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에게 칵테일을 대접하란...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말대로야."


은빛 단발의 창백한 사서가 샴페인을 털어넣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이성으로는 이해했지만 본능적으로는 꺼려하는 듯한 기묘한 행색이었다.


샴페인의 잔이 텅 비자, 눈치빠르게 새로운 잔을 채운 후드를 쓴 바텐더가 말을 이었다.


"어째서입니까? 거부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유가 궁금해서요."


"손님을 단순히 죽이는 걸로는 질 좋은 책을 얻을 수 없어. 손님과 사서의 감정이 고조되고 끓어올라야 좋은 정보들로 꽉찬 책을 얻을 수 있지. 그리고 알코올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쉽게 고조시킬 수 있는 물건이고."


"칵테일 정도로 취하려면 꽤 많이 마셔야 합니다만."


"만취상태를 원하는 게 아니야. 적당히 알코올이 올라오면 그걸로 충분해. 나머지는 사서들이 그들과 싸우면서 알아서 감정을 고조시켜 줄거야.....뭐, 개인적으로는 이 좋은 바에 다른 이들을 초대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아, 그런데 샴페인이 들어가는 건 만들지 마."


"예? 뭔가 과학적인 이유라도 있나요?"


"샴페인은 다 내거야."


".......아, 네."



*



"....그게 우리한테 칵테일을 주는 이유라고?"


"관장님께서는 동시에 알코올에 취한 상태라면 고통을 덜 느낄 테니, 손님들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그래도 뭐.....좀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술을 마시라니 팍 깨는데."


이번에 들어온 도서관의 손님 중 한 명, 어두운 색 피부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피트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얼굴을 찌뿌렸다.


"야, 피트. 그래도 우리가 칵테일을 마셔볼 기회가 어디 있겠냐? 죽으면 책이 된다는 게 무섭긴 해도, 이런 술을 공짜로 준다면 몇 번이든 오고 싶을 정도인데."


똑같이 도서관의 손님인 망치가 피트의 어깨를 잡으며 진정시키는 듯 두드렸다. 피트 또한 말은 거칠었지만 칵테일이라는 사치품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그리 꺼려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정말 돈은 필요 없는거야?"


마지막 손님이자 유일한 여성인 레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텐더를 노려보았다.


"물론입니다. 만족스러운 양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공하는 모든 술들은 전부 무료입니다."


"...그거면 됬어. 피트, 망치. 너희 칵테일은 잘 모르지?"


"으, 응? 뭐 그렇지. 우리가 이런 걸 알 리가 없잖아. 피트 너는?"


"나도 그래."


"그럼 내가 주문할게. 여기 애비에이션 3잔 줘."


"바로 만들겠습니다."


준비물은 진(Gin)과 마라스키노(Maraschino), 레몬 주스(Lemon Juice)에 크렘 드 바이올렛(Creme de violette). 빠르게 네 가지의 병을 꺼낸 바텐더가 미려한 움직임으로 우선 진의 마개를 땄다.


진은 평범한 고든스(Gorden's) 브랜드의 물건이다. 도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술이었다.


"그런데 레니, 칵테일은 어떻게 아는거야?"


"저번에 말했잖아? 날개 입사하려고 입시촌에서 공부했었다고. 그 때 스트레스가 하도 쌓일 때면 돈을 아끼고 아껴서 입시촌의 조악한 술집에 갔었거든.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술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건 어림도 없고, 그냥 칵테일 한 잔이나 마셨지."


다음은 마라스키노, 체리 리큐르의 일종이라 없다면 체리 브랜디로 대체해도 문제는 없다. 마개를 열자 풍겨오는 달콤한 체리향에 쥐들의 입가가 살짝 풀어졌다.


준비해둔 3개의 잔에 진과 마르스키노를 4:1의 비율로 따라낸다.


"그게 애....뭐라고?"


"애비에이션. 솔직히 그냥 제일 싼 칵테일 중 하나라서 마신 거야. 나도 다른 칵테일은 몰라."


"꽤 어렵네."


"하하, 피트. 너 손가락이 되는 게 꿈이라며? 손가락들은 이런 칵테일 쯤이야 엄청 마셔댈 텐데 좀 알아야 하지 않겠어?"

"이야, 망치가 맞는 말을 하는 건 처음 보는데?"


"야!"


그리고 레몬 주스. 시중에서 파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번에 사용하는 건 바텐더의 수제다. 레몬 과즙을 짜서 정제수에 섞은 후 설탕과 여러가지를 가미해서 만든, 직접 마시는 용이라기 보다는 칵테일에 희석해서 마시는 용도의 물건이었다.


레몬 주스를 마라스키노와 같은 분량으로 잔에 넣는다. 진홍색 액체가 살짝 노란색을 띄는 주스와 만나며 점차 어둡게 변해갔다.


"...하! 그래, 손가락이 되어야지. 되고말고! 이번에 책을 얻어서 값비싸게 팔고! 버림 받은 개의 그 경미놈에게 상납하고! 아득바득 살아가서! 반드시 올라가고 말 거라고!"


"역시 피트야, 쥐들이 저런 꿈을 가진다는 게 말이 되냐고."


"피트라면 진짜 될 것도 같다니까."


마지막은 크렘 드 바이올렛. 보통 리큐르는 증류주에 과일이나 여러 재료를 넣고 숙성시켜 만드는 술인데, 크레무 드 바이올렛에 쓰인 재료는 보라색 꽃이라는 꽤나 특이한 물건이다.


