, 잘 잡고 있으니까"


비틀비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자전거, 하지만 뒤에서 얀붕이가 잡아준 덕분에 자전거는 또 다시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엎어지지 않고 비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 조금씩 얀순이는 자전거 페달을 세게 밟기 시작했고, 자전거는 아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어.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빨라 질 수록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내가 쓰러지지않게 제대로 뒤를 잡아줘야 된다고 그렇게 말을 했고, 그때마다 얀붕이는 알겠다는 대답을 해주었지.


자전거는 더러운 골목길을 빠져나가 이제 드넓은 대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어, 좁은 골목길에 얀붕이의 뜀박질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어, 얀붕이가 아무리 뛰어봐야, 자전거를 타고 있는 얀순이를 붙잡는 것은 불가능해질 정도가 되었지, 그리고 그때 얀붕이는 얀순이가 옆으로 쓰러지지 않게 자전거의 안장을 붙잡은 손을 떼내었지.


"놓으면 안돼"


"걱정마, 안 놔"


물론 얀순이가 타고 있는 자전거의 속도를 도보로 따라붙는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에, 얀붕이는 안장을 붙잡은 두 손을 놓아준체 멀리서 얀순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았지. 이제는 뒤에서 사람이 붙잡지 않아도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얀순이의 자전거


"놓지마"


"계속 잡고 있어"


거짓말은 나쁘지만, 이런 거짓말은 해도 괜찮겠지? 얀붕이는 골목길을 빠져나가 넓은 대로로 나아가는 얀순이를 바라보았어, 얀순이는 보조바퀴가 없어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었거든. 착한 일을 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얀붕이의 마음에 들었어. 오늘 있었던 일을 성당의 수녀님에게 말하면 맛있는 별사탕을 먹을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 


한편, 자전거를 타고 있는 얀순이는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뒤를 붙잡고 있냐는 자신의 물음에 얀붕이가 대답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걸 알게 되었어. 하지만, 여전히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얀순이는 브레이크로 자전거를 걸어 세운 다음 뒤를 돌아보니 얀붕이는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페달 위에 발을 올리고 다시 집을 향해 앞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 얀순이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동안, 얀순이는 언젠가 얀붕이를 만나면 이 은혜를 꼭 갚겠다는 생각을 했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한다고 유치원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거든.

쭉 뻗은 대로를 올라 가면 하늘을 찌를 것 처럼 삐쭉삐쭉 솟은 거대한 빌딩이 보이는데, 그 맨 꼭대기 층이 바로 얀순이네 집이야.


미래 건설 이라고 적혀져 있는 건물의 입구에 가니, 가정부가 팔짱을 낀 체 얀순이를 아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어.


"아가씨, 회장님께서 걱정하십니다." 


"응, 미안해.."


자전거를 보관소에 맡기고 가정부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얀순이는 가정부의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 7살의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알건 다 아는 나이였는걸. 엄마는 단 한번도 얀순이를 걱정해준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얀순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엄마는.. 매일 화나 있었어, 아빠도 매일 화가 나있었고.


TV나 동화책, 인형극을 보면 엄마, 아빠, 그리고 딸이 있는 집은 언제나 웃음꽃이 피는 그런 집인데, 얀순이의 집은 그러지 못했지.

매일 고래고래 소리치고 비명 지르고,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어, 매일 매일. 아마 얀순이가 태어났을 때 부터- 어쩌면 얀순이가 태어 나기도 전부터 둘은 이미 싸우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


"나는 너에게 대체 뭐야? 왜?? 그 여자에게는 잘 해주는데 왜 나한테는 매번 그렇게 쌀쌀맞게 구는건데??? 내가 너에게 대체 뭘 잘못했는데? 나도 너 좋아해 사랑한다구, 그렇게 그 여자가 좋으면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나쁜 새끼. 나도 나 좋다는 사람 만날거야, 너같은 새끼는 필요없어"


"그래, 고맙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했고 더 이상 만나지 말자, 개같은 쌍년아"


"...어?? 가.. 가지마...정말 갈거야?"


