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한 지 얼마 안되서 다크메이지 아르카나를 따고 '아 나 정도면 적당히 강해진 편이지' 하고 한창 자신만만 했던 때의 일이야.


정령이 준 퀘스트 때문에 룬다 하드 모드 상급이었나? 아무튼 통행증도 필요하고 난이도도 어떤 지 모르는 던전을 돌아야하는 데 초보채널에 물어보니 한 친절하신 밀레시안님이 마침 자신에게 남는 통행증이 있으니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 나는 신이나서 그 분과 파티를 맺었지.


그 밀레시안님은 나랑 같은 다크메이지 타이틀을 달고 계셨고, 캐주얼한 룩에 장비 공개를 비공개로 해놓으셔서 얼핏 보면 나랑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보였지.


'얼마나 강하신지는 모르지만 통행증도 내주셨는 데, 최소 민폐 끼치진 말아야겠다. 혹여나 저 분이 굇수셔도 라이트닝 체인 딸깍하고 따라가면 그래도 1인분은 하겠지.' 라고 생각했어. 출발하기 전까지는...






 순식간이었어.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고.. 몬스터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섬광이 터지고 사라지길 반복했어.


내가 허겁지겁 캐스팅해서 파이어볼을 한 번 겨우 날릴 때 그 분은 이미 파이어볼을 전 방향에 난사하고 계셨어.


라이트닝 체인을 두르고 방을 초토화하는 그 모습은 마치 이세계 먼치킨물의 무영창 마법사 주인공을 보는 듯 했지.


아마 던전앤파이터에서 마계의 마법사들이 어비스의 무한한 마력으로 쉴 새 없이 마법을 쏟아내던 최초의 워록 사르포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워크래프트에서 키린 토의 마법사들이 대충 손으로 그린 마법진과 손짓 몇 번으로 자신들의 도시를 가루로 만든 파멸자 아키몬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어.


무영창에 가까운 캐스팅 속도와 함께 나를 놀리듯 내 눈 앞에서 어지러이 번쩍이는 긴 자릿수의 데미지들은 나랑 같은 마법 재능이 맞나, 같은 아르카나가 맞나. 아니 애초에 나랑 같은 게임을 하는 게 맞나 의심이 드는 수준이었어.


와우 마나지룡을 닮은 탈것은 어찌나 빠른 지 1인분을 하기는 커녕 제때 제때 따라가서 발목이나 안 잡으면 다행인 수준이었어. (그 탈것 이름이 페어리 드래곤이라는 걸 안 건 좀 나중이야.)


자신만만했던 같은 직업 유저와의 첫 파티플레이는 그렇게 끝났어. 보스방에 뭐가 있었는 지도 모른 채.. 저널은 들어왔는 데, 보스방에 있던 그 불운한 포워르는 대식가 원숭이가 새우볶음밥을 먹어 치우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키홀의 품으로 사라졌거든.






 그리고 깨달았지.


'저게 진짜 다크메이지고, 나는 다크메이지가 아니라 그저 훅 하고 불면 꺼질 듯한 촛불을 가지고 재롱을 부리는 한 마리의 새도우 위자드와 진배 없었구나.. 나는 그저 우물 안 고여있는 물을 보고 바다를 이해했다고 착각한 멍청한 개구리에 불과했구나..' 하고



"수고용^^"


방금 전까지 내가 두 눈으로 목도한 경이가 본인에게는 그저 가벼운 산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듯한 가벼운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그 날 마비노기를 종료하고 몇 일간 들어가지 않았어.



그 날 저를 도와주셨던 밀레시안님, 그 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 그리고 무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