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쿼드호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항해를 하는 중이었다. 배를 습격하는 고래를 막 격퇴하고, 아직 갑판에 남아 선원들을 습격하는 인어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인어들을 거의 다 죽였을 즈음, 일등 항해사의 눈에 특이한 인어가 보였다. 날뛰던 다른 인어들과 달리, 녀석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인어... 뭔가 이상하오." 일등 항해사는 나지막히 읊조렸다.

 인어는 인간이 고래에게 삼켜진 결과물이다. 고래 기름에 범벅이 되어 자아를 잃고 고래의 주위를 떠돌며, 아직 삼켜지지 않은 인간을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고자 공격한다. 그러나 이 인어는, 너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눈썰미가 좋군, 일등 항해사." 그의 옆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이스마엘 선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새빨간 고래를 찾을 나침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저 녀석을 쓰면 되겠어. 인어는, 반드시 고래를 찾아 나아가기 마련이니까."

 이내 그녀는 돌아서 작살잡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작살잡이! 밧줄을 가져와. 저 놈을 생포한다."

 그러나 작살잡이는 명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갑판에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인어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만을 응시하고 있는 저 인어와 마찬가지로.

 "작살잡이! 못 들었나! 밧줄 가져와라!" 이스마엘 선장이 역정을 내지만, 작살잡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한참 동안 인어를 바라보다, 마침내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캐서린...?"


 히스클리프는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때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였고, 한때 언쇼 가의 양자였고, 한때 중지의 간부였고, 지금은 피쿼드호의 선원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단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캐서린. 한때 히스클리프의 마음을 찢어 버린 그의 사랑, 그의 삶의 목적.

 캐서린은 너무나 모진 말로 히스클리프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히스클리프는 그녀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겠다 맹세하며.

 그런데 지금,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의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인어의 모습으로.

 어떻게 알았는지는 히스클리프 자신도 알 수 없다. 어떠한 증거도 없었으니까. 그저, 그의 영혼이 이 인어가 캐서린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뿐이었다.

 "캐서린이라면... 그대의 연인 말이오? 어찌 이런 모습이..." 일등 항해사가 경악했으나, 히스클리프에겐 들리지 않았다.

 "캐시... 너야? 캐시! 들려, 내 말? 대답해 줘! 캐시!" 그가 절규하며 인어를 향해 나아갔지만,

 이내 커다란 작살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작살잡이?"

 이스마엘 선장이 그에게 쏘아붙였다.

 "선장... 캐시, 캐시가..." 작살잡이가 호소했지만, 이스마엘 선장의 표정에선 아떤 동정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장은 잠시 인어와 작살잡이를 번갈아 가며 노려보더니, 작살잡이에게 쏘아붙였다.

 "저게 네 여자라고? 이해가 안 되는군. 똑똑히 봐라. 네 앞에 있는 건, 그저 인어에 불과하지 않나."

 "아니야, 캐시야, 저건.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나?"

 "모르겠어, 이유는... 하지만 알아, 난. 저건, 분명히..."

 "하!" 이스마엘 선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작살잡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히스클리프. 나의 작살이여..."

 그러다 갑자기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이길,

"내가 언제 너에게 생각을 허락했지?"

 히스클리프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침묵한다. 그 모습을 본 이스마엘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입꼬리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질문하지, 히스클리프. 네가 워더링하이츠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길 선택했을 때, 네가 내린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나?"

 "...아니."

 "그렇다면 캐서린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중지에 들어갔을 때, 네가 내린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나?"

 "...아니."

 "그래!" 이스마엘이 소리쳤다. "히스클리프가 살아오며 내린 결정은 모두 오판이었지. 단 한 순간도 아닌 적이 없었어. 너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건 네가 아니야! 언제나 나였다! 나 이스마엘!!!

 옛 연인이 그립다고? 그래, 언젠가 만나러 가면 되지. 그렇지만 말이야, 히스클리프. 그녀에게 돌아가는 길은 너 혼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거다. 왜냐? 널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기 때문이지. 네가 아니라! 어때, 틀린 말이 있나?"

 작살잡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를 본 선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명령에 따라라. 내가 걷는 길이, 결국 너희를 위한 길이니까."

 이스마엘 선장은 작살잡이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자, 그럼 아까 하던 걸 계속해야겠지. 작살잡이, 밧줄 가져와라. 저 인어를 붙잡을 거니까 말이야."

 작살잡이는 천천히 뒤돌아 밧줄을 가지러 떠났다. '•---••---•-••...' 인어가 그를 부르듯 소리를 내지만, 작살잡이는 듣지 않았다. 선장의 명령이 아니니까.

작살잡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선장은, 이내 바닥에 작살을 강하게 내리친다. 금속이 부딛히는 소리에, 모든 선원의 이목이 선장에게 집중된다. "자, 다들 주목! 이제 전투도 끝났으니, 해야 할 일을 다시 시작해야지. 일등 항해사! 다시 키를 잡아라. 이등 항해사, 삼등 항해사, 인어를 가둘 만한 우리를 가져와라! 나머지 놈들은 각자 위치로!"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선원들은 마치 한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본 선장은 미소짓는다.

 "그래, 그거다. 의심하지 마라. 내 명령에 따라라. 나를 따라 새빨간 고래를 잡는 그날, 너희가 바라던 모든 것을 얻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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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클리프 군, 무엇을 그리 슬피 바라보시오?" 일등 항해사가 작살잡이에게 묻는다. 어느 날인가부터, 작살잡이는 피쿼드호 지하에 혼자 있는 날이 잦아졌다. 빈 우리 앞에 서서 뭔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모르겠어. 이걸 보면 들어, 그리운 느낌. 그런데 떠오르지 않아, 무엇이었는지."

 일등 항해사는 그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혹시 선장님께 말씀드려 보았소?"

 "그래. 그런데 없대, 신경쓸 필요.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선장님께서 그러하다시면 그러한 것이겠지." 일등 항해사가 작살잡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한다. "무엇인지도 모를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게. 진정 바라봐야 할 길에서... 선장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 고맙다."

작살잡이는 뒤돌아서며, 한때 ■■가 있던 그곳을 등지고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