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얀붕이와 얀순이는

평범한 부부였었다.


얀붕이는 돈을 벌어오고

얀순이는 집안일을 하고


지방에 집 하나, 도색 살짝 벗겨진 녹색 마티즈 하나 갖추고

자식은 없고.


다행히도 얀붕이가 어느 정도 능력은 있었고

얀순이도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있어서


외벌이로도, 자식은 없어서

가정은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나왔다.


얀순이는 사랑받던 고명딸이었다. 오빠는 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고

오빠 둘은 그 누구도 아버지의 병원비를 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첫째 오빠는 말했다. 사업을 해야 해서, 돈이 부족하다고.

둘째 오빠도 말했다. 지금 자신도 돈이 쪼들리는 형편이라고.


아버지는 결국, 막내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얀순이는 '가족을 위해서' 라는 이름 하에

얀붕이와 함께 저축해온 돈을 일부 털었다.


처음에 얀붕이는 화를 냈다.

하지만 납득했다. 부모가 아프다는데.



얀순이의 아버지는 딸에게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귀하게 키워놓은 아들자식들이 하나같이 배은망덕 해서.

지금 자기 혼자서만 네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고 있다고.



처음엔 얀붕이도 납득했다. 아프다는데, 병원비라는데, 아내의 가족인데.

그리고 점점

얀붕이의 용돈조차 줄여가며

얀순이의 가족에게 돈을 부치는 꼴을 보며


결국 얀붕이는 폭발했다.


"여보, 나는 당신이랑 결혼했지, 당신 집안이랑 결혼한 게 아니야. 왜 맨날 나만 도와야 해? 당신 오빠들은?"


얀순이는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여보... 미안해.. 어머니가 아픈게.. 우리 오빠들도 다 사정이 있고..."


"이대로 가다간 한도 끝도 없어. 선택해. 나랑 연을 끊던지, 당신 친정이랑 연을 끊던지. 내가 우리 가족 때문에 당신 속 썩인 적 없었잖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얀순이에게 부담이 될까 봐, 시댁에서도 일부러 잘 안 찾아왔었고

시어머니건 시아버지건 따로 아들만 보고, 며느리는 인사만 하고 보냈다. 명절 때만 좀 오래 보고.


하지만, 그런 얀붕이의 노력과는 달리, 얀순이는 친정이 자신의 결혼 생활에 개입하게 되었고

얀붕이는 결국 폭발해버렸다.


"선택하라고. 난 진짜 이대로는 못 살아."


그리고 얀순이는

힘들 때 기댈 것은 가족밖에 없다 생각해서


"미안해.. 난 가족을 버릴 순 없어..."


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내의 재산 기여가 비록 외벌이일지라도 인정되었고

얀붕이도 아내에게 그렇게까지 모질게 대하지는 못 해서


집과 차는 팔아버리고, 재산의 절반을 서로 분할해 헤어졌다.




얀순이는

집과 차를 판 돈 절반을 가지고

어머니의 병실로 갔다.


어머니의 병실엔, 누워있는 어머니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또 메세지가 왔다.


'네 어머니가 아직 아프다는구나. 돈 좀 더 보내줄 수 있겠니?'


설마 했다.

아니라 믿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친정집에서는

아버지가 모르는 여자와 껴안고 있었다.



첫째 오빠는 또 사업을 말아먹었다 했다.

빚은 점점 쌓여갔다.


둘째 오빠는 도박에 빠져 살았다.

빚은 점점 쌓여갔다.


얀순이의 어머니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은 채로

그저 누워만 있었다.




얀순이는 그저

어머니의 병상 앞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어머니가 영면에 들어도

상주 자리를 자신이 지켜도

오빠 둘과 아버지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어머니의 영면 사실을 알리지 않아보았다.

아버지는 얀순이에게 '어머니가 이번엔 허리가 다쳤으니 몇백을 더 보내달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오빠 둘은 관심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어머니의 영면 사실을 알려보았다.

아버지는 '곧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오지 않았고

오빠 둘은 유산을 찾으려고 했다.



대체 왜

자신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남편과의 행복을 저버리고 가족에게 왔는데

이런 꼴을 당해야 할까


얀순이는 장례식장에서 미친듯이 흐느꼈고

그럼에도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직 빚쟁이들만이 가득 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릴 뿐.


