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하늘, 그럼에도 조금씩 내리는 이슬비가 반사하는 빛.
 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와 동시에 지지 않는 태양이라는 별은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린다.
 황금빛 들판 곳곳에 보이는 새하얀 양들이 공중을 나는 것부터 새하얀 비둘기가 가방을 맨 채 하늘을 나는 것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 꿈 속 광경에서 문득 나타난 묵빛 고양이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내 품 속에 안긴다.
 품 속에 안긴 고양이를 쓰다듬으려고 하려는 때,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 꿈이였구나."

 시계를 보니 5시, 평소 6시에 깨는 걸 생각한다면 이른 시각.
 방 한켠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을 바라보길 잠시, 몸을 덮고있는 이불을 돌돌 말아 한켠으로 치운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한 번 들린 뒤, 방 밖으로 나와 주방에서 아침으로 먹을 토스트를 두 개 굽는다.
 보일러를 틀어두지 않아서인지 차가운 새벽의 한기가 몸을 한번 훑고 지나가지만, 곧이어 따뜻한 불의 온기가 한기를 지운다.

 토스트 두 개를 금방 해치우고 본 시각은 5시 40분, 몸을 씻고 카페로 내려가서 각종 기기를 예열한다고 해도 7시도 되지 않을 시간.
 부족한 잠을 채울까, 라는 생각을 머리 한 켠으로 치우고 카페를 일찍 연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금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카페에서 입는 셔츠와 바지를 입은 뒤 집 밖으로 나온다.
 계단을 내려와 카페의 문을 열고 전원을 올린 뒤, 카페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기들을 예열하는 것까지 끝내니 그새 시간은 6시 30분을 가리킨다.

 창 밖의 기울어 하늘 끝자락에 걸쳐있는 달을 한 번 본 뒤, 카페 한켠에 비치해둔 책장에서 작은 소설책을 꺼내 천천히 읽는다.
 책 속의 내용을 집중해 읽어가는 동안 흐릿해지는 시간감각. 소설의 내용을 절반 넘게 읽었을 즈음 시계를 한 번 살핀다. 7시 35분이다. 소설의 내용을 읽길 멈추고 책장에 다시 꽂아 넣은 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7시 50분. 따라랑 하고 울린 문에 달린 종. 들어온 사람은 어제의 묵빛 머리카락에 하얀 셔츠를 입은 남성.

 "아, 오셨네요. 어제 드린 종이를 주시겠어요?"
 
 나는 남성을 환영하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 멍해 보이는 남성은 고개를 한두번 젓더니 정신을 차린 듯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서비스로 쿠키를 드릴까요, 아니면 아침에만 굽는 빵을 드릴까요?"

 나는 물었다.
 
 "커피와 어울리는 걸로 주시겠어요?"
 "둘 다 커피와 잘 어울리지만 아침이니 따뜻한 빵을 드릴게요."

 성형해둔 베이글 위에 버터를 얹어 예열해 둔 오븐에 넣은 뒤, 180도의 온도로 3분동안 굽는다.

 "아, 커피를 주문하지 않으셨어요. 어느 걸로 드릴까요?"
 
 나는 베이글이 구워지는 동안 묵빛 머리카락의 남성에게 물었다.
 
 "음... 추천하는 커피가 있을까요?"
 
 남성이 대답했다.

 "제일 자신있는 커피는 드립 커피에요. 무난한 걸 원하신다면 에스프레소가 있답니다."
 "그럼 드립 커피로 한 잔 주시겠어요?"
 "네, 드립 커피 한 잔 주문 받았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드립 커피를 내리고 오븐에서 빵을 꺼낸다. 커피 잔에 담긴 드립 커피와 그릇에 담긴 빵을 쟁반에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드립 커피와 서비스인 베이글,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멍한 채 어딘가를 응시하던 남성이 정신을 차리고 쟁반을 받는다. 남성이 커피 잔을 입에 대는 것까지만 확인하고 시선을 돌린다.
 8시. 손님이 몰려올 시간이다.

 따라랑 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기 시작하는 손님들. 주문하는 것은 다양하다.
 
 "에스프레소 한 잔, 포장이요."
 "카페모카 한 잔. 포장이요."
 "카페라떼 한 잔. 포장이요."

