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옥죌 것 같은 검붉은 하늘이 세 뼘 남짓한, 두 개의 쇠 파이프로 나누어진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히스클리프는 그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며 검은 쇠사슬로 묶인 발을 위아래로 흔들며 잘그락거렸다.



그 방 안에는 그와 간수 하나가 있었다. 간수는 히스클리프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뒤 돌아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고 히스클리프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제 앞에 놓인 강화 플라스틱 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문이 있었다. 누군가가 열고 들어와 투명한 벽 앞에 놓인 싸구려 목제 의자에 앉을 것이었다. 물론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직에서 버려진 뒷골목 쥐새끼에게 인연이란 것이 존재할 리가. 자조적인 자기 객관화였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끽해봐야 내가 돈 떼먹고 튄 녀석이거나 나를 조롱하러 온 녀석이겠지. 멍청한 새끼들. 밖에 있었으면 머리통을 부숴버렸을 텐데.



히스클리프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깨를 조금 으쓱거렸다. 그럼에도 조금 호기심이 동하긴 했다. 과연 누구일까. 누구길래 이런 낡고 병든 감옥에 찾아오는 걸까. 그 호기심은 문이 열리면서 천천히 해소되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그에게 있어 놀람의 연속이었다. 첫째. ‘그’가 아니었다. ‘그녀’였다. 둘째. 그녀는 조직 혹은 뒷골목의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둥지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셋째. 그가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은 여자였다.



“에밀리... 브론테?”



“그래요. 히스클리프. 나에요. 당신과 그녀의 친구. 밀리.”



“아니. 잠깐만. 네가 왜 여기있는건데...!”



당황스러운 공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히스클리프의 숨이 가빠지고 두 눈이 흔들린다. 에밀리. 그녀는 그의 반응이 당연하다 여겼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조금 모자란 그 또한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하지만 에밀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그를 걱정하는 감정을 담아 말했다.



“제가 말했죠? 당신은 성격이 급하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내뱉으라고요.”



“닥치고 대답해!”



덜컹거리는 소리가 방 안 전체를 메웠다. 격렬하게 잘그락거리는 쇠사슬 소리와 동시에 히스클리프의 두 손이 벽을 때릴 때, 간수는 그 즉시 허리춤의 톤파를 꺼내 들어 그의 등을 내려쳤다.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라는 듯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을 계속해서 쏘아내며 말했다.




“그 개새끼, 에드거. 에드거 린튼. 그 찢어 죽일 새끼야? 그래. 그렇지 않으면 네가 여기 올 이유도 없지. 나름 캐시의 친구라도 된 듯 지껄이던 네가 말이야.”




경멸의 소리가 으르렁거리며 내리깔렸다. 그리고 다시 내려쳐지는 톤파가 그의 등을 찢어대듯 내리쳐졌다. 그럼에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은 히스클리프와 그를 보며 탐스러운 밤빛 머리를 매만지는 에밀리. 셋 사이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어요. 아직 우리에게는 결과만이 전달되었으니까요. 음. 마치 스포일러네요. 글을 쓰는 입장의 사람으로서, 과정을 건너뛰고 결말을 들어야한다는 것은 가장 언짢은 일이기도 하죠”



지나치게 평온한 에밀리의 말에 히스클리프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벽을 부숴 저 여자의 목을 조르면서 속에 있는 모든 말들을 내뱉게 하고 싶었다.



캐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분명해.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야 해. 캐시. 캐시. 나의 캐시. 히스 꽃이 피는 날 널 대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히스클리프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그래요. 사실 우리 둘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외부자의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밀리는 금빛 눈동자를 눈꺼풀로 가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간수님. 혹시 저와 그. 둘 만 남겨주실 수 있나요?



“규칙에 어긋납니다. 아가씨. 게다가 이 미친 새끼는 주의 대상이라 섣불리...”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죠. 약간의 융통성이 있으면 말이에요. 음. 마치 데드 라인을 넘기는 것을 귀엽게 봐주는 느낌처럼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가슴골에서 갈색 봉투 하나를 꺼내며 투명한 벽의 틈 사이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몇 안인지 세기에는 보는 눈이 참 많네요. 그렇죠?”



간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품 안에 봉투를 집어넣으며 모자 매무새를 만졌다. 다시 톤파가 그의 허리춤에 집어넣어졌고 히스클리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에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히스클리프의 뒤에서 들려왔다. 그제야 약간의 침묵이 방 안을 맴돌았다.