나중에, 조의금 명단에 얀붕이 이름 하나만이 보였을 뿐.



나머지 사채업자가 찾아왔다.


절반은 첫째 오빠를 찾아왔다. 사업에 실패하고 진 빚 때문에

절반은 둘쨰 오빠를 찾아왔다. 도박에 꼴아박아 진 빚 때문에


얀순이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며칠 뒤

얀순이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돌았다.

상간녀와 같이, 술에 농약을 타서 마셨다고 했고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했다'는 글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보험금은 자식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얀순이의 형제 둘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돌았다.

빚문서를 가득 손에 쥔 채, 술에 농약을 타서 마셨다고 했고

유서에는 '빚을 못 이기겠다'는 글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보험금은 남은 혈육인 얀순이에게 갔다.

빚도 함께.




얀순이는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채업자에게

보험금을 통해 얻은 돈으로 빚을 갚았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찾아왔던 사채업자들 중

제일 악독한 사람 한 명만 남겼다.




"딴 사람 빚은 다 갚았던데, 내가 우스워 보이나?"


사채업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튀어나온 배, 온 몸에 새겨진 문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워보인다기보다는 야비해보이는 미소.


얀순이도 마주서서 웃었다.


"아뇨, 돈은 가져왔는데요, 하나 부탁 좀 하려고요."


"응? 무슨 부탁? 난 돈 안 주면 일 안 하는데?"


금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사채업자가 비웃자


얀순이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의뢰라고 해 두죠. 원금과 이자는 여기 있어요. 여기서 일하게 해 줘요. 나도, 돈 많이 벌어야 하니까."


"의뢰? 의뢰라면... 돈을 내셔야지?"


"뭐, 내가 여기서 일을 제대로 배웠다면, 그 때 내죠. 나 써 봐요. 일 제대로 못 하면, 내쫓아도 되고."


얀순이는 결심했다.

좀 더 표독스러워지기로.



얀순이의 첫 목표는

2년동안 이자조차 갚지 않던 히키코모리였다.


혹시 몰라서, 얀순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보려고

사채업자는 뒤를 쫓았다.



"어이, 도련님. 돈 3억 7천만을 갚으셔야 겠는데?"


돈을 받으러 온 사람이

여리여리한 여자라서 그랬을까


능글맞게 웃던 배불뚝이 채무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아아아~ 뭐, 그쪽이 몸 좀 써주면, 내가 갚을수도 있고..."


얀순이도 마주보며 웃었다.

서로 웃음이 겹치고 나서

얀순이는 내뱉었다.


"그럼 뭐, 몸 좀 쓰지."


그리고

안주머니에 숨겨온 유리병을 꺼내


배불뚝이의 다리에 부어버렸다.


황산이었다.



"뭐야! 아파! 으아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살려줘!"


"치료비가 대충 천 정도 나올거야. 그러니까, 그 천은 갚은 셈 칠게. 3억 6천, 다음 주까지 준비해놔. 준비 안 하면 뭐... 서른 여섯 번 정도 똑같은 꼴 당할 각오 하고."


비명을 지르는 채무자는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빚 진게 죄냐! 야! 이게 황산 끼얹을 정도의 죄냐고! 이 개새끼들..."


얀순이는 미소를 잃지 않고 응대했다.


"황산 끼얹을 죄 맞지. 누구는 몇천 되는 빚 때문에 남편도 잃었는데."




다음 채무자는

클럽에 중독된 남자였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캐딜락이랑 뭐 이것저것 사느라 2억 정도 빚 진 건 알겠는데, 그래도 좀 봐 주면 안 될까요?"


남자의 외모는 빛이 난다고 해도 모자랐다.

누군가는 연예인을 권유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생활이 더러워서 거절했다고 했다.

누군가는 모델을 권유했다고 했다. 하지만, 태도가 불량해서 거절했다고 했다.


얀순이는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면, 당신이 꼬신 여자들에게 돈 좀 빌려봐요."


"아~ 그러고 싶은데, 그런 여자들은 별 거 없어서. 오히려 당신이 좀 괜찮아 보이는데?"


채무자는 얀순이의 허리에 손을 둘렀고

얀순이는 씨익 웃으며 채무자를 바닥에 엎어쳐버렸다.


