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창 밖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다. 

"뭐해요? 우동 불어터져요."

 마주 앉아 우동을 먹고 있던 유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경원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동의 면을 집어 입으로 갖다 대고, 집어 삼켜 목구멍으로 넘겼다. 흔하다고 할 만한 이런 상호작용이 그녀가 하니 특별해 보인다.

이렇게만 보면 그녀는 아무런 특이한 점이 없는 그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모습은 이 안의 사진관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경원은 슬퍼졌다.

"먹고 있소. 잠시 밖을 본 거 가지고 너무 뭐라고 하는 구료." 경원은 말했다.

"애초에 나같은 늙은이들은 뜨거운 것을 함부로 먹었다간 험한 꼴을 면치 못하지, 당신은 늙지도 않는 요괴할멈이 치사하오."

"세상에, 늙더니 말문이 트이셨나 보네. 됐어요 그럼. 밖에 오는 눈이나 실컷 보면서 먹어요."

그녀는 살짝 뾰로통한 말투로 말했다. 어느샌가 그녀는 우동을 다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머쓱해진 경원은, 다른 화제로 말을 꺼내 보았다.

"당신이 이 사진관에 눌러 붙게 된 그 때가 생각나는 구료. 40년도 더 된 이야기오. 전쟁통에도 우리 가게만은 자리를 지켰었소. 어쩌다보니 그때부터 매년 겨울마다 우동을 끓여먹게 됐구료. 그래도,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소."

사실은 그랬다. 매년 겨울마다 밤늦게 끓여 먹는 우동은 우동 국물보다 따뜻한 것이 그들의 마음에 녹아드는 소중한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랬었죠.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얼굴이 엄청 늙어버렸네요. 하하하.."

유정은 해맑게 웃었다. 그러나 경원은 알고 있었다. 이 우동도, 앞으로 몇 그릇밖에는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단지 말로 꺼내지 않는 것 뿐이지, 실상 경원은 너무 늙어버렸다. 우동을 끓이기 조차 버거울 정도로.

"....그러고 보니, 라고 했소? 그러고 보니 그 때 추억이 떠오르는 구료. 사진을 보관해둔 상자가 창고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거 경원 씨 방에 있던데요. 내가 가져올까요?"

"그러시오. 오랜만에 보고 싶소."

금새 유정은 작은 주방을 나가 사라져 버렸고, 그는 갑작스레 자신의 방 안에 그가 썼던 편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그 편지들을 가져오진 않겠지? 46년째 자신이 썼던 편지를 공개하지 않은 그로썬 이런 식으로 까발려질 편지의 존재가 상당히 거북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유정이 들고 온 상자는 사진들만이 가득 담겨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게 그 해 겨울에 찍었던 사진인거 같아요. 어머나, 사진 뒤에 날짜도 적어 두시네요. 흠, 젊었을 때도 그렇게 잘생기진 않으셨네요."

"늙으니 눈이 침침해 지는건 귀신이나 사람이나 틀리는 것이 없구료."

"역시 늙으시니 머리에 피가 도시나봐요. 근데 왜 경원 씨 사진밖에 없죠? 나도 꽤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죽을 때나 알 수 있을 거요. 그 때까진 안 말해 줄거니, 알아서 생각해 보시오."

"너무하시네요. 혹시 내 사진만 모아서 어디 붙여놓고 그런거 아니죠...? 그럼 진짜 무서울거 같은데."

"설마 그러겠소."

사실은 그녀의 사진들도 그가 썼던 편지들과 같이 담겨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편지도 말하지 않았는데 사진들도 공개하긴 이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같이 찍은 사진도 없어요? 우리 이렇게 오래 같이 살았는데, 사진도 따로 찍었었네요. 경원 씨, 이리 와봐요. 사진 좀 찍어요."

"다 좋은데, 그럼 사진은 누가 찍어 줄거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라도 부르려는 생각이라면 당신도 늙어서 머리가...크흠."

"아익, 그러네요. 됐어요!"

하하, 경원은 웃으며 우동을 마저 먹으려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우동은 어느샌가 불어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국물도 금새 바닥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그들은 역시나 사진관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머무르고 지냈다. 그러나 그들이 먹은 우동은 몇 년 전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바로 그다음 해부터 경원은 건강이 심상치 않아졌고, 병원에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올해도 이렇게 넘어 가는군, 경원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는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게된 그는 2년 전 침대를 구입했다. 다락방까지 옮기는데 동네 젊은이들까지 부를 정도로 고생했지만, 덕분에 그는 이제 누워서도 밖을 볼 수 있었다.

"또 창밖만 보시네요. 눈만 오면 그래요."

어느샌가 유정이 문발치 앞에 서있었다. 이제 그는 그녀의 기척도 잘 느끼지 못 할 때가 많아졌다.

"솔직히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왜 벌써 떠나려는거죠? 혹시 내탓은 아니겠죠?"