그 덕분에 화려한 꽃향기와 달콤한 맛을 자랑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극찬받는 술임과 동시에 특이하게도 아름다운 군청색을 띄기 때문에 단순 관상용으로도 애호받는 술이기도 하다.


용량은 레몬 주스의 절반만큼. 가장 작은 양이 들어갔음에도 누구보다 강렬한 크렘 드 바이올렛은 순식간에 잔을 군청색으로 물들이며 자신의 존재를 뽐냈다.


"애비에이션(Aviation), 완성입니다."


"오오, 이거 꽤 예쁜데?"


"맛은 어떠려나."


"........"


"레니?"


"레니? 왜 그래?"


"...내가 갔던 술집에선, 색이 엉망진창이었는데."


"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크렘 드 바이올렛의 군청색이 과도하게 나타나거나 아예 보이지 않게 됩니다. 맛 또한 크게 변하는데, 그렇게 만들 바에야 크렘 드 바이올렛을 빼고 레몬 주스를 더 넣어서 만드는 게 훨씬 낫죠."


"어...무슨 말이야?"


"간단히 이야기해서, 레니가 갔던 술집보다 훨씬 솜씨가 좋다는 거지. 어서 마셔보자고."

애비에이션의 아름다운 색을 바라보며 넋을 잃은 레니를 보며 웃음짓던 피트는 망치와 잔을 건배했다. 그리고 더 이상 꺼릴 것 없이 애비에이션을 입에 털어넣었다.


꿀꺽.


"이, 이거...?"


"진짜 맛있는데...?"


처음은 달콤함이다. 크렘 드 바이올렛의 진한 단맛이 입 안을 크게 감싸는데, 곧이어 레몬 주스의 짜릿한 신맛이 끼어들고 마라스키노의 상큼한 체리맛이 마무리하듯 훌륭하게 어울러진다. 단맛과 신맛의 하모니에 취해있자면 그 끝을 진의 상쾌함이 장식하며 깔끔한 여운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술들은 별로 마셔본 적 없는 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일품의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정도로 훌륭했다.


"진짜 대단하잖아? 그래봤자 술이겠거니 했는데...."


"23구 녀석들이 맛있는 거 하나 먹으려고 온갖 짓거리를 하는 게 이해될 것 같아. 이런 술을 마실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피트와 망치가 정신없이 애비에이션을 들이키며 그 맛이 취해있는 사이, 아직 얼떨떨한 정신으로 잔을 집어든 레니가 조심스레 한 모금을 머금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애비에이션이 왜 입시촌에서는 값싼 지 아십니까?"


"...어?"


"본래 애비에이션은 그리 싼 칵테일이 아닙니다. 허나 그럼에도 입시촌에서는 그 가격이 이상할 정도로 싸죠. 가난한 학생이라도 조금만 돈을 모으면 바로 마실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


"애비에이션이란 이름은, '비행'을 뜻합니다. 어쩌면 날개에 들어가 하늘을 날기 위해 쉼없이 노력하는 입시촌의 모든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술집들의 작은 선물이었던 셈이죠. 뭐, 그것도 이제는 본래 의미를 잃고 그저 이유모를 명물로 바뀌어 버렸지만..."


"...입시촌 출신이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하나는 알죠."


"뭔데?"


"제가 지금까지 봤던 입시촌의 모든 학생들 중에서, 후회하지 않았던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돈을 보내주는 부모에게, 누군가는 노력해도 입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누군가는 헛된 공부를 하느라 날렸던 세월을 후회하더군요. 입시촌의 학생들은 끝없이 불어나지만, 그 중에서 날개에 입사하는 이는 0.01%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죠."


"하, 하.....그러네. 정말 그래."


날개를 달고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이들은 저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그들 대부분은 빛을 동경한 벌레들일 뿐이다. 망치와 같이 애비에이션을 마시며 웃는 피트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큰 꿈을 꾸는 피트 또한, 입시촌의 학생들과 다를 바는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분명 날개에 들어가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손님분들, 이제 시간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됬나....망치, 레니. 가자. 가서 계속 나아가자고!"


"오 그러자고! 피트, 손가락이 되면 나한테도 한 자리 주기다?"


"하하, 저리 꺼져."


"야아!"


피트와 망치가 일어난다. 그들이 잠시 칵테일의 여운을 즐기는 사이, 레니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 칵테일을 또 마실 수 있을까."


"도서관의 일원으로써는, 여러분이 책이 되는 게 가장 좋은 길이지만....그래도, 바텐더로써는 다시 오시면 좋겠네요."


"...그래, 그럴게."


"레니! 가자고!"


"응....그래."


딸랑. 딸랑.


손님들은 전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들이 어떻게 될 지 바텐더는 모른다. 그는 이 조그만 바에서 나간 적도 없고, 나갈 생각도 없으니까.


그는 그저 다음 손님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레니라는 손님, 칵테일을 남기셨네요."


다음 손님이 누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




"앤젤라님, 오늘 오신 손님은 모두 몇 분이신가요?"


"음? 모두 12명이야. 모두 바에 들렀으니까 너도 알 텐데?"


"그 중에서도 돌아가신 분은 있으신가요?"


"아무도 없네."


"....그렇군요."


"갑자기 왜 그래? 샴페인이나 더 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