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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들려 있는 여닫이창 사이로 은은한 빗소리가 들어왔다. 눅눅함 없는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만 느껴졌다. 종이 냄새와 습한 냄새가 섞인 아늑한 도서관에서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모기와 매미가 고막을 자극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학사 일정 또한 소름끼칠 정도로 착실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은 시험공부 시간인 3주 전부터 기말고사 대비에 들어간 그녀는 학원 숙제가 많아졌다고 소소한 불평을 하며 도서관에 자습서를 펼쳐 놓았다.


 인상적인 태도였다. 학생의 모범적인 자세를 보이는 1학년 후배와 대조되게도, 그녀와 마주앉은 선배라는 놈은 오만하게도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거리낌 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나보다도 더 인문학적 소양에 자부심 넘치는 옛 선배들이 신청했었을 옛날옛적 고전 장르문학은 독서 시기와 맞몰려 엄청난 재미를 선사했다. 검은 손때 가득한 판타지 서적으로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나와 자습서를 빼곡하게 삼색으로 물들이며 지식을 추구하는 내 후배를 대조하니 문이과의 입시 태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입시라면 포기한 지 오래지만, 이 정도로 명확하게 대조되도록 딱 붙어 앉으니 고등학교 들어간 뒤로 자취를 잠시 감췄던 내 대담함과 뻔뻔함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도서부원들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받았다. 하지만 반응은 조금 달랐다. 나만큼 뻔뻔한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습서를 꺼낸 뒤로 그들의 잡담이 줄어들었다. 방과후에 진행되는 노예 활동을 동아리 활동으로 바꿔 인식하기 위해 적당한 딴짓과 잡담을 하던 그들이었지만, 자세 딱 잡고 자습을 하는 그녀와 함께 있으니 눈치가 보인 모양이다. 한 달쯤 이어진 독서 활동이 반복되자 도서부는 우리를 도서관 인테리어의 일부로 인식하기로 했고, 그렇게 마음을 잡은 뒤로는 우리가 있든 말든 당당하게 소소한 여가와 잡담을 나누었으니 새삼스러울 따름이었다. 멀쩡히 있는 학교 독서실(=자습실)놔두고 도서관에서 자습하는 그녀의 분위기에 휘말린 게 확실했다. 꾸준히 단련시켜온 대담함에 힘입어 갑자기 고전 장르문학에 엄청난 흥미를 보이는 독서부 부장과는 다르게도 말이다. 도서대출기록과 생활기록부 기록에 홀린 도서부의 노예근성과 독후감 말고는 남는 게 없는 독서부의 정신상태 차이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독서부다.


 도서부원들은 그녀가 굳이 도서관에서 자습하는 이유가 잡담 때문임을 아직 눈치채지 못 했나 보다.





 피로감을 느끼고자 할 때 탁월한 도움을 주는 백색 형광등은 빗줄기가 흘러내리는 날씨와 어우러져 나른함까지 선사하고 있었다. 고요와 빗소리 속에서 서가 정리를 끝낸 도서부원들이 귀가하고, 사서도 커피나 간식, 화장실 등의 볼일을 보러 나가는 시간이 찾아왔다. 문제 풀이를 멈추고 가볍게 기지개를 핀 그녀는 내가 보는 책에 대해 물어왔다. 시선의 이동을 보아하니 그제야 내 독서 활동을 눈치챈 듯했다. 그녀의 집중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그날 분위기에 따라 별말 없이 독서만 하다 헤어지거나 그녀가 선정한 해외 로맨스 원서에 대해 떠들어 오던 우리의 잡담은 오늘따라 색다르게 흘러갔다. 그녀도 휴식을 위해 시험 범위와 동떨어진 다른 몰입거리를 찾고 싶어했고, 오늘 잡담의 주제는 내가 보던 남성향 장르로 정해졌다. 모범적인 학생인 그녀가 시험기간에 벌써부터 질린 건 아니겠지만, 영어 공부를 끝마친 직후 취미랍시고 네 권째의 영어 원서를 독해하는 짓은 공부도 휴식도 아닌 끔찍한 자기 학대에 불과할 테니 이해는 갔다. 부담이 없다 못해 개나소나 즐길 수 있는 싸구려 장르문학에 그녀가 관심을 보일 만한 상황이었다. 모범적이든 아니든 모든 학생에게 평등한 그런 게 시험기간이니 말이다. 로맨스에 대한 내 뒤틀린 심상을 파악하는 대화에서 내 취미 쪽으로 주제가 흐른 적은 거의 처음이라 그런지 그녀는 적극적으로 나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다. 판타지 이야기. 남성향 이야기. 그리고 클리셰 이야기. 


 클리셰의 원조 되시는 작품에서 대화는 서서히 이어져 나갔고,


"모든 장르에서 다 활용되는 게 소꿉친구잖아요. 그런 관계에서 이어지는 순애는 어때 보여요?"


 이런저런 문답 뒤에 마지막으로 나온 질문이 바로 어디에서나 사용되는 소꿉친구 소재였다. 


 여성향 남성향, 소프트부터 하드한 분야까지, 어떤 장르든 간에 어지간하면 나오는 만능 클리셰 말이다.





 친구에 관해서라면 나는 할 말이 많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관심받기 정말 좋아하는 아이였고, 유년기 시절부터 이어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쌓아올린 인간관계야 당연히 많았다. 질은 몰라도 양은 넘쳐나던 인간관계였다.