"미안해요. 난 유부녀라서."


"... 뭐야... 이게 뭐 하는..."


곧이어 얀순이는 품에 숨긴 칼을 꺼냈다.


"옷 다 벗으시지. 벗는 비용은 내가 내 줄 테니까."


채무자가 공포에 순간 질린 사이, 얀순이는 칼로 채무자의 옷을 찢고, 민증과 채무자의 알몸을 번갈아가며 찍었다.


"뭐, 댁 몸뚱아리 퍼트리고 싶다면 안 갚아도 되고. 2천 정도는 내가 합의금으로 내 줄 수 있는데."




사채업자는 얀순이가 감당이 되지 않다고 느꼈다.


처음 빚을 받으러 갈 때는 여리여리하고 어머니 죽음에 흐느끼기만 하는 여자였는데

이리 악독한 여자일 줄이야!



얀순이는 차를 샀다.


중고차 매장을 뒤지고 뒤져서

얀붕이와 자신이 같이 타고 다녔던

칠이 살짝 벗겨진 녹색 마티즈를 구입해서

다시 자신이 운전하고 다녔다.




"어이, 얀순씨. 내 능력으론 댁 감당 못 할 것 같아."


사채업자는 얀순이에게 고했다.


처음엔 좋았다.

황산과 칼을 지니고 다니는 미친 사채업자 용역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돈을 좀 더 빨리 갚았다.


경찰 무전을 도청하는 렉카로부터

'어이, 이러저러한 여자 못 봤어? 그 여자, 요즘 경찰이 주시한다던데' 하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좋았다.


사채업은 대중의 미움을 받는다.

이대로 언론에 사채업이 또 노출되고, 대중의 지탄을 받는다면, 또 이자율을 깎을 것이다.


장사에 방해되는 것은 얼른 치우기 위해, 사채업자는 얀순이에게 말했다.


"어이, 아가씨. 내가 댁 잘 써먹고 내쫓기만 하는 건 미안하니까, 대신 다른 일 소개시켜줄게. 댁이라면 이 일 잘 할 것 같거든."


"네, 사장님. 덕분에 돈도 잘 벌고 일도 잘 배웠습니다. 어떤 일이에요?"


"귀신 헬리콥터 거래."


진지하게 얘기하는 사채업자의 말에 얀순이는 순간 웃을 뻔했다.

헬리콥터를 이런 사채 조직이? 그것도 귀신 들린 것을? 이런 현대 시대에?


"풉. 헬리콥터요?"


"아니, 헬리콥터가 아니고, 귀신 헬리콥터."


곧이어

사채업자가 소개시켜준 사업체 여럿을 보고

얀순이는 그 중 한 곳을 골랐다.





강원랜드 입구 주차장에서

칠이 살짝 벗겨진 녹색 마티즈 안에서

얀순이는 고객을 접대하고 있었다.


"네 사장님. 지금 빌려드린 돈 다 잃으셔도, 오시면 또 빌려드릴게요. 그러니까, 놀다 오세요."


"오오오, 이런 아가씨가 말한다면 믿을 만 하지. 좋아, 이번엔 꼭 딴다!"


말라 비틀어진, 하잘것 없는 남자에게

사장님이라 부르며 얀순이는 존대를 했고


남자는 여섯 시간 정도 후에

빈털털이가 되어 다시 왔다.


"돈... 이번엔 진짜 딸 수 있거든?"


"어머, 사장님. 당연히 더 꿔드릴 수 있죠. 그런데, 지금은 돈이 아직 입금이 안 되어서, 한 잠 주무셔야 해요. 잠깐 이 꿀물 좀 마시고 주무실래요?"


"오오, 서비스 좋네! 아가씨. 내가, 따면 진짜 꼭 줄게! 내가 꼭!"


그렇게 말라 비틀어진 '사장님'은 수면제를 탄 꿀물을 한 잔 마시고 푹 잠들었고

곧 바깥에 기다리던 남자들이 '사장님'의 몸을 들어올렸다.


"이야, 얀순씨 영업 잘 하시네."


"뭘요. 다음 사람은 누구랬죠?"


귀신 헬리콥터, 아니, 장기매매 영업은 순조로웠다.






