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발라드 노래를 들으며 한쪽 손으로 너와 손을 잡고

암전

들려오는건 총소리, 포탄소리, 비명소리 혹은 절규인, 그 손으론 총을, 다른 손에는 총알을.


너와 대화하며 즐거웠던 시간들

다시 암전

성대에서 울리는건 상대에 대한 저주, 비명, 절규, 조소, 실성 뿐인


비 오는 날에 너와 포옹하며 가슴속이 채워지는

또 다시 암전

피, 오줌, 혹은 빗물과 뇌수로 젖은 몸과 가슴팍엔 총알 구멍이 나를 서서히 죽음으로.

                                            *

                                            *

                                            *



서서히 눈을 뜬다. 피가 아닌 땀에젖은, 전쟁터에서가 아닌 침대에서. 가슴팍엔 총알 구멍은 거녕 흉터도 없이. 아니 온몸이 흉터 없이 깔끔하다. 차라리 손가락이 없었다면 방아쇠를 당기는 그 감촉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팔다리가 짤려있었다면 시체를 만지고 촉감이 사라졌을까. 가슴에, 혹은 머리에 총알 구멍이 뚤렸다면 이 모든순간을 기억하지 않아도 돼지 않을까. 

 죽고싶다. 아니 살고 싶지 않다. 내 전우들은 모조리 죽었는데 나만 멀쩡히 살아있는게 말이나 되는걸까. 인간은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면 그 보금자리는 여기가 아닌 지옥이 아닐까.



 "아저씨!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빨리 아침 먹어요." 오늘도 역시 들려오는 목소리.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나의 집에 살고 있는 여자이다.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고 나에 대해 아는거 같지만 정작 나는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감정과 생각은 전쟁터에서 나의 친구가, 그다음엔 형제가, 또 다음엔 부모님이, 마지막엔 그녀가 죽었다는걸 들었을때 이미 사라졌다. 모든 증오와 원망과 분노는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았다. 이런 나를 과연 인간이라 칭할 수 있을것인가.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