 그렇지만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건 광대 놀음이었지.


 광대짓의 끝은 정신 나간 구애 활동이었고.


 별 의미도 없는 인기에 집착하며 쌓아올린 시답잖은 인간관계는 다행스럽게도 고등학교를 올라가니 대부분 청산되었다. 조금은 더 고등해진 보람이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는데, 또라이가 나름 고등해졌다고 똘기를 잃으니 그냥 머저리가 되어버렸다는 게 그랬다. 이불 평생 걷어찰 추억만 잔뜩 쌓은 머저리 말이다.


 그런 머지리와 어울려 이불을 같이 걷어차 줄 사람들을 찾아낸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름 친구 복이 좋다. 또라이짓의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람과 많이 엮이니 좋은 녀석들도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그다지 모범적인 인간관계는 아니었지만, 모범적이지 않은 관계이기에 꺼낼 수 있는 말도 있기 마련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바람직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관계였다. 평소에도 별의별 걸 다 거리낌 없이 말해버리다 보니 모범적인 관계가 아닐 뿐.


"글쎄..."


 소꿉친구의 부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망신 좀 당해도 거리낄 게 없는 다른 망신거리가 이미 있는 사이니까, 같이 놀다 보면 어디까지 망신을 당해도 되는 건지 선을 잊게 된다. 일단 동성 소꿉친구는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소꿉친구 외에는 그 정도 관계까지 발전하기 힘들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학생의 짧은 인생에서 생겨날 수 있는 친구 사이 중 소꿉친구보다 더 돈독한 게 있을 리 없다. 서로 못볼 꼴 보게 되느니 차라리 거리를 적당히 두는 편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게 나이 먹고 고등해진 사람들의 평범한 사교법이다. 소꿉친구라는 예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수치심이 약한 어린 시절 이불 걷어찰 소재를 미리 봐 뒀으니 거리를 둘 이유도, 필요도 없는 인간관계니까 말이다. 


 현실적인 면을 따져도 이런데 가상 매체에서는 얼마나 극적이겠는가.


 젊은 등장인물이 각광받는 여러 매체에서 정말 많이도 보이는 게 소꿉친구다. 질리도록 보이는 소재. 흔해빠진 작가 편의주의적 인간관계 구축 수단. 이불 걷어찰 소재를 좀만 잘 다루면 과거 이벤트가 정말 쉽게 묘사되고, 개연성도 어지간해서는 챙겨진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을 칭하는 말로도 좋은 어감을 보인다.


 역사와 전통의 클리셰인지라 질리도록 보이면서도, 역사와 전통을 거치며 발전해 와 온갖 독특한 변형이 가능하기에 질리지가 않는 생명력 있는 소재이기도 했다.


 어떻게 바라보든 간에 강력한 매력을 지닌 단어다. 소꿉친구의 기준이 유치원부터인지 초등학교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도 인생의 절반 정도를 같이 붙어 지내면 확실히 인생의 반쪽 비스무리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연인을 멋지게 부르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어휘 중 '인생의 반 쪽'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미 인생의 반쪽이 돼버린 존재와 연애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연애는 별로지 않을까."


 인생의 절반을 괴상하게 살아온 나의 식상하고 속물적인 답변에 익숙해진 그녀가 시큰둥하게 펜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이유는?"


"음..."


 척수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의 보충 설명을 위해 말끝을 흐리며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원수라면 몰라도 내게는 소꿉친구라 할 만한 이성 친구는 없었다. 주변에서도 사람 친구 이상으로 발전한 소꿉친구 관계는 못 봤다. 경험이나 인용으로 답할 거리가 없었다. 나와 가장 친한 이성 친구라고 해봐야 지금 내 눈앞에서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필기도구를 필기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는 동아리 후배 뿐이다.


 그녀와 친해지다니, 확실히 나는 친구 복 있는 놈이다.


 그런 그녀가 왜 나를 만난다고 묻는다면, 글쎄다. 내 머저리같은 면이 좋기 때문이겠지.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힘든 인간관계를 보고도 천연덕스럽게 넘어가 주고, 머저리같은 선배의 가치관에도 동의해 주는 성격 좋은 후배. 나와 어울려주는 후배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하지 않는 친구였다. 저번 만남에서도 적당히 웃으며 어울려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못 미더운 내 면을 긍정해 주는 정말 고마운 후배다.


"으으으음, 생각해 보니 잘 모르겠네. 역시 연애도 좋겠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더 친해는 거니까."


 하지만 오늘따라 내 못 미더운 면이 제대로 작동을 안 했다. 너무 오래 빈둥거려서 두뇌가 굳어버린 감각이었다.


결국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솔직히 부정할 건덕지가 안 떠올랐다. 내가 순순히 인정해 버리자 그녀는 신기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삼색펜 가지고 노는 걸 멈췄다.


"오랫동안 그 사람을 봐 왔으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아는 거잖아? 그러면 서로 더 잘 맞춰줄 수 있겠고. 연애 상대로는 이상적이지."


"웬일로 평범한 정론을 말하네요."


"정론밖에 생각이 안 나. 그런 걸 많이 봐서 그런가."


 옛날에 본 만화 대사가 떠올랐다. 소꿉친구는 무적이다. 주어와 서술어로만 구성된 너무 단순한 문장이라 대체 어디서 어떻게 무적인 건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돈독한 인간관계가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보증이라던가 기타 역겨운 범죄 행위는 생각이라 분류하기도 싫으니 논외로 치고.


