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요?"


남자의 주홍색 눈동자는 나를 꿰뚫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럼 당신에게 기회를 드리죠."


자신을 리비디네라고 소개한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무너진 날개의 일원을 다른 날개에서 받아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도, 평범하게 무너진 회사가 아니라면 얘기는 더 어려워진다.


W사에서 내건 공고는 그런 내게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 특수 지부 새 직원 구함. 단, 여자만 지원 가능함. 그 외 조건 없음. 면접 후 합격자 결정 >


그리고, 그만큼이나 불길한 것이었다.


아무 의미 없이 이런 호의를 베풀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내게 어떤 선택지가 있었겠는가.


무너진 날개의 직원.


EGO 하나도 주워올 겨를 없이 목숨만 간신히 부지한, 별다른 힘도 없는, 심지어 한 쪽 눈까지 없는 해결사.


혹시나 그럴듯한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위기를 타개해낼 능력 따위는 없으니까.


백 이면 백 아무 의미도 없이 죽는 미래 뿐일 것이다.




면접장은 내가 한동안 보지 못한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이었고, 직원들은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약간은 뒤틀리고, 약간은 우울한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속해있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애써 고개를 젓고,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면접에서 내가 내세울 것은 그나마 L사와 W사가 협력관계였다는 사실 뿐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요소였지만 나는 그것이 큰 의미라도 되는 양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면접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면접은 너무나 순식간에 끝났다.


"당신에게 기회를 드리죠."


나는 이 굴러들어온 행운을 믿지 못하고 한 마디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왜죠?"


리비디네는 불안한듯 떠는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당신 같은 사람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고작 그 한 마디로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둥지에 품어주었고


나는 내 발로 그들의 품에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죽을 걸 알면서도 계속 불 속으로 뛰어드는 하루살이 같은 모양새였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Domun'이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의 건물이었다.


"당신은 행운아랍니다. 유리양."


리비디네는 그렇게 말하며 양 입꼬리를 쭉 끌어올려 웃어보였다.


내 눈에 그의 미소는 억지로 웃는 것으로만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건물의 홀은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와 바닥의 레드카펫이 인상적이었다.


리비디네가 안내해준 2층의 방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여기가 내 방이라고?


푹신한 침대와 따뜻한 물이 실컷 쏟아져 나오는 욕실.


태어나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공간이었다.


이 건물을 다 처분하면 굶어죽는 뒷골목의 사람들을 몇이나 배불리 먹일 수 있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가정.




내가 안내받은 일은 단 하나였다.


일은 일주일에 적으면 하루, 많으면 3일 정도


번호를 배정받은 날에는 3층으로 올라가 배정받은 방으로 아침10시까지만 들어가면 된다.


안내받은 3층은 딱봐도 심상치 않아보였다.


벽 여기저기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문들은 냉동창고의 문처럼 두껍고 무거워보였다.


"일이 없는 날은 뭘 하든 상관없습니다.


1층에서 편의 시설을 즐겨도 되고, 나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셔도 되고...


그냥 정해진 날에 정해진 방으로. 그 뿐이면 됩니다.


그리고 방에서는 그 어떤 것도 부수거나 만지시면 안 됩니다. 새 물건을 들고 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정도면 됐군요. 그럼."


나는 허망한 심정으로 침대에 몸을 눕힌 다음 몸을 돌돌 말았다.


침구에서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나 


스스로 너무 더럽다고 생각이 들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내일 모래입니다."


리비디네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방을 나가려했다. 


나는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붙잡았다.


"저기."


"네?"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되죠."


그는 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곧 언제나 보였던 그 미소를 지어보이며,


"알고 싶어서 질문하는 게 아니라 불안함을 떨치고 싶을 뿐이군요. 유리양. 그러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후 방을 나갔다.




딱히 나가서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나는 1층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방만큼이나 화려하고 깔끔하게 되어있었고, 맛의 골목과 연결된 둥지여서인지 꽤 훌륭한 음식들도 준비되어있었다.


그리고,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은 전부 여자 뿐이었다.


그것도 모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제각기 다른 느낌을 가진.


금발의 육감적인 미인, 구릿빛 피부에 새하얀 단발의 미인, 어딘가 연약해보이는 새하얀 피부의 미인 등등...


그들은 입구에서 쭈뼛쭈뼛 서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식사를 재개했다.


딱 하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어딘가 모르게 눈동자가 죽어있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그래. 이렇게 환상적인 조건이니 평범한 곳일리 없겠지.


"야, 거기 너."


