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둘 사이의 연관성을 말하기 위해선

뫼르소가 나온 원작 '이방인'에 대한 이해와 작가 알베르 카뮈의 철학의 이해

메트로폴라리스의 모티브로 추정되는 영화 메트로폴리스와 표현주의 사조에 관한 이해

그리고 에반게리온 속 AT필드의 설정까지 알아봐야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문사철 3대 개백수양성소 ^공자소크라테스플라톤물로켓^ 정도로만 생각하지 정확히 어떤 걸 연구하는 학문인지는 잘 모르는 편이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철학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에 대해서 탐문하는 학문이다.

'이방인'을 쓴 카뮈는 실존주의 철학자다.

실존주의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선택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말한다.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는 말로도 요약되는데 이게 시발 뭔 개소리일까싶을 것 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라오루의 얀 비스모크는 꼴리는 암컷이기에 얀의 본질은 보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세상이 보추라는 개념이 없는 서글픈 세상이었다면 얀은 본질이 없어지게 된다.

다만 그렇다고해서 얀 비스모크라는 인물의 '실존' 이 사라지는 걸까?

'얀' 이란 인물은 보추가 없어도 존재한다. 즉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태어난 김에 사는 존재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구축해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실존주의적으로 얀은 중성적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머리를 기르고 꼴리는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보추라는 본질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실존주의를 알아봤다.

뫼르소가 나오는 소설인 '이방인'은 실존주의자인 카뮈의 작품이다.

사실 카뮈는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존주의를 비판했다.

실제로도 이방인은 실존주의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이는 카뮈의 '부조리문학' 특징이다.

부조리문학? 톤톤정 해병님께서 톤요일 톤시 톤분에 기열 아쎄이들을 몽땅 해병수육으로 재가공하는 가히 기합차고 신성한 해병 행위의 싸제 용어인 '부조리'가 아니다.

카뮈의 부조리는 '시발 세상이 날 억까해' 같은 느낌이다.

(카뮈의 부조리론 상상도)

카뮈게이의 철학은 그의 작품인 이방인에서 잘 드러난다.

이방인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님 애미뒤짐?

ㅇㅇ




님 사람 죽임?

ㅇㅇ



님 하나도 안 슬퍼함? 사이코패스임?

그런 거 같음

ㅇㅋ 사형



그래도 마지막에는 회개하시죠 형제님

좆까 씨발맞짱깔새끼야 존나 위선적이네




난 먼저 간다 병신들아 호로양봉말좆섹스~


같은 내용이다. 좀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사실, 이방인 하나만으로는 카뮈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카뮈의 다른 저서인 시지프 신화 까지 봐야 대충 이해할만한데

최대한 이해하기 편하게 설명하자면

카뮈는 이 세계, 즉 우주를
거울 던전 어려움 V 버프를 달고 있는 놋쇠황소로 보고 있다.

우린 놋쇠황소를 보고
'아 씨발 저새끼 합 왜 저럼 존나 좆같네' 라고 부조리함을 느낀다.

놋쇠황소는 사실 우릴 조지고싶어서 그렇게 나온 게 아니다. 그냥, 애초에 거던하드 5층 보스로 나올 운명이었다.

이 억까를 당하는 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우린 이 세계가 그리고 우주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어떻게든 의미를 만들어낸다.

'아, 5층 하드가 너무 날먹이면 안 되서 좆같이 낸 거 구나.'

'프문이 씹새끼들이 뉴비 거덜내려고 좆같이 낸 거 구나.'

같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곤 놋쇠황소를 잡기 위해 EGO를 부딪힌다.

마치 현실의 부조리함에 나의 자아를 숙이는 우리들처럼.




그리고 카뮈는 말한다. 정답은 없다고, 사실 놋쇠황소를 안 잡아도 된다. 그냥 벨튀하고 진행 포기를 눌러도 된다.

아니면 아예 거던 하드를 포기해도 좋다.

본질적으로, 세계는 어떤 의미도 없는 곳이다. 의미란 우리 인간이 '믿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것이 곧 부조리함이다.

우린 그 믿음 속에서 휩쓸리고 부조리함에 고개 숙이기 보단 떳떳하게 자신의 믿음에서 스스로를 구축하라는 것이 카뮈의 생각인 것이다.


이 개념으로 다시 뫼르소를 보면, 이해하지 못할 건 없다.
부모의 죽음에 반드시 슬퍼해야한다.
자신의 죄를 최대한 감경받아야한다.

우주는 그런 식의 규칙을 지닌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런 규칙이 있다고 믿는거다.

뫼르소는 이런 규칙에서 부조리함을 느끼고 개썅마이웨이를 타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물론 카뮈가 뫼르소처럼 살아라! 라는 뜻으로 쓴 건 아닐거다. 다만 그의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거리고 믿는다.



이제 원작 이방인과 카뮈의 철학에 대해서 파헤쳐봤으니 메트로폴라리스에 대해 알아봐야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