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트리거 워닝 있음. 미리 이야기를 해야할것같았어.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다.


이름을 제외한 기본적인 신상명세를 좀 읊어보자면, 난 현재 중학교 2학년이다. 중학교 2학년에, 아이돌을 하고 있다. 내 편익의 파트너인 란코와 함께,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또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프로듀서와 함께.


나름 인기는 있는 편이다. 나보다 더 인기가 많은 사람들이야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못할 정도겠지만, 그래도 저 북적북적한 거리에 내 얼굴을 비춘다면 어느정도는 알아보는 이들이 있는 정도의 입지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고독이 좋다.


고독이란 것은 참으로 씁쓸하면서도 중독성이 짙은 것이다. 진하고도 검은 카페인처럼. 나는, 스스로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 나름 자부심이 있기에 나만큼이나 고독에 심취해 사는 사람은 주변에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고 자신해 오고는 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프로듀서는 소위 말해 워커홀릭이다. 나를 제외해도 담당 아이돌들은 나름 많이 있었지만, 프로듀서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날 제외하면 없다시피 했다. 나랑도 딱히 친하게 지낸다기엔 내가 프로듀서가 마시는 쓰디쓴 커피를 요구하며 몇 마디 나누는게 전부일 뿐이지만.


늦은 밤이 다 되도록 달빛과 모니터의 빛을 동시에 맞으며 자판을 두드리는 프로듀서의 그 모습은, 어째선지 모르게 참 신비로웠다. 내가 다른 또래들처럼 '어른이란 늘상 실없이 보너스니 부동산이니 주식이니만 떠들어대는 족속들'이란 관점을 가지지 않은 것엔 프로듀서의 역할이 컸다.


세간에선 나같은 아이들을 중2병이라고 하지? 나의 동류더러 세상을 미워하고 자신만을 추구한다고 일컫는 시선이 있는데. 완전히 오해에 불과하다. 단순한 증오가 아니야. 애증이라고. 애. 증. 사랑이 있기에 소리치고 미워하는 것을. 그 간단한 것을 어째서 세상은 모르는, 아니, 망각한 것인지.


프로듀서는 그 사실을 잊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아니, 어쩌면 유일한 어른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어른들 중에선. 그렇기에, 내가 프로듀서에게 이끌리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란코가 나의 태양이요, 희로애락의 희라면, 프로듀서는 나의 달이요, 희로애락의 애다. 란코가 내 곁을 동행해주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면, 프로듀서는 뒤에서 날 이끌어주고,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두명이 모두 소중해서 둘 다 놓칠수가 없다. 둘 다 나의 날개라서 나는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더이상 날 수 없는 몸이 되겠지.


그래. 더이상 날 수 없는 몸. 내가 천사건, 아니면 새건, 아니면 한낱 윙윙대는 파리라고 할지라도, 나에겐 날개가 있는걸. 날개가 없으면. 난... 안 되겠지. 절대로 안 될 거야.


"...무슨 생각해?"


"프로듀서 생각."


"꽤나 담담하게 말하네."


"내가 누구의 부름을 받아서 왔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오늘 프로듀서는 갑자기 날 불렀다. 늘상 나의 부름은 거절하고 일 일 일 잠 밥 일이더니. 프로듀서는 내가 말은 담담하게 했지만, 내 심정이 담담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얼굴에 다 보일 테니까. 난 너를 생각한다, 너를 생각하면서 이곳으로 왔다. 그 자체만으로 꽤나 두근거리는 말이 아닐까.


"...저, 아스카."


"응."


"그냥 고맙다고 하고 싶었어."


"고맙다니?"


"그냥... 그냥. 고마워. 고마워. 흑..."


프로듀서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 프로듀서가 내 앞에서 한번도 보인 적 없는 눈물. 그래. 울 수 있지. 울 수 있어. 프로듀서도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왜 나 때문에 우는 걸까.


설사 저 눈물이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해도, 그 때문에 내 마음은 지금으로썬 온전히 침수되어버렸다. 기껏 프로듀서 앞에서 읊으려고 준비해왔던 내 마음속 수백권의 책들이 다 젖어버려서 못쓸지경이다. 잉크가 다 번지는 바람에 넘길 수도 없는 책을 억지로 읽으려 들면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기나 할까.


