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즐겁게 잘 즐기십시오, 관리자. 난 카론을 이 술판에서 좀 때어놔야겠으니.


째깍째깍째깍(어...그래. 고마워.)


베르길리우스가 카론이 방으로 들어가고,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종류의 와인들을 세팅하는 뫼르소, 돈키호테, 이스마엘, 파우스트와 단테. 이윽고 잔까지 세팅이 완료되자 뫼르소가 수감자들을 호출한다.


와~ 화려하게 잘 세팅되었네요. 이 정도면 저희 집도 부럽지 않겠는데요.


수감자들끼리 이렇게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마시는 건 처음이군요. 파우스트는 이런 일이 생길 걸 알고 있었답니다.


그나저나 의외구료. 상부에서 우릴 이렇게 배려해서 갖가지의 와인을 준비할 돈을 주다니.


파우스트는 상부가 우리의 성과에 따른 보상을 지급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돈이 모자라 가성비 좋은 와인밖에 살 수 없었던 건 아쉽긴 하구려...


째깍째깍째깍째깍(자, 그럼 시작할까? 뫼르소가 우리 중에서는 와인에 대해 가장 잘 아니까 모임을 주도할 거야.)


관리자의 지시대로 이번 모임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모두 와인을 마시기에는 입이 텁텁할 터이니 입을 씻어줄 샴페인을 준비했다.


뫼르소가 주황색 라벨이 붙은 샴페인 병을 집어들고 설명한다.


뵈브 클리코 브뤼(veuve clicquot, Burt)를 준비했다. 최고의 와인 생산자 중 하나인 뵈브 클리코에서 생산한 것으로 무거운 바디감과 산도, 과일과 브리오슈(프랑스 빵)의 고소한 향이 일품인 샴페인이다.


뫼르소가 조심스레 코르크 마개를 고정하고 있던 철사를 풀고 병을 돌려 뚜껑을 따자 펑 하는 가스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소리가 메피스토펠레스 안을 가득 채운다, 싱클레어가 이에 살짝 움찔한다.


이윽고 황금빛 샴페인이 높은 샴페인 잔 안으로 흘러내린다. 수감자들은 짧게 건배하고 맛을 본다.


역시 샴페인은 샴페인이구려! 내 고향의 까바(Cava,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을 한참 능가하는 맛이오!


설.신.맛.(설익은 신 과일 맛이다)


구인회 벗들끼리 이런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면 무척이나 좋았을 것을...


샴페인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빈 샴페인 병들이 치워진다. 이윽고 수감자들이 시음할 두 번째 와인으로 넘어간다.


두 번째 와인은 제가 준비했으니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파우스트는 모젤 지방에서 생산된 카트호이저호프베르그 리슬링 카비넷(KARTHÄUSERHOFBERG Riesling Kabinett)을 준비했답니다.[1]

최고의 와이너리만 가입할 수 있는 VDP(Verband Deutscher Prädikats, 독일우수포도주양조자협회)에 가입된 유서깊은 카트호이저호프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가성비가 굉장히 훌륭한 화이트 와인이랍니다. 단맛과 산미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와인 오프너로 와인을 따고, 방금 전 뵈브 클리코 브뤼 샴페인과는 약간 다른 색의 황금빛 액체가 작은 잔 속으로 흘러내린다. 수감자들은 코를 와인잔에 박고 냄새를 맡는다.



샴페인이랑 살짝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살구나 파인애플 같기도 하고...


오티스 양 말대로 달콤하면서도 살짝 새콤한 살구 향이 진동하는구려. 이제 맛을 좀 봐야겠소.



이상이 와인을 입에 머금고 약간 오물거리다가 삼킨다.


파우스트 양 말대로 단맛과 산미가 아주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구려. 아주 마음에 드오.


뭘 그리 복잡하게 따져? 그냥 마시고 맛있으면 됐지!


...


뫼르소와 파우스트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진다.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와인을 물처럼 벌컥벌컥 마셔댄다.


파우스트 다음으로, 돈키호테가 가져온 와인을 시음할 차례가 된다.


드디어 본인 차례구려! 본인은 무쵸 마스 틴토(Mucho Más Tinto)를 한번 준비해보았소!


심플한 외형과는 다르게 내 고향의 상징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 품종으로 담근 이 와인은 오늘 준비한 와인들 중에서 단연코 가성비가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소! 향도 맛도 가격을 훨씬 능가하오!


화이트 와인 다음으로 시음하는 레드 와인의 약간 텁텁한 맛에 약간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맛있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야, 내가 먹어본 레드 와인 중에서 최고로 맛있네~ 이게 얼마짜리라고?


1만 9천 원...아니 안 정도면 충분히 구할 수 있소!


진짜 돈키호테 씨 말대로 가성비가 훌륭하네요.



싱클레어 군이 이리 알아주니 정말로 고맙구려!



다음으로 이스마엘의 차례가 되었다.


이제 제 차례인가요? 제가 준비한 베어 플레그 진판델(Bear Flag Zinfandel)이에요.

원래는 준비하고 싶었던 게 따로 있었는데 너무 비싸서 아쉬운 대로 이걸 준비하게 됐어요. 진판델 품종 특유의 탄닌 향과 블랙배리 향이 잘 살아있는 가성비 좋은 와인이에요.


와~ 진판델은 처음인데, 정말로 방금 마신 템프라니요와는 확 다르네요. 향이 진해요.


맛도 강하지만 동시에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아주 좋구려! 정말로 왠만한 사람이라면 다 좋아할 만한 와인이구려!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수감자들의 반응이 넘어가고, 이제 마지막 히스클리프의 차례가 된다.


뭐... 내가 와인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취향에 맞는 거 하나 찾아왔어. 세펠츠필드 10년 숙성 토니(SEPPELTSFIELD GRAND TAWNY AGE 10 YEAR)를 가져와봤지.



주정강화 와인이네요. 파우스트는 이런 달콤한 주정강화 와인이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알맞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확실히 도수가 세긴 세구려. 하지만 그만큼 달콤하면서도 말린 과일 같은 향이 좋은 것이 파우스트 양 말대로 모임을 끝내기에 정말 훌륭하구려.


으음, 역시 이런 센 술이 내게는 잘 맞는다니까~ 달면서도 세니까 이만한 게 없어~


주정강화 와인은 처음인데... 진짜 다네요.


조금씩만 마셔. 달다고 많이 마시면 내일 못 일어나.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와인 모임이 끝나고, 수감자들은 얼굴이 세빨개진 채로 자리를 정리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와인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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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뒤에 붙은 '카비네트'는 독일 와인 분류 등급의 한 단계인데, 이는 옛 수도자들이 맛있는 와인을 캐비닛(독일어로 Kabinett) 속에 숨겨둔 데서 유래했습니다.




별 건 없고, 그냥 와인 추천 좀 해보고 싶어서 써봄.


롭붕이들 중에서 와인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