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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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오늘 숙제도 이거만 하면 끝이네."


어두침침한 색상의 중갑을 입은 버서커가 가디언 토벌 게시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데스칼루다를 토벌하기 위해서 매칭을 잡았다. 온갖 숙제를 끝내고 마지막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매칭을 한 덕분에, 데스칼루다였음에도 매칭이 잘 잡히지 않았다. 버서커는 토벌 게시판 옆에 있는 베른 성의 명물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게 바로, 레기오로스의 수염이라고!"

"이야, 자네가 잡은거야?"


버서커는 왜 사람들이 저런 걸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를 다섯 번쯤 들었을 때, 드디어 매칭이 잡혔다.


"오, 드디어…"


버서커는 새벽의 매칭 파티가 정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매칭이 잡히고 파티원의 각인 상태도 확인하지 않은 채 레펠을 탔다. 하지만 버서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기요, 1번님? 신호탄 좀."


그가 아크라시아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신호탄을 던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2번은 버서커였기에, 여기서 자신이 던지면 뭔가 진다고 생각되어 더 오기가 생겼다.


1번 파티원, 건슬링어가 그때 입을 열었다.


"네? 아… 저 신호탄 없는데요?"


"예?"


버서커는 순간 놀랐다.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등등 죄송하다는 마음을 비춰 보이는 단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건슬의 채팅에서는 뻔뻔함만이 느껴졌다. 건슬링어가 그렇게 나오자, 버서커는 화가 치밀었다.


"일 번이 신호탄 던질 때까지 난 안 한다."


버서커는 그 자리에 풀썩 앉아버렸다. 그러자, 다른 파티원들도 건슬링어의 뻔뻔한 채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버서커의 옆에 앉기 시작했다. 속옷만 입은 리퍼가 그의 옆에 앉고, 모코코를 입은 디스트로이어는 아예 그 중앙에 모닥불까지 깔고 앉았다.


"저도 일 번님이 던질 때까지 안함."


"나도 안함."


건슬은 갑작스러운 노쇼 선언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미친놈들. 그냥 걸어서 찾아. 데칼 맵 좁잖아."


"응 안해."


"뒤져도 안함."


"니 새끼 태도 오늘 고친다."


셋은 방금 만났지만 친구라도 된 것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다. 건슬링어는 데스칼루다를 찾기 위해 맵으로 나갔고, 보스를 발견한 듯 멈춰서 딜을 했다. 


"야, 여기 찾았다. 빨리 와서 딜 해!"


"꺼져, 병신아."


하지만 셋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건슬링어가 데스칼루다를 셋이 있는 장소로 끌고오자, 그들은 아예 위로 올라가서 정모를 시작했다.


"아오 씨발! 그냥 나 혼자 잡는다, 병신들아!"


건슬은 그렇게 말하고는 데스칼루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신호탄도 안 던지는 건슬이 좋은 각인을 차고 있을리가 없었다. 특성합 1500, 각인 333도 맞추지 않았던 딱렙 건슬은 물약도 마시지 않다가 1 데스를 기록했다.


새벽 다섯 시에 매칭을 돌린 백수 삼인 팟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부활한 건슬링어를 반겨주었다.


"병신 어서오고."


"데칼한테 쳐 뒤지냐?"


"물약도 그렇게 아끼는데 우리도 체력 좀 아껴야지, 암."


건슬은 화가 끝까지 치밀어올랐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데스칼루다에게 도전했지만, 이내 자신의 목숨 네 개를 모두 까먹고 파티를 탈퇴한 후 가디언에서 사라졌다. 밑에서는 상대를 잃은 데스칼루다가 날뛰고 있었다.


셋은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 데스칼루다를 무난히 토벌했다. 영혼을 수확하고, 그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한 후 헤어졌다. 버서커가 마지막 숙제를 마치고 나가려는 찰나, 아까 그 속옷만 입은 변태 리퍼에게 귓속말이 왔다.


"통쾌하긴 한데, 님 같은 사람 처음 봐요. 혹시 저런 애들 평소에도 이렇게 상대하고 다니세요?"


"아니."


리퍼는 순간 놀랐다. 컨셉충 아니면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유를 물었다.


"근데 왜 오늘은 그렇게 했어요? 건슬 말투때문에?"


"건슬 말투 때문도 있긴 한데, 더 큰 이유가 있었거든."


리퍼는 건슬의 말투 말고 다른 이유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것 말고 더 큰 문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궁금증을 느껴 재차 물었다.


"그럼 왜 그랬어요?"


"나도 신호탄 없었어."


리퍼가 다시 귓속말을 보냈을 때, 그는 이미 로그아웃 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