난 책을 읽는걸 좋아하지, 소피스트가 아닌데 말이지.


"...저. 아스카. 그... 음..."


"...뭐야?"


프로듀서가 눈물을 잔뜩 흘리면서 건넨 것은 사진 몇 장이었다. 내 사진들. 눈물을 흘리며 프로듀서가 품에 지녔던 탓에 사진도 잔뜩 물기를 품었지만, 그래도 코팅된 덕에 못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스카. 니가 그 어느때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 그 때 찍은 사진들이야."


"...나한테 말도 안하고 찍었어?"


"응."


"대담하네. 내가 프로듀서한테 지닌 전반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해도, 당사자한테 말도 안하고 사진을 찍는 건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눈살을 찌뿌릴만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네가 예뻤다면서 그 사진을 당사자한테 건네주는 일은 더욱이."


"...사실 나만 몰래 간직하려고 했었어. 그러고 싶었어. 너한테도 비밀로 하고. 그만큼 아름다웠으니까. 나만이 독차지하고 싶을 만큼."


"그런 사진을 왜 굳이 지금 내게 준 거야?"


"이젠 필요없거든."


필요가 없다니. 정말 사진이 필요없는 건가. 나 몰래 또 내 사진들을 찍어서? 그만큼 피상적인 의미는 아니겠지. 우리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인가. 프로듀서는 더이상 내가 필요없는 건가? 진심으로?


"그 사진들, 내가 소중하게 여긴 사진들이야. 정말로 소중하게 여긴 사진들. 근데 이젠 아스카 니꺼야.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도 돼. 마음에 안들면 여기서 찢어버려도 되고."


"......"


내가 필요없다고? 그건 아니겠지. 정말로 그랬다면 고맙다면서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진 않았을 테니까. 왜 프로듀서는 날 부르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어버렸던 걸까. 왜 내 사진이 필요없다고 한 걸까. 더이상 나랑은 얼굴도 보지 못 할 것마냥 이야기를 하다니.


"...난 가 볼게."


"잠깐만!"


"...미안해."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고 달려갔다. 밖으로, 달려갔다. 난 최대한 쫓아가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레슨이니 나발이니로 단련되었다고 해도 사춘기 여성의 몸으로 성년 남성의 달리기를 쫓아가는 건 무리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다.


프로듀서. 어디 다른 직장에라도 가는 건가. 다른 사무소에서 스카웃을 받았다거나? 충분히 그럴만하겠지. 프로듀서라면 워커홀릭이니 커리어도 꽤나 쌓였을 테니까. 하지만, 자기 의지로 행하는 일이었다면 내 앞에서 눈물까지 흘렸을까. 대체 왜. 왜? 모르겠다. 어른의 일이란 당초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난 하나도 모르겠다.


"...겁쟁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이라도 해 주지.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건데.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거냐고. 늘상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난 더이상 견딜 수가 없다. 당신은 고맙다면서, 고작 그걸로 끝이야? 고맙다면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이 고작 그걸로 끝이야?


난 끝나지 않았어. 끝나지 않았다고. 당신이 흘린 눈물때문에 내 마음속 책이 못쓰게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새 책을 쓰러 갈거야. 그 책엔 프로듀서가 준 사진을 붙일 거야. 그러면 물에 젖어도 온전히 못쓰게 되진 않을 테니까.


난 프로듀서의 뒤를 쫓아갔다. 무작정 쫓아갔다. 프로듀서가 어디로 갔을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집에 갔겠지. 그럼 프로듀서의 집이 어디인가? 난 알고 있었다. 전에 한번 그 근처까지 간 적이 있었으니까.


어딘가로 바래다준건진 기억이 잘 안나지만, 프로듀서가 날 바래다주면서 잠시 집에 경유한 적이 있었다. 346이라는 화려한 마천루에서 일하는 프로듀서가 거주한다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처량하고 허름한 빌라였지. 그래. 내 눈 앞에 보이는 이 빌라. 문제는 내가 프로듀서가 몇층 몇호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럼 어떡하지. 전화라도 걸어볼까. 난 익숙한 번호를 향해서 몇번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착신음이 또르르르 굴러가지만 도저히 프로듀서는 내 전화를 받을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 이제 나랑 대화를 안 하시겠다? 그럼 통보라도 해야지.


