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ovelove/3469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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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이렇지 이거 순애 맞아요 고어 학대 강간 일절 안 나올 거에요



"궁금한 게 있는데.. 넌 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야?"


다음날 아침 루이가 설아에게 말했다. 그는 전날 아침에도 혹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지만, 설아는 그의 눈치를 보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넌 어쩌다 시장에 오게 된 거야?"


인간 시장에서 인간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인간들 스스로 몇 명을 뽑아서 바치는 건데, 주로 뱀파이어가 지배하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다른 하나는 불법에 가까운 일로, 가난하거나 치안이 좋지 못한 곳에서 적당한 인간을 잡아오는 것이었다. 루이는 이틀 전 그녀를 씻길 때 몸 곳곳에 흉터가 나 있는 것을 보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인간이 바쳐졌을 리가 없으니 잡혀온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돌아가고 싶어하는 게 맞지 않은가?



잊고 있었던, 아니 스스로 잊어버렸던 너무나도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 설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연은 이랬다.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의 엄마는 어릴 적 병으로 죽었고, 아빠는 술을 입에 달고 살며 하나뿐인 딸을 학대했다. 이를 꿋꿋이 견디며 자라 19살이 된 설아는 그런 아빠를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러 애썼다. 그 역시 사채업자에게 돈을 잘못 빌렸다가 빚더미에 앉아버린 탓에 유일한 돈줄인 딸을 더는 폭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고, 고민하던 그녀의 아빠는 결국 장기매매로 악명 높은 갱단에게 딸을 팔아버렸다. 끌려가기 직전 간신히 탈출한 그녀는 한밤중에 정신없이 도망치다 그만 '인간 사냥꾼' 뱀파이어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친구들 몇몇을 포함해서 잡혀온 인간들과 함께 차에 실려 끌려가는 동안, 한참을 울던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구해줄 사람도 없고, 뱀파이어의 노예가 되거나 농장에서 죽을 때까지 산 채로 피를 뽑히는 일만 남은 현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과거를 털어놓는 동안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루이는 그 모습을 지켜볼 뿐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 제 탓이에요. 제가 무능하지만 않았어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 열심히 일했어야 하는데..'


착잡한 심정이었다. 설마 이런 사연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괜히 물어봤나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덜어야 할 마음의 짐이었다. 결심을 한 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에 앉았다.


"아니, 절대 네 탓이 아니야."


한참 울던 설아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우선 가난은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야.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라, 스스로 빈곤의 악순환을 끊는 게 불가능해서 가난한 거야. 부자라고 다 열심히 일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그리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빠라는 사람이 고작 빚 때문에 자식을 팔아넘긴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이 역시도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가난하게 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이토록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금은 실컷 울어도 돼, 대신 진정되고 나면 괜한 자책감은 덜어내고 새롭게 시작해 보자."


설아의 마음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친구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이토록 진심어린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정말... 제 탓이 아닐까요?"


"그럼. 당연하지."


감격에 벅찬 설아가 자기도 모르게 앞에 있는 루이를 껴안았다. 루이는 당황하긴 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달래듯 그녀의 등을 한 손으로 토닥여 주었다. 품 안이 눈물로 젖어들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설아는 그렇게 몇 분 동안이나 루이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었다. 마침내 울음을 그친 그녀가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죄.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이제 기분은 좀 나아졌어?"


"네, 근데 루이 님 옷이.."


루이의 셔츠는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옷이야 뭐, 빨면 되니까 상관없어."


한결 진정된 설아가 욕실에서 엉망이 된 얼굴을 씻었다. 눈은 아직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확실히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듯했다. 


"루이 님.. 좋은 분이시네."


처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루이는 지금껏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끊임없이 돈에 쪼들려야 했던 예전보다 지금 생활이 더 행복할지도 몰랐다. 문득 아까 안겼을 때 옷 너머로 느껴진 따뜻한 온기와 등을 토닥여 주던 다정한 손길이 생각났다.


한편 루이도 마찬가지로 심정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이유가 어찌됐든 설아는 자신이 돈을 주고 사 온 인간이었다. 설아의 쓰라린 과거를 알고 나니, 이제는 자신이 책임지고 그녀에게 낯선 이곳 세상에서 확실한 보호자가 되어주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방금 전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가 떠올랐다. 인간일지언정 여자가 안겨 오니 상당히 당혹스러웠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 설아야, 이리 와 봐."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처음인지라 상당히 낯설었다. 설아는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았다.


"집에만 계속 있으니 지루하지?"


사실 루이의 집에서 설아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문자가 달라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었고, 어린아이마냥 인형을 가지고 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TV만 보여주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설아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미안. 마음 같아선 널 데리고 밖에 나가고 싶지만.."


이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뱀파이어들의 인간에 대한 시선은 결코 좋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열등한 종족, 피를 제공받는 수단일 뿐이었다. 루이는 그녀를 데려온 날 밤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져봐도 인간을 제대로 돌보는 방법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뭐, 여자는 주기적으로 생리하니 자궁을 적출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실제로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부모가 돈이나 가축을 얻기 위해 딸을 팔아넘기는 일이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