 대부분이 커피를 주문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드립 커피는 잘 나가지 않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 커피가 잘 나가는 편이다.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음료를 만들고, 포장한 뒤 내놓는다, 라는 과정을 한참동안 반복하면 출근하는 도중 들린 손님들은 사라진다. 남는 사람들은 출근까지 시간이 남았거나, 이른 아침부터 친구를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 커피를 마시지 잘 마시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드립 커피나 콜드브루 커피 아니면 차를 주문하곤 한다.
 그런 손님들의 주문까지도 마무리하면 숨을 돌릴 시간이 주어진다.

 숨을 돌린 뒤엔 카페 내부를 물걸레로 한번 닦아내고, 쌓인 그릇들을 거품을 내며 설거지한다.
 그런 사소한 일조차 마치고 확인한 시간은 어느덧 10시. 카페가 잠시 한산해지는 시간.
 조리실에서 나와 경치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바깥을 구경하고 있길 잠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고개를 돌려 누군지 살피니 보이는 것은 묵빛 머리카락을 지닌 남성.

 "아직 가지 않으셨네요?"

 나는 남성이 떠나지 않은 것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해야하는데다, 경치가 좋은 게 쉬기 좋은 장소라서요."
 "커피, 향도 좋고 맛도 좋았어요. 이런 맛있는 커피를 추천해준 지인한테 감사 인사를 해야겠는걸요."

 묵빛 머리카락을 지닌 남성은 커피에 대한 평가를 하고는 창 밖을 보기 시작했다.

 "저 나무는 언제부터 있었나요?"

 남성은 창 밖을 보길 잠시,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저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카페의 역사부터 이야기해야 해요.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알고 있는 나무에 얽힌 역사를 말하기 전 남성의 의사를 물었다.
 
 "네, 여행을 온거라 시간은 엄청나게 남거든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남성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야기에는 커피나 차 한 잔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나는 남성에게 대답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조리실로 들어온 뒤, 홍차 한 잔과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리기 시작했다. 내려진 홍차와 에스프레소의 향기는 매혹적이여서,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럼, 이야기 시작해볼게요."

 경치가 보이는 자리에 에스프레소와 홍차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 나는 나무에 얽힌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카페는 전 점장님, 저에게는 은인 되는 분의 고조부 되는 분이 세우셨어요."
 "그 정도로 오래 된 카페라고요?"

 남성은 놀라 되물었다.

 "네, 2년 전쯤에 카페 건물 자체를 재건축해 새 것 처럼 보이지만, 역사 자체는 오래 된 카페에요."
 "카페를 세우신 고조부 되는 분이 저 나무의 묘목을 심으시곤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땐 오직 드립 커피만을 취급했지만 그만큼 맛이 엄청나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은인의 조부분께서 말해주셨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홍차가 담긴 잔을 한번 들어 마신 뒤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이 주위 부지는 전부 이 카페의 주인 되시는 은인분이 가지고 계셔요."
 "저 나무의 관리도 이 카페의 점장이라면 해야하는 일이라, 한달에 한번정도 가지를 치곤 해요."
 
 묵빛 머리카락의 남성은 나를 바라보길 잠시, 나무를 다시 바라보곤 조용히 읆조렸다.

 "지금도 이렇게 맛이 뛰어난데.. 그때의 맛은 어땠을지 궁금한걸..."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말한 것인지 자신이 한 말을 눈치채지 못한 듯 해 보였다. 하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려서, 나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그 때의 맛을 재현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해요. 고조부분께서 사용하시던 원두를 판매하시던 분께서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거든요."
 "비슷한 맛을 가진 원두를 판매하시는 분과 계약하긴 했지만.. 조부 되시는 분께서는 현재의 맛보다 더 훌륭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남성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일 뿐. 제가 마신 커피 중 최고는 당신의 커피에요."

 고백 같아보이는 그 말에 나는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며 말했다.
 
 "그....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최고인 커피에 최고의 칭찬을 했을 뿐인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나무를 바라보기 시작한 묵빛 머리카락의 남성.
 나는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에스프레소는 내려둔 채 홍차만을 쟁반에 담아 카운터로 다시 가져가며 말했다.

 "에스프레소는 서비스에요. 천천히 드셔주세요."
 
