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 늦은 밤의 비행기였다. 나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줄곧 그녀의 생각이 나서 버틸 수 없었다. 나의 머리 속 모든 방이 그녀로 차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만날 것이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선녀가 돌아오기를 비는 것과 같았다.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9월 겨울 밤이었다. 나는 서울의 유명한 4년제 대학교에서 이제 막 1학년을 졸업한 학생이었다. 나는 선배들의 말을 잘 듣고, 처세술이 좋은 데다 공부도 그곳 기준으로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선배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선배들의 권유로 인해 술자리에도 자주 나갔는데, 그녀를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그 술자리 중 하나였다.


나는 그때 술을 잔뜩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어느 여자가 지갑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여자가 모른 듯 지나가서, 나는 그 여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지갑을 주워주고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동기 미경이였다.


그녀는 내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부터 내심 나를 좋아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말라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기에 고백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고백을 미뤄왔다.

그러던 중,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에 나를 만나고 술에 취한 채 나에게 본심을 말한 것이다.


나도 그녀가 싫지는 않았기에, 나는 고백 요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우리가 한 1년쯤 사귀었을 때였다. 우리는 어느새 땔레야 땔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로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이별은 찾아왔다. 1년 전 쯤에 신청했던 교환학생이, 당첨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나는 허탈했다. 그저, 이것이 꿈이기를 빌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이별하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에, 서로를 껴안으며 입맟춤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오는 날에 약속을 지키기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돌아온 날, 그녀는 사라졌다. 말 그대로 존재가 지워진 듯,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미경의 교수에게 물어봐도, 미경의 친구에게 물어봐도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사람, 나의 일부는 사라졌다. 나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떠나간 뒤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지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꿈인지, 현실인지 햇갈린다. 하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는 존재했다고. 

모든 기억이 가짜여도, 상관이 없다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이 늦은 밤에, 담배를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