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염동력자와 함께한 나날들
1부


며칠 전, 실험에 쓸 염동력 여자애 하나를 데려가려다 같이 붙어있던 병신새끼 하나하고 싸우다 임무를 실패했다.

거기다 대초능력부대인 특기대의 난입으로 인해 도망치기 바빴고, 하마터면 은신처를 들킬 뻔 했지만 어찌저찌 무사히 귀환했다.
같이 갔던 동료 놈이 재밍을 어설프게 건 바람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긴 했지만, 그놈은 숙청 당했으니 그걸로 됐다.

그리고 오늘, 굴욕을 갚을 날이 왔다.
저번엔 초짜라고 얕봤다가 크게 데였지만, 그 데인 값은 지옥불로 갚아줄 것이다.

"기습 준비는 다 되었나?"

"네. 분부대로 다 마쳤습니다."

"이번 기습은 수사망에 혼선을 주기 위한 연막 작전이다. 실험체는 나중에 수급해도 좋으니, 이번만큼은 최대한 개발원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게. 알겠나?"

"네. 하지만, 신체 회복때문에라도 그 꼬맹이는 여기로 데리고 오는 것이..."

"내가 전에 한 말이 기억 안 나는 거 같군. 좋게 말한다고 부탁은 아니란 걸 잘 알텐데?"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는 없지. 일을 완벽히 처리하면 되니까. 그리고 설령 일을 망쳤다 해도 인정하고 다음에 완벽하게 마무리하면 되니까. 그것이 강자의 특권이다."

"새겨듣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전은 가급적 피하게. 이번 작전은 공격 작전이 아닌 연막 작전이다. 멋대로 그 꼬마를 잡아오거나 허튼 짓 하면 그땐 자네 버리고 간 동료의 뒤를 따를 줄 알게."

"예.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러길 바라지. 잘 다녀오시게."

폭탄은 내부 협력자의 도움으로 잘 깔아두었고, 보안 시스템은 내 초능력으로 완벽히 무력화가 가능하니 적당히 난동만 피우고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스승님 이상으로 강한 놈과 조우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 1 훈련장에 대량으로 풀어놓은 개조 실험체의 전멸을 목도하고 인질이라도 잡을 요량으로 애새끼들을 추격해서 싸우고 있을 때, 그 놈을 마주했다.

"네가 그놈이구나? 그때 내 제자 두 명을 기습한 것도 모자라 그 중 하나를 혼수상태까지 몰고 간 게."

"제기랄...분명 그쪽에 대량의 개조 실험체를 풀어놓았는데!"

"아무나 납치해서 이리저리 헤집어 놓은 결과물로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게 정상같냐."

"너 따위가 강자의 뜻을 알겠냐. 약자면 강자의 의지에 닥치고 따르기나 할 것이지."

"그래? 그럼 어디 네 말대로 해볼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난 머리가 잡힌 채 공중에 띄워진 채 난타당했다.
되는대로 초능력을 써서 저항하려 했지만, 녀석에겐 먹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공간을 열 때마다 강제로 다시 닫아버려서 초능력을 쓸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뭐야....분명 공간을 열었는데.."

"공간의 틈이 관성좌표계에 실질적으로 존재함에도 내가 조작을 못할거라 생각한 네 잘못이지.
가상의 질량체라 해도 그 질량체가 관성좌표계에 존재한다 가정하고 방정식을 짜면 그만이긴 하다만."

"아악! 씨발...도대체 정체가 뭐야?!"

"나? 나를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나다. 저 학생들의 담임이다!"

그 말과 함께 난 야외 시설물들을 뚫고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그 놈은 날 완전히 소멸시키려는 듯 필살기를 장전하고 있었다.

"파괴식, 쌍소ㅡ"

그때 특기대원 하나가 난입해 그놈을 말리는 틈을 타 공간을 열고 도주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다만 저놈이 내 신체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사지가 부러진 걸 넘어서 맹수가 물어뜯은 것 처럼 절단되어 있었다.

이후 은신처 내 의무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스승님이 굳은 얼굴로 찾아오셨다.
"그래서...퇴출 도중에 교전이 있었다고?"

"네.."

"그래서? 자네가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한 결과란 생각은 안 드나? 분명히 교전은 하지 말라고 했고, 혼란만 일으킨 다음 퇴각하라 했는데 감히 명령을 어겨?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해보게."

"그때 제가 실수를 한 건 맞긴 하나, 특기대원들과 압도적으로 강한 초능력자 하나 때문에 교전은 불가피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숙청만은..."

"잠깐, 강한 초능력자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어떤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공간을 열지도 못하게 강제로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던 것 같았습니다. 그때 특기대원 하나가 가로막지 않았다면 전 여기 있지도 않았겠죠."

"그놈인가.. 그놈은 어쩔 수 없지. 잘 했네. 그곳에서 연막 작전을 수행하고도 그놈한테서 살아남은 게 용하군."

"그놈은 대체 누굽니까?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이 꼴로 만든 녀석이다. 피의 새벽 사건때 한 번 대차게 싸웠었지."

"외람되지만 그 이후의 일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때 녀석을 어리다 얕보고 섣불리 덤볐다가 이렇게 되었지. 아직도 녀석의 필살기에 맞은 후유증이 남아있다. 역행 능력을 써도 회복이 안 되더군."

"제가 반드시 원 상태로 되돌릴 방법을 찾겠습니다."

"됐다. 난 이미 너를 내가 거두었을 때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언젠간 의무실 밖에 있는 이들이 네 말을 들을 날이 오겠지.
자리를 비워주겠네. 힘들텐데 쉬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남기고 스승님은 의무실을 나가셨다.
그리고 잘렸던 사지는 그 이전 상태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문이 닫히기 전, 이 말 한마디가 문 틈새에서 새어나왔다.

"4999번 남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