그 때, 나와 비슷한 붉은 머리를 가진, 하지만 나와 달리 자신감 넘쳐보이는 자세의 키 큰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온 지 얼마 안 됐구나?"


"...네."


"먹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


나는 말없이 음식을 조금씩 담아 깨짝깨짝 먹기 시작했다.


"어우, 참. 그렇게 먹어서 힘이 나겠니? 뭐. 먹어봤자 별로 힘 쓸 일도 없긴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로 손을 쭉 내밀었다. 나는 순간 몸을 움츠렸지만 그 이상 저항하지는 않았다.


"흠. 확실히 '그 애'랑 비슷한 느낌이긴 하네. 너 귀엽다."


"...'그 애'요?"


"응. 너 전에 여기 있던 애. 이미 죽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그런 소리를 하니 되려 당황스러웠다.


"혹시. 무슨 일을 하나요. 저희는."


지금까지 겁없어 보였던 그녀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잠은 잘 자니?"


"...아니요. 맨날 악몽을 꿔서."


"...나가서 나중에 수면제라도 구해봐. 그렇지 않으면 이상해질테니까."


"..."


"미리 말해줘봤자 잠만 못 잘 테니까. 그냥. 그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하나만 말해줄게. 그냥 버티면 생각보다 편안한 곳이니까."




나는 문 앞으로 다가선다.


침을 꿀꺽 삼키고.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


내 머리속에서는 L사에서 보았던 온갖 공포들이 눈 앞에 선하게 지나갔다.


이 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찢어버릴까.


 아니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상상 속의 존재가 나를 마주할까.


막연히 L사에서와 비슷한 일일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게 된 것은 내일의 일이다.




나는 꿈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촉을 계속해서 느꼈다.


내 온 몸을 무언가 만지고, 내 몸을 무언가 뚫고 들어오고, 몸 곳곳이 찔리고, 잘리고, 태워지고...


평소에 꾸던 꿈과는 무언가 달랐다.


좀 더 현실감 넘치는 꿈.


그 꿈은 아주 끈질기게. 내 몸이 조각조각 날 때까지 이어졌다.


"흡!"


잠에서 깨어나보니 아침이었다.


온 몸에 땀이 흥건하다.


날짜는 이미 '일'이 끝났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은 사흘 뒤입니다."


리비디네는 또 그렇게만 말하고 방을 나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저기. 그 꿈은 뭐죠."


리비디네는 언제나 그렇듯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유리양."


나는 그렇게 방에 혼자 남겨진다.


어떻게든 시간을 죽인다.


그리고 밤이 찾아온다.


어떻게든 잠에 든다.


그러면 또 그것이 시작된다.


나보다 거대하고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나를 어루만지고, 나에게 무언가를 꽃아넣고, 나를 베고, 찢고, 화상 입히고, 망치로 찍고, 목을 조르고...


나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당에 내려오니 용케 그 날 만났던 붉은 머리의 그녀가 혼자 식당에 있었다.


그녀는 나를 만나고는 반갑다는듯 손을 흔들었다.


"그 꿈. 뭐죠."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눈 앞의 샐러드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글쎄."


"...무슨 말인지 아시는군요."


"...그럼."


그녀는 그런 대화를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그 애. 라는 건 누구죠."


"...너랑 비슷한 애."


"어디가요?"


"그냥. 얼굴은 귀여운데. 어딘가 그늘져 있고. 적당히 소녀스러운 그런 애."


"...그 사람은. 왜 죽은 거에요?"


그녀는 더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묵묵부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가기 직전 이번엔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냥. 알려고 하지마. 멍청해져. 둔해지고."




식당에서 나와 방으로 올라가려던 차였다. 


3층에서 내려오는 남자가 보였다.


온 몸에 살이 뒤룩뒤룩 찐 그 남자는, 한 눈에 봐도 꽤나 부유해보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고


남자와 몇 초 간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그 순간,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것은 예의상의 웃음도, 깔보는 웃음도 아니었다.


어딘가 뒤틀린 미소.


그는 그 몇 초 간 내 몸 곳곳을 꿰뚫어보는 듯 했다.


마치 나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기라도 하는 양.


순간 뒤통수에 오싹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그 날부터 꾸는 꿈 속의 괴물은 형태를 갖추었다.


아까 스쳐지나간 남자의 얼굴을 한 사람으로.




두 번째 일.


그 날 꾼 꿈은 새로운 형태였다.


