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질문을 못 알아듣겠네. 뭘 말하는건가?



그러니까...그대는 나와 같은 방랑기사가 아닌가. 여인이 방랑기사인 경우는 흔치 않은데. 어떤 이유로 방랑기사가 된건가?



뭐, 이유랄게 있나. 내게 있어선 그저 하나의 지독한 우연이었네.



우연이라. 어떤 우연이었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그저, 내 마지막 혈육이 내 눈 앞에서 마물에 죽어버렸을 뿐이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오.



그 이후로, 내 가슴을 메우던 공허함과 복수심을 달래기 위해선 방랑기사가 되는 것 이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네.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



그런가. 꽤나 비극적인 사유로군. 흥미롭지만....안타깝게 되었네.



그럼 반대로, 자네는 왜 방랑을 시작했는가?



난 별거 아니었어. 내 친우들을 따라서였네.



친우들을 따라서라...음, 많이 있는 일이지.



하하, 그렇지만...지금 방랑을 이어가고 있는건 아마 나 이외엔 없을거야. 모두 방랑을 그만 두었거든.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것 때문인가?



그것이 뭔진 모르겠지만, 아마 아닐걸세.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은 왜 방랑을 그만둔겐가?



나와 함께 순례에 오른 친우는 2명이었네. 한명은 아주 유쾌하고 밝은, 말하자면 쾌남이었네.



밝고 유쾌하다라...하하, 방랑에 영 안 어울리는 친구로군.



또 다른 한명은 매사에 아주 진지하기 짝이없는. 꽤나 과묵한 친우일세.



...그 친구는 방랑기사에 어울리는 친구긴 하군. 허나 어째서 그 둘 모두가 방랑을 그만두었단 말인가? 혹, 방랑중 신체 어딘가가 결손되었다던가...



그런건 아니고, 일단 밝은 친구는 자신이 구했던 엘프 노예와 가족을 꾸려버렸다네. 편지만 봐도 행복해 하는게 보이더군.



가족을 꾸리다니, 그것도 엘프 노예와? 어째서...아니, 그보다 하프엘프가 정말 가능한 일이었나?



글쎄...난 그것까진 모르겠네. 진지한 친구도 엘프와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하기 시작해서, 방랑을 그만두었지.



...그 친구는 방랑을 계속해도 될텐데? 어째서 그만둔겐가?



편지를 요약하자면, '방랑기사는 모두를 사랑하고 지켜야 마땅하나. 자신은 이제 오직 한명만 사랑하고 지키게 되었으니 이만 방랑기사의 업을 내려둔다-' 라더군. 이래저래 진지하게 늘여 써놓아서 읽다 그만두었다네.



하하! 정말 진지하기 짝이 없는 친구구만! 그 친구는 나중에 한번 만나보고 싶군.



......



그, 아까는 고마웠네. 이런 사람도 없는 폐허에서 마물에게 포위 당할줄은 상상도 못했어.



감사인사는 되었네. 같은 방랑기사를 돕는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



...아깐 꽤나 멋지더군. 은빛 갑옷을 입은 천사가 날 구하러 온 줄 알았지 뭔가! 하하!



하하, 그런가. 천사라니.



...........



그, 자네.



응? 왜 부르나?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두껍고 굵은, 무식하게 큰 검은 도대체 어디서 났나?



내가 만들었네. 가족을 잃고 정확히 3일 뒤에 만들어냈지. 마을 철쟁이 아저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네.



...안 무겁나? 그거 무게가 혹 어떻게 되나?



으음...잘 모르겠네. 일단 경비대 기사들은 못 들더군.



그 경비대 기사가 못 들 정도라고? 허어...그런 무지막지한걸 잘도 휘두르는군.



뭐, 어릴때부터 힘은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야.



...................



자네, 나와 함께 다녀보지 않겠나?



응? 어째서 그러는가? 설마...지금 나 꼬시는건가?



하하, 농담이 과하군 그래.



그럼 어째서 그런 제안을 하는건가?



대화를 이렇게 좀 나누어보니, 우린 꽤나 잘 맞는것 같아서 말이야. 말동무로서 함께 다니는건 어떤가?



흐음...나쁘진 않은 제안이군. 좋네. 함께 다닙세.



드디어, 이젠 방랑이 고독하지 않겠군.



그런데, 본래 방랑은 고독해야 마땅한거 아니던가?



그게 맞긴 하다만.... 심심하잖나.



그렇긴 하지.










<함께 방랑을 그만두기까지 앞으로 8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