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 진지 문학 시리즈

홍루와 이상: 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97410392?target=all&keyword=%ED%99%8D%EB%A3%A8%EC%99%80+%EC%9D%B4%EC%83%81&p=1

이상과 이스마엘: 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97679413?target=all&keyword=%EC%9D%B4%EC%83%81%EA%B3%BC+%EC%9D%B4%EC%8A%A4&p=1#comment




<휴우...드디어 육지구나.>


유난히 미적거리게 돌아가던 하루가 끝나고, 나는 잠시 바람 좀 쐴 겸 메피스토펠레스 밖에 기대고 있었다.


<하.>


뭐, 사실 이런 머리가 되고 나서 딱히 공기가 맑든 탁하든 독으로 차있든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는 했지만. 내심 그 사실을 다시 깨닫고는 스스로에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라도 내보지, 뭐.>


그대로 구름 낀 밤하늘 아래에서 쉬고 있자니,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 관리자 양반?"


<아, 그레고르. 불침번 끝난거야?>


"뭐 아직 좀 더 남았지만...누가 나와있나 궁금해서 말이지."


그레고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자...아, 음..."


갑자기 그레고르가 이상하게 움찔거렸다. 담뱃갑을 들고 있던 팔을 뻗으려다, 급하게 다시 내린 듯 했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넘어가 보려 했지만, 뭐, 그레고르가 연기를 못하는 건 한두번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마음만 받을께, 그레고르.>


"아잇, 진짜...너무 티났나...미안해, 관리자양반. 누구랑 대화할 때면 계속 습관이 되어서 말이지..."


그레고르는 급히 담뱃갑을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지금와서 딱히 내가 이런거 하나하나에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머리를 버스에 기댔다.


<읏.>


"음? 왜그래?"


<아니, 그냥 어깨가 좀 결리네.>


"그거...그곳 아니야? 그때 작살로..."


얼마 전, 아직 방황하던 이스마엘의 흔적. 비록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지만, 내 몸은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연약하고, 심지어 나를 위해 돌아갈 시계조차 없다. 그러니 아직 좀 불편함이 남아있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 참...길잡이양반은 이럴 때 회복 앰플이나 몇 방울 줘도 되지 않나..."


<그녀석은 애초에 이거 말고는 딱히 회사 자산으로 쳐주지 않을 걸?>


나는 내 시계판을 톡톡 쳤다.


"아니, 그래도..."


<괜찮아. 이제와서.>


이 말에 거짓은 없었다. 지금까지 시계를 계속 돌리면서 겪은 아픔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와서 어깨의 시큰거림이 딱히 내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어차피 시계 돌리는 데는 상관없잖아.>


쿵.


갑작스런 소리에 나는 놀라 돌아보았다.


그레고르는 굳은채로 담배연기를 피며 서 있었다. 허나 그의 오른팔이 무의식적이었는지 움직여 버스 옆을 친 듯 했다. 아까와의 차이점은, 이번에는 그레고르는 그 팔의 움직임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듯 했다.


"...이제와서 상관없다고?"


<왜, 왜 그래, 그레고르?>


나는 살짝 당황한 채로 물었다.


"괜찮을 리가 있겠냐."


툭.


그레고르가 물고 있던 담배는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나 지금 그에게는 그건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왜 그러는 거야...대체...>


"아니, 관리자양반 이야말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뭔데 대체?>


나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평소에 그레고르가 발끈하거나 분해하는 것은 봤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그런게 아니었다.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매서운 눈빛은 그가 정말로 진지하게 내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리자 양반."


<ㅇ, 왜?>


"혹시 커피 좋아해?"


갑자기?


<아니...내가 이래서는 마실 수 없는거 잘 알잖아...>


"내가 G사에 있을 때."


실없는 농담으로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지만, 그레고르는 내 말을 끊고 계속했다.


"잘 알던 후배 한명이 있었어. 시술 후에 만났지."


"우리 둘이 친해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어. 아니 애초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처지에 대해 동질감은 있었을 테니까."


"그 후배는 커피를 참 좋아했어. 그 때문에 꼭 전장에서도 아침에 시간이 난다면 커피 한잔을 고집하더군."


"당연히 몇몇은 뭐하는 시간낭비냐고 비웃었지. 하지만 그녀석은 진지했어. 물 온도는 얼마여야 하고, 콩은 얼마나 곱게 갈아야 하고, 시간은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매번마다 듣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커피를 내려줬지."


