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아직 히스클리프의 그 사건이 끝나지 않았을 때였다. 싱클레어는 버스의자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이마가 차가워지도록 유리창에 기대고 있어도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져만 갔다. 곧 끔찍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기념일이라고 해야하지만 그에겐 기념일이 아닌 크리스마스. 수감실에서 잘 때마다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날의 악몽을 자꾸만 생각나게 만들었다.
"싱클레어"
"누나?"
"군?"
왠 여자 목소리가 들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옆자리에 늘 앉아있던 돈키호테였다. 그녀는 누나와 목소리가 닮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방금 들렸던 나지막하고도 사려깊어보이는 목소리는 마치 누나를 생각나게 만들어서 싱클레어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빨리 과자 고르게. 늦었다간 없어질거라고!"
돈키호테가 기다란 막대같은 과자를 들고 신나게 소리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 날짜인 11월 11일에 기다란 모양이 딱 맞아 운수가 좋아보이길래 고른 거라고 한다. 그게 뭐인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소녀의 말에 싱클레어는 불현듯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나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날이 뜻깊고 신기한 날짜랑 겹치다니. 이 내가 꼭 한번 골라줘봐야하지 않겠는가! 이또한 운명이니 말일세. 내게로 와 달콤함을 안겨줄 이 과자와의 운명 말일세!"
돈키호테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랬는지, 별로 과자가 당기지 않았는데도 싱클레어는 은연중에 그녀를 따라 과자가 준비되었다는 앞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과자박스는 텅 비어있었다. 나중에서야 들은 바로는, 옆에 달린 조형물까지 과자라고 생각하고 잘못 사들고 온 모양이었다. 결국 싱클레어 몫의 과자는 없는 셈이 되었다.
그는 크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과자가 뭐라고. 그런데 돈키호테는 생각이 달랐는지, 옆에서 몸을 배배 꼬더니 온힘을 다해 미안해하며 자신이 먹던 막대과자를 입에다가 넣어주었다.
'잠깐 이거 간접키스?'
순간 염병할 상상이 떠올랐지만 금방 가셨다. 눈가가 그렁그렁해진채 촉촉한 눈빛을 보내는 저 별빛과 같은 얼굴을 보고 고맙단 감정이 마음에 퍼졌다.
그 순간은 신기하게도 그냥 즐거웠다. 유리창에 이마를 차갑게 눌러도 계속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는데 그랬었던 것도 잊었다.
돈키호테가 과자가 더이상 없는게 아깝다며 초콜릿이 묻은 손가락을 살짝 빨았다. 싱클레어는 입안에 단맛이 느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괜시리 미안해졌다.
"제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꼭 사드릴게요!"
그래서 단단히 약속을 했다. 돈키호테는 웃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들을 읊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많은 간식들은 어떻게 다 알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먹을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싱클레어는 그랬던 날을 기억한다.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던, 꼬깃꼬깃하게 접힌 타임머신과 같은 추억이었다.
그로부터 1년, 겨우 1년이 지난 이후. 어마무시하게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자신도 생각치 못했던 놀라운 짓을 한다. 자기 손목에 이빨을 박겠다는 결정을 할 줄은 몰랐겠지.
그래, 그날 돈키호테가 싱클레어의 피를 마셨다. 그는 그녀가 피를 마시다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먹기 쉽도록, 자신의 손목에 뾰족하게 나기 시작한 붉은 피결정을 깨뜨려부쉈다. 아직 얇고 가는, 마치 그때의 과자와 같았다. 그 빨간 결정에서 떨어지려던 피를 아깝다는 듯 돈키호테가 빨아마셨다.
"이번 한번뿐이야. 두번 다시 안그럴거야."
"난 괜찮은데."
그때와 다른 느낌으로 울먹이는 그녀와 그녀를 바라보는 그. 손목이 깊게 패이고 거기에서 흘러 넘치는 피에 싱클레어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조차도 좋았다. 모든게 아름답고 소름끼치는 밤이었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이유로 일어난 일이지만, 어찌됐건 그날 그는 으슥한 달그림자 아래에서 그녀에게 간식을 돌려줄 수 있었다.
ㅡㅡ
오랜만에 소설을 쓸 좋은 계기였다.
간단하게 색 안칠한 그림이라도 그리려고 했는데 소설로 써보는게 더 좋은거 같다.. 오히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