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융


커피색 하늘 위를 노닐던 하얀 새 한마리가 비공하고 있었다.


비행하는 날개가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지르는데, 
그 솜씨가 재주를 넘는 제비못지 않았지.


여느 새가 그러하듯 비행하는 와중, 그것은 깃을 떨구었다.


깃은 탁트인 커피색의 하늘에서, 공장의 매캐한 검은 매연을 뚫고, 짙게 일그러진 조약돌 속에 빨려들어갔다.


주변 경치의 색은 삼색 강령과 오형 인륜을 품어 멋드러진 빈티지색이건만, 
깃이 내려앉은 조약돌은 일그러진 복고였다.


그럼에도 아스팔트 속안에서부터 새싹 틔우는 씨앗처럼, 
그곳의 안에서도 깃펜은 거위깃처럼 크게 자라났으니.


고인물에 몸이 침잠해 잠기우고,
가열찬 아픔속에 상하도록 여과되고,
끝부분 소중했던 것이 도려나가 관 안쪽이 긁어내어져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도리없는 막막함에 적을 두는구나.


탁하고 조밀한 부분에 펜촉을 학사모처럼 씌고,
엄숙하게 일그러진 검은 피를 채워넣어,
깃펜이 된 깃은 조약돌 밖을 향해 피(翍)워 날아올랐다.


***


근대의 바람을 타고, 깃펜을 훨훨 날아올랐다.


골목을 지나가는 아해들의 모습에서 세상의 흐름을 관조하고,

어리둥절한 △와 □로 이뤄진 하늘다리를 놓아 무궁한 활주로를 만들었으며,

입체적 완성물 곳곳의 것을 분해적으로 늘여놓아 도형내부의 도형을 추출해내었다.


활발한 일필휘지 가운데서 그의 피는 여러 종의 끓음을 느꼈다.


희소(喜笑) 그리고 희소(戲笑).


날아올릴 근대의 바람이 그의 검은 피를 마르게하였구나.


까닭모르고 감사할뿐인 근대의 바람아.


***


깃펜은 김 피어오른 샘물에서 만난 여상과 암실에서 함께 지냈다.


허나 깃펜과 여상은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꼴이 거울조차 아니었다.


악수조차 되지 못한 깍지가 어슷나게 외로되었다.


엇나가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여진은 지진이 되었고,
여상이 떠나자 홀로남은 깃펜은 허해졌다.


암실을 떠나 그는 바람타고 훨훨 날아올라 명사모임에 비스듬히 자리잡았다.


하지만 깃펜의 깃은 말라비틀어져만 가는데, 물기는 하늘에서 흐르지 않아 한없이 야속하구나.


***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깥으로 날아가자.


날자. 날자. 날자. 날아 보자꾸나.


지치고 힘겨운 깃에 익숙한 저항을 딛고,
그는 근대의 바람이 부는 곳으로 향했다더라.


그리고 깃펜은 넋이 나가 주저앉았다.


자신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열의 이면의, 자신의 피를 말라붙게 만드는 거부감이 무엇인지
뇌리를 싸늘한 빛이 때리고 지나갔다.


근대의 바람은 퉁소의 구멍처럼 속이 비었다.


***


바람은 멎었다.


깃펜의 깃은 묵지근이 낡고 해지고,
잉크를 담던 대롱은 부러지고 말았다.


나비 하나의 체중조차 중력이었을까?


방부되며 날아간 잉크는 멎은 바람속에서 피(翍)여 환원되었다.


사과 한 알이 지구로 떨어지듯,
깃펜에서 펜촉이 이탈했다. 


발아한 정신은 나무조차 이루지 못하고, 코팅되었구나.


박제되어버린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