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과 관련 없는 짤)

  순애 1의 #1 : https://arca.live/b/lovelove/11408271 



  #2

  그 일 이후, 선배와 저는 만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제가 열심히 선배를 찾아다닌 덕이에요.


  알고 보니 같은 층에 선배가 있더라구요. 심지어 동아리마저 같다니!


  “헐, 선배 저랑 동아리 같았네요?”


  5개월이 지나서야 선배의 존재를 동아리에서 알긴 했습니다만, 사사로운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선배는 저를 은근히 피했습니다. 또 선배는 잘 웃지를 않아서, 오기가 생겨 저는 선배에게 계속 다가갔습니다.


  “선배! 뭐해요?”

  “……어, 어?”


  여자가 익숙하지 않은지, 숙맥 같은 선배의 모습이 내심 귀엽기도 했고 말이죠.


  당시에는 선배에 대한 저의 마음을 스스로 확인해본 것은 아니었던지라, 그냥 선배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고민은 하지 않았었어요. 다시 말해, 선배를 ‘남자’― 나아가 ‘연애 상대’로서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느 순간부터 선배를 남자로서 보았는가’에 대해서는 저도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 근원을 좇아가다 보면 처음 본 그때 선배에게 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배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네요.


  그래도 선배를 향한 마음을 인지한 계기는 하나 있습니다.


  그 가을 뒤, 모든 것이 차가워지는 겨울이 왔습니다. 중3이라면 모두 고등학교 진학으로 바쁜 시기입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선배에게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어딘지 물었습니다.


  “선배, 선배는 고등학교 어디 갈 거예요?”

  “나? ○○고 생각 중이야.”

  “헐, 거기 완전 명문고 아니에요? 시험 쳐서 들어가는 데잖아요.”

  “그렇지.”

  “선배 공부 잘했나 보네요.”

  “그런가 보네.”


  무미건조한 선배의 반응을 듣고, 저는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20등은 무슨, 겨우 120등 언저리에 걸친 제 머리로 이 상황을 이해한 결과, 이 상황은―


  “잠시만요. 선배, 거기 가면……”

  “응? 뭐가.”

  “아, 아니에요.”


  선배가 고등학교에 가면, 선배와 만날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물론 주말이나 시간이 빌 때 만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단둘이 보자는 것이 데이트 신청이지 아니면 뭔가요? 지금껏 선배랑 주말에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무의식중에 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선배가 대체 뭐길래,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요? 선배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저를 보니, 마치 제가 선배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니― 그리고 선배의 반응은 뭐 저리 차가운 거예요? 선배는 평소처럼 무심히 제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또 서러워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얼마 전에 싸웠던 그 친구입니다.


  “고백해.”

  “뭐어어어!?”

  “좋아하는 거 아냐? 그 선배.”

  “아, 아니거든? 아마……”


  남의 입에서 이런 얘기를 들어서일까요? 엄청나게 부인했습니다. 아니라고만 하면서 제 마음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리숙한 제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찝찝한 응어리를 남긴 채, 평소처럼 선배에게 장난을 치는 것 말고는 없었죠.


  그렇게 어영부영 겨울방학이 찾아왔습니다. 선배는 가뿐히 고입 시험에 합격해 ○○고로 진학할 예정입니다.


  “선배는 방학 동안 뭐 할 거예요?”

  “학원 다니려고.”

  “윽, 또 공부예요?”

  “뭐, 딱히 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공부는 더 힘들다고들 하고.”

  “그렇구나……”


  공부와는 영 거리가 멀었던지라 선배가 하는 얘기의 현실성을 이해하긴 힘들었습니다. 다만 선배와의 대화 도중 느꼈던 모종의 거리감에 대해, 즉 선배의 말이 유독 저에게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제가 바라보는 세상과 선배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감각만이 문득 저를 감쌌습니다.


  공부 좀 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이렇게 된 이상, 저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까짓거, 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부모님께 말씀드려 집 근처 학원을 찾았습니다.


  “네가 공부? 친구가 거기 다니냐?”

  “아니야!”


  그렇게 찾아간 학원에선, 국영수 모두 기초 반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받았습니다. ‘전교 120등만 하던 내가 알고 봤더니 천재?’라는 전개는 없었습니다.


  꿀꿀한 기분으로 학원을 나섰는데, 반가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선배였습니다. 순간 반갑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당황해서 손으로 얼굴을 숨겼습니다. 얼굴로부터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날 전 깨달았습니다. 나, 선배 좋아하는구나.


  “왜 그래?”

  “아아아뇨, 오늘 안 씻고 나와서……”

  “그래?”


  사실 선배를 만나면 어떡하지 싶어 완벽하게 메이크업하고 나왔습니다만, 이런 얼굴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습니다.


  얼굴을 진정시키고, 다시 선배를 바라봤습니다.


  “선배 저, 여기 다음 주부터 다녀요.”


  선배를 의식하게 되니 괜히 시선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오, 공부하려는 거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니, 음…… 이제는 공부해야죠.”


  차마 본심을 말하진 못했습니다.


  “선배도 여기 다녀요?”

  “응.”


  대박.


  방학 내내 선배와 함께 학원에 다니고, 또 공부했습니다. 드디어! 번호 교환도 하고, 선배 성격상 땡땡이도 안 쳐서 좀 지루하긴 했지만― 모르는 게 생기면 선배를 찾았고,


  “선배, 이 문제 어떻게 푸는 거예요?”

  “이건 저 공식을 넣어서……”


  그때마다 선배는 제게 친절히 알려줬습니다. 맨날 선배의 옆모습만 봐서 설명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가끔은 제가 선배에게 마실 것도 사줬습니다. 선배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캔커피에 ‘파이팅!’이라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선배 자리에 갖다 놨었죠.


  “고마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설렜던 건 안 비밀.


  시간은 빠르게 흘러 졸업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졸업 축하드려요, 선배!”


  준비해온 꽃다발을 선배에게 건넸습니다. 선배는 평소의 그 무표정으로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오늘 학원 가는 날 아냐?”

  “하루쯤은 쉬죠, 뭐.”


  선배는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방학 하는 동안만 다니고, 학기 중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겠다고. 그 말을 듣고 전 결심했습니다.


  “선배, 저도 ○○고 가려구요.”

  “뭐? 가능해?”

  “시험만 잘 치면 되잖아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게 말처럼 되나?”

  “돼요!”


  돼야 한다고, ○○고에 가면 선배에게 고백하겠다고, 부끄러워 말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선배네 부모님이 선배를 찾았습니다.


  “가볼게. 모르는 거 있으면 문자 하고.”


  선배가 멀어져갑니다. 계속 상상해왔던 일이지만 막상 닥치니 섭섭합니다.


  원래는 헤어지기 전에 쿨하게 한마디만 하려 했는데,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늘어납니다. 진정하고 차분히 속으로 말을 헤었습니다. 전하고 싶었던 말은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선배!”


  선배가 뒤돌아 저를 보았습니다.


  “꼭 들어갈 테니까요!”


  선배는 핏 웃으며, 꽃다발을 흔들고 돌아섰습니다.


  웃, 웃었어요. 선배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거울을 보면 홍당무가 된 제가 있을 것 같아, 주위 사람들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아직은 싸늘한 바람 사이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 쓰다 보니 뭐 이리 길어졌나..

  순애가 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