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어둠을 가르는 궤적을 쫒아.

1. 깊은 어둠을 물리치는 별을 이정표 삼아. (1)

어느 때와 같은 지나치게 평범한 날이었다.

책상에 앉아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 레이르.


벽난로 앞에서 자신의 검을 박자에 맞춰 숫돌로 다듬고 있던 카웬나와, 그런 광경을 보며 슥 슥 하는 숫돌 소리에 맞춰 꾸벅, 꾸벅, 하고 졸고(난 이 사람이 낮에 일어나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있는 로완.


로시네는... 오늘도 슬리아브 미시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듯하다.

칼리아흐가 타락했다던 소문들을 밀레시안과 함께 조사하러 갔다고 했던가.


레이르씨도 “보이시죠? 저게 다 로시네님이 오셔야 작성할 수 있는 서류들이에요.” 라며 피곤한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이 한숨과 함께 로시네의 자리 앞에 탑을 쌓았던 날은 문자 그대로 서류에 파묻히는 악몽에 시달렸었다.


최근 신수 건으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들이 아무래도 협회 자체에서도 조사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들리는 걸로 봐서는, 또 왕성 밖으로 나서야 할 일이 생길 것 만 같단 말이지.


그리고 나는, 설화집을 연구 목적으로 읽고 있다.

브리아나와 아르젤라님에게 부탁을 받아, 책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특정 효과가 발현되는 이른바 마도서를 연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우와아 왕성에서 합법 마도서를 만들라고 주문했다고요?”

라고, 마법을 다루던 로완이 기겁을 하는 일이 있었지만, 연구 성과가 조금이라도 더 필요한 이 상황에서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말이죠.”

드디어 사람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장작타는 소리, 숫돌 가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 책 넘기는 소리만 들리던 협회에서.


드디어.

“우리 협회의 남성분들,”


그 뒤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좀처럼 안 웃고 있지 않아요?” 


...원래 보고 있던 책에마저 집중하기로 했다.


“이스시를 다룬다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인 도르카를 힘의 동력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

로완은 자신의 손바닥을 펴, 하늘로 뻗었다.


그러고 보니, 신학교 시절 잠깐 읽었던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감정과 꿈을 힘으로 다루는 마족들은,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오기 위해서, 타격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슬 검을 주로 사용한다고.


“때문에 어떻게 해야 부정적인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죠.”

철컥.

그녀의 손에 보라색의 불길한 사슬이 형상화된다.


“이 힘을 조금만 익숙해진다면-”

사슬로 묶인 손을 그녀의 오른쪽 눈에 가져다 대자, 눈동자가 불길한 푸른 빛의 눈동자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언젠가 스톤헨지 근처에서 보았던 그 늑대처럼, 먹잇감을 찾는 맹수의 눈빛이 우리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법의 흔적과 함께, 다른 사람의 감정이 보여요.”


레이르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말을 경청하며 빠른 속도로 말을 받아적고 있었고.

카웬나도 숫돌 질을 멈추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비록, 분노, 비탄, 증오와 같이, 대화를 할 때는 단 하나도 쓸모없는 부정적인 감정의 질척한 덩어리만 보일 뿐이지만요.


“가령 카웬나양 처럼. 도르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제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멋쩍은듯 자신의 목덜미를 긁으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말을 정리하고 있는 카웬나를 보던 로완은 레이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반면 다른 분들은-”


벌컥.


쿠당탕.


  유감인지 다행인지, 이 이상의 말은 더는 들을 수 없었다.


로시네가 협회의 문을 열자마자, 정신을 잃듯, 그대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카웬나가 황급히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발로 치우고, 모닥불 앞으로 레이르를 끌어당겼다.


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한기가 레이르에게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온다.

이게 언젠가 말했던 혹한의 저주였나?


로완은 자신의 손을 튕겨 레이르의 몸 주변을 보라색 불꽃으로 감쌌다.

저주를 막아내는 것은 또 다른 저주라고 했던가.


언젠가 혹한의 저주를 해주 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론상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망설임 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스태프를 들어, 로시네의 머리맡에 서서 스태프를 쥐고, 눈을 감았다.


“카웬나, 물러서!”

너무나도 옅은 숨을, 천천히 쉬고 있었다.

위급한 상태이지만, 오히려 안도했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니까.


“전능하신 라이미라크시여. 당신의 어린 종이 그대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스러진 어린 양을 보살피려 합니다. 한기를 몰아낼 당신의 자비를 배플어 주시옵소서.”


횃불보다 작지만 선명한 빛이 스태프에서 로시네의 가슴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카웬나, 얼음!”


급한 대로 일단 자신의 숫돌을 로시네의 이마에 가져다 대자, 레이르씨가 황급하게 주방으로 뛰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옅은 숨을 쉬던 로시네가 천천히,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카웬나가 다리를, 나와 레이르가 양 어깨를 들며 조금 전에 발에 차였던 의자를 피해 로시네를 소파에 눕혔다.


로완은...

“뭐하고 있는거야?”


솥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있었다.

“추운 몸을 녹이고 입맛이 없을 때는 이만한 게 또 없지요.”


양배추와 콩이 물과 함께 한가득 들어있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잠시 바람 좀 쐬려고, 일어나면 불러줘.”