"나름 재밌었어. 잠시동안 일상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레고르는 신발을 들어 떨어진 담배를 짓밟았다.


"뭐, 물론, 전쟁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커피 내릴 시간조차 없이 싸우게 되었지. 그녀석도, 처음에는 '모닝커피 제대로 한잔 내려 마시지 않으면 전투효율이 나지 않는다고요!' 라면서 너스레 떨던 것과는 달리, 어느새 커피 없이도 그럭저럭 싸우게 됐어."


"아니, 오히려 더 잘 싸우게 되었더라? 그녀석도 전장에서 짬밥이 생긴 거겠지."


"뭐, 그 다음 G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테지. 그치만 그녀석은 살아남았어. 그 다음 바로 서로 뿔뿔히 흩어지기는 했지만."


그의 신발에 밟힌 담배에서는, 어느새 연기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그 후로 얼마나 지났던가, 어느날 그냥 뒷골목을 지나가다가, 그녀석을 발견했어."


"우리가 본 녀석들과 같이...부랑자가 된 채, 꾀죄죄한 누더기나 걸치고는 웅크려 앉아있었지."


"그런걸 내가 그냥 볼 수가 있나. 당장 가서 일으켜 세워줬어. 다행히 그녀석도 나를 알아보더군. 예전같이 힘차게 인사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뭐, 더 끔찍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는데. 살아있는 게 어디야."


"바로 이렇게 그녀석에게 말해줬어. 그러고는 자판기 하나로 데리고 가서, 커피 하나를 뽑아줬지. 한잔 마시고 기운내라면서. 그랬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런건 뭐하러요?' 라더라."


그레고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캔커피 하나에도 미학을 토로할 정도로 열정적이던 놈이, 이젠 커피는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린거야."


"그치만 괜찮겠지, 응? 어쨌든 우리는 살아남았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석이 전장에서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걸 멈춘 게."


그레고르는 그대로 나를 또렷히 쳐다보았다.


"아픔을 놓아버리지 마. 업무 효율이고 나발이고, 그딴건 필요없어."


"임무는 실패할 수 있지. 다치고, 구를 수 있어. 그렇지만...그 아픔을, 고통을, 그런 인간적인 걸 절대 놓아버리지 마."


"관리자양반도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니까."


그는 그의 오른팔을 슬쩍 들어보였다.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뭐, 계속 관리자 양반에게 시계 돌릴 일을 만들어버리는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되지 않지..."


"그래도, 염치 없지만, 이 모든 여정이 끝났을 때, 관리자 양반이 몸까지 그 시계가 되어버린다면, 그건 담배 백 보루로도 태워버릴 수 없을 뒷맛일 거야."


그레고르는 담배 한대를 더 꺼내어 입에 물었다.


"불침번 서러 돌아가야겠네."


<어? 어어...>


"뭐, 이만 간다. 얼른 들어가 쉬어."


그는 내 어깨를 툭툭 두르리고는 뒤를 돌아서 버스 입구로 걸어갔다.


<그레고르.>


"응?"


그레고르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그 말대로 나는 나로서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시계를 돌리는 것. 그것만이 관리자의 몫일까? 뭐, 베르길리우스 그 양반이라면 그렇다고 할지는 몰라도...


<담배 한대 줄래?>


"어...? 아니, 상관은 없는데, 관리자 양반은..."


<아니, 나도 나온김에 같이 불침번 설까 해서.>


나까지 나를 시계로만 생각하면 안되겠지.


<같이 피는게 분위기 있잖아?>


그레고르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씩 웃었다.


"하, 돛대가 아닌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그는 담배 하나를 또 꺼내 불을 붙인 후, 내게 내밀었다.


<후우...>


뭐, 그래봤자 나는 담배 냄새조차 맡을 수 없으니, 이런 건 죄다 싸구려 연극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걸 낭만이라고 하나?>


"하. 낭만은 무슨. 그냥 피우고 싶으니까 피우는 거지."


아직은 이런 연극을 계속해 보자.












"...쯧."


버스 내. 오티스는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붙들고 있는다라..."


그녀는 무의식적인지 회중시계를 손안에서 만지작거렸다.


"그렇다면, 이름마저 두고 온, 아무것도 아닌 저분은, 대체 누구를 붙들어야 하는 것일까..."


"가만...이게 누구 이야기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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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글구 오티스녀석도 떡밥이 심상치 않아.


다음은 어느 수감자 케미로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