"프로듀서. 창 밖에 봐봐. 나 보이지? 나 지금 손 흔들고있어."


난 메신저로 이 한 마디를 보내놓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먹을 꽉 쥔다. 주먹을 꽉 쥐고 참 기분나쁘게도 서늘한 공기에 펀치를 한방 날린다. 공기가 훅 하고 휘날리는 소리가 들린다. 프로듀서가 날 보고 있을까. 내가 하늘로 손을 뻗은걸 보고 있을까.


난 빌라를 향해서 미친듯이 팔을 흔들어본다. 말 그대로 미친듯이. 내 팔이 떨어질듯이. 아마 내 팔에 거미가 붙어도 이렇게 팔을 흔들어대지는 않을 텐데 말이지.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 그리고 불켜진 창문에선 프로듀서의 모습이 비치지가 않았다.


그렇게 난 내 옷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질때까지 세상 모르게 줄창 팔을 흔들고만 있었다. 조금만 더 몰입했으면 내 주머니에 진동이 울리는 줄도 몰랐을텐데. 내 온 이성과 감정이 저 빌라를 향해 있는데도 유일하게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신경을 써준 내 말초신경에 경의를 표한다.


진동이 한번 울린게 아니라 여러번 울린걸 보니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겠지. 난 핸드폰을 꺼내서 잠시 화면을 지긋이 바라본다. 프로듀서라는 네 글자와 함께 핸드폰에선 진동이 웅웅 울리고 있다. 난 바로 초록색 아이콘을 터치하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미안. 아스카. 난 쓰레기야."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냥. 난 쓰레기야."


"됐으니까 문 열어. 나, 지금 당장 프로듀서를 만나야겠어."


"......"


"여보세요?"


프로듀서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멀리서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끼익하는 소리가 들린다. 몇층 몇호인지는 끝까지 말도 안해주고. 난 아무런 말도 없이 빌라로 쳐들어가서 문이 열린 집을 찾아다녔다. 4층까지 구석구석 다 뒤져가면서.


프로듀서의 집은 4층 구석진 곳에 문이 열린 채로 있었다. 문 앞엔 핏자국이 있었고.


"뭐... 뭐야...?"


피. 피? 피라니. 갑자기 금방이라도 끓어넘칠것 같던 내 머리가 그대로 짜게 식는다.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내가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변했다기보단 내 머리에 갑작스레 과부하가 걸리는 바람에 감정이 그대로 증발해버린 느낌이었다.


"안녕..."


그리고, 프로듀서는 내 앞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채 나타났다. 손목에서 피를 흘리면서.


"미안. 미안. 미안. 미안..."


"...프로듀서."


"...미안해. 이런 모습 보이기 싫었는데. 미안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훌쩍... 흑... 미안해."


"프로듀서. 나, 나 지금 프로듀서를 보면 아주 돌아버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야. 나 지금 굉장히 침착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아니면 내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줘."


"......"


"안에 들어가도 돼?"


프로듀서는 아무런 말 없이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의 몸을 움직일 아무런 의지조차도, 힘조차도 없는듯이 손목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피가 그렇게 세게 흐르진 않았지만, 이대로 방치할 순 없는 긴급상황이다. 난 상처를 그대로 두면서 피가 멈추길 바라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집안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프로듀서의 집엔 붕대는커녕 그 흔한 반창고도 없었다.


이런 세상에.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건데. 어떻게 살아온 거냐고. 나한테 말 안하고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고. 집에 구급상자조차도 없다니. 나 없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그렇게 있다가 어떻게 할 셈이었는데. 뭘 할 생각이었냐고. 난 프로듀서를 책망한다. 책망하고, 몰아붙이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게 그 책에서 말하던 양가감정이라는 걸까. 프로듀서. 난 프로듀서를 좋아해. 좋아한다고. 그렇기에 난 지금의 프로듀서가 너무나도 밉고 싫어. 피흘리는 당신이 싫어. 상처를 입고 피흘리면서도 스스로 뭔가를 할 생각을 안 하고 그대로만 있는 당신이 참으로 미워.