얀순이는 이번엔 집을 구하려고 했다.

얀붕이와의 추억이 있던 그 집을 원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한때, 자신이 얀붕이와 같이 살던 그 집이었는데

이젠 그 집 초인종을 누르는 신세가 되었다는 그 사실이 비참해서

살짝 눈물이 고인 채로


자신이 눈물을 흘릴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채로.



그 집을 샀던 건 신혼부부였다.


냉장고, 장롱, 모든 가구들이 다 그대로 있었다.

돈 없는 신혼부부라, '가구 포함해서 집을 할부로 사겠다. 가구는 중고 가격으로' 라고 넘겼던 것이 다시 어렴풋이 기억났다.


"저, 누구세요?"


남자가 물었다.


"아, 저..."


얀순이는 순간, 말을 잃고 방황했고

여자가 말했다.


"아, 전 집주인분! 맞으시죠? 가구 다 중고가로 넘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감사를 표하는 여자 앞에서

그제서야 얀순이가 누구인지 알아챈 남자 앞에서

서로 행복하게 끌어안고 있는 부부를 보면서


얀순이는 말을 잃었다.


만약

그 답 없는 가족을 일찍 끊어냈다면

나도 얀붕이와 이런 가족을 꾸렸을까?


집 안에선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고


"어머, 죄송해요, 아기가 요즘 많이 울어서..."


라는 말을 남기고 들어간 여자를 보며


만일

조금 더 일찍 우리 가족의 실체를 알아챘다면

내가 얀붕이의 저축금액을 친정에 가져다 바치지 않았다면

그랬으면 나도 이런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까?


후회와 절망으로 가득찬 얀순이에게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 그런데, 죄송한데, 무슨 일이신지..."


"집, 다시 살게요. 당신들이 샀던 가격의 두 배 가격으로. 가구까지 다시 다!"




얀순이의 일상은 다시 변화했다.

신혼집이었던 집에

신혼때 끌던 칠 벗겨진 녹색 마티즈를 끌고

이제 다시 채무자들을 찾아다니고 귀신 헬리콥터 장사를 했다.


돈은 잘 모였다.

도박이건, 답 없는 사업이건, 사이비 종교건 채무자는 늘 넘쳐났고

얀순이는 그 덕에 돈을 갈퀴로 쓸어모을 수 있었다.


뭐, 그 사람들의 목숨은 별 거 아니었다.

자신은 몇천 때문에 남편을 떠내보내야 했는데

몇 억 정도에 목숨은 싼 값이니까.



차도 집도 구해서

얀순이는 이제 얀붕이를 찾아다녔다.


행복했던 신혼 시절의 마지막 퍼즐이 필요해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려면

그 시절에 있던 모든 것을 다시 되찾아와야 하니까.




얀붕이는 다니던 회사에 그대로 다니고 있었다.

직급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올랐다고 했다.

돈은 더 벌고 있었다.


얀순이가 얀붕이를 발견했을 때

얀붕이는 다른 여자와 단둘이서 영화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상큼한 여자였다. 젊었고, 그녀 주변의 세상은 다 아름다웠다.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월등히 나아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순이는 포기하지 못했다.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자신 인생에서 제일 행복하던, 결혼 생활을 되찾아오고 싶으니까.



여자를 스토킹했고

우연인 척 마주친 후

커피 한잔 하자는 명목으로 카페로 불러냈다.


"... 뭐에요. 당신, 누구에요?"


여자는 얀순이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처음 보는 음침한 여자가 자기에게 다가온다는게 꺼림칙해서.


"저요? 저는 얀붕이 아내에요. 아니아니, 정확히는... 전 아내죠."


얀붕이의 평판을 떨어트릴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의 자기 평판이 자부심인 남자였다. 그것마저 망치면 얀붕이는 자기에게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집에 월급을 모조리 가져다 바치고, 부부 명의로 개설된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얀붕이의 행복을 깨버릴 순 없었다. 그래야 얀붕이가 자신에게 올 테니까.


"... 전 아내요? 그런 분이 제게 무슨 일..."