 대답을 끝마치자 한 살 나이 차 나는 친구가 나의 긍정적인 반응을 의심하며 추가적인 사상 검증을 시작했다.


"아는 거랑 실천하는 거랑은 별개니 맞춰주기 힘들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서로에 대해 잘 아니까 상대를 맞춰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테니 괜찮을 것 같아. 맞춰줄 자신 없으면 계속 친구로 남으면 문제없을 테고. 플라토닉 러브도 순애로 치면 그것도 나름 좋아 보이고."


 그녀가 내 말을 확실히 하기 위해 되물었다.


"친구로 남아도 순애다?"


"음, 내 생각으로는. 사랑이랍시고 서로의 마음을 꼭 쟁취할 필요가 있나 싶어. 호의만으로 서로를 도와주는 좋은 친구 관계도 나쁠 건 없잖아?"


"사랑을 갖지 못하더라도? 더 나아가서, 사랑을 뺏기더라도? 그래도 순애라고 보세요?"


"이성 소꿉친구가 없어서 어떤 기분일진 모르겠는데, 좀 묘해지기야 하겠지. 그래도 연인이 생겼답시고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해 잘 알 친구를 내치는 건 뒤틀린 소유욕 아닌가 싶다. 상대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함께하면서 서로 도와주는 게 순애가 아니면 뭐가 순애야. 어떻게든 결혼엔딩 골인해야 순애인가?"


 순애의 사전적 정의를 가뿐하게 무시한 뒤 전개된 오해와 비판의 소지투성이인 내 괴기한 사상에 대해 그녀는 이해의 표시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뭔가 찝찝하다는 듯이 말했다.


"애매하네요, 뭐, 우정도 넓게 보면 사랑의 일부기는 한데."


 의미론 고찰 시간이 찾아왔다. 사랑 이야기는 이래서 무섭다. 이야기가 좀만 깊어지면 내 문과적 재능, 특히 언어학적 재능이 시험대에 올려지므로. 


"그럴 수도 있지 않아?"


 그러니 이야기를 주도한 그녀에게 시험대에 나설 기회를 양보하기로 했다.


"순애라고 직접 말하니까 말이에요."


 그녀도 순애라고 콕 짚어 따지니 난감함을 느낀 모양이다. 널찍하게 깔린 자습서 위로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며 그녀가 말했다.


"듣다 보니 우정도 순애인가 싶어서요. 넓게 보면 사랑은 맞으니까 또 헷갈리네요."


"우정도 사랑이었나? 그러면 그건 성애... 박애인가?"


"음, 우리말로는 말이 잘 안 통하네요. 플라톤 식으로 보자면, 사랑이 네 종류고 그 안에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가 있거든요."


그녀가 말을 고르며 100번대 철학 인문학 서가를 바라보았다.


"성애 에로스, 모성애 스트로게, 우정 필리아, 박애 아가페. 이렇게 네 개요."


"필리아만 사랑으로 못 옮기네."


"그건 아니에요. 적절한 단어가 안 떠올라서 그냥 붙인 거에요. 우정이기는 한데 뜻이 더 넓다고 해야 하나. 풀어쓰자면 정신적인 사랑. 그 느낌이죠. 그 중에 우정도 있는 거고. 아, 에로스도 성애라기보다는 육체적인 사랑이라 풀어쓰는 게 더 맞겠네요."


 원서를 좋아하는 후배가 번역본을 좋아하는 선배에게 친절한 설명을 끝마쳤다.


"가치관 차이인가? 우정을 사랑으로 보느냐 아니냐, 뭐 그런."


 이제는 언어사회학이다. 내 학력에서 느껴지는 비참함을 뒤로하고 이런저런 미디어에서 긁어모은 내 인문학적 지식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그렇겠죠."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동양권은 우정과 사랑을 철저하게 구별했고, 서양은 상대적으로 우정과 사랑을 비슷한 감정으로 본 모양이에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육체적 끌림과 정신적 끌림으로 확실하게 구분했달까."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지식을 토대로 나는 적당히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선배는 서양 철학 쪽인가 보네요? 정신적 사랑도 사랑이다, 그러니 아무튼 순애다, 그런?"


  내 의견을 듣기로 마음먹으면 그녀는 재확인 느낌 가득한 예 아니오로만 답이 나누어지는 질문을 마구 던져댄다. 생각해 보니 굳이 순애라고 콕 짚어 말한 것도 내 반응을 제한하기 위함인 듯했다. 나도 슬슬 그녀에게 읽혀 가는 모양이다. 창가에서 흘러들어온 백색소음 특유의 오묘한 박자 속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말을 생각해냈다.


"글쎄. 일단은? 우정과 사랑의 경계는 모르겠지만, 깊은 우정이 사랑보다 더할 때도 있기야 있잖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확실하니 그것도 사랑이라고 볼 수 있겠지."


 역시 어렵다. 지적 허영심을 뽐내려 한 2분 전의 자기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며 말을 적당히 끊었다.


"수십만 년 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결론내리지 못한 주제를 나더러 결론 내라고 하지는 말아줘. 그냥 주관이야."


 그녀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만족감인지 알 것 같았다. 저건 공부하기는 싫지만 공부하는 기분을 내고 싶은 학생의 보편적인 행동이다. 거의 확실하다.


"그리스에서 왜 사랑 안에 우정을 넣었는지 아세요?"


