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르륵, 드르륵. 반 시체 상태인 적들의 몸뚱이가 잘게 갈려나가고, 림버스 컴퍼니 버스 팀의 이동 수단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빵빵거리며 만족스러운 울음을 흘렸다.


 [째깍, 째깍.(자, 그럼 이번 주의 성과를 확인해 볼 시간이네).]


 사람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대신 불타는 붉은 시계가 자리하고 있는 붉은 코트의 사람, 관리자 단테가 오직 수감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째깍거림과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이 활짝 열린다. 수차례에 걸친 거울 던전에서의 전투 끝에 쌓인 결과물, 메피스토펠레스의 연료로 쓰이고 남은 부산물들을 이용하여 또 다시 수감자 중 한 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날이 왔다.


 [째깍, 째깍, 째깍.(그럼 이번에는... 돈키호테, 그리고 싱클레어. 너희로 하자.)]


 관리자 단테가 두 명의 수감자를 호출하였다. 그에 따라 다른 수감자들이 저마다의 반응을 보였다.


 "축하해, 꼬맹이들~."

 "싱클레어, 이번엔 괜찮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

 "아이 씨... 내 차례는 언제 오는 거야?"

 "이미 토끼팀이라는 가장 좋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에겐 양심이란 것도 없나요?"

 "맨날 나한테 정신 채찍 갈기던 녀석이 할 소리냐?"


 거울 세계의 인격. 한 사람이 품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지금의 자신에게 투영하여, 성장의 한계를 벗어나는 힘.


 싱클레어 수감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메피스토펠레스의 입 앞에 섰다. 여태까지 그가 거울 세계를 통해 본 가능성들은... 사실 그렇게 좋다고 하기엔 힘들었다.


 해결사 협회 중 하나이자 당신의 방패라는 말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치안 전문 협회 츠바이의 6과 소속이 된 가능성, J사 카지노에서 만났던 마리아치 조직원들의 보스가 된 가능성, 그리고 검계라고 하는 뒷골목 조직의 살수가 된 가능성.


 히스클리프 수감자가 발견한 R사 4무리 토끼팀이나 G사 일등 대리 그레고르, 세븐 협회 6과의 부장이 된 오티스의 가능성 등에 비하면 하나 같이 잠재력이 영 부족한 가능성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싱클레어 수감자는 이번 추출에서 어엿한 하나의 훌륭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었다. 다시는 크로머 같은 녀석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그리고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짐덩이가 되지 않도록 어엿한 1인분을 할 수 있는 힘을 찾고 싶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그럼, 추출의 시간이네. 돈키호테, 그리고 싱클레어. 둘 다 손을 앞으로 뻗어.)]


 "알겠네!"

 "네, 네...!"


 싱클레어 수감자와 돈키호테 수감자는 거의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엔진의 안 쪽, 수많은 사슬로 엮인 구체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싱클레어 수감자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황금빛... 거울 세계의 가능성을 추출할 때, 황금빛이 나는 순간에는 상당히 강력한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전부, 불태울 거야...]


 "....어?"


 한 겹, 두 겹 씩 풀려가기 시작한 사슬 속에서 들려온 그 불길한 목소리에, 싱클레어 수감자는 몸을 움찔 떨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크로머가 가족들을 모두 죽였던, 그 성야의 밤 집 앞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예감이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듯한 불길한 감각에, 싱클레어 수감자는 눈앞에 드러난 거울 세계의 가능성을 움켜쥐는 것을 주저했다.


 분명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강한 힘을 원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저것'은 아니다. '저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의 전신이 그렇게 경고하는 듯 했다. 싱클레어 수감자는 본능적으로 뻗었던 팔을 다시 회수하려고 했으나...


 [역겨운 내 삶까지도.]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는 듯, 느슨해진 사슬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싱클레어 수감자의 손목을 힘껏 붙잡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손목을 통해 전달되는,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의 기억.


 시체들의 언덕 위에서 부정했던 크로머의 말과 상당히 유사한 기억이 머릿속을 침범해 온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시, 싫어! 싫어어어어...!!"


 자신에게 한 없이 따뜻하고 자상했던 가족들을, 단순히 의체 보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증오하고, 무시하고, 혐오하고, 경멸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미래. 그녀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그가 품은 또 하나의 가능성.


 고통스러워하는 싱클레어 수감자의 모습에, 다른 수감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시, 싱클레어?!)]

 "자, 잠깐만. 저거 좀 위험한 거 아니야? 꼬맹이, 괜찮은 거야?"

 "야! 뭐하는 거야! 저거 당장 멈춰!"

 "비켜. 한.분.(한 번에 분리)해주지."

 "그것은 아니되오. 동기화를 진행하던 도중에 강제로 연결을 끊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지 알 수 없소. 최악의 경우, 그의 인격이 거울 세계의 인격과 완전히 대체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으니..."

 "젠장, 그럼 저걸 그냥 두고 보고 있어야만 한다고?"


 "으, 으으으으으...!!"


 자신의 기억이 실시간으로 다른 것으로 덧씌워져가는 감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덧씌워지는 기억은,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들을 전부 부정하는,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었다.


 크로머를 대신하여 쥐는 자가 된 파우스트의 곁에서, 그녀의 손에 쥐어지는 자가 된 가능성.


 의체 보유자들을 이단이라 부르짖으며 자신의 할버드로 찌르고 베어 그 목숨을 앗아가는, 그가 그토록 부정하며 거부하던 또 하나의 미래.


 자신을 사랑하는,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들을 이단이라 부르며 욕하는, 지금의 그로서는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최악의 미래.


 "아....."


 싱클레어 수감자의 비명이 멎음과 동시에 동기화 작업 또한 완료되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싱클레어 수감자는 한동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옆에서 함께 추출 작업을 시도한 돈키호테 수감자도 혼자서 이상한 문장을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도저히 정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싱클레어 수감자의 거부 반응이 너무 격렬했던 탓에 그 쪽에 신경을 쓰는 이는 없었다.


 [째깍....?(싱클레어, 괜찮아?)]


 관리자 단테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싱클레어 수감자는 감정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답했다.


"네. 문제 없어요. 당연한 결과죠."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다.


 "저는, 선택 받았으니까... 그렇겠죠?"


 쥐는 자에게 쥐어진 자, 쥐어들 자 싱클레어는 파우스트 수감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 와요, 싱클레어. 내 영웅."


 어느새 쥐는 자가 된 파우스트 수감자는, 다른 수감자들이 일전에 시체의 언덕에서 상대했던 그 여인이 짓던 것과 똑같은 완벽한 미소로 띄우며 그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