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결혼반지 맞춘 순붕이 썰가져왔다. 글을 쓰는 행위가 몇 년 전이 마지막이라 잘 못 쓸지도 모르는 점은 미안하다.
문제 시 알빠노


 첫만남으로부터 9년, 사귄지 8년된 아이보와 결국 결혼을 결심했다. 토요일인 어제, 결혼 반지를 보러 함께 종로로 나섰다. 둘다 집 밖에 나오는 걸 안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결혼반지를 빌미로 오랜만에 나오니 나도 좀 신났고, 날도 따스하니 좋았고, 아이보도 티는 크게 안 나지만 흔치않게 들뜬 모습이었다.

 결혼식을 안 하는 게 로망인 나에게도 유일하게 낭만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의미를 담은 반지였다.  악세서리 슬롯은 온몸에 손목시계 슬롯, 머리끈 슬롯, 반지 슬롯 하나씩만 존재할만큼 거추장스러운 게 싫은 나지만, 이상하게 유의미한 반지 하나는 욕심내는 편이었다.

 평이 좋은 샵인데 예약없이 막무가내로 온 터라 문 앞에서 '예약하고 올걸'하는 망설임이 있었다. 이런 나를 아이보는 조금 바보같이 보는 것 같았다. 이건 내 추측인데, 좀 귀엽게 봐줬을 가능성도 있다.(희망)

 쭈뼛쭈뼛 들어가서 상담사분을 만나고 자리에 앉았다. 눈 앞의 디스플레이에 커플링들이 늘어서있는데 신기했다. 내가 이런 곳을 진짜로 오게 될 줄이야... 기어코 옆의 아이보와 오게된 게 새삼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꺼내주시는데 생각보다 팍 꽂히는 디자인이 없었다. 다행이었던 건 첫 번째로 친절한 직원 분의 추천 알고리즘이 좋았고, 두 번째로는 아이보께서 의외로 자기 의견을 많이 내주었던 점이다. '그냥 너 좋은 거 골라. 난 잘 몰라'하고 넘길 줄 알았는데 이건 밋밋해서 별로다, 이거 좀 괜찮다 하고 얘기해주는데 이게 뭐라고 좋았다.

 상담사 분이 꺼내주신 디자인 중에 맘에 든 건 아닌데 중앙 부분을 검정색에 우둘투둘한 질감으로 디자인해둔 게 있었다. 원래 검정색 좋아했어서 이건 뭐냐고 물으니 도금이랜다. 그 후에 정말 마음에 드는 반지 디자인을 발견했는데, 혹시 아까 보여준 반지의 검은 도금을 우리가 고른 반지 전체에 씌울 수 있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하시더니 이내 씌울 수 있다고 답해주신 순간 나랑 아이보 눈이 서로 마주쳤다.
 둘다 공머생 감성 짙은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온통 새까만 반지를 결혼반지로 하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할까봐 좀 맘에 걸렸다. 근데 눈이 마주친걸 보니 나도 아이보도 결정한 것 같았다.

 디자인이 결정되니 계약서 쓰고 비용 지불하는 건 일사천리였다. 나는 키에 비해 손이 작은 편이라 10.5호로 했는데, 아이보 손이 보기보다 뼈가 굵은지 21호인가 20호인가 앞자리가 2로 시작했다. 손잡으면 포옥 감싸지는 느낌이 좋았는데, 그 느낌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닌가보더라. 반지 호수가 2로 시작하는 거 처음봐서 진짜 신기하기도 했고, 금 더 들어가면서 추가비용 발생하는지 여쭤봤더니 여긴 그냥 해준다고한다. 개꿀

 직원분께서도 이런 주문은 처음 받아보시는지 본인도 기대된다고 하셨다. 반짝반짝 유광의 피아노블랙 바디가 매력적일 결혼반지를 주문하고 나오는데, 아이보가 보기드물게 엄청 기뻐하고 초--하이텐션이었다. 아이보가 행복해하니 나도 행복했다. 이후엔 같이 친구만나러 가서 놀고 집와서 평소처럼 게임했다. 역시 아이보랑은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겜이나하는 게 제일 재밌다.

 어디서 스쳐지나가듯 검은색 반지 봤을 때 결혼반지로 하고싶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진짜로 했다. 실물나오면 끼고 자랑하러 오겠다www
 근데 이거 아이보가 보면 ㄹㅇ 개쪽팔릴 각인데 보더라도 모른 척 해줘. 창피하니까. 모른척하지 않으면 너가 나한테 까였던 썰을 여기에 풀어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