 보편적인 행동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어쩐지 불안감이 느껴졌다. 연장전의 시작으로 반드시 되물어야 하는 의문문, 내가 내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을 맛보기 딱 좋은 대화 유형이 나왔다.  


"뭔데."


"동성애."


 내 감이 좋아진 걸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더 잘 읽게 된 걸까. 불안감이 적중했다. 저번 주말에 벌어진 대화를 의식하는 느낌이 다분했다. 아마 내 친구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싶어서 이런 식으로 말한 거겠지. 그리스와 동성애라면 학습만화 여럿을 독파한 나에게 있어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였기에 약간이나마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지도 감이 어렴풋이 잡혔다.


"그리스 철학의 기반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다시 이어지는 질문. 과거 경험에서 기반을 둔 불안감 때문인지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대화의 흐름이 어느 정도 읽혔다. 읽은 상식과 교양의 수준에서 대답이 그럭저럭 떠올랐다.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순화한 표현을 그녀는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여자는 그저 번식을 위한 도구고, 진실한 교류는 사람에게서만 이루어진다. 즉 남자 간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그런 식이었죠. 그러니 우정이라 볼 수 있는 요소도 서양에서는 사랑으로 평가한 거고요."


 좋다. 예상대로의 흐름이다. 못 미더운 선배를 위한 농담은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기에 괜찮은 소재거리다.


 그러니 그녀는 이제 옅게 웃을 것이다.


 저렇게.


"설마 선배도 그러세요?"


 문장 성분이 몇 개 누락된, 여성 혐오에 대해 묻는 건지 동성애 성향에 대해 묻는 건지 모호한 사상 검증이 다가왔다. 역시 묘하게 사람 놀리는 재주가 뛰어난 후배였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하기는 한데, 동성 소꿉친구긴 할지라도 정신적 사랑이야 당연히 있지."


 예측에 성공해서 당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차분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나는 정신적 사랑을 좀 더 높게 쳐줄 뿐이고. 별로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나도 대명사를 통해 모호하게 말을 흐려 말했다.


"육체적 사랑은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에 깃든다는 걸 동의하는 정도. 자기 긍정과 자기 관리는 중요하잖아. 정신의 양호함의 증거인 단련된 몸을 사랑하는 건 인정해."


"나쁘지 않네요."


 한 번 더 나를 떠본 그녀가 생산적인 대화에 만족하는 기색을 보이며 감상을 말했다.


"너는?"


"저도 선배랑 비슷해요."


"나쁘지 않네."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시계를 흘끗 바라본 그녀는 애매한 시간인 겸 자신에게 온전히 휴식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는지 꺼내둔 공책과 자습서, 필통을 정리해 나갔다.


"동양적인 건 어떻게 생각해요?"


"우정과 사랑을 선 그어서 생각하기?"


 이제는 공자님 말씀이다. 남아선호사상 사회의 끝물에 태어난 18세 청소년은 자신의 인생관과 문화에 대한 유교적인 고찰을 하게 되었다. 


'네."


"서양 쪽보다는 동양 철학이 좀 더 끌리네."


 언어사회학적으로 생각하자면, 한자 문화권에서 우정과 사랑을 구별하는 이유는 철저한 이성애와 일부일처제를 지향했기 때문일까? 역사에 스캔들이 만연한 서양과는 다르게? 적당히 공상하며 보충 설명을 떠올렸다.


"관계를 확실히 정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 어중간하게 사랑으로 통치는 것보다는 말야."


"더 말해보실래요?"


"그냥, 난 확실히 정해두는 게 편해. 사람 대하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해."


 사상 설파의 끝은 항상 우습게 느껴지는 고2병 문장이다. 제기랄.


 "아, 이거 어렵네."


 수많은 자기 학대 방법 중에서도 글러먹은 사고방식을 자기 입으로 직접 꺼내며 되새김질하는 방법은 인지부조화와 자기혐오를 유발하기에  최상급이다. 자기 긍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10초 전의 나를 저주했다.


"괜찮은데요."


 티가 났는지 친구가 먼저 나서서 맞장구를 치며 내 자기혐오를 덜어 주었다. 사람에게 집중할 때는 눈치가 꽤 빠른 친구다.


"나쁘지 않아요. 저는 적당히 절충하는 게 좋아 보이지만요. 정신 없는 육체와 육체 없는 정신을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우정에 사랑이 들어갈 수도 있고, 사랑에 우정이 가득할 수도 있고요... 있나? 음, 말할수록 더 애매하게 느껴지네요. 이쯤 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어딘가의 대학에서 수많은 지식인과 지식인이 부리는 노예들이 끙끙대며 연구하고 있을 주제였고, 뇌과학과 언어학과 심리학이 뭉쳐져 있는 그놈의 주제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단순하게 800번대 클리셰 얘기가 계속되었다면 그나마 쉬웠겠지만, 100번대로 넘어가니 이 꼴이었다. 그녀도 주제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는지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서 누나도 곧 돌아올 시간이었다. 


 나도 꺼내둔 책을 정리해 북트럭에 올려두었다. 내일 800번대 서가에서 뺑이치게 될 도서대출기록과 생활기록부 기록에 홀린 불쌍한 도서부원들에게 묵념하면서. 독후감 말고는 남는 게 없는 독서부 만세.


"학원 갈 시간에 짬짬이 인터넷으로 철학 연구하는 거로는 한계가 있네요."


"야메니까. 뭐."


"얼마 전에 휴대폰 바꿨는데... 어... 데이터가 잘 터지더라고요."


