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이상의 구인회 친구들 몇 명이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얘들아, 내일이 이상 생일인데 다들 준비한 거 없어?"


(아세아)

 "없어."


(갑룡)

 "솔직히 먹고사는 것도 빠듯한데다 딱히 공장에서 빼돌려 선물로 줄 만한 것도 없어."


 가진 것 한 푼 없는 갑룡은 이전에도 공장에서 빼돌린 물건으로 동랑, 동백의 생일 선물을 준 적이 있었다. 물론 걸리면 월급 감봉은 물론, 잘못하면 잘리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난 그냥 술 한 잔으로 퉁치려고 했는데."


 "하나 있긴 하오."  


 림은 바지 주머니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책을 꺼냈다.


 "야, 그거 이상한 플라잉 게이 따라갔다 뒤틀려서 돌아올 때 우리에게 하나씩 돌린 책 아니야?"


 "실수였소. 내가 이상에게 선물로 주려던 책은 바로 이것이오."


 림은 데미안은 집어넣고, 다른 바지 주머니에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꺼냈다.


 "이상은 늘 우리 생일 잘 챙겨주었는데 참... 일단 난 이상이 좋아할 손거울 하나 준비했어."


 "겨우 손거울? 아, 혹시 깜짝 생일 파티 여는 건 어때? 이상도 분명..."


(갑룡)

 "내일이 생일인데 그럴 시간은 있나?"


(아세아)

 "야, 시간이 뭐가 필요해? 그냥 누렁이 데리고 와서 정성껏 설렁탕으로 만들어서 먹인 다음에 누렁이 맛은 어땠냐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곧바로 갑룡이 주먹을 아세아의 면상에 갈겼다. 동랑, 동백도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아세아를 노려보자 아세아는 겁에 질린 채 황급히 달아났다.


 "아세아! 너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했다가는 확 모가지를 꺾어버릴 줄 알아! 아으, 머리야..."


 "세아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 일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소. 제 딴에는 장난이라지만 어떻게 저런 끔찍한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벌릴 수 있는 것이오."


 "...일단 다들 진정하고, 계속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자고."


 "일단 내가 준비해둔 게 하나 있는데 내일 보면 다들 깜짝 놀랄 거야."


 "혹시 우리에게도 설명해줄 수 있소?"


 "안 돼. 내가 직접 말할 거라고. 일단 영지가 끝나고 이상 부른다고 했으니까 너희는 그때 놀래켜 줘."


 다음 날이 되었고, 이상은 일이 끝나고 벗들의 전화를 받아 낭술회를 여는 영지의 연구실로 왔다.


 연구실로 들어오자 숨어있던 영지를 비롯한 구인회 친구들이 나타나며 영지랑 유랑이 미리 준비해둔 폭죽을 터트렸다.


(영지)

 "이상,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축복한단다."


(아세아)

 "생일 축하해, 이상!"


 "이상, 올해도 좋은 일만 있길 빌게."


 "벗들이 날 위해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다니. 정말 고맙구료."


(유랑)

 "여기, 널 위한 선물들이야."


 "게다가 부족한 형편에 날 위한 선물까지 준비하다니."


 이상은 영지 형과 상허, 구인회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보면서 그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왜 눌인은 없는 것이오?"


 "돈 안 된다면서 안 왔어."


 "이상, 내가 술집도 미리 예약했어. 내가 쏠 테니까 다같이 가서..."


 "아니. 난 못 가."


 "동백, 갑자기 왜..."


 갑자기 동백이 이상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이상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분명 임신 테스트기였다. 그것도 선명하게 두 줄을 띄우고 있는.


"아니. 갑자기 왜 이걸 들이대는 것이오? 이건..."


 "그래. 이상, 나 임신했어."


 동백의 충격적인 발언에 모든 구인회 사람들이 시선을 동백에게 집중했다.


 "동백이 이, 임신했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거니?"


(유랑)

"아니. 아주 정확히 들었어."


 "그럼 아비는 누구오?"


 "야, 이 눈치 없는 놈아! 그럼 이 애 아버지가 동랑이겠니?"


 "그러면 저, 정말 이 애가 내 애란 말이오?"


(아세아)

 "당연하지."


 "아니. 그대가 왜 그걸 장담하는 것이오?"


(아세아)

 "내가 다 봤으니까. 너희 둘이 술 잔뜩 마시고 취해서 이상 연구실에 적당히 눕혀 놓으니까 곧바로 서로 끌어안고 몸 섞는 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세아)

 "당연하지!"


 곧바로 동백의 주먹이 아세아의 면상을 정확히 가격했다.


 "그걸 왜 봐, 이 변태 새X야!"


 그걸로도 모자라 동백은 계속해서 아세아를 두들겨패자 동랑, 상허가 달려들어 제지했다.


 "동백, 애도 있는데 진정하고 아세아는 우리한테 맡겨."


 "그러니까 내가 정말 아비가 되었다는 것이오?"


 "물론이지."


 이상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소. 내가 이상적인 아비가 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제대로 준비도 못했고, 동백 그대와 같이 사는 건 상상도 못했으니."


 "이상, 우리도 있는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영지)

 "그래. 꼭 이상적인 부모가 되는데 집착할 필요도 없단다. 나랑 유랑도 좀 보태줄 수 있으니 넌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된단다."


 "다들 고맙소. 최선을 다하겠소. 일단 동백, 부모님한테 이 사실을 알렸소?"


 "아니."


 "그럼 일단 난 내가 알아서 잘 설명할 테니 동백은 그대 부모님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오. 결혼 준비에 육아 준비도 해야 하니 당분간 할 일이 꽤 많을 것이오."


 "좋아."


 그렇게 깜짝 생일 파티가 끝나고 동백과 돌아가던 이상은 누군가 없는 것을 깨닫고 구보에게 물어보았다.


 "잠깐, 그런데 동랑과 아세아는 어디 있는 것이오?"


 "하도 속을 긁어대니 동랑이 T사로 끌고가서 밀고한 모양이야."


 "그, 그게 무슨 소리오?"



 한편, 아세아는...


(아세아)

 "아이고, 삭신이야. 내가 대체 뭘 잘못... 어?"


 잠에서 깨어난 아세아의 눈앞에 톱니바퀴 가득한 연구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일어나셨군요."


(아세아)

 "여, 여긴 어디야?" 


 "이곳은 T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연구하다 걸리면 오게 되는 곳이랍니다. 그래도 당신은 운이 꽤 좋았어요."


(아세아)

 "아니. 대체 누가..."


 "아무튼 다시는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고 빨리 뭐라도 연구해서 성과를 내는 게 좋을 거예요. 목숨이 아깝다면 말입니다."


(아세아)

  "...안돼!! 대, 대체 이 무슨..."


 아세아는 순식간에 T사의 노예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에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