붕대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 할 수 없이 난 화장실에 있는 수건과 손수건을 챙겼다. 챙겨서, 수건은 피가 나는 상처 위에 얹었고, 손수건은 지혈용도로 팔뚝에 묶었다. 묶는다고 묶었는데 잘 묶였는지를 모르겠다.


"...우선 병원부터 가자."


"미안해... 미안해..."


"병원부터 가자!"


"......"


난 프로듀서를 들어올리려고 시도해본다. 프로듀서는 꿈쩍도 않지만 난 나름대로 절박한 시도를 해 본다. 프로듀서는 너무나도 무겁고 육중했다. 그렇지만 또 들어올리려고 시도해본다. 또 실패했다. 그리고 또. 또, 또!


왜 안 되는 걸까. 안 된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 나이차이. 성별차이. 그 차이라는게 참으로 가증스럽다.


"훌쩍... 아스카."


"...프로듀서."


"나 죽고 싶어. 나 죽는다면 아스카한테 죽고 싶어."


"안 죽어."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프로듀서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세운다. 일으켜세우고는 내 도움도 받지 않고, 팔을 찔끔찔끔 떨면서 현관문까지 걸어간다. 아프지도 않은 건지. 프로듀서는 부축이라도 해주려는 내 손을 멀쩡한 다른 팔로 쳐내고, 가능한 한 천천히 걸어가기라도 하는 듯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피범벅이 된 수건을 손목에 두른 채로.


그래도 다행인건 병원이 그리 멀지 않단 것이었다. 병원이랑은 좀 거리가 있었는데, 이런 일로 그 거리가 좁아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건만. 프로듀서가 정문으로 들어서서 카운터... 카운터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접수하는 곳에 먼저 갔다.


당연히 일보는 분들이 피칠갑이 된 수건을 보고 기겁을 하며 일단 응급실부터 가라고 했다.


응급실에 가니 의사선생님이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기다리는 환자가 많은지 컴퓨터로 차트 쓰는데 열중을 하며 우리쪽엔 눈길도 주지를 않다가 프로듀서가 안녕하세요 라고 한 마디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일단 응급실에 왔으니까 지혈을 하건 상처를 꼬매건 뭘 할줄 알았는데 일단 접수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응급실은 응급실대로 따로 접수를 해야 한다나. 프로듀서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슬슬 아픈 티를 낼 마음이 들기 시작한건지.


의사선생님은 지금은 더 위급한 환자가 있어서 치료하기 전에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기하는 의자에 앉은 프로듀서는 나머지 한쪽 손으로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수건이 푹 젖어버린건지 수건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나 지갑을 안 가지고 온 것 같아."


"돈 없으면 내가 낼게. 돈이야 나중에 받으면 되니까."


"안돼. 응급실은 비싸."


"지금 그게 문제야?"


"응. 중요한 문제야. 엄청 중요한 문제야. 나 때문에 돈 낼거면 나 그냥 집에 갈래."


프로듀서.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건데.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얼굴도 아파서 찡그린 게 아니라 그런 문제때문에 찡그린 거냐고.


난 프로듀서를 바라본다. 늘상 내가 바라봤던 모습이 아닌 힘없고 연약해보이는 모습. 난 프로듀서가 그런 사람이라도 미운 게 아니야. 나는 프로듀서를 지긋이 바라보다 다친 팔쪽의 바지주머니가 불룩한 걸 눈치채고는 거기서 지갑을 꺼냈다.


"자. 됐지?"


"...고마워."


프로듀서는 지갑을 받아들고는 카운터로 가서 접수부터 했다. 카운터 위를 보니 원무과라는 푯말이 있었다. 그래. 카운터가 아니라 원무과라고 하는 거구나. 돈이 없을까 걱정했던 프로듀서였지만 원무과에서 돈내라는 말은 딱히 없었다. 치료가 우선이고 돈은 그 다음이겠지.