"걸으면서 폰 보지 마라. 그리고 우산부터 챙기는 게 어때."


 우산을 깜빡한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앗 하며 짧은 탄식을 뱉고는 반투명한 흰색 우산을 자리에서 급히 챙겨 나왔다. 복도 두 번을 꺾고 아침부터 쭉 이어지는 빗길로 향했다. 실패한 학자들을 위한 풍경 같았다.




 그녀와 같이 하교하는 일이 많아졌다. 같이 만나 떠들다가 나가는 거니까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같이 가면 이상한 소문 날까 봐 걱정된다, 식의 미연시에 나올 법한 대사가 왜 생겼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나날이었다.


 흙냄새가 진했다. 비에 너덜너덜해진 남학생들이 축구하는 풍경이 보였다. 익숙한 금발도 보였다. 맑은 날에는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고, 비 오는 날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건 대체 어떤 심리인지 궁금했다. 내 체육복을 빌려 입은 채 비를 쳐맞는 걸 보니 아마 자살 충동으로 추정되었다. 내일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빨아서 돌려준다면 녀석에게 자살이 피동사로도 쓰일 수 있음을 알려줘야겠지.


"비 오는 데도 열심이네요."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이 정도면 우천 경기도 재밌긴 하지."


 비닐우산에서 빗방울 튕기는 소리를 들으며 답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는 감수성에 자극을 준다. 회색 필터를 끼운 듯한 비 오는 울적한 풍경은 우울감과 약간의 자살 충동을 부추기기 마련이었다. 그런 부적절한 욕구 해소 방법에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법이 있다. 질척할 정도의 해방감을 느끼며 비를 정면에서 받아내는 게 그 예시였다. 우울감을 유쾌함으로 승화시킨다고 할까. 다섯 명의 단출한 인원 구성임에도 골대를 하나만 쓰는 방법으로 축구를 즐기는 그들은 비에 축 처진 외관과는 별개로 열정이 넘쳐 보였다. 시험 기간이 선사하는 자살 충동과 비 내리는 날의 자살 충동의 결합을 표현하는 행위예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거 태성 선배...님이죠?"


"비 맞기 좋아하는 놈이야."


 시끄럽게 지시를 내리며 돌아다니는 내 친구놈을 바라보았다. 수업 중에 밖에서 괴성 소리가 들려온다면 7할은 체육 수업 도중 들뜬 저 녀석이 낸 소음이었다. 어디 농구 만화 주인공 따라하기라나.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고른 후배와 함께 잠시 멈춰 서서 그들의 경기를 구경했다.


 "예전부터 그랬어. 소꿉친구 사이는 알기 싫어도 별의별 걸 다 알게 되더라. 저런 사소한 것까지도."


 그녀는 내 넋두리를 듣다 의문을 느꼈는지 의아한 어투로 내게 물었다.


"선배님은 학교 근처고, 선배는 지하철 타고 오시잖아요. 집이 먼데 어떻게 소꿉친구에요?"


"옛날엔 가까웠어. 한 번 이사 가서 여기 온 거고. 그리고 태권도장도 같이 다녀서 집 거리랑 상관없이 친해졌었고..."


 떠올릴수록 징그러울 정도로 돈독한 친구 녀석. 서로 이불 걷어차게 만들 이야깃거리를 잔뜩 장전해둔 친구 사이. 저번 주말에 일어난 수치스러운 사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빗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선배, 은근 친구 많으시네요."


 사색에 젖기 좋은 빗소리 속에서 그녀가 다시 말을 꺼내 왔다. 그녀도 그를 보다가 내 인간관계의 기묘함을 느꼈나 보다. 같은 학교로 계속 붙어 다니던 저 금발 녀석이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지긋지긋한 친구들이 많았고,  그녀와 함께 떠들다 보니 그녀 또한 내 친구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당사자에겐 흑역사의 굴레인 비극이고 멀리서 보기엔 그냥 희극인 이야기였다. 


"그러게."


 해학이 섞인 자기비하와 서로에 대한 풍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블랙 코미디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패거리의 구성원으로서 맞장구쳤다. 남자는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화하고 여자는 교감하는 방식으로 대화한다는 칼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객관적인 사실 전달을 통해 내가 자기비하를 하지 못하도록 대신 혐오해 주는 녀석들은 좋은 친구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내향적으로 보이시던데, 좀 의외에요."


"내향적?"


 이제는 사람 성격 분석인가. 


 내성적이라. 예전 중2병에 빠져 있을 때 인터넷과 시사 프로그램, 그리고 개똥철학에 심취한 오락 창작자들의 심리 분석에 관심을 둔 적은 있다. 프로이트와 융으로 대표되는 뭔가 있어 보이고 직관적으로 알기 쉬운 심리학 정도는 알았고, 내성적 얘기를 듣자 하니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기 분석이라면 이미 해봤다.


"내향적인 거 맞아."


"말도 많으시고, 친구도 많잖아요."


"별로? 따지자면 너랑 비슷한 성격인데. 평소엔 말 적다가 친한 애들끼리 모이면 말 많아지는 그런 쪽 말야."


"흐음..."


 녀석의 고함이 들렸다. 골대 위로 공은 뻥 넘어갔고, 녀석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운동장 바깥으로 달려나가 공을 주워 돌아왔다. 축 처진 금발머리가 내 체육복을 향한 동정심을 자극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비를 꿋꿋하게 맞는 걸 보니 돈 걸고 하는 내기 축구인 모양이다.


