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오오…”


금방이라도 김이 피어오를 것 같은, 제철 사과처럼 시뻘겋게 물든 뺨. 책에 집어넣고 있기라도 하는 듯 바싹 붙인 얼굴.


대체 무엇을 읽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마침 저 멀리에서 책을 잔뜩 든 검은 정장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 롤랑씨…”


“오, 수고가 많아~ 티페리트는 안에 있지?”


책을 들어주려는 손길을 괜찮다고 사양하고는 롤랑은 책을 든 채 티페리트의 방으로 들어갔다.


“티페리트!”


“꺄악?!”


티페리트는 화들짝 놀라더니 허겁지겁 들고 있던 뭔가를 숨기며 뒤를 돌아봤다. 롤랑은 귀신이라도 본 듯 한 표정의 티페리트에게 말했다.


“뭐야. 왜 그리 놀라고 그래?”


“아,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왜 온 거야!”


“보면 몰라? 책을 가지고 왔지.”


“거기 두고 빨리 나가!”


“예민하구만…”


롤랑은 책을 적당한 구석에 놔두고는 티페리트를 뒤로 한 채 나와 아직 일이 남은 듯 총류의 층으로 돌아갔다. 한편 티페리트는 롤랑이 가자마자 다시 아까의 그것을 꺼내, 다시 얼굴을 파묻고 읽었다.


대체 무엇을 읽고 있는 걸까.






자연과학 층 지정사서 티페리트가 이상행동을 시작한 건 며칠 전부터였다.


“잠깐 총류의 층에 다녀올게!”


그런 말을 하며, 티페리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총류의 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책을 정리하던 우리들은 대답도 듣지 않고 뛰어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롤랑씨가 몰래 행운의 편지 같은 거라도 끼워넣는 장난을 쳤나 하며 킥킥거렸다. 


하지만 티페리트는 다음날에 또다시 총류의 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마치 미리 준비한 말을 하듯이 어제와 완전히 같은 말을 남기고서.


“잠깐 총류의 층에 다녀올게!”


두번째 날에도, 우리는 별 생각 없이 그 자그마한 뒷모습을 한번 보고 일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롤랑씨가 책을 덜 갖다준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하지만.


“잠깐 총류의 층에 다녀올게!”


“잠깐 총류의 층에 다녀올게!”


“잠깐 총류의 층에...!”


“잠깐...”


그 횟수가 너무 많았다. 거의 매일, 가끔은 하루 걸러, 티페리트는 후다닥 총류의 층에 뛰어올라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자 우리들 뿐만 아니라 총류의 층 사서들 또한 이상한 걸 느꼈는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상한 소문이 퍼진 건 당연한 수순이였다.


누군가는 롤랑이 최근 일을 아주 대충 하여 매일같이 티페리트가 올라가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가능성이 너무 낮아 기각됐다.


다른 누군가는 롤랑과 티페리트가 누군가에게 비밀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면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사서들 또한 불렀지 않았겠냐는 의견에 이 걱정은 풀렸다.


어느 누군가는 롤랑과 티페리트가 눈이 맞아 매일같이 남몰래 밀회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킥킥거렸다. 이름이 잘 기억 안 나는 그 놈에게는 불행한 일이였겠지만, 마침 지나가던 롤랑씨를 포함한 십수 명의 사서들이 그 놈을 넘어뜨리고 짓밟는 것으로 무수한 반대 의견을 표해주었다.


의사표현이 끝나고, 마침 온 롤랑씨에게 직접 물어보자는 합의 하에 티페리트 님이 총류의 층에서 대체 뭘 하냐고 물었지만 뜻밖에도 롤랑씨 또한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책더미를 뒤적거리더니 가끔 몇 권을 빼고 후다닥 뛰어내려가긴 했지. 책이라면 내가 정리해서 가져다주는데 대체 뭘 하는지 원…”


책. 지겹도록 보는 책을 찾아 티페리트는 며칠 동안 총류의 층에, 그것도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는 듯 혼자 뛰어올라갔다 온 것이다. 대체 왜?


며칠에 걸쳐 몰래 티페리트를 관찰해본 결과 알아낸 것은 두가지.


