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작.


"......으음."


"어...별로이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별로이신 것 같군요..."


업무 종료가 승인 된 후. 이상의 방에는 평소와 다르게 그 이외의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평소같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상 건너편에는, 이스마엘이 머리를 긁적이며 앉아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건빵 한 봉지가 놓여있었다.


"그...그래도 저희 배에서는 나름 다들 죽여준다면서 별미였는데 말이죠...기름에 튀겨서 먹으면, 정말로..."


"후후. 그 소리, 어쩐지 그레고르한테서 몇달 전 닭에 대해서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소만."


"으윽..."


이스마엘은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다과용으로 가져왔던 튀긴 건빵을 치우려 손을 뻗었다.


"아니, 그냥 두시오."


"그치만-"


"다과는, 벗들과 같이 먹는 분위기의 맛으로 먹는 것이니."


이상은 그렇게 말하고는 건빵을 한입 더 베어물었다. 잠시동안 입 안에서 애써 녹인 후, 그는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오? 간식까지 선물하고 말이오."


"아, 그게..."


이스마엘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 쭈뼛거렸다.


"그...어금니 보트 센터에서 지낼 때 말이죠..."


"으음. 단단한 땅을 밟고 있던 때가 그립구료."


"그때...그..."


이스마엘은 잠시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베베 꼬더니, 이내 털어놓았다.


"제가 그때 태도가...좋지 않았다는 것은 알아요."


"신경 쓸 것 없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소."


"그래도...그때 저는..."


******

"음...이스마엘 양, 있는가?"


"......"


"오늘도 작살을 갈고 있구료..."


"......"


"그...오늘은 크랲게가 보기보다 성공적으로 요리되었다만. 한번 와서 먹어보는 것이 어떻소? 심지어 오티스마저 나쁘지 않다고 평가를 내렸소만..."


"......"


"아...혹시 바쁜 것이라면, 내 조금 이스마엘 양 것을 가져왔으니 편할 때 데워서 자시게나."


이상은 찬합을 조심스레 이스마엘 옆 탁자에 놓았다.


"그럼...혹여나 마음이 내키면 나오시게. 로쟈 양이 살 오른 다리를 전부 처리해 버리기 전에 하나라도 챙기려면 서두르..."


뎅그렁.


이상이 둔 찬합은 어느새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음식이 조금 흘러나와 바닥에 뿌려졌지만, 이스마엘은 아무 표정변화 없이 팔꿈치를 원래 자리로 둔채 작살을 갈 뿐이었다.


"......"


"......"


"...그...내일 요리가 더 성공적이라면 좋겠구료."


"......"


"그럼, 이상이오."


"......하."


이상은 조용히 뒤돌아 방을 나왔다. 찬합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

"이상 씨는 노력하셨는데.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아시고는, 제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주려 하셨는데."


"......"


"이상 씨도 K사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많이 마음을 다잡으셨을 텐데, 저는 그딴 식으로 반응했죠."


"...이스마엘 양."


"하하...참, 제가 생각해도 거지같네요, 저는. 집념에 삼켜져서, 손을 뻗어주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그 손을 쳐내기까지 하다니..."


"이스마엘 양."


"대체 저란 사람은...이런 기회가 너무 과분하지 않-"


딱.


"야앗?!"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던 이스마엘은, 갑자기 정수리를 찌르는 작은 충격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본 것은, 건빵 하나를 손에 쥐고는 이스마엘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 이상이었다.


"호오. 이것 생각보다 더 단단하구료."


"지금...뭐하신..."


"이제 됐소."


"에?"


"내 원래는 상관없다고 넘어가려 하였으나, 이스마엘 양 스스로가 벌을 받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듯 하여 내가 미리 나섰소. 자, 벌이오."


"아니 그게 무슨-"


"이제 벌은 주었으니, 이 이야기는 끝난 것이오."


이상은 건빵을 내려놓고는 이스마엘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스마엘 양. 그대는 나의 벗이오."


"이곳의 수감자들 또한. 그리고 관리자 단테 또한, 나의 벗이오."


"다들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오. 그저 회사 동료로만 보거나, 관심이 없거나, 못 미더워 하는 자도 있겠지."


"상관없소. 그대들은 나를 아직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는 그대들을 벗 삼으리라 마음을 먹었으니. 비껴보지 않고, 다가가보는 것이오. 그뿐이오."


"보트센터에서도 그랬을 뿐이오. 그 과정에서 내가 상처를 입었다면, 그건 그대를 벗으로 삼고 마음을 기대기로 한 나의 선택의 결과이자 책임이오."


"아니...그건 아무래도 궤변 같은데요..."


"그대 역시, 과거에 벗들이 있었고, 그 벗들과 마음이 어긋난 적이 있겠지. 그것일 뿐이오."


"이스마엘 양, 정말로 그대의 언행에 대해 죄책감이 있다면, 그 어긋난 마음을 도로 끼워놓는 데에 힘을 쓰시오."


"스스로를 탓하면서만 지내기에는, 단테가 돌려주는 시간으로도 터무니없이 모자르니."


이상은 빙긋 웃으면서 건빵을 입에 물었다.


"참, 요즘에는 이상할 정도로 긍정적이군요."


"음. 이상이오만."


"...전에도 궁금했는데, 그거 농담으로 하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고 하는 건가요?"


이상은 알듯 모를듯 미소를 지었다. 잠시동안 둘 사이에는 부드러운 정적이 흘렀다.