"내향적인데 소심한 건 아닌 성격, 나는 내가 그래 보이는데. 어때?"


"틀리지는 않아 보여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외향적인 것 같지만요."


 그녀가 시선을 돌리며 우산을 반 바퀴 회전시켰다. 그녀의 시선이 흰색 장막 사이로 비쳐 왔다.


"어렸을 때는 관심받기 좋아했다면서요. 그러면 외향적인 거 아닌가요? 지금은 조금 더 소심해진 거고."


"그건..."


 그때는 외향적이었나?


 그건 아니지.


 "그건 뭐라고 해야 하나, 방어 기제였지. 있어 보이게 말하면 페르소나 이론 그거처럼. 나는 그때 내가 멋져 보일 줄 알았거든."


 중2병 섞인 또라이짓의 부정적인 영향이 잔뜩 떠올랐다. 아아, 미안하다. 부정적인 영향을 덤터기로 받은 내 사랑들이여.


"그때가 이상했던 거야 그건."


 남을 놀리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기 좋아하는 사춘기의 남자아이들에게 비웃음과 동정을 샀으니 성공이기야 했다. 나의 이상했던 부분과 어울리고자 한 반항기의 철부지들과 남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쟤랑 비슷했어. 쟤도 따지면 내향적인 성격이거든? 근데 사람이랑 어울리고는 싶어해. 그래서 저렇게 과장되게 노는 거지."


"그게 외향적인 성격 아닌가요..."


 언어학에 대해 조예가 깊은 이과 후배가 말끝을 흐렸다.


"좁고 깊은 관계를 원하면서 또 사람 덜 만나긴 싫어해. 여기저기 끼어 다니면서 가까운 애들한테만 본심 털어놓고, 그냥 그런 거지. 아, 쟤는 그냥 양향적인가."


 말을 정정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냥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너처럼."


"그래서 소꿉친구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그녀가 내 말을 인정했다.


"너는 별로야?"


"음, 공감이 잘 안 돼서요."


 그녀가 천천히 정문을 향해 걸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좁은 관계가 꼭 깊거나 오래가지는 않는데, 상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고 계속 이어질 거라 믿는 게 가능한가 싶어요."


"웬일로 낭만이 없네."


"낭만적이지 않아 보이니까요.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을까요. 서로 간의 끌림도 얼마나 있을지 애매하고."


"심심...?"


 미연시에 나올 법한 다이나믹한 이벤트야 없겠지만, 친구 관계의 연장으로만 쳐도 심심할 일은 없지 않나. 체육복에 진흙을 묻히고 돌아다니는 심심할 틈을 안 주는 친구 녀석을 흘끗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미 볼 장 다 본 사이인데도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시공간 제약도 많으니 계속 같이 보는 것도 힘들 테고. 가족처럼 살아온 사람한테 반한다? 좁은 인간관계에 갇혀서 살지 않는 이상 이성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녀가 현실성을 따지고 있었다. 의외였다. 단호한 어조를 보아하니 내 반골 기질을 자극하기 위한 빈말은 아니었다.


"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접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반투명한 자신의 우산을 살짝 올려 비닐우산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 말처럼 좋은 친구로 남아도 되잖아요. 이미 좋은 관계인데 왜 굳이 연애로 나아가려 하는 건지 잘 납득이 안 가요. 그리고 세상엔 더 좋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왜 적당히 안주한 채 잘 지내던 친구를 연인으로 만들어 자기 자신의 인간관계를 제약하는 걸까요."


  아하. 현실성이 아니라 과감함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연장이군. 약간 늘어진 어조를 보아하니 본인의 피로한 경험이 섞인 사상 같았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려는 발정 난 청소년들의 수작에 시달렸기 때문일까. 축축해진 신발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변함 없이 서로의 인생을 책임져주자고, 친구라는 애매한 관계를 넘어서 사회적 약속으로 관계를 확실하게 하려고 연애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그리고 진짜 인간관계가 좁은지라 다른 사람을 몰라서 상대가 최선의 연애 상대라고 생각하는 건 거꾸로 말해 진짜로 최선의 연애 상대가 소꿉친구밖에 없으니 최고의 선택이 되는 거고, 또 사람을 여럿 만나보면 오히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상대가 소꿉친구라고 확신하게 될 수도 있고. 시공간 제약이야 sns랑 문자 전화 있잖아. 조건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충분히 이뤄질 만한 사랑이라고 봐. 오래 지내 돈독한 관계니 연애 뒤에 나빠질 일도 적을 테고. 심심할 수는 있어도 안정감 있고 꾸준한 사랑이 되겠지."


 씹덕으로 지내온 시절의 동심과 함께 마음속에서 낭만이 솟아났다. 아아, 낭만적인 사랑이어라. 아아, 3년 전의 난 왜 저런 낭만적인 사랑을 생각해내지 못 했을까.


"절충안으로 생각하면, 친구로 남으면 남은 대롤 좋고 연인으로 발전해도 장점이 있고. 단점은 거의 없고. 소꿉친구, 좋지 않아?"


 낭만 그 자체인 무적의 소재. 소꿉친구.


"으음..."


 그녀는 별로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납득이 아직 안 가?"


"...모르겠어요. 계속 봐오던 상대랑 이어지는 게 최선이라면, 슬픈 인생 아닐까요."


"행운이지. 마음 잘 맞는 사람 찾기 쉽나."


