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그럼 이만 난 들어간다.” 히스클리프가 적고 있던 서류를 내팽개치며 돈키호테에게 말했다. 

 

“음,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는가? 고생했네! 히스클리프군” 

 

“아니, 할 일이 이렇게 태산인데 어딜 또 기어들어 가요?

그리고 부장님은 왜 잡지도 않으세요?” 이스마엘은 자신의 책상에 한없이 쌓여있는 서류들을 처리하며 어이없다는 듯 히스클리프와 돈키호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음, 히스클리프군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지.

그리고 나에겐 이스마엘군, 자네가 있으니 괜찮지 않겠는가?” 이따금씩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돈키호테는 이스마엘을 쳐다보았고 이스마엘은 한숨 쉬며 히스클리프를 쏘아보았다.

 

“네가 뭘 알겠냐, 그 빌어먹을 강박증을 못 고치면 평생 혼자 살게 될걸?” 

 

“당신한테 그딴 조언 듣고 싶지 않네요. 방 안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능률이 떨어지는 거 같으니 그냥 들어가시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그 망할 종이에 빈칸 채워 넣기나 잘 하고 있으라고” 히스클리프는 처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흔들며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 저딴 놈이 정말 시험 합격해서 들어온 놈 맞아요?” 

 

“어허, 우리 기관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통과하고 정직하게 들어온 직원일세. 자네와 똑같이 말이지. 서로 빛날 수 있는 환경이 다른 거 아니겠나?” 

 

“지금 그 빛이 확실하게 제 속을 태우고 있는 것 같네요. 그나저나 그 서류 형식은 뭐예요? 

부장 설마 서류 작성 못 하시는 거 아니죠?”

 

“아,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네. 히스클리프군이 작성한 걸 내가 수정하고 있지!”

 

“설마 그럼 그 뒤에 있는 것들도 전부다….”

 

“맞네! 히스클리프군이 아무래도 서류엔 약한 모양이라 내가 다시 수정하고 있다네.”

 

“...그 새끼 먼저 불법 시험으로 체포하러 갈 거예요.” 이스마엘이 진지하게 펜을 집어 들며 말했다.

 

“농담도 재밌게 하는구려! 자네가 우리 부서로 와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네. 앞으로도 함께 힘내보게나.” 이스마엘의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건지 웃으며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저녁 10시가 넘어가며 산처럼 쌓여있던 서류들도 없어지고 어느새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부장 밀린 업무 다 처리했어요. 저희도 이제 그만 들어가죠?” 이스마엘이 피곤한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만. 먼저 들어가게 이스마엘군, 난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히스클리프씨 것 수정도 다 했는데 일이 또 남아있어요?”

 

“아, 방금 히스클리프군의 일을 다 끝냈으니 이제 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난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 보겠네.” 지치지도 않는 듯 눈을 반짝이며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하아…. 알아서 하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허름한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 기관에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마엘이었다. 하지만 그 어린 애 같은 부장이 자신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짐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론 마음이 무언가에 짓눌려 함부로 반박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집으로 향하던 중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 이 밤에 꽃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꽃집도 있으려나 생각하던 찰나 그 안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흉터들을 내밀고 다니는 히스클리프가 보이자 가게마저 흉물스러워 보였다.

 

아니 저 인간이 저기에 왜 있어?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이스마엘은 히스클리프가 어설프게 종업원과 대화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둘은 원래부터 얼굴을 알고 지냈는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으며 히스클리프는 파란 장미 다발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그래 저 인간이 저렇게 말을 구사할 줄 알았는데 안 한 거란 말이지. 짜증이 나는 이스마엘이었지만 갑자기 그를 이렇게 정상인처럼 보이게끔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져 히스클리프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도 할 줄 아는 거라곤 부수고 없애는 것밖에 모르는 히스클리프였기에 적당히 몇 걸음 뒤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따라오는 것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해결사가 아니라 깡패나 하지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심한 흉터 자국들, 부장과 자신을 대신하여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던 히스클리프의 등을 바라보며 이스마엘은 순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최근에 너무 신경질적이었어. 히스클리프씨가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뒤를 함부로 밟다니…. 그냥 집에나 돌아가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히스클리프가 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 생기가 돌지 않는 곳이었다. 히스클리프가 파란 장미 다발을 들고 가니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라곤 그 식물밖에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배경이 이루어졌다. 

