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음 주에 교양시험 하나만 치면 졸업 확정임
일단 졸업할 때까지 여친은 한 번도 못 사귀어서 대학 가면 여친 생긴단 어른들의 말씀에 반기를 들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이제서야 철이 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전에는 사귀더라도 감정에 크게 휘둘리는 나라서 썩 좋은 결말은 보지 못했을 거임
지금 졸업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내가 언제까지고 학생일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임
공익근무 때도 대학생이니까 복학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감안하면 나는 8살 때부터 지금 25살까지 무려 17년을 학생으로 있었음
인간의 기억은 7살 때부터 평생 남게 되고 그 이전은 대부분 망각한다는 걸 생각하면 난 내가 기억하는 일생 대부분을 학생으로 살았기에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함
물론 학생을 더 할 수도 있음
난 일을 하더라도 연구직으로 일을 하고 싶고, 부모님도 아직 내가 사회인으로서 일하기에는 덜 컸다고 생각하셔서 최소 2년은 더 하자고 타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했고 지난주에 면접도 보고 옴
대학원 가서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굳이 없다고 해도 우울감은 들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으니 내 학문적 소양을 키워주실 좋은 교수님만 만나도 충분할 것 같음

내가 예전에 과학잡지에서 읽었는데 의학적으로 분석한 사랑의 유통기한은 7년 반이래
사랑을 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도파민의 분비량을 fMRI로 측정했더니 연애 시작 후 7년 반이 지나고는 거의 분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사실상 그 뒤로는 의리로 붙어있다고 하던데 우리 부모님을 보면 의리일 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꽤 큰 것 같음
89년도에 고등학교끼리 진행한 소개팅에서 처음 만나셔서 97년도에 결혼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는데 93년도 무렵에 작성하신 커플 일기장이 최근까지도 집에 남아있었음
당시 아버지께서는 산업기능요원(당시 표현으로는 병특)으로 경북 봉화의 석포제련소에서 근무하고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수도권에서 집안 사정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계셨음
2주에 한 번인가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그 제련소가 있는 동네까지 왕복하셨다고 하는데 우연한 계기로 가족여행 때 들르기도 해보고 아예 각잡고 기차여행 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 동네가 산골이라 기차도 좋은 게 못 다녀서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더라
그런 작고 깊은 산골 속의 동네를 얼마나 자주 다니셨으면 20년이 지나도 여인숙 하나까지 기억하고 계실까 싶었음

순붕이로서 부끄럽게도 부모님의 사랑에 방해가 된 적이 있었다
자식 양육을 위해 아버지는 당근을 드셨고 어머니는 채찍을 드셨는데
어머니께서 매번 혼내셔서 아버지하고만 가까이 함
최근까지도 그런 경향이 심해서 일이 터졌는데
하도 아버지하고만 얘기하고 용돈도 몰래 추가로 받고 하다가 집 간다는 얘기까지 갠톡으로 하다보니 어머니가 참다참다 폭발하셔서 집에 오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음
아버지도 자기는 일하느라 바쁜데 어차피 가족 관련한 일이면 은퇴하셔서 집에 주로 계시는 어머니하고 얘기할 것이지 왜 자기하고만 얘기하냐며 같이 폭발하셨음
어머니한테 전화 걸고 긴 시간동안 그 설움 다 받아드리고 나서 지금은 갠톡 거의 안 하고 가족 단톡방 위주로 얘기하는데 참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생각이 짧았나 싶어서 부끄러워지더라

이번에 종강하고 집에 가면 송년파티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싶음
부모님도 내가 요리 좋아하는 걸 아시는 데다가 집에 오븐도 있어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 요리를 맡기시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거의 반년 째 스크랩해두고 해볼 날을 기다리는 레시피도 있고 해서 정성껏 하고 싶음
진짜 졸업을 앞두니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순붕이들도 이번 학기 잘 마치고 집에 가서 순애의 표본인 부모님과 함께 가족애 넘치는 연말을 보내길 바랄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