쿵쿵- 거리는 걸음 소리와 함께 얀순이의 아빠가 얀순이와 가정부를 밀치고 집 밖을 걸어갔고, 그리고 그 뒤에 얀순이의 엄마가 바깥으로 따라 나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차는 가정부. 얀순이는 이 모든 과정을 전부 다 지켜보았지.


"아줌마, 쌍년이 뭐에요?"


"그런 건 좋지 못한 말이에요 아가씨.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말 하면 안돼요"


"그럼 아빠는 왜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건데요? 아빠는 엄마에게 그럼 안 좋은 말을 한 거네요? 왜 그런 말을 한거에요?"


7살짜리 어린 아이가 한 질문에 가정부는 입이 꾹 닫기고 말았어.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가정부의 모습, 얀순이는 개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았지. 깨진 접시, 벽면에 걸려있는 결혼 사진은 찢겨져 있었고, TV는 거실 바닥에 엎어져 있고 전자레인지는 화분에 처박히고, 토스트는 완전히 박살난 체 거실 바닥에 엎어져 있었지.


다른 집들도 이럴까? 인형극을 보면 아빠랑 엄마는 보통 사이좋게 지내는데, 왜 우리 집은 이런거지?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7살의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이 세상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로 가득했지.

그날 밤 얀순이는 침대에 누워서 잠을 들고 싶었지만,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어.


캄캄한 방에 얀순이는 두꺼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려고 해보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어.

박살난 기계, 그리고 엄마, 아빠가 소리지르며 화를 내는 그 모습. 엄마가 아빠의 뺨을 때리고 아빠도 엄마의 뺨을 때리는 그 장면,


아빠의 입술이 터지고, 엄마의 코에는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하는 그 모습이 얀순이의 머리 속에 깊게 각인된거지.


어떻게 잠을 자려고 하면, 비디오로 녹화한것처럼 평소에 엄마와 아빠가 싸우던 그 장면이 그대로 머리 속에 재생되니,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있어야지.


그 날 얀순이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행복해지고 싶어.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 안 싸웠으면 좋겠고, 또 집에 있는 물건들이 멀쩡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빠가 엄마를 안 때리고, 또 엄마는 아빠에게 나쁜 말을 안 쓰고, 어린이 인형극에서 본 여우 가족처럼 행복한 가족이 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지.


별님도 깊게 잠든 밤. 얀순이는 혼자 머리 속으로 엄마와 아빠가 웃고 있고 그 사이에 자신이 엄마와 아빠의 손을 붙잡고 웃으면서 어디론가 길을 걷는 그런 장면을 머리 속에서 떠올렸어. 


충분히 언젠가는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냐하면 엄마랑 아빠는 훌룡한 사람이니까,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매일 찾아와서 90도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옆에서 가정부가 와서 엄마랑, 아빠가 아주 높은 사람이라서 저렇게 인사를 하는거에요. 라고 설명을 해주고는 했으니까.


훌룡한 사람, 대단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그 숫자가 적다는 것을 어린 얀순이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대단한 사람은 숫자가 적은 대신에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여러 힘든 일들을 가뿐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얀순이는 알고 있었지.


그러니 인형극에 나오는 여우네 가족들도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사는데 대단한 사람이 두명이나 있는 우리 집 역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쯤은 7살의 어린 얀순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


...


내일도 자전거를 타야지.


정말 뜬금없지만, 오늘 두발 자전거를 탄 기억이 머리 속에 떠올랐어.

평소처럼 집에 있으면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모습만 보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바깥에는 얀순이가 모르는 신기한 것으로 가득했고, 정신없이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골목길로 들어간데다, 설상가상으로 자전거의 보조 바퀴가 부러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얀순이가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두발 자전거를 배우게 된 결정적인 도움을 준 그 아이(얀붕)에게 은혜를 갚기는 해야하는데,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가서 얀붕이에게 은혜를 갚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오늘 그때 그 골목에서 계속 기다리면 나오지 않을까?

... 얀순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도 명쾌한 답변이었어, 몇분, 아니 몇시간동안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가방에 선물로 줄 초콜릿하고 과자랑 음료수도 넣은 뒤에 그렇게 찾아 가야지.


... 하지만 주말에 얀순이가 얀붕이를 찾아가는 날은 오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