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내 생일이었음
아버지한테서 좋은 볼펜도 선물받고 친구들도 기프티콘 하나씩 보내줬고
그 와중에 절친은 생일 겹쳐서 내가 걔한테는 보내줬는데 걔는 스무고개 맞히면 보내주겠다 해서 피곤하니 여름에 만나서 받기로 함(항상 희한한 걸 사 주는데 받고 나서 한 달간은 열심히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고이 모셔두고 안 쓰게 되는 선물만 주더라고)
그렇지만 내가 순챈에서 풀려는 썰은 선물과 관련된 게 아님

내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이듬해부터 귀향해서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음
하필이면 근무 시작과 동시에 코로나 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집하고 읍사무소 외에는 거의 간 곳이 없었지만 그만큼 열심히 일했음
휴가도 거의 안 쓰고(어차피 갈 곳이 없으니까 생일날에만 씀) 병가도 안 써서 백신접종용 공가+연가 몰아쓰기+무병가 보너스(5일) 적용해서 무려 소집해제 2달 전에 근무를 끝내버림
그때 생일마다 했던 게 미역국을 끓이는 거였음

왜 내가 미역국을 끓이게 되었느냐, 어제 어머니께서도 물어보셨음
근데 이거 생각보다 이유가 간단함
원래 미역국은 허약한 몸을 보신하기 위해 산모가 먹는 거잖아?
그러면 그 날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머니가 먹어야 하는 거라는 논리임
그래서 생일날에 집에 있게 되면 미역국을 끓였는데
첫 해에는 전복 미역국을 끓였음 아무래도 내가 끓여서 다같이 먹는 거니까 고급 식재료를 넣고 싶었음
이듬해에는 성게 미역국을 끓이고 싶었는데 마트에 모두가 원하는 비주얼의 성게알이 없어서(성게알 페이스트인가 그거밖에 없었음) 평범하게 한우 국거리 넣어서 끓임

소집해제하고 편입하고 다시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2년 동안은 못 끓여드림(심지어 항상 그래왔지만 생일이 중간고사 준비 내지는 시험기간에 걸쳐 있어서 학생일 때는 제대로 못 즐김)
그러다가 올해는 결정된 게 없는 상태로 다시 귀향하게 되었고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여드림
닭가슴살 북어 성게 소고기 전복 등등 오만 부재료를 생각했는데
점심 때 끓이겠다고 하니 어머니께서는 지난 주 아버지 생신 때 쓰고 남은 호주산 육우 국거리를 주심

간만에 요리 자체가 실패함
어지간하면 요리 망치는 일이 잘 없는데 급하게 준비하니 망쳐버림
일단 소고기 볶을 때 간을 하지 않고 물까지 부은 상태에서 국간장(심지어 겨우 두 숟갈)으로 간을 하니 밍밍했고
미역이랑 소고기가 덜 익었음(소고기가 안까지 익어야 하는데 겉면만 익히고 물을 부어서 덜 익음)
점심 때 어머니랑 둘이서 먹고 저녁상에 내놓기 전에 A/S 한다고 했는데도 별로더라...
저녁상에 비록 어머니의 손맛이 아닌 배달 전문 음식점의 손맛이 담긴 갈비찜과 A/S 실패한 미역국이 올라왔지만 다른 반찬들도 그렇고 맛있었음
선물에 케이크에 공공기관 서류 합격통보까지 다 좋았는데

두산 베어스 이 새끼들은 또 지더라고
대구 경기라 경우에 따라서 직관도 가능했는데 직관이었으면 완전히 생일 잡칠 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