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어어어...


히스클리프 씨, 왜 그러세요?


비쩍 마른 몸상태와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밤새도록 착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ㅋ.


그럼 히스클리프 군이 설명을 못할 거 같으니 오늘은 내가 설명을 시작해야겠구려.


그래... 네가 해라.


왠일로 순순하네? 원래대로라면 내가 하겠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지금 내 몸상태 안 보이냐. 그리고 내가 뭘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인간이 아니기도 하고.


흠흠. 우선 여러분 모두 최초로 전차를 만들어낸 나라가 영국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최초의 전차 마크 1 전차.


최초의 전차답게 문제가 많았지만[1] 그래도 1차 대전 당시 전차를 그럭저럭 써먹은 영국군은 앞으로의 전쟁에서 써먹을 전차를 연구하기 시작했소. 그 결과 영국군은 전차를 두 갈래로 나누게 되는데, 빨라서 옛날 기병이 수행하던 임무를 수행하던 순항전차와 느리지만 튼튼한, 보병과 함께 다니면서 보병을 지원하는 보병전차로 말이오.


그냥 하나로 통합하면 되지 않나? 뭐하러 굳이 나눴대?


전차 기술이 막 걸음마를 땐 상태에 개발된 물건이라 전차 기술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비단 영국만 이런 게 아니라 당시 유럽의 군대들은 거의 모두 전차를 용도에 따라 나눴습니다.


대표적인 순항전차, 영국의 크루세이더 전차.


대표적인 보병전차, 프랑스의 샤르 B1.


하지만 이런 분류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드러나게 되었소. 순항전차는 얇은 장갑으로 인해 쉽게 격파되기 일쑤였고, 보병전차는 장갑은 두터웠지만 느린 기동성 탓에 적 전차에게 쉽게 옆이나 뒤를 잡혀 격파당하기 일쑤였지.


다만 시가전같이 적의 공격 루트가 한정된 경우에는 장갑으로 버티며 보병전차가 대활약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영국군은 전차를 두 가지로 분류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일찍 깨달았지만, 이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통인데다 밀리고 있었기에 순항전차와 보병전차를 통합한 전차를 만드는 건 후순위라고 판단했소. 그래서 전쟁 중반부까지만 해도 여전히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를 나눠 개발했지. 여전히 둘을 통합할 기술이 없었단 것도 한몫했고 말이오.


이상 씨 말대로,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군은 순항전차에서 크롬웰, 보병전차에서 처칠이라는 꽤 훌륭한 전차를 개발해 운용했답니다. 미국에서 무기대여법으로 셔먼 전차를 받아 개조해[2] 운용하기도 했고요.


크롬웰 순항전차.


처칠 보병전차.


셔먼 파이어플라이.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며 나온 독일의 신형 전차, 티거와 판터 전차를 기존의 크롬웰과 처칠로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답니다.


파우스트 양 말대로, 크롬웰과 처칠 전차는 약한 주포의 성능 때문에 티거와 판터의 장갑을 관통하지 못하고 도탄되기 일쑤였소.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그나마 상대가 가능했지만 이건 전쟁 후반기에 나온데다가 주포에 하자가 좀 있었소. 결국 영국군은 티거와 판터를 상대할, 순항전차와 보병전차를 합친 최고의 전차를 1943년 말부터 개발하게 되었소.


나치 독일군의 티거 중(重)전차.


나치 독일군의 판터 중형전차.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1945년, 영국군은 신형 A41 전차를 개발하였소. 옛날 로마군의 100명 단위의 부대(켄투리아)를 지휘하는 대장의 이름을 따 '센츄리온'이라 이름붙였지.


센츄리온(라틴어 발음은 켄투리오)


잠깐, 근데 1945년이라고? 2차 대전은 1945년에 끝났잖아?


그렇습니다. 그래서 센츄리온 전차는 2차 대전기에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했죠.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적, 소련이 급부상했소. 영국군 역시 소련군과 언젠가 다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센츄리온 전차를 개량해 나갔지.


특히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온 소련의 신형 전차 IS-3 중전차가 영국에 큰 자극을 주었죠.


1945년 소련의 신형 중전차, IS-3


최초로 양산된 센츄리온 전차는 MK 1 전차였소.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같은 17파운더[3] 주포로 무장하고 있었고, 포탑 측면에 20MM 폴스텐 기관포를 부무장으로 채택한 전차였소.


센츄리온 마크 1.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MM 폴스텐 기관포가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는 걸 깨달은 영국군은 20MM 폴스텐 기관포를 제거한 센츄리온 마크 2를 새로이 양산하게 됩니다.


센츄리온 마크 2. 포탑 왼쪽의 폴스텐 기관포가 없어진 것이 보인다.


1948년에는 주포를 20파운더(84mm)로 키운 센츄리온 마크 3 전차가 새로이 양산되었소.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센츄리온 전차이기도 하고.


센츄리온 마크 3.


한국전쟁 당시 영국도 군대를 파병했는데, 이때 제8왕립아일랜드후사르연대와 제1왕립전차연대, 제7왕립전차연대의 센츄리온 전차가 한국에 파병되었습니다. 


파우스트 양 말대로요. 다만 센츄리온 전차가 한반도에 상륙할 시점에는 북한과 중국의 전차가 씨가 마른 뒤였기에 주로 보병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지.