하나는, 읽는 동안 티페리트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터무니없는 집중력으로 그것을 읽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상태에서 누가 부르면 화들짝 놀라며 당황한다는 것.


뭘 읽고 있는 건지 정말로 신경쓰인다. 그때 눈치가 빠르지만 입이 가벼운 동료가 농담처럼 말했다.


“야한 거라도 읽는거 아냐?”


순간 모여있던 모두가 잠깐 그 말이 가져온 충격에 멈춰섰다. 이걸 접대할 때도 재현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총류의 층. 모든 책이 분류 없이 쌓인 곳. 그렇다면 그 중에 한두개쯤 야한 책이 섞인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 책을 찾는다면 혼자 다녀온 것도 말이 된다. 하지만.


“아니… 그게 말이 돼?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잖아?”


“...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지정사서들 중 유일한 어린아이라는 독특한 칭호를 가진 티페리트는 그 말대로 어린아이. 한창 그런 것에 호기심이 많아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다면…


“그… 모르는 척 해드려야겠지?”


“그렇지 않을까?”


“그게 들키는 건 아무래도 좀…”


셋의 말에 우리들은 끄덕이며 이 일은 그낭 덮기로 결정되려는 차에, 동료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근데, 들키면 어떻게 반응하실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했다. 몹시 궁금했다. 목숨의 위협이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 탓에 자극이 부족한 도서관 생활에 재밌어보이는 일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였다.


우리는 욕망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후우…"


"고생했어요!"


"우리 지정사서님 멋져~"


여느때처럼 접대를 마무리하고, 티페리트는 먼저 나와 기다리는 사서들의 환대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티페리트는 아직 몸에 뭍은 피조차 제대로 닦지 못했건만, 어느틈엔가 보조사서들은 시 협회 복장이 맘에 들었는지 입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사서복으로 갈아입은 채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티페리트가 담당하는 자연과학의 층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사서들이 먼저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다. 죽는 순간에는 무섭고 아프더라도, 무대에서 내려와 다시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먼저 퇴근하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제일 으뜸이여야 할 지정사서가 제일 늦게까지 고생한다는 뜻도 된다.


티페리트는 그것에 가끔씩 불평하기는 했어도, 익숙한 일이였던 만큼 보조사서들을 쏘아봐주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후다닥 책상으로 달려갔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상기되는 얼굴, 그에 반해 몇 번이나 반복한 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티페리트는 책장 사이의 살짝 벌어진 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으… 자꾸 읽으면 안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안 된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자신은 안 해야 된다고 말했다고 변명하는 듯한 말을 뱉으며, 티페리트는 이 사이에 숨겨둔 비밀스러운 책을 집고 한창 독서에 열중…


"어?"


할 예정이였지만, 책장 사이에서 잡히는 건 허공뿐이였다. 당황한 티페리트가 몇 번이나 손을 휘둘렀지만, 허우적거리는 손은 공기만을 붙잡았다. 티페리트는 이제는 다른 이유로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어, 없어! 어디 간 거야!"







"빼냈냐?"


"당연히."


"성능 확실하구만."


시 협회 복장은 움직이기 편하고 장식도 없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만 입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전투가 끝나고, 시 협회 복장을 입은 사서는 시 협회 특유의 날쌘 몸놀림으로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티페리트의 방으로 들어가, 접대가 끝나기 전에 티페리트가 고이 숨겨둔 책을 찾아 빠져나오는 고된 작업에 성공했다.


한편 티페리트의 방 문이 벌컥 열리고, 짜증나보이는 표정의 티페리트가 튀어나왔다. 티페리트는 우리들을 보더니 외쳤다.


"없어졌어!"


우리들은 있는 힘껏 태연을 가장하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뭐가요?"


"내 책!"


"저런! 같이 찾아드릴게요. 어떤 책인데요?"


"윽…!"


티페리트가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그게 중요해? 내 책이 없어졌다니까!"


"그러니까 어떤 책인지 알아야 도와드리죠!"


얼굴에 철판을 깐 뻔뻔한 동료 중 하나가 태연하게 눈썹 하나도 떨지 않고 그런 말을 했다. 한편 그럴수록 티페리트의 표정이 썩어들어갔고, 우리들은 웃음을 참느라 죽을 맛이였다.