 단어 선정이 독특했다. 슬픈 인생이라니. 원수라면 모를까 보던 친구만 계속 봐 왔다고 슬픈 인생이라고 칭하기는 너무 심한 비약 아닐까 싶었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납득이 아예 안 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친구의 소중함에 슬픔이 들어갈 여지는 없지 않나.


"너도 그런 친구 있으면 알 거 아냐. 만나도 만나도 재밌는 친구. 재밌지 않아도 최소한 같이 있으면 편한 친구. 계속 봐도 슬프지는 않잖아."


 덕담에 미친 꼰대가 되어 가는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그녀가 내 꼰대 같은 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침묵이 보통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말이다.


"왜 말이 없어. 야."


  간이 사무소에서 커피포트를 만지작거리는 경비 아저씨에게 목인사를 하고 정문을 나섰다. 그녀의 침묵은 불길한 전조였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흘끗거리다가 고심 끝에 결심한 듯 말했다.


"...친구가 없어서 모르겠다고요."


"아."


 상상 이상으로 직설적이고 의외인 대답에 말이 끊겼다. 여자식 대화법인가. 교감에 호응하지 않은 상대를 말 한 마디로 나쁜 놈 만들기. 아아, 그때도 그렇고 이상한 승부욕 좀 버리지 그랬냐. 쇼펜하우어 논쟁술에 휘말린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은근히 승부욕이 붙어 내 사상을 전파하고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저지른 노고가 순식간에 무의미해졌다. 현실 안주를 중요시하는 내 사상은 강한 낭만을 이기지 못했다.


 설마 네가 좇던 낭만은 네 결핍 욕구에서 나오는 거였냐, 같은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할 말을 억누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비닐우산 사이로 비친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유학 가고 그랬을 테니까, 거긴 또 문화도 다르고.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었네. 강요해서 미안하다."


 살짝 과할 정도로 확실하게 사과했다. 


"농담이에요."


 사과의 의도가 잘 전해졌다. 서로를 존중하기로 마음먹기로 한 우리는 좀 전의 일을 없던 일로 치고는 사거리를 향해 걸었다. 습해진 공기로 인해 매연 냄새도 흙내음과 함께 더 진해진 느낌이었다.


 


 

 역세권의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이 학원을 위해 지하철로 집 멀리 이동해야 한다는 점은 사교육에 대한 아이러니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광경이었다. 말 주제가 끝나 생겨난 자연스러운 침묵 속에서 아스팔트 위로 튕기고 고이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니 다양한 감상을 느낄 수 있었다.


 물방울들. 일산화이수소. 떨어지고, 쪼개지고, 합쳐지고, 흐른다. 그리고 깊숙이 떨어진다. 올라가기 위해서. 그리고 떨어지기 위해서. 비 오는 날의 자살 충동을 오글거리는 감수성으로 표출하며 길게만 느껴지는 신호등을 기다렸다. 익숙한 버릇이다. 떨어지고, 매달리고. 떨어지지 못하고. 덜렁거리고. 죽고 싶어하는 욕구를 멋들어진 말로 뭐라 부르더라? 그리스 말은 아닌데. 나보다 앞에 서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희미한 우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쁘게 흘러가면 최악이기도 한 게 소꿉친구긴 하지."


 한 발짝 앞으로 나가 차도에 가까이 섰다. 점자블록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우산에 맺힌 방울들을 보며 나는 말했다. 좁은 인간관계에 대해 묘하게 반응한 것도 그녀의 자기혐오일까.


"헤어져서 친구 사이 망가지는 경우요?"


"아니."


 한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체감 온도와는 다르게도 날이 생각보다 더 따뜻해져 있었다.


"헤어지는 게 차라리 낫지. 쭉 같이 하면 더 심각해질 수도 있어."


 자살 충동에 힘입어 내 못 미더운 면이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의 최종 단계가 소꿉친구잖아. 그렇지?"


"그래서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건 보통 내향적인 사람들이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때 편해지는 건 알지?"


"알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 만나는 걸 꼭 싫어하지는 않아."


"그것도 알아요."


"그럼 내향적인 사람이 혼자 지내는 걸 공에 비유하는 것도 알아?"


"음, 만화인가요? 본 기억이 있어요."


"그래. 그거 맞을 거야. 그 만화처럼 물방울이라고 쳐 보자. 물방울 안에서 내향적인 사람은 회복하고 편해져. 그리고 정말 친한 다른 사람을 그 물방울 안에 들여놓기도 하지."


 녹색이 점등했다.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이어서 말했다.


"근데 이건 선택이야. 친구 사이에서는. 거북한 점이 있어서 너무 가깝다 싶으면 다시 거리를 두면 돼. 하지만 사귄다면? 결혼한다면?"


 말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이 뒤늦게 이어지자 그녀는 흥미를 느낀 얼굴로 내 말을 경청했다.


"그때는, 소꿉친구고 뭐고 어떻게 장단을 맞춰줄 수가 없어. 보기 싫어도 계속 봐야 해. 아니면 관계를 파토내던가. 답 없는 이지선다에 걸리는 거야. 서로 안 맞는 걸 확인했으니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도 없어져. 어중간하게 서로를 물방울로 가둔 채 관계를 이어나가면 일상은 고문이 돼 버리고..."


 횡단보도가 끝났다. 역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서니 천장이 비를 막아 주었다. 우울감이 끝나니 감성 넘치는 헛소리도 진정이 되어 황급히 말을 끝냈다.