다만 센츄리온 마크 3도 문제가 많았소. 냉난방 장치가 없어서 여름이면 전차 안이 찜통이 되기 일쑤였고 겨울에는 전차병들이 벌벌 떨어야 했소. 부동액도 없어서 30분에 한번씩 엔진이 얼지 않게 계속 시동을 걸어줘야 하기도 했소.



게다가 17MM밖에 되지 않는 하부 장갑 때문에 지뢰에 피해를 입는 일도 잦았고요.


아무튼 한국 전쟁이 끝나고 영국군은 또다시 센츄리온 전차를 개량했는데, 기존 7.92MM 탄을 사용하던 BESA 기관총을 나토 표준탄인 7.62X51MM탄에 맞춘 기관총으로 바꾸고 20파운더 주포도 살짝 개량했소. 거리측정용으로 50구경 기관총도 설치했고. 그외 다양한 개조가 이루어졌소. 이 사양을 마크 5라고 부르오.


센츄리온 마크 5.


센츄리온 마크 5 전차는 베트남 전쟁 당시 호주군 소속으로 투입되기도 하였소. 다만 베트콩도 전차가 그리 많진 않았기에 전차 대 전차간의 교전이 일어나진 않았고, 한국전쟁처럼 보병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운용했소.


베트남의 호주 왕립 기갑군단 소속 센츄리온 마크 5/1 전차.


으아아... 너무 복잡하오! 이제 이걸로 끝인 것이오?


아니요. 아직도 한참 남았답니다. 당시 소련군도 신형 T-54 전차를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T-54 전차를 분석해본 영국군은 20파운더 주포로는 T-54를 상대하기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형 L7 주포를 장착한 센츄리온 마크 6을 만들게 됩니다.[4]


센츄리온 마크 6.


센츄리온 전차에 새 주포를 달게한 장본인 T-54.


이후로도 장갑을 개량한 마크 7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영국군은 기존 센츄리온을 개량해 마크 13까지 개조형을 만들기도 했소.


전면 장갑을 강화하고 탄약고 크기를 늘린 최종 생산형 센츄리온 마크 10이 생산되기도 했고요.


센츄리온 마크 10.


주포를 105MM로 개량한 센츄리온 전차들 또한 다양한 전쟁에 투입되었소. 이스라엘군과 인도군이 대표적이었는데, 특히 이스라엘군이 센츄리온 전차 운용의 명수로 손꼽혔소.


이스라엘은 센츄리온 전차를 '숏(שוט, 채찍)'으로 이름붙이고 이집트, 시리아 등 주변 국가들과 전쟁한 중동 전쟁에서 센츄리온 전차를 운용했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잘 훈련된 정예 전차병들이 센츄리온을 운용했죠.


중동 전쟁 당시 센츄리온을 운용하던 이스라엘 전차병들은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였는데, 3킬로미터 밖의 이집트, 시리아군 전차를 격파하거나 야간전 당시 적 전차의 포구 화염을 보고 적 전차를 격파하는 등 여러 훌륭한 전과를 새웠소.[5]


그리고 인도군 또한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센츄리온 전차를 운용했는데, 파키스탄군이 운용했던 M47, M48 전차를 상대로 훌륭한 전과를 새웠소.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동에서 적으로 마주했던 소련제 전차가 여기서는 아군으로 같이 싸우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6]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의 인도군 센츄리온.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센츄리온 전차를 실전에 투입했답니다. 주로 앙골라 공산 반군과의 전투에서 센츄리온을 운용했죠.\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의 센츄리온 전차.


여담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랑 돈이 없던 탓에 센츄리온 전차를 현재까지 올리판트 전차라는 이름으로 개조해서 운용하고 있기도 하오. 추가 장갑을 장착하고 사통장치를 걔량했지.


올리판트 전차.


그 외에도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요르단, 캐나다, 레바논,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의 국가가 센츄리온을 운용했답니다.


그것 말고도 센츄리온 전차에 165MM 박격포를 장착한 공병전차 센츄리온 AVRE도 있는데, 이건 자그마치 1991년 걸프 전쟁기까지 사용되었소.


걸프 전쟁의 센츄리온 AVRE.


센츄리온 전차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오. 어떻게, 모두 재미있으셨소?


정말 재밌었소!


그.괜.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자, 그럼 이상 씨?


왜 그러시오? 설마 또 아달ㄹ...


이런 교육적인 콘문학에 그런 천박한 장면이 들어가서야 되겠나요.


파우스트는 조용히 이상을 안아주었다.


수고하셨어요, 이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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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엔진실이 분리되지 않아 엔진의 열기 때문에 내부가 찜통이었고 엔진에서 나오는 디젤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2]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쓴 경우도 많습니다.

[3]포탄의 무게가 17파운드(약 7.7KG)라는 뜻이고 구경은 76.2mm입니다.

[4]사실 헝가리에서 소련군 전차를 탈취한 헝가리 시민들이 영국 대사관으로 돌진하는 사건과 센츄리온 마크 5에 105MM 포를 장착한 센츄리온 마크 5/2가 있긴 한데 생략했습니다.

[5]다만 이건 이스라엘의 전차병들이 훌륭한 것도 있지만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의 전차병들이 상상 이상으로 무능했던 것도 있습니다.(4차 중동전쟁에서 개선되긴 했지만) 그리고 이집트와 요르단군도 센츄리온을 운용했는데, 대부분 이스라엘군의 전차에 격파당했습니다.

[6]인도 육군은 서방과 공산 진영의 전차를 골고루 수입해 운용했습니다.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인도 육군은 센츄리온 전차와 소련제 T-55, PT-76 전차 또한 운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