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들의 업무 종료를 승인합니다.>

 

요란스럽게 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리자님의 말이 들려왔다. 매번 형식상 진행하는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그때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끈끈함이 있었다.

 

서로를 위하는 듯하면서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 그런 감각.

 

베르길리우스.

그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걸 보고 ‘전우애’라고 하던데……, 사실 내게는 그렇게까지 거창하게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번 임무에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보던 그들의 시선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 우욱…….”

 

헛구역질이 났다.

메스껍던 속은 괜찮아진 듯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울렁였다.

 

수십 년을 뱃사람으로 살면서도 뱃멀미 하나 안 하던 나였다.

 

한 손으로는 입을 가로막은 채,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였다.

 

“너, 정말 괜찮아진 거 맞아?”

 

거슬리는 목소리.

흉터가 가득한 팔.

쓸데없이 큰 몸뚱이.

 

평소 같았으면 짜증으로 응대했을 테지만, 제 걱정을 해주는 이에게까지 가시를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기력도 남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안심하고 기대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괜찮아요, 돌아가서 쉬면 나아지겠죠.”

“뭐…… 그러냐.”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조용히 버스의 뒤편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를 다른 수감자들이 붙잡았다.

 

“히스클리프! 오늘은 좀 어때?”

“어떻긴 뭐가 어때, 뭔데?”

 

로쟈는 언제나 붙임성있게 그를 다뤄왔다.

그녀에겐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사락사락 꼬아가며 자연스레 본론을 이야기하는 능청스러움이 있었다.

 

“아니~ 화는 좀 풀어졌나 싶어서. 자기 때문에 매일 밤 천둥소리가 자장가가 된다니까?”

 

수감자들 사이에서 그의 방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이미 유명했다.

 

수감자들이 머무는 방.

그러니까 수감실은 수감자의 심상을 반영한 공간이 나타난다고 하던데.

 

그제야 섬뜩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팔다리가 녹아가며 천천히 가라앉는 몸.

진득한 액체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맥박치는 심장.

 

꺼져가는 시야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

 

완벽한 타인들.

 

“허억……, 헉!”

 

숨이 가빠졌다.

진정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괜찮기는 개뿔…….”

 

천천히 의자에 주저앉은 내 옆으로 히스클리프가 앉았다.

 

“어이, 시계 대가리. 너 얘한테 제대로 시계 돌려준 거 맞아?!”

 

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옆에서 울렸고, 곧 째깍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당연하지,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

 

“아니에요, 관리자님. 그냥, 마음이 심란해서…….”

“심리적 요인이 크군요. 오늘은 수감실로 돌아가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파우스트 씨는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인지 단번에 꿰뚫어 본 듯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불침번을 서는 건 어떠신가요,”

“아, 네…….”

 

불침번.

그래,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로나마 그때의 고통과 공포를 직면할 자신은 없었다.

 

피곤했지만.

…… 별수가 없었다.

 

“불침번은 무슨, 미쳤어?! 그 시끄럽던 애가 말 한마디 못 하고 끙끙 앓는데, 밤까지 새우겠다고?”

 

시끄럽다니, 말 다했어요?


마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하나하나 대꾸할 기력이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괜찮아요’하고 얌전히 불침번을 받아들일 자신도 없었다.

 

그때, 그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힘없이 그에게 이끌리며 당황한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이봐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얘는 내가 데려간다. 불침번은 너희 중 아무나 돌면 그만이잖아.”

 

나는 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많던 여성 수감자들은 이미 각자의 수감실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들이 남아 있었더라도…… 그들과 함께 있을 자신은 없었다.

 

머릿속을 지배한 ‘완벽한 타인’이란 생각.

 

내가 이렇게 끙끙 앓아도.

아니, 고통스레 죽어가도 일말의 눈길조차 주지 않는…… 타인.

 

그런 가운데 어쩌면, 히스클리프.

이 남자만큼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그의 손에 붙들려, 나는 천천히 천둥소리가 가득한 폭풍의 언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깨 너머로 <저 둘, 매번 싸우더니 역시 정이 든 걸까?> 하는 째깍거림이 들려왔지만, 일일이 화를 낼 기력조차 남지 않아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이 넓은 품에서.

 

오늘만큼은 평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