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약스포)N사에 입사한 이상-1 -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채널 (arca.live)


 솔직히 그때 난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었소. 연구원으로 그럭저럭 말이지.


 그런데 우연히 구보가 익숙한 얼굴의 피험체를 데리고 오는 것 아니었소.


 "이상, 이번 실험의 새 피험체야."


 "..."


 "쥐, 쥐는 자? 아니, 대체 왜 헤르만이 우리에게 이 사람을 맡긴 것이오?"


 "헤르만이 네가 이단심문관 파벌 공중분해시킨 거 칭찬하면서 맡긴 거야."


 "그래서 실험 내용은 무엇이오?"


 "별건 아니고, 사실 얘가 경험 통조림으로 세뇌된 피험자거든? 그래서 경험 통조림으로 세뇌된 상태인 사람이 다른 경험 통조림을 섭취해서 성격, 기억 등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야. 그저 경험 통조림 먹이면서 천천히 확인해보면 돼."


 "알겠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경험 통조림을 주기적으로 먹였는데 거의 숨만 붙어있는 시체와 별반 다를 바 없어서 그런지 큰 저항은 없었소.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사람이 변해가는 게 눈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오.


 "이름은?"


 "파우스트입니다."


 "..."


 아무런 생기도 없던 이가 천천히 상호작용을 시도하고, 도서나 물품을 요구하는 걸 넘어서 나중에는 아예 우리와 함께 연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소.


 "아주 훌륭하구나. 이런 건 대체 어떻게 해내는 거니?"


 "파우스트는 원래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아는 게 많았어요."


 "그럼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무엇을 했나?"


 "어, 그러니까... N사에 입사한... 것 말고는 기억이 흐릿하네요. 나중에 떠오르게 된다면 그때 말해드리죠."


 "알겠어, 파우스트. 혹시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연구할 생각은 없니?"


 "생각은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확실하지 않아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군요."


 "그래. 천천히 고민하렴. 시간은 많으니까."


 그렇게 헤르만은 보고서에 뭘 끄적이면서 떠났고, 곧 난 파우스트 양과 함께 연구하게 되었네. 하지만 어느 날,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의 삶은 확 달라졌소.


 "이상 씨, 고백할 게 하나 있어요."


 "무엇이오?"


 "저, 사실 이상 씨를 연모하고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이렇게 같은 방에 함께 머물며 연구도 함께 한 사이니 그런 연모의 마음이 싹트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오."


 "하지만 아직 난 파우스트 양을 마음에 품을 생각이 없소. 벗이라면 모를까, 지금 더 가까이 거리를 좁히는 건 내게 부담되는 일이오."


 "혹시... 아닙니다. 그저 하던 일 하고 이번 일은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제가 너무 성급했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조용히 끝나는 줄 알았소.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네.


 "이상 씨, 여기 제가 미리 이상 씨 커피도 타놓았습니다."


 "고맙소, 파우스트 양."


 파우스트 양이 미리 타놓은 커피를 마시는데 졸음이 떠나가기는 커녕, 도리어 졸음이 쏟아지니 어쩐 일인지 몰라 파우스트 양에게 뭐라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목소리는 그저 힘없이 내 입안을 맴돌 뿐이었고, 난 그렇게 눈이 감겼소.


 그리고 눈을 떠보니 파우스트 양이 제 뽀얀 속살을 드러낸 채 내 침대 위에서 나와 살을 맞대고 있었소. 처음에는 당혹스러워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파우스트 양에게 물어보았네.


 "하앙, 하. 이상 씨, 일어나셨군요."


 "파우스트 양, 이 대체 무슨 일이오?"


 "전 그저 아세아 씨께서 조언한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원래는 독한 맥주 잔뜩 마시고 취한 틈을 노리려고 했지만 헤르만 씨가 음주는 절대 안된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아달린으로 대체했어요."


 "잠깐, 아세아라고?"


 "네. 예전에 동백 씨가 이상 씨에게 맥주 잔뜩 먹이고 이상 씨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고 말이죠."


 부끄럽긴 했지만 그제야 동백, 그대가 떠올랐소.


 "후우, 이런 말이 나와서 유감이긴 하지만, 파우스트 양. 잊고 있던 이가 떠올랐소."


 "..."


 그때부터 잠시 동안이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동백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날 어딘가로 데려가지 않을까하는 실없는 기대를 품기도 했소.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안 가 구름처럼 흩어졌고, 결국 난 절망하고 파우스트 양을 품게 되었지.


 그렇게 지금까지 나와 파우스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살고 있었소. 하지만 동백 그대가 정말 내 앞으로 이렇게 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구료.




 "그래, 이상.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유감이지만 내 지게는 이미 책임질 것들로 가득하오. 내 날개는 꺾였고, 그저 새장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오."


 "그래. 잘 가."


(아세아)

 "그런데 동랑, 갑룡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 녀석들은... 내가 직접 영지 곁으로 보내버렸어."


 "..."


 "그리고 너희도 곧 그들을 따라 먼저 떠난 영지 앞에서 사죄하게 될 거고."


 "잠깐, 뭐?"


 동백은 곧바로 기폭장치를 꺼내들었다.


 "이제 너희가 마지막이야. 이 빌어먹을 배신자 새X들아."


 "아니. 동, 동백, 난 파우..."


 "그래. 특별히 네 소중한 망할 불여우 년은 살려줄게. 어차피 평생 고통 받게 될 테니까."


 동백은 그대로 기폭장치의 버튼을 눌렀고, 주위가 그대로 번쩍임으로 가득해졌다.


 "이, 이상 씨!"


 아이들을 재우다 큰 폭발음을 듣고 한껏 너덜너덜해진 문을 열고 나온 파우스트의 눈앞에는 폭발과 함께 육편이 되어버린 그들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결국 이렇게 떠나버리는군요. 평생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저 혼자 남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