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말은 진실입니다. 저도 음주가 선행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진실이지요. 그러나 빌어먹어야 할 지경의 가난은, 존경하는 선생, 그런 극빈은 죄악입니다. 그저 가난하다면 타고난 고결한 성품을 그래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빈 상태에 이르면, 어느 누구도 결단코 그럴 수 없지요. 누군가가 극빈 상태에 이르면, 그를 몽둥이로 쫓아내지도 않습니다. 아예 빗자루로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쓸어 내 버리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모욕을 느끼라고 말입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극빈 상태에 이르면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드니까요."

-소냐(소피야 세묘노부나 마르멜라도바 소네치까)의 친아버지 세묜 자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의 대사




초반에 나오는 대사지만, '초인' 개념보다 죄와 벌 전체를 훨씬 관통하고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함


작중에서 주인공 로쟈(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하려 한 표면적인 동기는(내면적인 동기는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하기 위함도 있음)


1. 그녀에게서 불쾌함을 느꼈고, 그녀를 만나고 오는 길에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악인이며 죽어도 싸다는 등의 말을 하는 걸 듣는 등 여러 우연이 겹치자 우연이 아니라고 느낌


2. 여동생 '두냐'의 처지가 '소냐'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어 돈을 구하기 위해.




여기서 소냐가 어떤 처지인지 살펴보면, 일단 친아버지인 마르멜라도프랑 계모 카체리나 둘다 제정신이 아님.....

마르멜라도프는 직장을 잃어서 돈이 없는데, 카체리나가 양딸 소냐를 학대하며 돈을 벌어오라고 하다가 소냐가 진짜로 몸을 팔아서 30루블을 들고 옴

근데 그게 남들한테 들켜서 노란 딱지(옛 러시아에서는 매춘부한테 노란 딱지를 붙였음)가 붙여지고, 집에서도 쫓겨남

마르멜라도프는 이걸 안타깝게 여기다가 직장을 새로 구하는데, 카체리나는 이에 아주 행복해함

근데 전재산은 카체리나 가방에서 훔친 뒤 그 돈을 전부 술 마시는 데 씀

돈이 없자 이젠 소냐한테 가서 돈을 달라고 함

소냐는 아무 말도 없이 가진 돈을 아버지한테 줌




쓰다 보니 뭔가 길어서 귀찮아졌는데 로쟈의 여동생 두냐도 몸을 파는 거까진 당연히 아니지만 로쟈의 대학 비용과 운명을 위해 존나 쎄해보이는 남자(45살)와 결혼을 하게 될 예정임

로쟈 본인 자체도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고



어쨌든 제목의 이유는 앞의 인용한 문장처럼 '가난은 고결한 성품까지 침범할 순 없지만' '극빈은 그럴 수 있기' 때문.

읽다보면 극빈이 진짜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절실히 느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