프로듀서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지금 이렇게 손목이 피칠갑이 됐는데도 더 급한 환자가 있다 이거지. 영화에서 보면 응급실엔 교통사고 당한 사람들이나 심장마비 온 사람들만 있던데. 실제로도 그런 걸까.


"있잖아. 나 때문에 접수하는 분들이 방해받았으면 어쩌지. 나 때문에 병원 청소하는 분들도 나 때문에 일이 더 늘어버렸어. 내가 바닥에 피를 흘려버렸잖아."


"지금 그런 말이 나와?"


"...그러고보니 아스카. 나 때문에 옷이 다 피에 젖었잖아. 아스카가 나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버렸어. 나 때문에. 나같은 놈한테 신경쓴다고."


프로듀서가 그렇게 혼자서 자책하고 웅얼거리는걸 최대한 커다란 목소리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간호사가 프로듀서에게 뭐라뭐라 말을 하고는 프로듀서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나도 거기 동행하고 싶건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아파오는 아이라도 정말로 아픈건 보기 싫다고 해야 하나.


간호사는 날 보고 혹시 여기에 이 환자 보호자 되시는 분이 있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그랬다. 그래. 딱 봐도 내가 보호자는 아니겠지. 굳이 보호자라고 한다면 오히려 프로듀서가 내 보호자에 가깝지. 프로듀서가 병원에 갈 생각이 있었으면 내가 없어도 잘만 갔을텐데.


프로듀서는 내가 이런저런 생각과 눈물을 앉은 자리에서 병원이 가득 차도록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돌아오지 않다가, 슬슬 흐름이 멈추고 눈이 감길 쯤에야 팔에 붕대를 감고 돌아왔다. 


"...아스카. 계속 여기 있었네."


"응. 어디 갈까봐?"


"아니. 기숙사에 돌아가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나 없으면 또 이상한 짓 할거잖아."


내 말에 프로듀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피가 굳어서 붉은색에서 갈색으로 변한 수건을 챙기고, 원무과에서 돈을 내고, 집에 돌아갈 때 까지도. 현관문을 다시 열고 나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안해."


그리고, 이 한 마디가 프로듀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한 첫 마디였다.


왜. 왜. 프로듀서는 죄인이 아니라고.


"왜 늘 자기 탓만 하는 거야? 프로듀서는 잘못한 게 없잖아."


"아냐. 다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이라고. 지금 밖에 갑자기 천둥이 친다면 그것도 나 때문이고, 만약 날씨가 춥다면 그것도 다 나 때문이야."


"왜? 대체 왜!?"


"그러라고 프로듀서가 있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사람들한텐 무슨 일이 일어나면 탓할 과녁이 있어야 돼. 난 그 과녁을 자처하는 거야. 너만의 과녁 말이야."


"그러니까. 난 그런 과녁이 필요 없단 말이야. 난 만족스럽다고. 오히려 행복했어. 프로듀서가 맘에 들고 좋았단 말이야. 아니 , 좋았다가 아니야! 지금도 좋다고!"


"...난 아니야."


"...프로듀서는 내가 싫었던 거야? 그건 아니잖아."


프로듀서는 고개를 숙이고 또다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이번엔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맨 위에 크게 써있는 두 글자였다.


유서.


'저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용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것만 같이. 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용기로 자살을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공포에서 절 제거해버릴 것입니다. 어차피 저처럼 망가진 부품은 없어지고 새로운 부품이 제 자리를 차지하는게 사회에도 유익한 편이겠죠.