"윽… 으으…"


티페리트는 잠깐동안 말이 되지 못한 분노를 표출하고는,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나갔다. 티페리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접대때도 안 구르던 바닥을 구르며 꺽꺽거린 후, 시 협회 책장을 입은 동료는 아직도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일어났다.


"갖다놓고 올게."


"어디 두게?"


"원래 자리에 두면 티나니까, 책상 위에 안 보이게 올려두려고."


"철저하구만~"







한 30분쯤 지났을까, 다급히 문학의 층 사서들 중 한명이 뛰어올라오더니 물었다.


"야! 티페리트님 방이 어디야?"


"응? 왜?"


"그게,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가 지정사서들이 읽는 책인데, 내가 모르고 티페리트님 책을 빌리는걸 깜빡했어!"


"뭐, 저기. 지금 없으니까 책상 위에 아무거나 가져가면 될걸?"


그 사서는 고맙다고 인사하더니 티페리트의 방으로 들어가, 책 한 권을 집어들고 후다닥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몇분 후.


"...야."


"왜?"


"쟤 뭐 가져가는지 본 사람?"


"..."


아무도 없었다. 불안해진 한 명이 슬쩍 티페리트의 방에 들어갔다. 잠시 동안 피를 말리는 기다림 후, 그 녀석은 빈 손으로 나와서는 말했다.


"뛰어."


뛰기로 했다.





"이게 티페리트가 요즘 읽는다는 책이구나?"


"네,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걸로 골라왔으니까 아마 맞을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서는 호드에게 책을 건넸고, 호드 또한 웃으며 받아들었다.


"티페리트는 지금도 약간 서먹서먹하니까… 뭘 읽을지 기대되네."


"비나님처럼 어려운 걸 읽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철학의 층 지정사서 비나는 평소 말투도 그렇고, 읽는 책도 그렇고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책을 읽고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티페리트는 좋은 말로 순수하고 나쁜 말로 미성숙한 어린아이. 그러니만큼 제법 이해하기 쉬운 것을 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모두의 기대 속에서 호드는 미소지으며 책을 살짝 펼쳤다. 그리고 동시에 얼굴이 화아악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앗! 그…"


다른 사서 한 명이 호기심에 호드의 손에서 책을 가져가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자연과학의 층 사서들이 단체로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왔다.


"스톱!! 스톱!! 아!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


"티페리트님의 책은 어디냐!"


그리고 호드와 자연과학의 층 사서들의 눈이 마주쳤고, 둘 모두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호드는 불안한 침묵을 깨려는 듯 책을 든 반대편 손으로 책을 가리키더니 물었다.


"그… 이게 티페리트의…?"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에는 뛰어들어오면서 한 말, 자연과학의 층 사서들이 단체로 뛰어내려온다는 상황, 그리고 맨 뒤에 서 있던 티페리트의 존재가 대신 대답했다.


"헉? 티페리트님! 여긴 왜?"


"그야 너희들이 뛰어가니까 뭔가 싶어서 왔지! 그보다 내 책이라니 대체…"


티페리트 또한 마찬가지로 호드가 든 책을 봤고, 호드에게 질세라 얼굴이 화아악 달아올랐다. 


"그, 그, 그건!"


티페리트는 놀라서는 호드의 손에서 책을 뺏어들어 등 뒤로 감췄다. 하지만 그 행동은 역설적으로 그 책의 주인이 티페리트라는 걸 명확히 했다.


책을 거의 건네주다시피 한 호드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라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게… 그…”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그, 티페리트는…"


"말하지 말라니까!"


하지만 티페리트의 기대를 배신한 호드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바로 아래의 사회과학의 층에까지 들릴 기세로 외쳤다.


"티, 티페리트는 아직 어리니까 야한 건 안돼!!"






"티페리트..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와봐. 응?"


자연과학의 층. 호드는 벌써 3일째 굳게 닫힌 티페리트의 방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3일째였다.


"이야, 말 한마디로 티페리트의 역린 두 개를 한번에 건드리시다니."


"역시 호드님이야. 언제나 좋은 의도로 다 때려부수시지."


"인성 어디 안 가죠?"






티페도글 쓰려했는데 뒤틀려서 이상한거나옴




살려왔다 티페는 못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