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그게 되는 일인가?"


"나 땀이 많이나는 체질이니까, 손목시계나 팔찌 반지 이런거 차고있으면 땀차고, 

오래동안 끼고있으면 염증 생기더라.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시집가게되면 반지는 없었으면 좋겠어."


"음... 결혼반지라는건 부부가 결혼을 했다는 확실한 물증인거잖아? 

반지가 없으면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혹시 모르는 사람이 너 낚아채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반지말고 다른걸 생각했단 말씀! 너 말대로, 손만 봐도 남편이 있는지만 알아내면 되는거잖아?"


"그러니까...... 손가락에 남편 이름 문신을 새기는거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의미까지 덤으로!"




"와... 진짜 용하다... 나중에 이혼하고 다른사람이랑 사귀면 어쩌려고그래?"


"괜찮아. 손가락에 적을 이름은 하나밖에 없거든. 너 필통에 네임펜 갖고있어?"


"있는데, 왜ㅡ


그녀는, 조금 벌어진 교실의 창문 틈 새로 살며시 들어오는 겨울날의 찬 바람과도 같은 감정의 바람을 내게 불어주듯이,

왼손잡이인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사인펜이 어눌한 글씨체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점차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있는 이름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이었다.




"이거 봐, 이러면 절대 이혼할 일 없지? 그치?"








구름에 가려 어디에 떠 있는지도 모를 청회색빛 하늘 너머의 태양 대신에 그녀의 미소가 나의 앞에서 찬란한 광채를 내비추었다.

지금까지 보내온 2년, 아니 5년, 아니 8년,

아니, 11년의 시간이 나를 향해 정면으로 불어왔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빠졌었다. 아니, 빠져있다.

그리고 그녀도 언제나 나에게만 그 미소를 보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이 볼품없고 초라한ㅡ

"너, 또 자기비하 비슷한 생각하고있지?"


"아, 미안. 많이 놀라서.."

"진짜... 이렇게까지 마음을 전하는데 언제까지 그럴거야? 넌 나쁜사람도 못난사람도 아니라고."

"미안, 정말.. 그리고, 고마워."


뭐, 됐다. 나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아.

영원을 함께할 사람 앞에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건 그녀가 슬퍼지니까. 다만,


"아아~ 울지마~ 이제 휴지 다 떨어졌다고~"

"사랑해."

"그래 나도 사랑해~ 뚝 그치고."


기뻐서 눈물이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겨울날 조금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무릎 위 담요에 이슬이 떨어졌다.

그 날은 인생 두 번째로, 꼭 살아있어야겠다 다짐한 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