"음, 그러니까 네 말대로, 친하다고 꼭 좋게 관계가 흘러가는 건 아니라고."


 어색하게 말이 끝나자 분위기도 덩달아 어색해졌다. 직장인들의 퇴근 타이밍과 거리가 있는 시간대여서 다행이었다. 물기가 조금 남아 있는 우산은 불특정 다수에게 민폐를 끼치기 좋은 물건이었으므로. 


"뭐, 아무튼 오늘 재밌었다. 내일 봐."


 울적한 날에 어울리는 울적한 끝마무리다. 내일 태양이 뜨기나 기다려야지. 경직된 선후배의 대화에 억지로 나서서 적당히 분위기를 걷어차 준 나는 개찰구를 향해 도망갔다.


"잠깐만요, 선배."


 도망가는 나를 후배가 불러세웠다. 잡혀 줬다.


"방금 전에 한 말 있잖아요."


"헛소리야. 좀 들떠서 막 말한 거야. 신경 쓰지 마."


 대화를 더 지속하면 자기혐오를 느낄 것 같아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달랐다.


"아뇨. 그 내향적인 사람이 방울이다, 그 얘기 말이에요. 어디서 봤어요?"


 그거 얘기였나. 흥미로운 사교술 만화였다.


"인터넷 만화. 너도 봤다며."


 관심이 있나 보다.


"보여 줘?"


 그녀는 교복 가디건에 달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톡으로 보내 주실래요? 궁금해져서요. 다시 보고 싶네요."


"연락처가 없는데."


"제가 보낼게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폰을 두드렸다. 몇 초가 흐른 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여기요' 톡 알림이 보였다. 잠금 화면을 끌어 해제한 나는 신예은의 무미건조한 기본 프로필을 볼 수 있었다. '전화번호는...' 진동 없이 그녀의 번호가 띄어졌다.


 나도 인터넷을 킨 뒤 자판을 두드려 예전에 본 짧은 단편 만화를 긁어와 링크를 전송했다.  


"네. 됐네요."


 그녀는 손을 딱 한 번 까딱 흔들어 형식적인 작별을 해 줬다.


"폰 바꾼 김에 연락처도 새로 저장하려고요. 안녕히 계세요. 내일 봐요."


 그렇게 그녀는 개찰구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만남은 끝났고, 나도 내 쪽의 개찰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열차는 빠르게 도착했다. 내가 내려가자마자 도착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비 때문에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지하 구간이 끝나고 바깥이 보였다. 창문마다 물방울이 달라붙었다가 바람에 쓸려나갔다.


 사색에 잠기기 딱 좋은 풍경이었다. 물방울이다. 물방울이니 쉽게 쓸려나가지.


 그래서 각지고 확실하게 잴 수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일관성 있는 관계를.

 

 그래서 말이다.


 지금 나 번호 따인 거냐?


 아니, 딴 거냐? 


 그녀가 내 전화번호를 아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동아리 부장의 탈을 쓴 노예의 전화번호야 동아리 표에 박제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전화기를 바꿨다는 핑계로 전화번호를 알려주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기억을 돌이켜보니 도서관에서도 한 번 시도했었다. 아둔한 내가 아둔한 미연시 남주인공마냥 플래그를 한 번 박살 내서 그렇지.


 그걸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내 연락처를 굳이 알려준 내 후배. 적당히 만나서 적당히 헤어질 수 있었던 관계가 복잡하게 흘러갈 징조임을 아둔한 나도 알 수 있었다.




 알림이 떠올랐다. 예상과 다른 알림, 빠져나갈 수 없는 선을 너무나도 견고하게 그어놓은 친구들을 모아놓은 방에서 '야' 한 글자의 알림이 떠올라 있었다. 


-야


-재혁아


-니 체육복 찢어짐


 그리고 사진 로딩. 읽음 표시가 하나 더 줄어들었다.


- 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ㅎㅎ ㅋㅋ ㅈㅅ


 잘도 찢어 놨네. 전체적으로 젖어 있고 흙이 묻은 건 둘째치고 태클이라도 신나게 했는지 가랑이 사이가 뜯어진 내 체육복 바지가 보였다. 폰을 두드렸다.


- 그렇게


-뒤쪽 뚫어달라고 어필하고 싶었음?


 선 안에서는 호모포비아를 비롯한 온갖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공간에 적었다. 내 농담 섞인 분노에 대해 대답할 말을 찾는지 읽음 표시만 줄어들고 답장이 오지 않았다.


-섹스


 농담을 받아내며 분위기 전환을 유도할 때 탁월한 효과가 있는 단어로 대답이 올라왔다. 


- 수선비 얼마더라


 그리고 해결책도. 바람직한 사건 해결법이었다.


- 친구비까지 해서 오만원 가져와 씹새야


- 걍 직접 세탁소 가서 맡긴다 ㅅㄱ


- ㅇㅋ


-근데 니네학교 체육복 존나 못생겼네


-형 얼굴보단 아님


-ㅗ


 웃으며 폰을 내려놨다. 지하철이 선로 위를 조심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선을 정하고 싶은 걸까.


 움직임을 종잡을 수 없는 물방울 같은 관계였다.


 이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돈독한 선이 그어진 망할 소꿉친구 놈들은 남아 있으니까.


 찢어져도 그때처럼 우울한 생활을 보내지는 않겠지.


 재작년의 비 내리던 겨울밤을 회고하며, 덜컹거림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