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의 주민들은 날개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산다.


아기새처럼 눈을 꼭 감고, 입을 찢어져라 벌린 채.


그들은 스스로가 무엇을 먹고 있는 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부지런히 날갯짓하는 날개를 선망하듯 바라볼 뿐이다.


유리 역시 그런 가벼운 깃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랬던 유리가 날개 ― 로보토미 사에 입사하게 됐던 건, 과연 행운이었을까.


뒷골목에 관해 떠도는 풍문을 들을 때, 혹은 그곳의 밤에 대해 들을 때, 유리는 자신이 둥지 출신이라는 것에 안도하곤 했다. 그 곳의 거주민들보단 분명 처지가 나았으니까.


내로라 하는 일급 해결사들조차 둥지에 거주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미묘한 우월감마저 느꼈다.


그만큼 뒷골목의 삶이 두려웠다.


공포에 직면하여 미래를 창조하라.


수없이 보고 들은 로보토미 사의 사훈.


유리는 저가 이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종종 환상체의 영향을 받은 동료들이 광증을 보일 때마다, 가끔 이름 모를 사우의 부고가 들려올 때마다, 눈을 감았으니까.


외면과 닮은 짧은 애도 끝에는 늘 묘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시 눈을 떴다.


잡념이 더 자라기 전에.


그것이 유리의 마음을 좀먹기 전에.


로보토미 사가 날개고, 유리의 출신이 둥지이기 이전에 모두 도시의 일부였다. 도시에서 타인에게 연민 이외에 더 줄 것이 있던가. 기실, 연민 만으로도 필요 이상의 마음을 써 준 것일 터였다.


그렇게 유리는 순응했다.


순응하지 않으면 버려질 것 같아서.


순응이 외면이란 것을 알았다. 사훈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다지 도시스럽지 않은 행동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유리의 외면은 곧 로보토미 사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로보토미 사의 시스템은 견고하며, 무슨 일이 벌어지든 불변할 것이라는 믿음.


매번 정기적으로 튀어나오는 사상자들과 그럼에도 변함없이 돌아가는 일과가 유리의 신앙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러나 도시에서 믿음이란 으레 배신당하기 마련이다.


영원히 날갯짓하는 날개는 없었다. 아무리 거대한 날개라도 꺾일 때는 어김없이 왔다. 연기전쟁에서 몰락한 몇몇 날개가 그랬고, 백야 흑주의 로보토미 사가 그랬다.


-부지 매몰을 시작합니다.


-에너지 전송 85%완료.


"유리 날 두고가지마! 유리!"


로보토미 사는 무너졌다. 제 둥지만을 철썩같이 믿던 유리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둥지 밖으로 떨어졌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뒷골목으로. 


그 곳 어딘가에 선 채, 유리는 주변을 불안하게 훑었다.


채도가 낮은 곳이었다. 회색빛으로 죽어가는 건물들이나, 헤진 주민들의 옷가지, 눈빛, 심지어는 그들의 마음까지도 그랬다.


오늘도 누군가 홀로 죽어 있다.


누가 죽으면, 혹은 죽어가면 다른 이들이 다가와 그의 내장을 제 가방 안에 담았다. 꼭 쇼핑 카트에 식료품을 담듯이. 그러고 나면 쥐떼가 파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 되었다. 이런 풍경이 흔했다.


이 밑바닥을 조직이 쥐어짜고, 조직을 손가락들이 쥐어짠다. 걸레 오수마냥 뚝뚝 떨어진 뒷골목의 고혈을 주워마시며 또 누군가가 살았다.


이제 유리는 둥지의 삶이 뒷골목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안다.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외면하고, 인정을 갈구하며 몸과 마음을 깎아내어야 하는 것이 꼭 같음을 안다.


그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던 뒷골목에 떨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공포에 직면한다는 게 이런 걸까.


유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옷깃을 여몄다. 로보토미 사에 있을 적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문득 먼 곳에서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려, 유리는 고개를 들었다. 채도 낮은 풍경 사이로 유난히도 돋보이는 버스 하나가 정차해 있었다. 유리는 하나 남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버스에 적힌 글귀를 읽었다.


"림버스 컴퍼니……."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유리는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쯤 옮겼을 때 버스 차창 너머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위압적인 이였다. 그가 버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말했다. 그 직후 그들의 시선이 유리에게로 쏠렸다.


의문, 적대, 연민…….  달갑지 않은 감정들이 유리에게 와 부닥쳤다. 버스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무언가에 짓눌린듯 몸이 무거웠다.


"공포에 직면하여 미래를 창조하라."


유리가 나직하게 뇌까렸다. 그것이 저를 지켜 줄 기도라도 되는 것처럼. 배신당한 신앙은 찢기고 짓이겨진 채로 여전히 유리의 일부였다.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긴 했지만, 덕분에 다짐이 섰다.


제게 쏟아지는 열 두개의 시선을 마주한 채, 유리는 제 미래를 향해 한발짝 내딛었다.


"저 혹시, 림버스 컴퍼니에서 오신 분들 맞나요?"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이 버스가 저를 어디로 인도할 지, 유리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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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장 스토리 라인 따라서 유리 죽는 파트까지 쭉 쓰려고 했는데 귀찮아짐.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