전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절 아무도 못 찾도록 양지가 최대한 바르지 않은 곳에 묻어주십시오. 화장은 싫습니다. 화장을 하면 뼛가루를 강에 뿌린다는데, 전 강에 제 시체라는 폐기물을 버려서 수질오염에 일조하는 건 사양입니다. 수돗물에 제 뼛가루가 섞일 거에요. 사람들에게 제 뼛가루로 손을 씻게 할 순 없어요. 게다가 강에선 해를 매일 마주봐야 합니다. 제 눈을 실명시킬것만 같은 그 빛을.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제 모든 담당아이돌들이 행복하길. 치히로씨도. 당신은 유능한 인재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스카에게. 사랑했습니다. 그 마음을 여기서 밝히는 건 제가 순전히 겁쟁이에 졸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못나고 한심한 절 원망해주세요. 절 미워해주세요. 전 겁쟁이라서 사랑받는다면 그 사랑이 무서워서 도리어 도망갈 겁니다. 그렇게 절 미워하다가 그대로 잊고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만약 제게 더 남은 삶이 있었다면 그 삶의 행복까지. 모두 아스카씨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럼 다들 안녕히 계십시오.'


아스카씨. 아스카씨구나. 나는. 프로듀서는 마지막엔 날 아스카씨라고 부르고 싶었구나.


어째서인데. 나한테 한 마디도 안하고. 기색도 보이지 않고... 아니지. 조짐이야 오늘 보여줬잖아. 그래서 날 보자마자 그대로 울어버린 거구나. 그래서 나한테 사진을 다 줘버린 거구나. 이젠 더이상 필요가 없다면서.


"그래. 프로듀서. 베르테르가 되기로 했었구나."


"...응."


"알베르트도 없는데 혼자서 슬퍼하는 베르테르가 로테의 눈에 얼마나 비참하게 보일지 생각해봤어?"


"......"


"로테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지는 생각해 봤어?"


"모르겠어. 난."


"왜 몰라. 프로듀서. 알고 있었잖아. 내가 좋아한다는 거. 난 프로듀서를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미안해."


"날 좋아한다고 말해줘."


"미안해. 무리야."


"왜?"


"...무서우니까."


프로듀서는 자리에 앉은 채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훌쩍, 내가 아스카를 사랑한단 사실이. 그 사실이 너무 무서워."


"무서워? 내가 싫은 것도 아니고 무서워?"


"응. 내가 아스카한테 상처를 줄지도 모르니까. 반대로 내가 상처받는것도 무서워."


"그게... 그게 그런 짓까지 벌일 이유가 돼?"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난 그냥 세상이 다 무서워. 행복이 삶이랑은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인 것만 같은걸. 삶은 고통이고 공포야. 만약 내가 행복하면 죽을 때가 왔거나, 사는게 더이상 사는 것이 아니거나. 둘중 하나일 거야."


"...어째서인데. 그래가지고 일만 했던 거야? 행복할 수가 없으니까?"


"응."


"너무 자기 생각에만 갇힌 거 아니야? 프로듀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프로듀서는 사람이야. 사람. 행복할 권리가 있단 말이야.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잖아."


"아스카. 넌 나 같은게 감히 다가가기엔 너무나도 완벽하고 좋은 사람이야. 지금도 내가 생각도 못하고 말도 못할 것들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잖아. 아마 넌 나보다도 정신적으론 성숙하고 건강할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완벽한 날 건드리는게 싫다? 건드려서 상처주는게 싫다?"


"응. 그건 싫어. 죽는것보다 더 싫어. 그리고 만약 내가 너한테 상처를 줘버려서, 날 미워하게 된다거나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면... 난 얼굴도 못 마주볼 거야."


"...사랑때문에 내가 상처받는게 싫다고 했지? 내가 안 좋은 감정을 가지는게 싫다고 했지?"


"응."


"...있잖아. 잘 들어."


나는 잠시 크게 한 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나, 프로듀서가 미워. 혼자서 피흘리는 프로듀서가 밉고, 혼자서 죽고 싶어하는 프로듀서가 밉고, 혼자서 아파하려는 프로듀서가 미워."


"응. 그렇겠지. 나같은 걸 좋아 할 이유가..."


"그리고, 난 그 싫고 미운 프로듀서를 난 소중히 대할 거야. 그 싫고 미운 프로듀서를 아끼고 보듬어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가 되게 할 거야. 아픈 프로듀서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 해도. 난 프로듀서를 사랑하니까."


그래. 사랑하니까. 그게 다야.