“좋아요. 이제 둘이네요. 히스. 당신 생각대로 캐시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사실이 당신의 마음을 찢어 놓을 거라는 것을 확신해요.”



침묵을 깨트린 것은 에밀리의 슬픈 말이었다. 애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말에 히스클리프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애정이니 뭐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캐시. 그녀의 이야기가 중요했다.



“말해! 당장!”



가벼운 한숨이 에밀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슬퍼 보이는 금빛 눈동자를 가리며 중얼거렸다.



“캐시가 죽었어요. 비극적이게도요.”



ㅡㅡㅡ


고요하지 않은 밤이 찾아왔다. 온갖 곳에서 신음과 비명이 울려 퍼진다. 조직에서 뒷골목의 개, 혹은 쥐새끼들을 모아 놓은 이곳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였지만 



오늘따라 히스클리프는 저 소리 들을 찢어발겨 버리고 싶었다. 방 한구석에서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시끄러웠다.



캐시가 죽었어요.



히스클리프는 그 여자의 아가리를 짓이겨 놓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딴 말을 들으려고 살아온 것이 아닌데. 비극이라니. 그런 식으로 캐시의 죽음을 정의 내릴 수 없어. 너는 옆에서 뭘 한 거야. 그런 말들이 오갔었다.



그럼에도 에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그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캐시.”



그는 입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찢어발겼다. 차라리 그때 너를 떠나지 말 것을. 내가 마지막 일만 제대로 처리했었더라면 너는 에드거에게 가지 않았을 텐데. 그냥 너와 함께 도망칠 걸 그랬어. 캐시. 저 히스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후회와 잡념이 그를 휘감았다. 방구석 한 켠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쇠 파이프에 의해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늘조차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는데. 너와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히스클리프는 잠깐 눈을 감았다. 갈색 머리. 히스 꽃. 폭풍이 치는 것만큼 바람이 강한 언덕. 우리는 그곳을 폭풍의 언덕이라고 불렀지. 그랬었지.



천천히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그에 맞춰 히스클리프의 몸이 움직였다. 여전히 튼튼함을 자랑하며 잘그락거리는 쇠사슬이 오늘따라 무거웠다.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가 빛을 가리며 그의 방에 남은 빛까지 지워내며 나타났다. 간수장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죄수 번호 1847번.”



히스클리프는 간수장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허한 두 눈이 어둠을 헤치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콧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누가 짖는구나. 그저 지껄이는구나. 종종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나 뒷골목 새끼들은 맞아야 사람이 된다. 같은 개소리가 귀에 박혔지만, 여전히 그는 캐시를 생각했다. 분명 약속했던 그곳. 폭풍의 언덕에 그녀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대답해라! 1847번! 오늘 면회 온 여자는 누구지? 어떤 관계야?”



묵직한 파공음이 히스클리프의 귀를 향해 가까워졌다. 그제야 그는 제 머리에 무언가 부딪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의 몸뚱아리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임을 자각했다. 관자놀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분명 두개골에 금이 갔거나 고막이 찌그러졌을 것이었다. 혹은 둘 다거나.



그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내뱉었다. 평소 같았다면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참았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붙잡을 정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바닥을 긁어대었다.



그러고 보면 바닥을 긁는 것은 또 하나가 있었다. 마대에서 꺼내진 야구 배트. 철의 모서리가 바닥에 쾅쾅 찍히는 것이 요란하게 울렸다.



“1847번! 이 뒷골목 쥐새끼가! 내 말을! 무시해!”



우악스러운 패악질이 따갑게 울렸다. 그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행해지는 가학심은 도시의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가지고 있을 기본소양이었기에.



히스클리프는 그것은 온전히 받아들였다. 피부가 퍼렇게 짓 물린다. 뼈는 결국 힘에 굴복해 서서히 금이 간다. 간신히 봉합되었던 피부가 터져 상처로 남아간다.



그럼에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히스클리프의 앞섶에 조금씩 닿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파괴적인 손길이 그의 머리를 맑게 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 다운 일을 하면 된다. 캐시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머리 쪽으로 야구 배트가 내려쳐졌다. 보통 사람이 맞는다면 분명히 머리가 두 개로 쪼개져 각자 뇌의 한 구역을 차지할 것이라는 농담이 사실이 되어버릴 정도의 강도였다.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그것을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 명확하게 해야 할 행동들이 눈에 보인 그에게는, 제 앞에 있는 이는 그저 쳐부숴야 하는 고깃덩어리일 뿐이었다.