"게다가 이스마엘 양은 오늘 밤, 걸음을 잘못하였소."


"네?"


"그대는 오늘 나에게 사과를 하러 왔었지. 과거의 잘못된 언행 때문에."


"네, 그런데 무슨-"


"그대가 정녕 실례를 범한 자라면, 내가 아니지 않소."


"...!"


이스마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상 씨."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내 오늘 이후로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리라. 허나 그전에, 그대가 스스로 와주었으니 이 말만은 해야겠소."


이상은 이스마엘의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그대가 겪은 아픔, 고통, 그리고 성장. 그것은 그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일테지. 그리고 그대는 그것을 항상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고."


"허나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마구 칼로 쑤시고, 찢어발기고, 폄하한다면, 그대는 어떤 심정이겠는가?"


이스마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손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결코 아니었소. 그때는 서로 감정이 격해지고, 서로 말을 참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허나 이스마엘 양, 그대는 이젠 달라졌지 않은가."


"자신의 과거 언행을 돌아보고, 그것이 정녕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면, 그 판단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하는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같이 사소한 잘못에도 사과를 하러 온다면, 제일 큰 잘못도 바로잡으러 가야 하지 않겠소?"


이스마엘의 떨림은, 어느새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몇번이고 반복하더니, 이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는...그러기엔..."


"무엇이 싫은 것이오?"


" 그 사람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이스마엘은 그대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녀의 주먹 밑에 건빵 하나가 바스라졌다.


"그 사람한테 가서 사과를 하라고요? 그 다음에는요? 그 사람이 순순히 받아줄 것 같아요? 또 무진장 생색 내면서 뭐라뭐라 사람 속을 긁어대겠죠, 평소처럼!"


"애초에 그 사람이랑은 맞지를 않는다고요! 아예 주먹다짐까지 간 사이인데, 뭘 더 할말이 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친해지라고!!!"


"내 말을 오해한 것 같구료, 이스마엘 양."


이상은 나지막히 끼어들었다.


"나는 사과를 하라고 하였지, 친해지라고 하지 않았소."


"네? 그건 또 무슨..."


"지는 것 같소? 자신을 낮추는 것 같소? 그래서 분하오?"


"아니...그렇게 말하시면...그...맞긴 하지만..."


"이스마엘 양. 사과를 한다고 해서 그대와 히스클리프 군이 곧바로 친구가 되는것도 아니고, 되어야 할 의무는 없소. 사과는 항복이 아니며, 친목 또한 아니오."


"그럼 무슨-"


"사과는, 끝에 끝에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잡는 것. 그것이 사과라는 것이오."


"그대가 히스클리프 군에게 그때 일은 미안했다고 한다면, 분명 이를 이스마엘 양이 진 것으로 보는 자들도 있겠지. 허나 이스마엘 양 역시 그들과 같은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소."


"그대가 사과를 하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오. 사람은, 본인의 과오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존재이기에."


"그렇게, 날아오르는 존재이기에."


이상의 얼굴에 잠시 아련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하지만 그쪽은 그 이후로 저한테는 전혀 사과가 없는걸요? 그쪽은 제게 맞는 소리만 한것 같아요?"


"설마. 그대 역시 히스클리프 군의 언행에 많이 상처를 입었을 테지."


"허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상처를 주어도 된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세상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오."


"누군가는, 먼저 그 연쇄를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성장한 것으로 따지면, 사과를 하는 것은 이스마엘 양이 먼저 히스클리프 군을 제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그대가 패배한 것으로 생각할 이유도 없소."


"하...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어렵다면, 적어도 마음이라도 잡아 보시게나."


"그래도...제가 그때 그런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스마엘 양."


이상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딱히 화가 난 투도 아니었다. 허나 그에게는 아주 어렴풋이 서늘한 기운이 풍기는 듯 했다.


"나는 알고있다네. 무심코 던진 말에 생긴 상처가, 곪고 곪다가 썩어 떨어져 버리면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


이스마엘은 완전히 말문이 막힌 표정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장일 필요는 없다네. 어쩌면 내일, 다음 주, 혹은 내후년일지도 모르지. 허나 결국은 그대가 히스클리프 군이 무엇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에게 그때 내벹은 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깨닫는 때가 올 것이오."


"그때가 되면...적어도 그때라면...해야 할 말을 삼켜버리는 일은 없으면 하오."


다시 둘 사이에는 침묵이 찾아들었다. 지금까지 중 가장 긴 침묵이었다.


"그..."


"음?"


"노...력은...해 볼께요..."


"음. 우선은 그것이면 됐소."


"당장 달라지리라 생각할 정도로 우둔하지 않고, 그렇게 강제할 생각도 없소."


"그저...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기만 하게나."


"히스클리프 군에게는...때가 다가오고 있는 듯 하니."


"하아..."


이스마엘은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참...이상 씨, 원래 이렇게 말이 많으신 분이었나요?"


"이상하오?"


"아니 참..."


문득 맥이 풀린 듯, 이스마엘은 잠시 웃었다.


"이스마엘 양."


"먹다보니 정이 드오, 이 건빵."


"상한 우유 먹고는 얼굴변화 없던 사람에게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한데요..."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마시오."


"아니 그거 일부러 하는 거 맞죠?!"


림버스 컴퍼니의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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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 적어도 4.5장 일을 히스도 이스도 인지하고 행동하는 장면 나왔으면 좋겠음.


다음에는 어느 수감자들 케미로 써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