"프로듀서. 난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 무슨 상처가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내가 당신을 구할 거야. 당신의 상처를 하나하나씩 전부 다 낫게 할 거야. 당신 손을 잡고 절대 안 놓을 거야. 놓으라고 해도 절대로 안 놓을 거야."


"...어째서?"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어째서 날... 날 어째서... 사랑하는 거야?"


"그럼 내가 역으로 물어볼게. 프로듀서는 어째서 날 사랑하는데?"


"...아름다워서. 넌 아름답고, 귀엽고. 멋지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프로듀서가 날 계속 바라봐주는 헌신에 반했고, 성실성에 반했고, 진솔함에 반했어."


"....."


"프로듀서는 가치있는 사람이야. 내 인생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는 사람. 프로듀서가 그걸 부정한다면, 그걸 내가 또 부정할 거야.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잖아. 내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해보일거야."


내가 원하는건 말 한 마디 뿐인데. 딱 한 마디만 있으면 되는걸. 거창한 건 필요없고 그저 딱 한마디만 원할 뿐이야. 연애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한 마디만 필요할 뿐인데, 프로듀서는 그 한마디마저도 너무나도 힘겨운 걸까.


"...프로듀서. 날 사랑한다고, 말해줄래?"


"...사랑해."


"한번 더 말해줄래?"


"으... 훌쩍... 아스카... 사랑해. 사랑해... 흑... 고마워... 우윽... 훌쩍... 흑..."


"...울어도 괜찮은걸."


"흑... 흐어어엉... 으, 흑..."


마음껏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끅끅대기만 하는 프로듀서를, 난 온몸으로 껴안았다. 느껴진다. 내 옷에 묻은 피가 프로듀서의 눈물로 씻겨지는 형상, 소리, 촉감, 모든 것이. 그렇게 프로듀서는 내 품에 안긴 채 울다가 잠이 들었다.


프로듀서는 그 날 이후로 내 권유에 따라서 정신병원을 다니기로 했다. 내가 같이 있어주는건 가능하지만, 프로듀서를 그렇게까지 몰고 간 부분을 해결할 순 없으니까. 전문적인 부분은 그 쪽의 전문가한테 맡기는게 제일이겠지.


프로듀서와 나는 사귀기로 했다. '우리 사귀자!' 같은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프로듀서가 나에게 접근하는 빈도가 확실히 늘어났으니까 무슨 의도인진 뻔했다. 나도 말 없이 거기에 동의하고. 일 쪽에 있어서 프로듀서가 내 곁에 있어주고, 날 뒷받침해준 것처럼, 연애... 아니. 정신적 관계에 있어서는 내가 프로듀서를 뒷받침해줄 것이다. 


"저... 아스카... 저녁에, 그... 시간 있어?"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어?"


"아니... 그냥. 그냥 만나고 싶어... 만나서 같이 있고 싶어. 그냥 같이 있고 싶어. 그게 다야..."


"지금도 그렇게 같이 있잖아."


"응. 그래서, 난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그 행복을 이어나가고 싶어... 넌 날 구해줬으니까. 내가 살아있는건 다 니덕분이니까. 지금은 그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게 고마워가지고... 훌쩍... 나는... 흑..."


"자, 잠깐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갑자기 울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프로듀서는 내 앞에선 예전의 그 일말곤 모르던 사람이 맞나 싶을만큼 감정표현이 늘어났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미안하다는 말도 너무나도 많이 했다. 그만큼 웃는 일도 늘어났고, 고맙다는 말도 늘어났지만.


프로듀서가 내게 울면서 줬던 사진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내 마음 속 새로운 책의 첫 장은 좀 많이 쓰라리고, 피로 얼룩져버렸지만, 그 다음 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이마스쪽에선 이런 좀 정신이 아픈 사람이 나오는 글을 계속 쓰고 있어. 내가 정신이 아파서 글로 그런걸 풀면서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이런 글이 힘든 상황을 딛고 나가는 것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



그거랑은 별개로 예전에 쓴 데레쪽 글은 다 이런식이고 나머지 밀리쪽 글도 반은 이런식이라 죄 올리는게 맞는지를 모르겠어 데레쪽은 공지에 있는 내용이랑 어긋나는 글도 태반이고


아무튼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