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버스 4번 수감자 료슈,
그 모티브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의 등장인물, 요시히데(
良秀) 로 알려져 있고,

이를 음독 하게 되면 료슈라고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료슈의 원전이 지옥변이라면 어째서 '요시히데'가 아닌, '료슈'라고 불리는걸까?


프로젝트 문은 딱히 등장인물의 성별과 이름을 매칭시키지 않는다.

경미가 그렇고, 소냐가 그렇고, 로지온이 그렇다.


로쟈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로지온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영문 버젼에서는 확실히 로지온(Rodion) 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료슈만은 '료슈' 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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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료슈가 지옥변에서 따온 것처럼, 지옥변의 주인공 요시히데 또한 그 원전이 존재한다.


宇治拾遺物語

(우지슈이모노가타리)

는 13세기 일본의 설화들을 모아 만들어진 설화집으로, 이 중에는 絵仏師良秀(에붓시 료슈) 라는 설화가 수록되어있다.

에붓시 : 불교 관련하여 그림을 그리는 사람 (직업)

보면 알겠지만, 요시히데에 사용되는 한자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해당 한자는 '료슈' 라고 읽힌다. (요시히데라고 읽는다는 설도 있긴 하다.)

그렇기에 이름을 굳이 '료슈' 라고 지었다면, 지옥변의 요시히데 뿐 아니라, 우지슈이모노가타리의 료슈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絵仏師良秀(에붓시 료슈), 보다 정확히는 絵仏師良秀家の焼くるを見て悦ぶ事(에붓시 료슈,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 일) 이야기는 한 페이지 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이야기이다.

원문을 찾을 수 있도록 링크를 달아둔다.
https://tanoshi-kobunkanbun.com/ebussi-goyaku/


간단하게 내용을 번역하면, 


자신의 집이 불타버린 료슈가, 자신 집을 포함한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웃으면서, 

지금껏 자신이 그려왔던 불꽃은 부족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이에 걱정하던 이가, 어떻게 (자기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럴 수 있냐, 귀신이 들린것이 아니냐며 말하자,


"어찌 나에게 귀신이 들릴 수 있는가? 귀신이 들러붙을 수 없지, 나는 부동명왕 뒤의 화염을 잘 못 그리고 있었다. 지금 보니 화염이란 이렇게 불타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것이야 말로 이득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부처라도 제대로 그릴 수 있다면, 집은 100채건 1000채건 얻을 수 있지. 너희들이야 재능이 없으니 집에 미련을 가지겠지만."

이라고 비웃는다.


그리고 료슈가 그린 부동명왕은 시간이 흘러서도 사람들에게 칭송받는다고 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전반적으로 지옥변의 '요시히데' 와 유사한 이야기 플롯을 가지고 있으나, 결정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지옥변은 현재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예술관을 드러낸 소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 어떤 권력도 예술을 이길수는 없다 라는 의미를 품는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료슈의 예술에 대한 태도는 조금 다르다고 느껴진다. 

이 이야기에서의 료슈에게 있어 예술을 위한 희생이란 보다 더 큰 리턴으로 돌아올 수 있는 투자로 보고 단지, 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민을 비웃을 뿐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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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림버스의 료슈가 이 '료슈' 에서 따온 부분이 존재한다면, 료슈의 이야기는 단순히 탐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관련해서도 생각하는 게 있긴 한데 그건 나중에 시간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