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등학교 때 좀 찐스러운 애였음.

키 작고 소심한데다 집까지 오지게 못살았으니까 말 다했지.

나를 주로 괴롭히던 애들은 대여섯 명이었는데 걔네가 입학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내 점퍼를 쓰레기장 어딘가에 숨겼음.

추우면 자기들처럼 노스페이스 사 입으라고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함.

무튼 바들바들 떨면서 하교 후에 쓰레기장 뒤지고 있었더니 같은 반 여자애가 말을 걸더라.

그 여자애도 만만해서 종종 무시당하는 편이었지만 모범생이라 그런지 괴롭힘은 안 당하는 아이였다.

안 울려고 애쓰면서 자초지종을 말함.

자기 체육복 윗도리 나한테 입으라면서 주고 그 여자애도 내 점퍼를 찾기 시작함.

결국 점퍼를 찾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ㅋㅋㅋㅋ

그 일을 시작으로 제법 빠르게 친해졌음.

같이 시내도 가보고 점심을 함께 먹는 게 나한테는 정말 행복했음.

그전까진 여자랑 접점도 없었던 놈이라 엄청 신이 났지.

결국 여름방학 때 충동적으로 고백을 했고, 여자애도 넙죽 받음.

남들이 알면 여친까지 싸잡아서 조롱할 게 뻔하니까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몰래 연애함.

둘다 쑥맥에 모쏠재질이라 부모님도 의심 안하시더라.

첫 색수는 사귄 지 100일 되는 날 함.

존슨이 많이 작은게 콤플렉스여서 긴장했음.

동시에 기대에 부풀어가지도 존나 흥분했지.

막상 해보니까 혼자서 해결하는 것보다 부드럽고 따뜻하긴 한데 쾌감은 그리 안 크더라.

그래도 이런 두근거림을 맛보는 거 자체가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당연히 매일매일 놀러다니며 사귄 건 아니었음.

여친이 공부벌레에다가 나는 돌아댕길 돈도 없었지.

그래도 언제나 확실한 내 편이 있다는 게 좋았음.

어찌저찌 시간이 흘러 수능을 쳤고 여친은 수의대에 붙음. 

합격한 날 둘이서 운동장 한가운데에 춤추면서 난리가 났음ㅋㅋㅋ 

난 빨리 돈 벌려고 대학을 안 감.

그리고 내가 뭔 생각이었는진 지금도 모르겠는데, 다짜고짜 여친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지.


반응 좋으면 더 나중에 일어난 이야기도 쓸게.

순애챈에 글 올리는 거 처음이라 떨리는데 읽어줘서 고맙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