그녀는 경원이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는 병을 얻은 뒤로 자신의 탓을 하며 그에게 미안해 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그녀를 위로해 주며 스스로도 정말 그녀 탓이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항상 수척한 그만 보면 더이상 웃지 못하게 되버렸다.

 그는 역시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을 못보겠다고 생각했다. 아님 그녀가 웃는 모습만 기억해서 불안한 것이거나. 어느쪽이든, 그는 뭐라도 그녀를 웃게 만들 만 한 것을 머리 속으로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지난번에 내 사진이 잔뜩 들어있던 상자 기억하오? 그 상자 옆에, 당신 사진이 들어있소. 한 번 가져와 보시오."

유정은 조금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책상 밑의 상자 중 하나를 꺼내왔다.

그녀는 상자를 열곤 살짝 놀란 듯 소리를 냈다. 그 상자 안에는 사진과 편지들이 난잡하게 섞여 있었다.

"역시 조금 부끄럽구료. 솔직히 말하면 난 당신을 사랑했소. 그래서 당신에게 편지를 썼었지. 그런데, 당신의 주소를 묻는게 그렇게나 어려웠소. 그래서 언젠가는, 직접 그걸 모두 주기로 마음먹고 당신이 찍은 사진과 함께 담아둔 거요.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오. 자, 이젠 상자째로 가져도 되겠지."

그렇게 말하곤 그는 살짝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주 크게, 경원이 후회할 정도로.

"왜 말도 안한 건데요. 난 당신이 그렇게 잔뜩 늙어버릴 때까지 몰랐는데, 이젠 진짜 모르는게 낫게 되버렸어요. 목이 너무 아파요. 꺽꺽거리면서 우는 것도 몇 년만이라고요. 이런 걸 느끼는 것도.. 다 당신 덕분인데, 내가 우는 것도 당신 때문이에요."

경원은 그의 마음에도 뭔가 일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전에만 해도 그는 그녀에게 고백한다는 것이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아주 담담하게 말해버렸고,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우는 것을 보고는, 역시 그도 마음에서부터 뭔가가 올라왔다.

"...울음이, 눈물이 눈에 맺히기만 하고, 당신같이 울 수가 없구료. 들어 보시오. 난 당신을 사진같다고 생각했소. 당신이 사진관에 있게 된 후에도, 나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 사진을 찍는 이는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시꺼먼 필름에서 자신의 모습을 느끼지도 못하니까, 오로지 나만이 사진속 당신을 느낄 수 있었소."

"난 사진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오. 하다보니 사진이 좋아진 거지. 나도 당신과 같이 살면서 당신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착각했나보오.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사실 당신은 사진같은게 아니오. 난 당신이 사진에 남은 당신처럼 언제까지고 웃기만 할 줄 알았소.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울어버리는구료. 결국 난 당신을 사진처럼 뒤늦게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했던거지. 결국 사진이라 부를 만 한 구석이 아무 것도 없구료. 나조차 당신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못하고 늙어 버린게 너무 미안하오."

그녀의 예쁜 얼굴이 잔뜩 젖어버렸다. 그녀는 한동안 너무나 울어버려서, 그녀의 웃는 모습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슬퍼 보였다.

"내가 당신이 울라고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우나 안우나 미리 시험해보고 말 할 걸 그랬소. 이제... 목이 좀 아프구료. 말은 더 못할 것 같소."

"그, 그게..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겠네요.

아니, 진짜 죽기 전에 고백하는 사람은 진짜 처음 봤어요. 하하하...흑.."

경원은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애를 써도 한 자 만큼도 나오지 않았다. 순간 그는 눈길이 생각났다. 눈이 오던 날 그녀에게 편지를 쓰던 그 날 밤이 떠올랐다. 이 눈을 거쳐서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싶었는데, 역시 그녀에게 그만큼 가까이 가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의 머리 맡에서 울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다시 외로워질 그녀에게 응원이라도 해주지 못할 망정, 조금 가까워 진 것을 핑계삼아 그녀를 울게 만들지 않았는가. 

 결국 경원도, 흐느껴 울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기묘한 이야긴가, 싶어 울음이 나왔다.

 사진첩이라는게 있었다. 사진첩을 열어보니 사진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기이하게 근사한 사진들을 몇 장 엄선하여, 이 곳에 남긴다.


?? 이게 무슨 순애 소설이노?? 

쓰면서 이게 맞나, 싶긴 한데 그래도 마무리는 함

사진과 사진첩이라는 주제에 맞춰서 사진 속 존재의 불과했던 그녀와 경원이 가까워지는 기록, 동시에 극적인 순간만을 잘라 담아내는 사진첩 같은 연출 이 두 개를 실험해 봤는데 궁합이 개 ㅂㅅ이다

대회 소설 써놓고 마무리 안 해 놨길래 예전부터 생각해온 결말로 써봄여기 까지 읽은 순붕이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