 

이거 정말 사람 사는 집, 아니 사람 손길이 닿는 집이 맞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벽면은 바래져 있었으며 두 개의 창문 중 하나는 박살이 나 있었고 지붕은 허름해져 비가 샐 것만 같았다. 

 

히스클리프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이스마엘은 집의 한쪽 벽에 붙어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 왔어. 캐서린” 히스클리프가 처음 들어보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히스클리프 돌아왔어?”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돌아온다.

 

“응 나야, 돌아왔어”

 

“히스클리프 돌아왔어?”

 

“오늘은 현장 업무가 없고 이때까지 벌린 일에 대해 뭔 글을 쓰다가….”

 

“히스클리프 돌아왔어?”

 

“부장이랑 선배한테 일을 떠넘기고 와버렸네.”

 

‘툭’하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말이 달라진다.

 

“오늘도 고생했어, 히스클리프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캐서린”

 

“오늘도 고생했어, 히스클리프 사랑해”

 

“...”

 

“오늘도 고생했어, 히스클리프 사랑해”

 

히스클리프가 손에 들고 있던 파란 장미 다발을 내려놓으며 피폐하게 우울하게 목소리가 내려와 바다에 잠길 것만 같은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니 이 인간 지금 뭐 하는 거야?"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인가 불편해 보이는 아니, 불편한 것이 아니라 기계가 말하는 것 같은 여인의 반복되는 목소리, ‘툭’하는 소리와 함께 바뀌는 안부 인사, 히스클리프는 지금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지금 당장 이 문을 박차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욕을 갈겨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딴 행동거지를 고치고 싶었을뿐더러 나약한 소리나 내뱉은 인간을 이스마엘은 차마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당장에 손잡이를 부숴버리고 들어가려던 찰나

 

“이스마엘군”

뒤에서 돈키호테가 점잖은 목소리로 이스마엘을 불렀다.

 

“엇….”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 했지만 그 순간 자신의 입을 막으며 이스마엘이 말했다.

“부장님 여긴 어떻게?”

 

“지금부턴 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 않나? 후배님들의 안위를 챙기는 것도 선배된 자로서의 정의지. 그것보다 자네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 물었다네.”

 

“부장은 알고 있었어요? 히스클리프씨가 저런 상태라는 걸?” 이스마엘이 추궁하듯 물었다.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네.” 그 말에 응수하듯 침착하게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그럼 지금 당장 저랑 안에 들어가죠. 전 저따위로 궁상떨고 있는 것 따위 치가 떨리거든요. 부장도 이렇게 된 김에 절 따라온 거 맞죠? 그게 합리적인 거잖아요.”

 

“이스마엘군. 난 히스클리프씨를 도우러 온 게 아니야.

자네를 막으려고 여기로 온 거지.”

 

“지금 저딴 상태를 보고 해결하러 온 게 아니라 저를 막으러 왔다고요? 저런 행동이 히스클리프씨에게 무슨 도움이 되죠?”

 

“적어도 지금의 우리보단 도움이 될 걸세. 히스클리프군이 살기 위해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아니야. ”

 

“지금 저게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인가요? 저런 놈들이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아시냐고요?”

 

“알고 있다네. 수많은 희망이 꺾여버린 사람들 그들의 삶을 내가 어찌 무시할 수 있을 텐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란 말일세. 내민 손을 잡는 건 잡는 사람의 몫이야. 내민 자는 기다릴 뿐이지.”

 

“...저는 인정할 수 없어요. 뻔히 보이는 결말에 손 놓아 지켜보는 꼴이라니 난파된 배 위에서 동료가 죽었다고 다 같이 가만히 있을 거예요? 차라리 저 자식 배에다가 작살을 꼽아다가 이쪽으로 끌고 올 거예요. 저 말리지 마세요.”

 

그 말과 동시에 이스마엘은 히스클리프의 집 문을 걷어차 강제로 열었다. 허름한 집이었기에 문이라고 말하기도 애석할 정도의 목재는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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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놓은 장면은 있는데 연출하기가 쉽지 않네요. 뒤의 후편은 이스마엘과 히스클리프, 돈키호테의 캐릭터성을 더 이해하고 적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