목에 줄이 묶여 거대한 개에게 뚫리고 뜯기고, 개는 곧 내 몸 곳곳을 씹어삼키고, 개의 목줄을 말라빠진 형태의 무언가 잡고 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다음은 이틀 뒤입니다."


나는 오늘도 아무 의미없는 질문을 던진다.


"저기."


"...네. 유리양."


"저는. 뭘 하고 있는 거죠."


리비디네는 언제나 그렇듯 미소를 지었다.


"답을 알고 계시는 군요. 유리양은 바보가 아니니까요."


"..."


"2번 일을 끝내면 적합자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니 이걸 드린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USB를 내려놓았다.


"여기 안에 전부 녹화되어 있답니다. 일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


"하지만, 지금까지 그걸 본 사람들은 다 죽었답니다."


"..."


"유리씨도 아시겠죠? 유리씨는 귀중한 자원이지만,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걸."


그것은. 이전의 회사에서도 끊임없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내 손에 쥐어졌던 자살용 권총의 촉감이 아직도 손 끝을 간질인다.


"...네."




"그 애는 왜 죽었어요?"


내 질문을 들은 붉은 머리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왔니? 살아있었구나."


"..."


"의외로 몇 명 못 살아남거든. 적합하지 않으면 망가진다던가."


"당신도. 받았나요. 그거."


"응. 버렸어. 태워서."


"그 애는."


"그 애는. 너처럼. 귀엽고. 순진하고. 연약하고. 어딘가 우울한. 그런 애였지."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이번에도 내 시선을 피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부작용이라더라. 꿈.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 리셋되도 이상하게 꿈으로 남는다고."


"꿈이요."


"그래. 꿈. 꿈이라고 할 수 밖에 없잖아? 기억에는 없는데."


"정말. 꿈일까요."


"글쎄. 꿈속의 내가 나인지. 너랑 지금 대화하는 내가 나인지. 아니면 둘 다 나인지."


"..."


"그거 아니? 사람은 겁이 많을 수록 상상력이 풍부해진데.


"..."


"난 어릴 때부터 겁이 없었거든. 바퀴벌레도 그냥 맨 손으로 잡을 정도로.


"..."


"그 애는 아니었어. 그래서 못 견디고 그걸 봤지."


새빨간 그녀의 눈동자와 내 회색빛 눈동자가 마주 본다.


색은 다르지만 둘 다 어딘가 그늘 진 그런 눈동자였다.


"그리고 갑자기 미쳐버렸다고 하면서 자기 목을 막 긁더니 그냥 죽어버렸어. 며칠만에."


"..."


"그 사람은. 우리를 시험하는거야.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안 열지. 열 사람이라면 어차피 오래 못 버틸테니까."


"..."


"너는 어때? 너는. 어느 쪽이야."


"...저는."


그녀는 상 위에 새하얀 알약 하나를 내려놓았다.


"수면제. 필요할 것 같으면 먹어. 돈은 나중에 갚고."


그녀는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


"...저기. 이름은."


"그건 다음에. 계속 보게 되면."


"...네."




나는 방으로 홀로 돌아온다.


아직도. 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자신의 온 몸을 만지작 거린다.


옷을 다 벗고 욕실 앞에 가서 선다.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아무데도 생채기 하나 없다.


이곳에 온 뒤로 잘 자고 잘 먹은 몸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계속 개에게 찢겨진 온 몸의 상처가,


그 남자에게 뚫리고 베인 온 몸의 상처가,


눈에 아른거린다.


아마 계속 쌓여가겠지.


내 손에는 리비디네가 준 USB와, 붉은 머리의 그녀가 준 수면제가 동시에 놓여있다.


무시하면 계속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멍청해지고, 둔해지면, 그만이다.


나 정도의 외모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수면제를 삼켜 악몽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었다.




나는 오늘도 무식하게 크고 무거운 문 앞에 있다.


그 USB는 언제 나를 붕괴시킬 지도 모르는 폭탄이었다.


하지만 나는 USB를 부수지도 태우지도 못했다.


동시에 그것을 열어볼 용기도 내지 못했다.


누가 그걸 대신 부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실수로 물에 빠뜨리면 얼마나 좋을까.


깜빡하고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도 아직 이름을 모르는 그녀처럼 충분히 멍청해질 수 있을텐데.


나는 언제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


약하고, 어정쩡하게 영리해서 항상 휘말리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또 손잡이를 잡는다.


그리고, 


누군지 모르는,


평생 누군지 알 수 없을,


악몽 속의 남자들에게 몸을 맡긴다.


스스로 닳고 닳아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