 남성은 그 말을 들은듯이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뒤 미소를 지었다.
 살짝 고개를 들다 만 이상한 감정을 나는 눈치채지 못한 채 똑같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한가한 시간이 지나가고 정오가 오면 카페는 다시금 붐비기 시작한다.
 손님들이 몰려오고, 나는 정신없이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음료를 내린다.

 해가 중천에 떴다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2시정도가 되어서야 다시 한가해지는 카페. 그리고 여전히 카페에 머무는 묵빛 머리카락의 남성.
 한가한 카페 속에서 여전히 바깥을 구경하고 있는 남성에게 의문이 든 나는 다가가 물었다.

 "여행 차 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계속 머무는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해가 진 뒤에 보는 경치야말로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남성이 대답했다.
 해가 진 뒤의 경치라는 말에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인 나는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은 채 남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참을 말 없이 바깥을 구경하던 도중 들린 꼬르륵 거리는 소리.
 그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소리를 애써 무시하는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향해 말했다.

 "아, 마침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남은 토스트가 4장이네. 전부 먹기에는 양이 많고... 누가 먹어주지 않으려나?"
 "네 장 전부 구운 뒤 더 생각해보도록 할까나."

 살짝 시선을 돌려 바라본 남성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토스트를 먹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살짝 고개를 든 의문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나는 조리실로 들어가 토스트를 굽기 시작했다.

 토스트에 계란프라이를 끼우고, 딸기잼을 바른 뒤 베이컨과 야채 몇 개를 끼워 만든 샌드위치를 그릇에 담아 카운터에서 먹기 시작한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 아니, 샌드위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남성분, 샌드위치가 남는데 드시겠어요?"
 
 애써 만든 무신경한 어조로 묵빛 머리카락의 남성에게 권한 샌드위치.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바로 받아들이는 남성의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살짝 웃음이 나오고 만다.

 "푸..푸흣. 여기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귀를 새빨갛게 물들인 남성은 샌드위치를 받아 한 입 물더니 눈을 반짝이곤 나를 향해 말했다.

 "정말 맛있어요! 적당히 구워진 토스트, 바삭한 베이컨, 느끼함을 덜어주는 야채까지!"
 
 나는 그런 모습에 당황하며 반응하지 못하곤 조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부끄러웠던걸지도 모르겠다.
 
 조리실 안에서 샌드위치를 해치우고 카페 밖으로 나왔을 때엔 어느덧 3시가 다 되어서, 겨울인 만큼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남성은 아까 한 말을 지켜려는 듯 카페를 나선 것처럼 보였다.
 나는 무언가 아쉬움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곤 책장에 꽂힌 소설책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소설을 보는 동안 오지 않는 손님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어느덧 6시가 되어 해가 보이지 않고 별이 뜨기 시작할 때쯤 소설을 다 읽은 나는 카페를 닫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문의 팻말을 돌려놓고 기기를 끈 뒤 마지막으로 카페의 정리를 마치고 나온 카페 바깥.
 카페의 문을 잠구고 올려다 본 하늘은 별이 촘촘히 박혀있어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별을 보며 2층으로 올라가려는 때,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만요!"

 2층으로 올라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멀리서부터 누군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묵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남성 손님이다.

 "헉... 헉... 늦지 않았나요?"
 
 남성이 숨을 돌리도록 기다리길 잠시, 숨을 고른 남성이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신 보답을 하고 싶어서요."
 
 남성의 때가 알맞은 식사 권유.
 아까의 아쉬움이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였던걸요."

 마음 속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였다고 말한다.
 
 "그래도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요. 이야기를 해주신 답례로 받아들여도 좋아요."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는 남성.
 나는 날뛰는 감정을 억누르고 남성을 향해 물었다.

 "..다른 카페의 커피가 더 맛있을텐데 왜 제 커피가 최고였다고 말하셨나요?"
 "제 입에 딱 어울리는 커피인데, 최고가 아니라면 뭐라 해야하나요?"

 역으로 되묻는 묵빛 머리카락의 남성.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날뛰던 감정을 막지 못한 나는 말했다.

 "오늘 말고.. 다음에 가능할까요?"
 
 미소를 지은 남성은 대답했다.

 "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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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이라 창작물 탭에 올리고 있긴 한데 프롤로그 포함 3화째니까 이전꺼 포함해서 옮기는게 맞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