"혹시, 얀붕씨랑 사귀고 있다면, 헤어져주세요. 돈은 드릴게요. 많이 드릴게요. 저 돈 많아요. 혹시, 얀붕이가 관심 가진 다른 여자들도 다 말해주세요. 다 헤어져달라고 말할거에요. 얀붕이는, 걔는 제 거에요..."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깨닫고 있었다.


얀붕이와 같이 신혼여행이랍시고 해운대건 강원도건 떠날 때

범퍼가 찌그러진 것 말고는 별 일 없던 녹색 마티즈가

중고차 딜러에게 다시 살 때는 침수사고까지 벌어져 있던 것을 보고서.


얀붕이와 같이 신혼생활을 즐기던 집에는

아직 둘이 같이 함께 쓰던 가구들은 남아있지만

신혼부부의 흔적과,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낙서가 남아 있던 것을 보고서.


얀붕이 자신에게도

아직 자신과 함께한 추억은 남아있을지라도

새로운 여자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큼은


이미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순이는 포기할 수 없었다.



"... 천만원. 제 동생 학자금 대출이 딱 그 정도 남았거든요. 그것만 대주면, 헤어질게요. 당신 얘기 안 하고."


여자는 질렸다는 듯이 얘기했다. 음침한 여자가 자신을 뒤쫓는다는 느낌도 싫었고, 얀붕이가 그렇게까지 소중하다는 느낌도 아직 들기 전인, 썸 타는 관계였을 뿐이니까.


"다른 여자는... 없죠?"


"없어요. 그 선배님, 워낙 우울증 걸린 것마냥 일 술 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얀순이는 그 여자에게

5천을 부쳤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며.




장기매매는 계속되었다.

일본 야쿠자로부터, 부산으로 수입된 마약 때문에 마약중독자가 넘쳐났고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 바깥의 재물을 탐냈으며

모두가 외국 여기저기 흩어져서 새로운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얀순이를 먼저 보자고 했던 것은 얀붕이였다.


"너 뭐야. 왜 갑자기 남의 사생활에 간섭질이야!"


얀붕이는

갑자기 헤어지자고 문자가 온 핸드폰을 얀순이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너, 이거 네가 그랬지! 왜 갑자기 내 인생에 지랄이야!"


"여보... 그게..."


"여보라고 하지 마.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핸드폰 사진첩을 넘겨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강원랜드 배경으로 얀순이가 남자를 유혹해서 차로 끌어들이는 장면이 가득했다.


"너, 그 동안 뭐 하고 지낸건지는 내가 간섭할 일 아닌데, 이따위 짓거리 하고도 내가 당신 받아줄 거 같아?"


"..."


"그냥 남자가 필요한 거겠지! 딱 봐도 보이는데, 왜 나한테 오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이 사진, 설명해봐. 납득가게 설명할 수 있어?"


장기매매와 성매매 중, 어떤 것이 얀붕이에게 받아들여질까 생각한 얀순이는

제 3의 길을 택했다.


부산에서 마약중독자에게 압수했던 헤로인을 품 속에서 꺼내서, 남편에게 주사해버렸다.




마약은 충분했다.

대부분의 '귀신 헬리콥터 고객'은 마약 중독자였고

그들의 소지품엔 항상 마지막 1회분의 마약이 있었다.


얀순이에겐 이제


신혼 때, 얀붕이과 같이 타고 다니던 차가 차고에 있었고

신혼 때, 얀붕이와 같이 살고 있던 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신혼 때, 얀붕이와 같이 겹친 욕망을 다시 겹쳐내어 살며


다시 그 행복을 재현하려 했다.


그 행복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것을 알면서도

차는 침수 피해 때문에 기능이 정지되었어도

집은 전에 살던 부부의 흔적이 남아있었어도

남편 몸에 마약 주사를 계속해 주사해야해도


끊임없이 그 때의 행복을 찾아서

얀순이는 다시 얀붕이를 탐했다.



p.s. 귀신 헬리콥터 도시전설은

https://namu.wiki/w/%EA%B7%80%EC%8B%A0%20%ED%97%AC%EB%A6%AC%EC%BD%A5%ED%84%B0

이거 참조하면 됨.


ㅅㅂ 몬챈에는 성욕 풀어내고 얀챈에는 욕망 풀어내니까 내 자신이 이중인격 같아서 ㅈ같다 엌ㅋㅋㅋ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