손목이 자연스럽게 비틀렸다. 내려쳐지지 못한 배트가 땅에 떨어져 따각거렸다. 비명이 높은음으로 올라가다 턱하고 막혀 질러지지도 못했다. 우악스러운 폭력의 대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야. 고맙다. 덕분에 내가 뭘 해야 할지 정확히 기억났거든?”



히스클리프는 세 개로 나누어진 창문을 힐끗 보다가 팔을 옆으로 틀며 간수장을 벽 쪽으로 날렸다. 거구의 몸집이 돌로 만든 벽에 부딫히며 꽤 큰 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달려오는 이는 없었다. 그저, 죄수들이 벽에 박혀 당하는 소리겠거니. 모두가 그렇게 여기고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곳이었으니까.



“이제, 되찾을 거다. 다 쳐부숴서라도.”



늑대 같은, 어쩌면 짐승 같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린 히스클리프읜 손에는 어느새 피가 가득 묻은 야구 배트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도구의 용도는 명확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방금보다 더욱 격렬한 파공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사뭇 다른 폭력성이었다. 살을 뚫고 튀어나온 부러진 다리뼈가 훤히 드러나 피를 머금어 울컥거렸다. 두 번째 파공음은 손을 짓이겨 손가락의 순서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파공음은 턱 위에 있던, 우리가 머리라고 부르는 기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 아랫 이빨과 밑 턱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붉은 색만은 남겼다.



히스클리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이게 나 다운 느낌이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 쌓인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그는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자루를 유심히 보다가 간수장이었던 고깃덩어리를 번갈아 보더니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시체는, 전기가 안 통하던가?”



ㅡㅡㅡ



히스. 나는 히스 꽃이 좋아.



히스클리프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작은 덤불처럼 모여 있는 꽃들이 뭐가 좋다는 걸까. 그저 너와 있기에 좋은 것을. 나는 꽃은 싫어. 캐시. 히스클리프는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한 발짝씩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오늘 하늘은 푸른색이었다. 세 개로 나누어지지 않은 온전한 색.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고 한쪽 다리는 감각을 잃은 채 남긴 감상이었다. 그저 그녀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움직이는 몸이 끌리다시피 움찔거렸다.



그제야 간신히 닿은 언덕이 시야에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릉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나마 큰 언덕 하나와 작은 언덕 여러 개. 물을 먹지 못한 잡초들이 누렇게 메말라가거나 혹은 싱싱한 잔디가 서로를 뜯어 먹는 것처럼 부딪히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여러 가지 색상을 하여서 꽃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덤불 모양으로 뭉쳐 있거나.



바람이 불었다. 강한 바람이. 그와 그녀가 이름 붙인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처럼 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에 흩날리는 듯하여서 꽃들이 움찔거렸다. 그는 조금 더 간절히 앞으로 나아갔다.



질질 끌고 다니는 시체 자루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한층 더 무거워진 다리도 이제 다 좋았다. 캐시. 이제서야 그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에 그는 바삐 다리를 옮겨대었다.



몇 번이고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작은 언덕을 내려갈 때 거의 굴러가거나 혹은 비틀거려 욱신거리는 몸에 반동이 와 비명을 질렀다. 탈옥할 때 생긴 상처들이 채 낫지 않고 터져 고름을 끼얹은 듯 진물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히스클리프는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그녀를 생각하며.



결국 언덕의 끝에 다다른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깡마른 나무 하나. 그는 나무껍질이 벗겨진 곳에 음각으로 새겨진, CE와 HC 라는 이니셜과 그 사이의 하트를 만지작거렸다. 채 마르지 않은 피가 음각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캐시. 나 왔어.”



돌아온다고 했잖아.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무에 등을 기대며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푸른 하늘의 구름이 히스 꽃처럼 무리 지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히스클리프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네가 말해준 히스 꽃의 꽃말. 이놈들 보니까 이제서야 생각나네.”



네가 말해준 건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까. 단지 꺼내는 것이 서툴 뿐이야.



히스클리프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독. 그리고...”



네가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